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개인로그

[TikTok Season 2] 아이젠 에디트 개인 로그

Hewa 2016. 1. 27. 22:12

─ Sister Complex



"호그와트?"

"그래, 호그와트. 누나가 다니는 학교. 너도 거기에 다니게 될거야."

"그럼 나는, 아빠랑 동생이랑 친척들이랑 같이 바다 건너의 나라로 가지 않는거야?"


아이리스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디트는 영국 머글 사회에서도 손에 꼽히는 유서 깊은 음악가 집안이었다. 영국 외부와도 손이 뻗어있는, 그런. 전 유럽을 다시금 전란의 기운이 휩쓸 것이라는 사실 또한 에디트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급작스러운 미국으로의 이주 또한 그것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었다. 전쟁이 끝난다면 돌아올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말로 '모르지'였다.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해가 지나고, 10살이 되는 생일을 기다리고 있던 아이젠은 당연히 저도 미국으로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 허나.


"응. 아이젠이랑 누나랑, 어머니는 영국에 남을 거야."

"왜?"


집안에서, 우리를 남기기로 결정했으니까. 아이리스는 그 말을 삼켰다. 그저 두어번 고개를 젓고 말았다. 어린 아이는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저 제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네가 거기에 가봤자 너는 괴로울 일밖에 없을 거야. 에디트는 너를 아껴주지 않으니까. 너를 아껴주는 건 나뿐이잖니. 그렇지, 아이젠? 내가 사랑한 학교에 다니고, 나랑 같이 있으면 너는 나와 함께 행복해질거야. 분명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말을 하며, 아이리스는 아이젠을 끌어안았다. 나의 소중한 동생. 하나뿐인 동생. 그리 동생을 쓰다듬는 손길과, 동생을 훑는 눈길에서 광기와도 같은 것이 느껴졌음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당사자인 아이젠조차도.

아이리스는 셋째 아이오넬을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에디트의 자식이지, 저와 아이젠의 동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이젠은 제가 데리고 있을게요.


전란의 기운이 전 유럽을 휩쓸기 전, 그 유럽에 남겨진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가. 물론 아이젠은 엄밀히 말하면 남겨진 것이 아니었다. 아이리스가 아이젠을 남게 만들었다. 그 한마디로. 아이젠은 에디트에서 예쁨을 받을 수는 없는 아이였으나, 그렇다고 남겨질 아이는 아니었다. 남겨질 아이는 아이리스였다. 아이리스는 대놓고 에디트를 혐오했다. 그것이 비단 아주 어릴 적부터 재능이 전혀 없다는 이유로 집안에서 줄곧 무시당해온 기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리스는 아이젠의 친누나였지만 에디트가 아니었다. 아이리스 플로멜. 그녀는 호그와트에 입학하면서 에디트를 버렸다. 순혈 가문의 혼혈 소녀가 되었다.

아무튼, 아이젠을 남겨지게 만든 것은 아이리스였다. 아이리스는 아이젠을 사랑했다. 첫째 아이가 둘째 아이에게 과도할 정도의 집착을 보인다는 점을 둘의 아버지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리스와 아이젠을 떼어놓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둘의 유대감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컸고, 기어코 아이젠이 마법을 발현하는 일마저 발생하고 말았다. 본래 에디트는 요상하게도 머글 출신 마법사가 많은 집안이었다. 그중 대부분은 마법을 무시하고 머글로써 살아가긴 했으나, 당연히 예외 케이스도 존재했다. 아이젠의 아버지는 호그와트에 입학해 마녀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했다는 이유로 가주 경쟁에서 밀려났다. 그래도 가문의 눈 밖에 난 아들을 챙길 능력 정도는 있었다. 허나 아이젠이 바이올린을 놓고 마법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순간부터 아들은 그의 손을 떠나고 만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싸움이 있었다. 결국 에디트는 떠났고, 플로멜은 남았다. 아이젠은 여전히 에디트인 채로 플로멜에 남겨졌다. 무엇이 소년에게 행복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호그와트에서, 아이젠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소년은 바이올린에는 재능이 부족했으나 마법에는 재능이 있었다. 종종 순혈이라고 아이젠을 얕보는 치들도 있었으나, 3학년 즈음부터 아이젠은 그들을 가볍게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압박하는 사람도 없고, 호그와트는 즐거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젠은 자신이 에디트에게서 버림받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 영국에 남겨진 이유는 그것이 아닌 이상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4학년의 방학.


"누나."


셋째 아이오넬은 둘째 아이젠을 많이 따랐다. 아이오넬이 태어나고, 그 아이가 아이젠과는 다르게 바이올린에 뛰어난 소질을 보임으로써 집안의 관심과 사랑은 모두 아이오넬에게 쏠렸으나. 아이젠은 아이오넬을 싫어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동생이었으니까. 아버지도 그랬다. 저가 바이올린을 놓은 뒤로, 대놓고 저에게 실망했다는 티를 풀풀 냈던 아버지였지만 그래도 저를 사랑해주셨다. 사실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저 바다 건너 먼 나라인 미국으로 갔다고 하더라도 어째서 편지 한 통이 없을까. 에디트가 미국으로 떠난지 5년이 넘었다. 어딘가 잘못되었다, 는 것을 아이젠은 뒤늦게 깨달았다.


"…아이젠."

"어째서야?"


