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 에디트] Adulthood
에디트 저택은 영국에 홀로 남은 아이젠이 어느 순간부터 도피처로 선택한 공간이었고, 동시에 혼자임을 각인시켜준 악몽 같은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가 7학년이 되고나서는 부탁을 받아 공식적으로 지키게 된 곳. 지킨다고 해봤자 이따금 들려 텅 빈 저택을 관리하거나, 영국에서만 해결 할 수 있는 공적인 관계를 처리하는 게 고작이었다. 반강제적으로 부여된 가주라는 이름과 그에 딸려온 의무들. 아무리 영국에 있는 게 아이젠뿐이라고 하더라도, 그에게 맡겨지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반대가 있었다. 제대로 해낼 리가 없다며. 허나 그 반발들을 모두 묵살하고 선택된 것은 어찌되었든 영국에 남은 아이젠 시안 에디트였고, 아이젠은 친척들의 걱정과는 달리 뜻밖에 저가 해야 할 일들을 모두 성공적으로 해냈다. 이따금 받아왔던 아버지와 친척들의 편지에 집안일에 대한 걱정의 말이 사라지고, 저에 대한 걱정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할 때 즈음. 전쟁은 끝이 났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해의 여름이었다. 아이젠이 아버지의 편지에서 곧 돌아간다는 말을 보게 된 것은.
그의 일생, 반도 넘는 세월 동안 비어있었던 저택이었다. 에디트가 영국을 떠난 것은 그가 10살 때의 일이었으니. 그래서 사람이 있는 에디트 저택이란 아이젠에게 꽤나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것이었더랬다. 영국 버밍엄의 어느 숲, 이따금 새가 우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던 세월이 10년을 넘고, 또 3년을 넘었다. 오로지 적막만이 가득했던 이 곳이 짐을 옮기는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 채워지는 것은 아이젠과 마찬가지로 이 숲 또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일 터다. 동시에 앞으로 다시금 익숙해져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 그리고 사실, 에디트 저택에 사람이 있건 없건. 그리고 사람이 있는 에디트 저택과 그 소란에 익숙해지지 못하건 익숙해지건. 아이젠이 이 장소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아이젠이 이곳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 할 존재가 될 것이라는 사실 또한.
이제 소년이 아닌 청년이 되어버린 아이젠 에디트는 허리를 숙여 늙은 개를 품에 안아들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이 자리에 자신이 왜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물론 멍청한 고민이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주라는 이름이 저에게 걸려있었지. 이제 마냥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는 아니었다. 어른들의 분위기를 읽을 줄 알았고, 집안 내에서 자신과 관련된 정세가 어떻게 흘러갈지 정도는 충분히 상상해낼 수 있었다. 자신이 선택 받은 이유는 적어도 저가 알기로는 저만이 영국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였다. 그 이상의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굳이 꼽자면 저가 대대로 가주를 해왔던 핏줄에 속해있다는 것 정도. 하지만 그런 이는 저 뿐만은 아니었다. 아버지도 있고, 이제는 동생도 있다. 다른 사람들도 있고. 그러니 이제 에디트의 사람들이 영국으로 돌아온 지금, 자신에게는 가주로 남아있을 이유도 명분도 없다. 아이젠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어차피 그 여름날에 받았던 편지를 읽었을 때, 충분히 예상하고 각오해온 일이었다. 그러니 아무렇지도 않다. 어울리지도 않고 무겁기만 했던 짐을 없애는 거라 생각하기로 하자며, 아이젠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젠.”
