1차/커플로그

엘리네일

Hewa 2016. 1. 18. 03:42

슬슬 술기운이 도는 것 같기도 하고. 네일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조금 띵하다. 멈춰야 할 때가 온 것 같은데……. 제 눈 앞에서 채워지는 잔을 보니, 어쩐지 멈출 수만은 없어서. 네일은 시선을 올려 제 맞은편에 앉은 엘리후를 바라보았다. 한 손으로는 턱을 괸 채로, 또 다른 한 손으로는 반 쯤 채워진 술잔을 든 채로. 옅게 띄고 있는 미소는 묘하게 도발적이라, 네일은 그것에 이끌리듯 제 잔을 집어 들었다. 제대로 취하는 것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겠지. 안봐도 뻔했다. 매번 이 번에는 안 넘어가야지, 하고 다짐하고 시작해도 꼭 이리 넘어가게 되어있다. 딱히 져주는 것도 아닌데도. 그냥 제 연인이 저에게 있어서 일종의 약점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럴 때면 하곤 한다. 사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괜찮아?"


그러니까, 이렇게 다정하게 말 걸지 말라고. 네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게 뭔지 내가 모를 줄 알아? 그리 말하려는 것을 꾹 참고 네일은 괜히 잔에 담긴 술만 목 뒤로 넘겼다. 몇 잔 째더라. 딱히 술이 약하다는 생각은 한 적은 없었는데, 요상하게 엘리후는 이길 수가 없었다. 이쯤되면 자존심의 문제도 있는지라. 항상 나가 떨어져서 끙끙거리는 건 네일 쪽이었고, 그런 네일을 잘 인터셉트해 제마음대로 요리하는 건 엘리후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끙끙거릴 때 즈음에는 기억이 거의 날아가버린 뒤라서,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네일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날이 밝으면 평소보다 더한 허리 통증에 시달릴 뿐. 그래서 그냥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충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만 하는 게 고작이었다.

붉게 달아오른 뺨에 손이 닿는다. 항상 끼고 다니던 검은색 장갑을 벗은 손은 제법 차가워서, 몸 깊숙한 곳에서 피어오르는 열기를 식혀주었다. 그게 기분이 좋았다. 네일은 지긋이 눈을 감고 그 손바닥에 뺨을 부볐다. 이번에도 이기는 건 포기다. 엘리후는 느릿하게 반대쪽 손을 뻗어 네일이 들고 있는 잔을 뺏어 들었다. 네일은 저가 술이 약한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나, 엘리후에게는 그냥 마냥 약한 것이기만 해서. 반 즈음 술이 남은 잔 옆에 빈 잔이 놓인다. 네일은 급기야 제 뺨에 닿아있는 엘리후의 손 위에 제 손을 얹기까지 했다. 기분이 좋다.


"…왜 넌 맨날 하나도 안 취하는 건데."

"글쎄."


불만 섞인 말에 작게 키득거리며 엘리후는 네일을 끌어와 제 무릎 위에 앉혔다. 그대로  제 얼굴을 네일의 얼굴에 가까이 했다. 키스할 듯 말 듯한 거리. 애태우듯, 시선만 가만히 맞출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결국 그런 엘리후를 먼저 끌어당겨 입을 맞춘 건 네일 쪽이었다. 술냄새가 꽤나 심했다. 이정도로 마셨던가? 저에게는 어떻든 별로 상관 없는 일이었으나. 오히려 많이 취한 쪽이 좋았지. 맞댄 입술 사이로 서툴게 밀고 들어오는 혀가 제법 귀여워서, 엘리후는 잠시 네일이 제 마음대로 하게 놔둬보았다. 요령은 하나도 없이 혀가 얽히고, 질척한 소리가 조용한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술냄새가 더 가까이 확 끼쳐온다. 싫진 않았다.

그리고 슬슬 네일의 혀에 힘이 빠져갈 때 즈음, 엘리후는 네일의 뒷머리를 제 손으로 받치며 더 깊게 입을 맞추었다. 숨 쉴 틈 조차 주지 않고 얽혀오는 혀에 네일은 슬슬 정신을 차리고 있기가 힘들었다. 숨이 막히고, 힘이 빠진 손으로 밀어내보지만 그대로 두 손목을 한 손에 잡혀 이도저도 못하게 되어버린다. 하여간에 악취미. 이리 속으로 투덜거릴 정신도 슬슬 빠져만 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엘리후는 키스에서마저 애를 태울 생각인지, 진하게 얽던 혀를 풀고 장난스레 제 혀로 네일의 혀를 톡톡 건드리기만 했다. 확 깨물어버릴까. 그런 생각도 했으나, 그럴 깡은 애석히도 부족했다. 결국 엘리후도 슬슬 숨쉬기가 힘들었는지, 그 상태에서 얼마 안 가 입술을 떼어냈다. 가까이에서 서로의 숨을 주고받는다. 네일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슬슬 들어갈까."