아이리스의 손에는 반으로 찢긴 편지가 들려 있었다. 봉투 채로 찢은 편지. 봉투의 겉면에는 선명한 글씨로 보내는 이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Ionel D. Edite. 아무리 그래도 동생이기에. 저를 그토록 잘 따라주었기에 아낄 수밖에 없었던 하나뿐인 친동생의 이름이었다. 아이리스는 눈도 깜빡이지 않으며 아이젠을 바라보았다. 뭔가 미안하다던가, 변명 같은 것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저가 무엇을 잘못했느냐,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이젠은 기가 찼다. 거칠게 누나의 손에 들려있는 편지를 낚아채갔다. 이런 식으로 몇 개의 편지가 찢겼을까. 오지 않는 답장을 기다리며 동생은,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이젠은 미간을 찌푸렸다.

찢긴 편지는 복구할 수 있을 것이다. 마법을 쓰면 되니까. 하지만 아이젠은 제 누나가 이런 짓을 한 이유를 듣고 싶었다. 저를 사랑해주었던 누나였다. 저도 누나를 사랑했다. 어머니밖에 아는 이가 없는 외가에서, 둘은 서로를 지탱하며 지금까지 지내왔다. "변명이라도 해봐." 아이젠은 한참을 입술을 달싹이다가 그렇게 말했다. 아이리스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어째서냐고! 아이젠이 언성을 높이자, 아이리스는 그제야 입을 뗐다.


"내가 잘못한거야, 아이젠?"

"……뭐?"

"나는 널 사랑해서 이럴 수밖에 없었어."


아이젠의 눈동자가 떨렸다. 아이리스는 그런 아이젠에게 두어걸음 다가와, 저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아이젠의 볼을 제 손으로 감쌌다. 퍼뜩 차가운 손이 다가오자 아이젠은 잘게 몸을 떨었다. …오늘 만큼 누나의 푸른색 눈동자가 무서웠던 적이 없었다. 그 눈동자는 깊은 호수의 그것마냥 차디차게 잠겨있었으며, 또한 푸른색 불꽃처럼 일렁거리고 있었다. 아이젠은 아직 어렸기에, 그 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호그와트에서의 생활, 나와의 일상. 행복하고 즐거웠잖아. 그렇지? 우리가 에디트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누나."

"네게 그 환경을 만들어준 건 나야. 아버지는 끝까지 널 미국으로 데려가려고 하셨거든. 내가 어머니께 부탁해서 널 억지로 이곳에 데려왔어. 너도 영국에 남길 바란 거잖아? 그래서 좋다고 따라왔잖아. 넌 거기에 갔더라면 분명히 행복해지지 못했을 거야. 지금은 행복하지?"


아니다, 라고 답을 할 수는 없었다. 아이젠은 수도없이 해야 할 말을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 뒤의 말이 생각나질 않았다. 나는, 나는…….


"…그래도 내 동생이야, 누나. 동생이 나한테 보낸 편지라고."

"우리는 그런 동생을 둔 적 없잖니."


그 목소리에 소름이 끼쳤다. 평소 알던 누나와는 전혀 달랐다. 이건 마치.


"내가 잘못한 거 아니지, 아이젠?"


마치…….


"대답해봐."


노골적인 집착을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누나는 항상 저를 좋아하고 아껴주었다. 필요한 잔소리는 아끼지 않았다. 누나가 저에게 주는 애정과 사랑이 좋았고, 그렇기에 저도 누나에게 애정과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남매였다. 누가 봐도 사이 좋은. 하지만…….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누나가 조금 더 어릴 때, 성인이 되기 전에 선을 그어놨더라면. 어째서 이런 진득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는지. 그정도로 자신은 어렸는지. 지금까지 얼마나 안일하게 살아왔는지, 아이젠은 깨닫고 말았다. 당장 곁에 있는 사람이 저에게 보내는 감정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호그와트에 입학하지 않았더라면. 그 경우의 수가 머릿속에 스쳐지나간 순간 아이젠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에디트는 저를 아껴주지 않았다. 바이올린을 놓은 순간, 관심도 끊겼다. 그 무관심 속에서 슬퍼했던 어린 시절이 존재했다. 그래서 마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다. 재능이 있구나. 그 말을 부모님께 들으면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가졌다. 그렇다면 마법사로는 살아갈 수 있겠구나. 마냥 그게 좋았다. 하지만 정말로 미국에 갔더라면……. 아이젠은 에디트의 사람으로 오롯이 남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할 수 있는 마법과 동떨어진 채, 친척들이 보내는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그렇게 살아갔을 것이다.

아이젠은 누나의 말에 아무런 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누나가 잘못한 거야. 그렇게 말한다면, 미국에 가는 것이 맞는 선택이었다는 뜻이 되어버리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젠은, 그곳에서 버틸 자신이 전혀 없었다. "아니지?" 아이리스가 빙긋 웃었다.


"아이젠, 나는 널 사랑한단다."


누나가 말하는 사랑과 내가 누나에게 보내는 사랑은 달라. 그 말조차도 할 수가 없어서, 아이젠은 침묵을 선택했다.