저택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이젠은 제이를 보기 위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슬슬 기억 너머에 묻혀가고 있던 목소리. 아이젠은 작게 고개만 숙여 인사하고는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그것 외의 다른 반응은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아서. 손으로는 슬슬 품 안에서 꼼지락거리기 시작한 제이를 쓰다듬었다. 얌전히 있어야지. 처음 뵙는 거잖아. 두어번 머리를 쓰다듬자 그제야 얌전해졌다. 이럴 때면 어쩐지 제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게 실감되는 느낌이라 기분이 묘해지곤 했다. 하기사 나이를 먹은 건 제이 뿐만도 아니었고, 그에 따라 변한 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으니 할 말이 없긴 하다. 아이젠은 슬며시 제이를 땅에 내려놓았다. “조금 놀다가 와.” 작게 속삭이니, 영리한 개는 잠시 꼬리를 흔들며 제 주인을 쳐다보다가 근처의 숲으로 달려갔다. 아이젠은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것은 어느새 그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남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이젠은 슬쩍 고개를 돌려 남자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지, 남자는 여전히 개가 사라져간 숲 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아이젠은 뒤늦게 제 이름을 부른 것에 대한 대답을 하지도 않았고, 굳이 먼저 말을 붙이지도 않았다. 여러 감정이 섞인, 미묘복잡한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 글쎄,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에디트에게 버려졌던 유년기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이 남자에게 버려진 것은 아니었다. 한 때에는 버려진 것이라 여기긴 했어도. 지금은 많은 것이 변했으니. 에디트와 아이젠의 관계가 특히 그랬다. 저를 버린 곳에서 일종의 구원 요청을 받았던 17살의 그 해. 자신의 기분이 어떠했는지, 실은 기억조차 잘 나지 않았다. 어이없어 했던가, 겸허히 받아들였던가. 그 때의 저는 분명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받아들였다. 과연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지금은 그닥 상관없어져버린 이야기지만.
남자가 아, 하는 멋쩍은 소리를 내고는 아이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이젠은 다시 한 번 입만 웃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자연스럽게. 변한 것에는 배운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가장 깊은 속내를 숨기는 방법. 여리고 약한 면을 포장하는 방법. 그런 것들. 아이젠 에디트는 느릿하게 입을 연다.
“많이 늙으셨네요, 아버지.”
“10년도 더 넘게 지나지 않았니. 너야말로… 많이 변했구나.”
“13년이나 지났으니까요.”
10살의 아이젠 에디트와 23살의 아이젠 에디트. 그 간극에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제 아비를 아빠라 부르던 소년은 사라졌고, 격식을 차리는 방법을 알게 된 청년만이 그곳에 존재했다. 성장이라 말할 수 있겠으나 동시에 굉장히 씁쓸한 일이었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으나. 사람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라며, 처음 변화를 맞이한 이후부터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었다. 한편으로는 자신도 그 변화에 씁쓸해했던 주제에. 정확히는 본인의 변화보다는 친구들의 변화를 씁쓸하게 여겼다. “사람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다.” 수백 번을 되새기며, 자신의 변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친구들의 변화를 묵인했다. 아픈 일이었다.
“…해야 할 이야기가 있지 않니.”
“그게 먼저인가요.”
잘 지냈니, 같은 다정한 인사를 기대한 건 아니다. 어차피 편지에서 수도 없이 봐 온 말이었으니까. 잠시라도 아버지를 증오했던 시간은 없었다. 에디트의 모든 이가 저를 낮잡아볼 때에, 유일하게 아버지만은 이전과 다르지 않은 태도로 대해주었으므로. 물론 그 태도에 적지 않은 실망이 담겨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부모자식간의 정이라는 것은 남들의 비아냥거리는 말과 무시하는 시선을 모두 감쌀 수 있을 정도로 큰 존재였다. 앞서 딸 하나가 비슷한 취급이 되었기 때문에, 아이젠의 경우에는 더 익숙하게 반응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물론 그 ‘딸’의 존재는 그에게도, 아이젠에게도, 혹은 에디트의 모두에게도 일종의 금기가 된 것이었다. 애초에 그녀는 일찍이 에디트를 떠난 이였으니, 에디트의 어디에서도 그녀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편이 다행인 일이었다.
아버지가 입에 담은 ‘해야 할 이야기’는 아이젠도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가 분명했다. 이유도 명분도 없는 자리를 빼앗아가려고 하는 것이겠지. 당장은 아무렇지 않더라도, 막상 그 짐이 제 어깨에서 사라지고 나면 과연 어떻게 될까. 후련해할까, 서운해할까, 아니면 허전해할까. 적어도 저가 가주로서 지냈던 약 6년의 세월 동안 보다는 상당히 한가해질 것이라는 사실 하나는 확실했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하는 일도 특별히 없는 입장에서는 조금 곤란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쓰던 시간조차 이제는 쓰지 않게 될테니까. 비어버린 시간을 과연 무엇으로 채워야 할 것인가. 저에게 남겨질 숙제는 바로 그것일 것이다. 제 아비가 머쓱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아이젠은 미소를 조금 더 부드러운 형태로 바꾸었다.