"뭘 하려고."


긴 한숨소리를 다시금 제 입술로 덮어버리며 엘리후는 네일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네일은 억지로 그 입술을 떼어내며 엘리후를 노려보았다. 들어가자면서. 여기서도 나쁘진 않지 않나. 빙긋 웃으며 하는 말에 도저히 무어라 할 수는 없었기에, 네일은 그냥 입을 꾹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항상 이런 식이지. 네일은 작게 신음을 뱉어냈다. 그리고 그에 반응하듯, 엘리후는 드러난 목덜미에 제 입술을 묻었다. 묘한 느낌. 술을 먹으면 오히려 감각이 무뎌진다던데, 네일은 오히려 예민해지는 것만 같았다. 붉게 자국이 새겨져나갈 때마다 네일은 몸을 흠칫 떨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을 뻗어 엘리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술기운 때문인지 퍽 다정스러운 손길은 되지 못했으나.

졸리지가 않네. 졸리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텐데. 느릿하게 눈을 내리감으며, 제 허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러나 금방 손이 턱에 닿아 강제로 다시 엘리후를 바라보게 했고, 네일은 힘없이 이끌려갈 뿐이었다. 뱀같은 손이 등줄기를 훑는다. 네일은 가만히 제 연인에게 기대었다. 간지럽히듯 등을, 허리를, 허벅지를 쓸어내린다. 네일은 저도모르게 키득거렸다. 술기운 때문이다. 술기운 때문에 괜시리 기분이 좋은 거다. 엘리후는 흐흥, 하고 알다가도 모를 소리를 내며 그런 네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취하면 고분고분해진단 말이지."

"…원래도 고분고분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평소보다도 더 말이야."


귓가에 속삭여지는 목소리에 네일은 저도 모르게 힉, 하고 바보같은 소리를 뱉어냈다. 엘리후는 그대로 네일의 두 팔을 꽉 잡고 혀로 네일의 귀를 핥았다. 술때문인지, 부끄러워서인지. 잔뜩 붉어져 있는 귀에 혀가 닿을 때마다 네일은 자꾸만 흠칫흠칫 떨었다. 슬슬 오르기 시작하는 열기를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팔을 잡힌 탓에 어떻게 움직일 수도 없었고, 엘리후는 여전히 귀를 집요하게 혀로 괴롭히며 애만 태울 뿐이었다. 이런 건 싫은데. 느릿하게 숨을 몰아쉬고 있을 무렵, 귀가 깨물린다. 네일은 순간 등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싫어……."

"뭐가?"

"…애태우지 말아줘……."


다 꺼져가는 목소리로 애원한다. 어느새 흐릿해진 시선과 마주치자, 엘리후는 가만히 네일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슬슬 그 또한 참는 것이 무리가 되어갈 때 즈음,


"빨리 해줘."


재촉하는 목소리. 고개를 들자 눈이 마주쳤다. 응? 빨리. 그 목소리가 괜히 귓가에 웅웅 울렸다. 그리 말하는 네일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엘리후를 쳐다보고 있었다. 부끄러움을 타며 재촉하는 것이야 평소에도 자주 볼 수 있는 것이었으나─그만큼 거의 항상 집요하게도 애를 태웠으니─ 잔뜩 풀린 눈으로 똑바로 저를 쳐다보며 그리 말 하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엘리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꽉 잡고 있던 네일의 팔을 놓아주었다. 자유가 된 팔은 자연스레 연인의 어깨를 감싼다. 당연히 있어야 할 곳을 찾았다는 듯이. 꽤나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닌가. 술에 취한 네일은 항상 묘하게 적극적이었고, 자극적이었으며, 종종 저마저 정신을 잃을 지경에 빠뜨리곤 했다.


취하지 않는 이유는 술이 아니라 네게 취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지. 속으로 작게 중얼거리며 엘리후는 다시금 제 연인에게 깊게 입을 맞추었다. 어깨를 감싸고 있던 팔이 움직여 목에 감겨오는데, 그것마저 퍽 사랑스러워 엘리후는 속으로 픽 웃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