-



─고독



─몇 년 만이더라. 아이젠은 굳게 닫혀있는 저택의 문을 열었다. 에디트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아버지가 머글들의 눈에 띄지 않게 마법으로 숨겨놓은 저택인지라 문이 잠겨있지는 않았다. 오로지 에디트의 사람만 찾아낼 수 있는, 오랫동안 에디트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던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싸늘한 기운이 아이젠의 몸을 휘감았다. 정말로 아무도 없구나. 미리 들었기에 알고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어쩐지 씁쓸해진다. …오히려 이게 나을지도 모른다. 애매한 관계의 친척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는, 혼자가. 아이젠은 잠시 저택의 안을 둘러보다가 짐을 들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내딛었다. 본래 아이젠이 어릴적 쓰던 방은 2층에 있었으므로.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거길 쓸 생각이었다. 저택 안에 더 좋은 방은 많았고, 그런 곳을 사용하더라도 무어라 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원래 쓰던 방이 편할 것이라 생각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흔적은 저택 여기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봤자 몇달인데. 지금으로부터 몇달 정도 전, 그나마 영국에 남아있던 몇몇 에디트들마저 모두 미국으로 떠났다. 어머니도, 누나도 에디트를 버린지 오래였으니. 이제는 정말로 혼자 남았다는 뜻이다. 아이젠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 방은 당연하지만 먼지로 가득했다. 쓰던 침대나 책상 같은 것들은 온전히 있지만, 어쩐지 텅 비어있는 방. 아이젠은 짐꾸러미에서 지팡이를 꺼내다가 앗차, 하고 그것을 다시 집어넣었다. 결국 머글식 청소밖에 방법이 없군. 땀 좀 빼겠는걸. 아이젠은 일단 저택 안을 뒤져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두 팔을 걷고 방에서 나갔다. 풀어놓았던 제이는 이미 저택 여기저기를 쏘다니고 있었다. 아이젠은 저도 모르게 픽 웃었다. 먼지 너무 많이 마시면 안 좋을텐데. 그래도, 일단은 저대로 두기로 했다.


이번 방학은, 일종의 도망이었다. 누나가 저에게 품고 있는 감정을 안 순간 아이젠은 도저히 플로멜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안그래도 불편한 공간이다. 차별 성향이 옅고, 눈에 띄지 않는 가문이라고는 하나 순혈 가문 안에서 혼혈 아이가 지내는 것은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저의 안전 때문에라도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으니까. 집안에서 눈에 띄게 하고 싶지 않아했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래서, 아이젠의 방학은 항상 쓸쓸했다.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기에는 당연히 플로멜의 사람들에게 눈치가 보였고, 말상대라고는 어머니와 누나가 전부였으니. 방에 감금 된 것 까지는 아니었으나 저택 안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건 너무나도 답답했다. 그렇게 1학년부터 4학년까지의 방학을 보냈었다.

에디트의 저택이 차라리 나을 것이리라, 고. 이전까지는 누나가 막았었다. 뭐하러 그 버려진 것이나 다름 없는 저택으로 돌아가느냐고. 아이젠은 누나의 말을 제법 잘 듣는 동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마음의 평안을 위해 플로멜을 피한 게 아니었다. 누나를, 아이리스를 피했다. 누나가 붙여오는 말에 대답할 자신도, 한 공간에 있을 자신도 없었기에. 아이젠은 여전히 아이리스를 사랑했지만 아이리스가 아이젠을 사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누나가 원하는 사랑을 줄 수는 없을 뿐더러, 불가능을 넘어서서 싫은 것에 가까운 일이었다. 에디트는 아이리스가 혐오해 마지않는 집안이었다. 그러니 그 저택에도, 발조차 들이고 싶지 않겠지. 아이리스를 상대하기에는 가장 안전한 공간이었다. 아이젠은 자신을 저택에 가두었다. 나갔다가는, 아이리스에게 발견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된다면 이리 도망을 친 의미가 사라지고 만다.


일주일이 지났을 즈음, 아이젠은 깃펜과 양피지를 꺼냈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그리고 아이젠 에디트는 그 사회성이 유독이나 더 톡톡 튀는 소년이었다. 혼자인 것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 버틸 수가 없었다. 플로멜에서는 그래도 누나가 있었고, 어머니가 있었다. 지나다니는 외가의 친척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아무도 없다. 오롯이 저 혼자. 그것은 아이젠의 심리 상태에 그닥 좋은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아이리스를 두려워했기에 도망친 장소에서, 아이젠은 침묵의 공포를 느꼈다. 편지는 일종의 도움 요청이었다. 하루라도, 아니. 잠시라도 좋았다. 누군가가 와주었으면 했다. 아이젠은 그리 생각하며,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 둘씩 떠올리기 시작했다.


……안돼.

안된다. 얘도 안돼. 걔도 안돼. 순혈은, 더더욱 안돼. 아이젠은 머글과 혼혈이 마법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제 친구들은, 일단 겉으로는 티를 내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가족이나 친척, 혹은 전혀 다른 제 3자는……. 헤이트크라임. 아이젠은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결국 그냥 깃펜을 놓고 말았다. 저를 위해서 친구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진 않았다. 괜찮을 것이다. 아이젠은 한참을 시선을 떨구고 있다가, 발치의 제이를 안아들었다. 이 아이가 있으니까.


이 아이가……?


제이는 아이리스가 아이젠이 호그와트에 입학할 때, 같이 데리고가라며 선물로 준 아이였다. 그 때에는 제법 쪼끄만했는데. 지금도 작긴하지만. 아이젠의 눈동자가 미약하게 떨렸다. 제이는 주인의 기분을 아주 잘 파악하는 동물이다. 그렇기에 아이젠의 품 안에서 빠져나가려 했으나, 아이젠은 그런 제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누나의 흔적. 미약하게 흔들리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하고, 아이젠은 손을 들었다. 방 안을 개의 비명소리가 날카롭게 채웠다.