“고생 많으셨겠어요.”
“글쎄다.”
뭣도 없는 아들을 홀로 감싸느라. 그 멀고도 차가운 바다 건너의 나라에서, 당장 제 곁에 있지도 않은 아들을. 그것만으로도 아이젠은 상당히 감사히 여기고 있었다. 에디트에서 성에 차지 않는 아이를 없는 사람 취급 하는 것 쯤이야 아주 간단한 일이 아닌가. 아이젠은 반 정도 그 케이스의 사람이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재능 모두가 부족했다.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예술, 음악에도. 그리고 그 물 밑에서 무조건 아주 밝게 빛을 내야하는 마법에도. 모든 것이 어중간했다. 에디트에서 그것은, 일종의 죄로 취급되곤 한다. 그런 이들은 깨닫고 나면 정말로 저가 죄인인 마냥 살아갔다. 부조리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당연히 있었으나……. 무력함으로는 쟁취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들에게는 힘이 없었다. 그 무엇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이만 들어가죠. 친척들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잖아요.”
“……어른이 되었구나.”
“글쎄요.”
아버지가 했던 말을 똑같이 따라하며 아이젠은 빙긋 웃었다. 어른이 되었을까. 사실 아이젠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길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제 늙은 아비를 이끌고 한창 분주한 저택으로 들어설 뿐이었다.
* * *
―그동안 수고 많았다.
그의 할아버지는 단 한 번도 그에게 정을 보인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당장 아들에게도 보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이젠 에디트 이전의 가주가 바로 그였다. 그 자체가 에디트였으며, 에디트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모두 사람 이하로 취급했던 자. 아이젠은 항상 할아버지의 앞에 설 때면 주눅들곤 했는데, 바이올린을 관둔 이후부터는 할아버지 앞에 설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아이젠이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저의 마지막 공식적인 무대에서였다. 그 때의 차갑디 차가웠던 할아버지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눈이 바로 사람 이하를 보는 눈이었다. 마법 세계에 들어선 이후, 아이젠은 종종 그들이 스큅이라고 부르는 존재에 대해서 듣곤 했다. 그들에게서 일종의 동정심과 함께 동질감을 느꼈다. 바로 그 시선 때문에. 수고 많았다, 는 말에 아이젠은 작게 고개만 주억거렸다.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들은 여러 가지였으나 동시에 아주 간단했다. 아주 많은 일을 했더구나. 예. 훌륭하게 해냈어.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한데 말이다. 거기서 아이젠은 살짝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 앞에 서있던 아이젠 에디트는 아주 어릴 적의 소년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바이올린을 내리던 그때의 소년. 다시 한 번 그 날의 무대에 서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숨이 막히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여름의 저택. 공기가 차가웠다. 눈동자가 조금 떨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문 밖에는 아버지가 계셨으나, 지금 이 공간에서는 명백히 혼자였다.
“초상화가 다른 이름을 말했단다.”
아이젠은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웃어야만 했다. 짐을 덜어내는 자리였다. 이제 편해질 수 있는데 무엇이 힘들겠어. 그저 이 장소가 너무나도 두려울 뿐이다. 당장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아이젠은 우는 것과 웃는 것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굉장히 모순적이면서도 이런 상황이 아니면 보일 수 없는 표정이었다. 괜찮아. 예상하고 있었잖아. 어떤 말을 들을지, 누구를 마주할지. 그러니까… 괜찮다.