그리고 몇 분 후. 정신을 차린 아이젠은 품 안에서 빠져나가지도 못한 채 떨고 있는 가련한 동물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무슨 짓을. 아까까지만 해도 제이를 세차게 내리치던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려다, 이내 거두고 말았다. 그저 평소처럼 다정하게 끌어안을 뿐이었다. 누나를 싫어하게 된걸까. 그건 그 자체로도 자신이 혐오스러운 일이었지만─아무리 그래도 자신을 아껴주었던 누나였기에─ 제이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 아닌가.


"…미안. 미안해."


울음이 섞인 목소리였다. 네 잘못은 없는데… 내가 왜그랬을까. 거기까지 이어지고, 방에는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제이는 고개를 들고 아이젠의 얼굴을 한 번 느릿하게 핥았다. 누나와는 별개였다. 그것을 알고 있는데도. 지금 이곳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 이 아이뿐인데. 그리고, 언제나 옆을 지켜주었던 것도……. 아이젠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울고 있는걸지도 모르겠다.



-



─편지



시끄러운 게 좋았다. 어떤 형태로든 시끌시끌하면, 그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들어갈 수 있으니까. 남들이 쓸데없을 정도로 밝다고 태클 거는 성격도 한 몫 했다. …글쎄. 에디트의 사람은 대대로 차분했다. 악기를 다루는 집안이라서일까. 활발한 아이가 나오더라도, 그 집안 분위기에 억눌려 조용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은 일종의 돌연변이와도 같은 존재였다. 아니면, 그 악기라는 놈을 아주 어렸을 적 놓아서였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아주 어릴적 시작했고, 아주 어릴적 놓았다. 무언가를 보여주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라고 어린 날의 아이젠은 생각했었다. 그래서 억울해했던 기억. 이제는 모두 예전의 것. 호그와트에 입학하면서 모두 접어 날려보냈다.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 여겼다.


……그럼에도 그 시절의 흔적을 미처 모두 지워내지 못한 것은, 어째서일지. 저도 모를 일이었다. 아이젠은 호그와트까지 가지고 온 바이올린을 볼 때마다 피식피식 웃곤 했다. 그리고 동시에 기분 나빠했다. 그럴 때마다 제이는 제 곁에서 낑, 낑. 하고 울었다. "이리와, 제이." 그 소리를 들으면 아이젠은 제이를 안아들고, 가만히 쓰다듬어주곤 했다. 예민하고, 영특하고, 끔찍할 정도로 주인을 닮은 놈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주인의 기분을 제일 잘 알았다. 심지어 그 주인 본인보다도 더. 나쁘진 않았다. 저를 이해해주는 것이 하나 쯤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편안함을 가져다주었다. 설령 말이 안 통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룸메이트들이 모르도록 숨기는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그래도, 저가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표하면 다들 슬금슬금 피하곤 했으니 다행이었다. 당연했다. 항상 실실 웃고만 다니는 녀석이 갑자기 인상을 쓰면, 어린 나이의 애들은 겁을 먹기 마련이지. 저학년 때에는 그렇게 대처했고, 고학년이 되어서는 그냥 철저하게 숨기는 것을 꼭 지켰다. 투명 마법을 건다던지, 하는 식으로. 저학년 때 못했던 것을 고학년 때 할 수 있었으니, 수고를 덜은 셈이었다. 바이올린을 마주하는 것에 대해 성격이 조금 풀린 탓도 있었고.


그러고보면, 제 동생도 그랬더랬다. 저가 미간이라도 찌푸리면 항상 옷깃을 잡아오며 화내지 말라고 꼭 끌어안아주곤 했다. 그런 아이를 보며, 어찌 화를 내겠는가. 아이젠은 그때마다 픽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형이었다. 그 때에도 알고 있었다. 이 아이가 없었더라면. 하다못해 재능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저가 밀려날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아이젠은 아예 재능이 없었던 소년은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에는 소질이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저, 재능이 부족했을 뿐. 그때의 그 소년에게 조금만 더 기회를 줬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으리라. 하지만 동생, 아이오넬이 태어나면서 소년은 그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말았던 과거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원망할 수는 없었다. 동생이니까. 가족이니까. 저를 이리도 잘 따라주니까. 도무지 미워할래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물론 아이리스는 아이오넬을 미워했다.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으나, 보는 아이젠은 알 수 있었다. 아이오넬은 당시엔 어렸기에 몰랐겠지만서도. 지금은, 글쎄. 그 때를 떠올리며 혹시,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사실 아이리스는 아이젠 또한 저처럼 동생을 미워하고 에디트를 미워하기를 바랐다. 누나의 말을 부모님의 말보다도 더 절대적으로 생각해온 아이젠이, 거의 처음으로 누나를 따르지 않은 일이었다.


가족이니까.


그 명제는 아이젠에게 있어서 누나에게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그게 누나에게 심한 말을 할 수 없는 이유였다. 도무지 싫어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아이리스는 아이오넬을 미워했고, 아버지를 미워했으며, 에디트를 미워했다. 아이리스가 미워하지 않는 에디트는 오로지 아이젠 뿐이었다. 아이리스가 플로멜이고, 아이젠이 에디트이기때문에 아이리스가 그런 감정을 아이젠에게 품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아이젠은 문득 저가 에디트를 버리고 플로멜이 된다면 누나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 번도 누나는 저에게 플로멜이 되기를 권유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한다면, 그 감정을 지워낼까. 온전히 그저 평범한 남동생으로 보아줄까. 아이젠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에디트를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버림받았다 하더라도 저는 어디까지나 에디트였고, 언제까지나 에디트이고 싶었다.


「형에게 편지를 쓰는 것도 벌써 10번이 넘었어. 아버지도 두세개 정도 보내셨다고 들었는데, 하나도 답장이 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영국과 미국이 너무 멀기 때문일까. 아니면 형이 우리에게 화가 난 걸까. 전자여도, 후자여도 슬플 것 같아. 이제 내가 형과 헤어졌을 때의 형 나이를 넘어섰다는 걸 형은 알고 있을까? 난 아직도 종종 어렸을 적 형이랑 놀았던 때를 꿈으로 꾸곤 해. 언제쯤 다시 그렇게 놀 수 있을까. 형의 빈자리가 너무 커. 분명히 나보다 형이 더 외로울텐데. 이렇게 편지라도 쓸 수 있어서 다행이야. 하지만 답장을 받지 못하는 건 너무 슬픈 일이지. 화를 토해내는 편지라도 좋으니, 이번엔 형에게 답장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


읽고도 또 읽었던 편지. 누나는 10개도 넘는 편지를 찢었다는 말이다. 겨우 구해낸 4학년 방학 때의 이 편지는 줄곧 소중하게 간직해오고 있었다. 읽으면서 동생이 참 어른스럽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어른스러웠던 아이였다. 종종 형인 자신보다도 더. 답장은, 쓸 수 없었다. 사실상 보내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호그와트에 머물 때야 당연한 일이고, 방학때에는 더더욱. 물론 답장을 쓰려다가도 몇 줄 쓰고나면 찢어버리곤했다. 편지를 쓰는 일이 이리도 어려운 일이었나. 아이젠은 그때마다 찢어놓은 종이 앞에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이 편지 이후에도 온 것이 몇 개 있을 것이다. 과연 동생과 아버지는 상상할 수 있을까. 맏딸이 모든 편지를 차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호그와트에 머무는 동안, 그리고 플로멜에서 그림자로 살아가는 동안. 아이젠은 저가 어떻게 해볼만한 힘을 전혀 가질 수가 없었다. 졸업을 하고 나서야 어떻게든 해볼 수 있겠지. 과연 그때까지 동생과 아버지가 기다려줄 것인가. 아이젠은 알 수 없었다.

그 편지 밑에 달린 추신. 「아버지는 형도 이곳으로 오기를 바라셔. 오고 싶다면 언제든 편지 보내줘.」 여러모로 아이젠을 심란하게 만드는 두 문장이었다. 누나의 입김이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결정은 자신이 했다. 허나 지금은 어떠한가. 누나를 피하는 데에 제일 좋은 곳은 영국에서 떠난 에디트가 정착한 미국이었다. 아버지와 동생, 친척들이 있는 곳. 6학년의 아이젠은 가만히 지난 방학을 떠올렸다. 그리 쓸쓸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친척들의 눈총을 견뎌야 할테지만, 고독보다는 훨씬 나았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6학년 초까지만 해도 아이젠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앞으로 1년. 아이젠은 가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그 결정을 내리고 나니 어쩐지 편지가 술술 써졌다. 답장을 보내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대충 얼버무렸고, 미국에는 가지 않기로. 그리 써놓았다. 간단한 안부와 함께. 이것이 옳은 선택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끝끝내 아이젠의 발목을 잡은 것이 있었다. 꽤나, 여러 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해주지 않았는가. 적어도 그들과 함께할 동안에는 외롭지 않을 터이니. 혼자 버텨내는 것이 두렵긴 했으나 친구들과 영영 헤어지는 것도 두려웠다. 졸업 이후에는 당연히 보기 힘들어지겠으나, 영원히 보지 않는 것과 그것은 당연한 차이를 보였다.

마지막 문장을 써낸 잉크는 아직 마르지 않은 채였다. 아이젠은 손 끝으로 그것을 한 번 쓸어냈다. 잉크가 살짝 주변으로 번졌다. 내 이 선택이 틀리지 않은 선택이 되기를. 그리 속으로 중얼거리며 편지를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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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



잠을 이루지 못했음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참으로 여러가지 이유였다. 여전히 답답했으나, 동시에 후련했다. 과연 털어놓은 것이 잘 한 선택으로 남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못하는 채로 남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내 뜻을 전한다면 누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저는 퍽이나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여전히 아이리스를 사랑했다. 물론 그 사랑은 아이리스가 저에게 보이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사랑이었으나. 그 사랑을 묵묵히 받아내주는 것만은 평생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누군가를 마음에 담지 않는 것또한. 그렇게만 충족되면 되는 일일텐데, 저는 이렇게 누나를 내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받아내는 것도, 평생 누군가를 마음에 담지 않는 것도. 당장은 불가능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고, 그동안 저는 또 누나를 피해 도망만을 다닐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아이젠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떴다. 새벽이 끝나고 해가 떠오는 아침, 눈 앞에는 양피지와 깃펜이 하나 놓여 있었다. 6학년이 되어서 편지를 참으로 많이 쓰게 되었구나. 모두 가족을 향한 것이었다. 이전,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사랑을 담아 썼으나. 지금의 것은 조금 다르게. 아이젠은 깃펜을 들었다. 써야 할 내용은 4학년의 방학때부터 천천히 정리해왔다. 써내려감에 막힘은 없었다.



《나는 누나가 행복하기를 바라.

하지만 나를 사랑한다면 누나는 행복해질 수 없을거야.

누나를 사랑해. 앞으로도 쭉 그럴거야. 하지만 그건 누나가 바라는 사랑이 아니야.》



……무너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누나는 저를 가족애가 아닌 다른 형태의 애정으로 사랑했으나, 그렇다고 저를 연인으로 대한 것은 아니었다. 동생으로 대해주었다. 은연중에 알고 있었던 것이겠지. 동생의 사랑해, 가 자신의 사랑해, 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그것을 똑바로 인지시켜주어야했다. 저를 위한 일이기도 했지만, 누나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편지에 적은 대로 동생을 사랑하는 이상은 행복해질 수 없으니. 어디 새어나가기라도 한다면 아이젠을 넘어서서 아이리스를 괴롭게 만들 문제였으므로.



《언젠가, 어딘가에서. 누나가 원하는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분명히 만날 수 있을 거야.

그 때가 되면 나는 어떤 방밥을 써서라도 누나를 도울거야. 나는, 누나를 사랑하는 동생이니까.》



하지만 아이리스를 사랑하는 아이젠은 아님을. 나는 평생 아이젠으로서 아이리스를 사랑하지 못할 것임을. 편지의 끝을 만지작거리던 아이젠은 편지에 마저 추신을 덧붙였다.



《이번 방학도 플로멜 저택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거야. 다른 곳에 있을게. …이곳엔 좋은 친구들이 참 많거든. 바보같을 정도로 착하고, 상냥한 애도 있어. 마지막 방학은 그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싶어.

저번 방학 때 고의로 누나를 피한 건 사과할게. 하지만 나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누나가 알아줬으면 해. …이제는 피하지 않을게.》



─더 이상 도망치지 마라.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니.


그렇게 말했었으니까. 그래서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도망치지 않고 똑바로 남는 방법도, 또다른 결정도 분명히 존재했다. 플로멜이 되는 것. 그렇게 한다면 누나와 저는 다시금 확실한 남매가 되고, 누나의 기도 한 풀 꺾일 것이었다. 누나가 저에게 플로멜이 되기를 한 번도 권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증오해마지않는 에디트였으나, 에디트와 플로멜로 나뉘어있기에 동생임을 외면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


하지만 아이젠은 에디트를 가지고 살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앞으로도 평생 지고 살아가야 할 것. 영국에 혼자 남은 에디트로서, 언젠가 돌아올 사람들의 자리를 지켜놔야했으니. 그것은 퍽 어려운 일이겠으나, 할 수는 있었다. 노력한다면. 함께 노력하기로 했으니까. 에디트로 얼만큼의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힘 없는 플로멜보다는, 아무리 머글 세계에 있더라도 에디트 쪽이 더 나을 것이다. 지금은 다들 에디트를 버리거나 가족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함께 미국으로 떠난 이들이었으나, 마법 세계에 몸을 담고 있는 에디트들도 분명히 존재했으니. 저는 아직 무엇을 해야할지조차 결정을 내리지 못했으나, 항상 어리기만 했던 그리핀도르의 말썽쟁이가 이리 성장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하자. 성장은 당연한 일이었다. 겪은 일은 둘째치고서라도, 착하고 상냥한 친구를 위해서. 저를 위해 아픈 기억을 딛고 용기를 내 준 그 아이를 위해서. 아이젠은 펜촉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좋은 아이들이 너무 많아. 하나하나 떠올리며, 옅게 미소지었다. 정말로 졸업하기 싫어졌어.



《사랑을 담아. 당신의 동생이.》



그리 써놓고 편지를 접었다. 깔끔하게 봉한 편지는 낮 즈음, 부엉이에 의해 플로멜 저택으로 보내질 것이다. 남은 것은 누나의 몫이다.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결정을 내린 자신을 미워해도 좋았다. 슬프겠지만 그정도는 감수한 결정이었으니. 어떤 형태로든 좋으니, 그 감정을 정리해주기를. 다시 만나는 그 날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소와 똑같이 당신을 대할테니. 부디 당신도 그래주기를. 편지 겉면에 적힌 누나의 이름을 쓸어내리며, 아이젠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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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방학의 마지막 날. 진작 방학을 이렇게 보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즐거웠다. 태어나서 가장, 이라 최상급을 붙이더라도 아쉽지 않을 정도로 행복했던 나날. 허나 그 행복은 6학년 방학의 그 한달 동안 쭈욱 지속되지 못했다. 마지막 하루를 에디트 저택에서 홀로 보내야 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어차피 잠만 자고 일어나서, 친선 경기를 위해 다시 학교로 가면 되는. 그런 시간대에 아이젠은 저택에 도착했으므로. 들어가자마자 대충 방에 들어가 잠에 들고 아침을 맞이할 생각이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저택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한참 후. 오랫동안 적막에 휩싸여있던 에디트 저택 안이 무언가가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로 가득 메워졌다.



굳게 잠긴 저택에는 두 통의 편지가 와 있었다. 보낸이는 모두 같았다. 어느새 에디트에서 플로멜로 돌아가버린 제 어미의 이름. 물론 아이젠은 그것에 대해서 어머니를 미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의 선택을 매도할 생각 또한 없었다. 그저 씁쓸해할 뿐. 그래도 그녀는 아이젠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플로멜 저택에서, 꿋꿋하게 제 아들을 챙겨주었던 좋은 어머니였다. 아이젠은 딱 그렇게만 어머니에 대해서 기억하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어머니에게도 에디트 저택에서 지낼 거라는 말을 드리지 않았지. 지난 방학은 꽤나 걱정을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혹시 하는 생각에 이곳으로 편지를 보내셨던 것일지도. 언제 온 편지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아이젠은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편지는 6학년의 프롬 때 누나에게 보냈던 편지의 답장을 어머니가 대신 보내주신 것이라고. 그리 생각했다. 허나.


한 편지는 저가 여기 있으리라 예상하고, 걱정의 말과 함께 안부를 묻는 어머니의 편지가 맞았다. 편지 말미의 아이리스가 많이 아프다, 하는 문구가 괜히 속을 아프게 했으나. 첫번째 편지에선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두번째 편지는 그저 속이 아픈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편지를 읽어내려가며 아이젠은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느꼈다. 6학년 프롬, 큰 마음을 먹고 보낸 그 편지는 누나에게 닿지 않았다. ─부엉이들이 다친 채로 도착하는 일이 잦아졌다고 했지……. 그걸 고려하지 못했다. 명백히, 자신의 실수였다. 전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리고.


《네 누나가 많이 아프다, 아이젠. 확인하는 즉시 와줬으면 좋겠구나. 자해를… 좀 했어. 지금도 계속 하려고 하고 있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네 누나는 나보다 너와 더 친하지 않았니? 아이리스에게 네가 필요한 것 같구나.》


편지를 끝까지 읽은 아이젠은 들고 있던 컵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안에 가득 차있던 차가운 물이 바닥을 적셨다. 아이젠은 사랑을 몰랐다. 모르기에, 누나가 저에게 보이는 사랑을 두려워했다. 저또한 누구를 사랑하게 되는 걸 무서워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저에게 제일이 된다는 것은, 다른 이들을 눈밖에 두게 되는 상황을 초래할지도 모르기에. 실제로 누나는 아이젠이 플로멜 저택에서 방학을 보내게 된 이후부터 친구들을 전혀 챙기지 않았다. 플로멜 저택에 종종 놀러오는 누나의 친구들이 몇몇 있었을 뿐. 그때는 그저 의문만 품고 말았는데, 누나가 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저 이외의 다른 이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거구나. 그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사랑 자체를 두려워하게 됐다. 모든 이를 똑같이 동등하게 좋아하고 싶었다.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친구들이니까.


조금만 더 저택에 일찍 왔으면 갈 수 있었을텐데. 그 사랑을 두려워한다고 누나를 싫어하게 된 건 아니었다. 아직도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것이 비록 비틀린 감정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저를 아껴준 가족. 그러니까, 가야 하는데. 누나가 자해를 하게 된 이유는 분명히 저때문일텐데. 그러니 더더욱 가봐야 하는데. 시간이 늦었다. 지금 가봤자, 오래 지나지 않아 학교로 떠나야 할 것이고……. 그게 소용이 있는 짓인지. 그 전에 저때문에 그렇게 된 누나를 볼 자신이 있는지. 만약, 프롬에 보낸 그 편지가 전해졌더라면 누나는.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아이젠은 유리조각들을 치우지도 못하고 그대로 침대에 몸을 뉘였다. 돌아가지 않으면… 되겠지. 학교에. 하지만 그건 싫었다. 그렇다고 도망치는 것도 싫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결국 아이젠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에 짓눌려 눈을 감고 말았다. 잠에 빠져든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고, 눈을 뜬 아이젠은 편지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그냥 그자리에 놓아두었다. 친선 경기를 위해 호그와트로 떠났다. 그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그리고 이것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후회할 일이 될 것임을. 아이젠은 이때까지도, 그 후에도 한참동안 알지 못했다.


호그와트에 돌아온 아이젠은 거슬리는 뒷머리를 제 손으로 잘라버렸다. 마법을 사용하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제법 보기 좋지 않게 잘리긴 했으나, 별로 개의치 않아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플로멜 저택에는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장례식이 치뤄졌다. 장례식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의 조촐한. 저택에서 자살한 젊은 여성, 이라니. 그런 소문이 떠도는 것을 플로멜의 그 누구도 바라지 않았다. 죽은 딸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한 어머니의 마음 또한 있었다. 그렇게 아이리스 플로멜─그녀는 본디 아이리스 에디트였으나─의 자살은 조용히 묻혀져만갔다. 그 누구도 이유조차 알지 못한 채로.




* * *



3일만에 눈을 떴다. 오랫동안 머리가 아팠다. 3일이나 지났음도 눈을 뜨고 한참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지? 체스로 진행된 덤스트랭과의 친선 경기. 저는 체스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고, 머리 굴리는 일에도 약했기에 친구들에게 맡겨놓고 움직이기만 했다. 사실, 누나의 일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서도 있었다. 긴 생각을 하다가 거기에 생각이 닿을까봐. 그러면, 이 자리에서 주저앉게 되어버릴까봐. 그럴 순 없었으니. 그리고 그것은 지금 또한 마찬가지였다. 길게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일단은 돌아가자. 아이젠은 저에게 괜찮냐며 몇 번이나 묻는 폼프리 부인에게 고개만 끄덕이고, 병동에서 나왔다.

기숙사의 제 방 문을 열자마자 안에서 제이가 뛰쳐나왔다. 한참을 저에게 부비적거리며 애정 표현을 하는 제이를 보고있자니, 픽 하고 웃음이 나왔다. 혼자 있을 때 보이게된 신경증은 여전했으나, 학교에서 제이와 함께 있을 때는 괜찮았다. 퍽 다행인 일이지. 제이를 안아올리니, 한 번도 제 앞에서 운 적 없었던 얼굴에 눈물자국이 가득한 것이 눈에 띄었다. 아이젠은 손으로 그 자국을 만지작거렸다. 정말로 3일이 지났구나.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제이를 제 품에 꼬옥 안았다가, 놓아주었다. 그리고 밥을 챙겨주고 침대에 몸을 뉘였다. 여전히 머리가 아팠다. 내일은… 깨자마자 제이 산책부터 시켜줘야겠고. 그리고 또……. 길어진 생각은 3일 전의 기억으로 되돌아갔다.

처음에는 평범한 체스였다. 말이 인간일 뿐이지. 그것은 그닥 특별한 일이 아니었고, 아이젠은 그것에 대해서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 안개 속으로 사라져간 몇몇 친구들. 피가 묻은 망토. 덜컹거리는 소리. 흔들리는 판.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주변이 안개로 뒤덮였다. 기분 나쁜 안개. 저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 수는 없었으나… 피가 묻어있는 망토를 본 순간 머리는 잔인하게도 매우 빠르게 돌아갔다. 누군가가 다쳤다. 그리고 사실은 다친것 그 이상일지도……. 그것이 어떤 쪽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제 친구들 중 누군가는 아니길 빈다. 이기적인 생각이었으나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안개로 뒤덮인 체스판의 위, 거기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면 안된다는 생각 뿐이었기에. 그리고, 어떤 인영이 보였고, 공격해야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 피묻은 망토가 끝끝내 신경이 쓰여서. 지팡이를 내렸다. 인영은 저와는 반대로 지팡이를 들었고, 그 이후 정신을 잃었다. 다음에는 기억이 텅 비어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어도 좋은 일이 있지 않았음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병동. 친구들은 조금 멍해보였지만 다들 괜찮아보였다. 큰 피를 흘렸을만한 상처를 입은 사람도 없었다. 단지, 이솔렛이. 어쩐지 이솔렛은 저가 정신을 잃은 이후의 일들을 알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물을 수는 없었기에, 입을 닫았다. 저가 걱정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이솔렛은 해당사항이 아닐 거라 생각했기에. 단지 그녀는 다른 내용에 대해서 걱정을 해야 하게 되었으나. 그렇다면, 그 피는 분명히 덤스트랭 학생의……. 아이젠은 병동을 나오며 기숙사까지 오던 길, 어째선지 어수선하던 학교의 분위기를 떠올렸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구나. 그저 예상만 할 뿐이었고,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었으나. 생각하는 것도 피곤하다. 머리가 계속 아파왔다. 침대 아래에선 제이가 낑낑거렸다. 몸을 움직여 제이를 품에 안았다. 몸은 따뜻해졌으나, 머릿속은 차갑게 식은 그대로였다. 그렇게 잠에 빠져들었다.


아이젠은 크리스마스 휴가 때 플로멜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았고─정확히는 '못했다'에 가까웠다. 애초부터 아이젠은 그 저택을 좋아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 저택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불길한 예지를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휴가가 하루 지난 날. 그때가 되어서야 제 소꿉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아이는 무언가 아는 눈치였으나 그 일에 대해서 당장 물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었기에 그녀의 앞에서도 일부러 묵인하고 있었더랬다. 그렇게 묵히고 묵히던 이야기를 끝끝내 아이젠은 묻고 말았다. 확인받아야만 했다. 그 때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즈……."


저를 바라보는 소꿉친구의 눈빛이 가늘게 흔들렸다. 그 눈동자에서 생기가 사라졌음을, 아이젠은 알 수 있었기에 그저 쓰게 웃었다. 저가 추측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그녀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저와 솔레이를 포함해 몇 되지 않는 친구들에게만 남아있음도 알았다. 피투성이가 된 체스판…….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렇게 무슨 일이 생겼던 건지 완전히 알아버리고 말았다. 아이젠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불안한 표정으로 저를 올려다보고 있는 솔레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괜찮아."


이것이 네게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참으로 아픈 현실이었다.


아이젠은 충격적인 진실에 대해서 입을 다물었다. …정확히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이에 대해서 알지 않기를 원한다. 저가 소중히 여기는 친구들이, 그것이 고의는 아니더라도… 정말로 그런 일을 벌였다면. 그 날 체스에 대해서 저가 입을 여는 순간, 어떤 거짓말로 포장하더라도 그 사실을 그들이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숨기기는 힘드리라. 그렇기에 닫아버렸다. 그 누구도 상처받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진실을 은폐하는 일일지라도. 친구들을 위한 선택이라 자기위로했으나, 어디까지나 저를 위한 이기적인 선택임을. 아이젠은 은연중에 깨닫고야 말았다. 결국 저 또한 상처받고싶지 않았기에.



그렇게 1940년 1월, 그 겨울의 나날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