초상화는 대대로 에디트가 가주를 선택해온 방식이었다. 저가 가주로 선택되었을 때, 친척들이 반발만 했을 뿐 막지 못 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지켜져야만 하는 규칙이 있다. 본가 저택의 지하, 아주 깊숙한 곳에는 초상화 몇 개가 있었다. 말을 할 줄 아는 초상화가. 한 때 살아있었던 이들은 무언가의 이유로 초상화로 남아, 에디트를 지탱했다. 가주를 뽑는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 나름의 협의를 걸쳐 가장 알맞다고 생각하는 이의 이름을 부르면, 곧 그가 가주가 된다. 초상화가 네 이름을 불렀단다. 7학년의 어느 날, 아버지에게 받았던 편지에 그런 내용이 쓰여 있었던 것을 아이젠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걸 어찌 잊겠는가. 평생 저에게는 돌아오지 않을 자리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초상화가 다른 이름을 말했다는 것은 정말로 바뀌어야 할 때라는 것을 뜻했다.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니 내려오라는 의미다. 아이젠은 잠시 찾아온 정적에 생각의 흐름을 맡겼다. 기분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후련함? 서운함? 허전함? 그 무엇도 아니었다. 무덤덤했다. 그저 어서 이 자리에서 떠나버리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허나 그 무덤덤함이 오히려 더 아프게 느껴져서, 아이젠은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 자리는 정녕 자신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던 자리였나. 그렇다면 역시 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것을. 17살의 자신에게 묻고 싶다. 어째서 그 제안을 승낙했느냐고. 그 때의 자신에게 물어봤자 답은 나오지 않겠으나. 정적을 깬 것은 누군가의 말이 아니었다. 아이젠 시안 에디트의 끄덕임이었다.
“돌아가봐라.”
마치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떠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해 준 것만 같다. 참 고맙네요. 튀어나오려는 목소리를 꾹 눌러 담으며 아이젠은 “예.” 하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초상화가 말 한 다른 이름이 누구일까. 뒤늦게 궁금해졌으나, 이미 물을 기회는 사라지고 말았다. 어차피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새로운 가주라며, 이번에는 그를 마음에 쏙 들어 한 친척들이 아주 성대하게 파티를 열테니까. 그 자리에 참석한다면 자신은 어떤 시선을 받을까. 이전에는 그저 무관심, 혹은 비웃음. 그런 것들 뿐이었는데. 이번에는 조금이나마 연민이 담겨있을까. 어떤 것이든 별로 바라는 류는 아니었으나. 아이젠은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았다. 문을 열려는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 볼 일은 없을 것 같구나.”
대답하지 않았다.
문은 소리를 내며 닫혔다. 아버지는 계시지 않았지만 대신 다른 사람이 있었다. 아이젠은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다. 이 아이가, 지금 몇 살이지? 아버지를 13년 동안 보지 못했다는 것은 동생 또한 13년 동안 보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저가 10살일 때 동생과 헤어졌다. 그때 동생의 나이는 고작 7살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지금 동생은 스무 살이었다. 성인을 훌쩍 넘어선 나이. 문득 아이젠은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저보다는 작았으나, 그때에는 정말 콩알만 했던 아이가 이렇게 커져있다. 순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동그랗던 꼬마가 꽤나 이목구비가 날카로워져 있다. 저보다도 더할지도 모르겠다. 저를 빤히 쳐다보는 동생을 보며 아이젠은 뒤늦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에도 알아볼 수 있다. 확실하게 하나뿐인 동생이었다.
“안녕, 넬.”
“무슨 일 있었어? 표정이 안 좋았는데.”
“첫 대화를 그런 거로 할 생각인걸까, 동생님.”
아이오넬은 고개를 젓는다. “안녕, 형.” 형아라고 부르던 호칭이 조금 딱딱해진 것은 아쉬운 일이다. 제법 귀여웠었는데. 적어도 이 아이는 에디트에서 버림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불현 듯 다음 가주일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으나 그럴 리는 없었다. 그랬더라면 저를 만나러 이렇게 오진 못했겠지. 아마도 아버지에게 들었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어릴 적에 그랬던 것처럼 아이젠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방금 전, 차가운 문고리를 돌렸던 바로 그 손으로. 이제는 조금 따뜻해졌다. 저를 멀뚱멀뚱 쳐다보는 시선에 아이젠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형이 어른이 됐어.”
넷이었던 가족이 둘이 되어버렸다. 한 명은 자살, 한 명은 제 손으로 놓았다. 그리하여 남은 것은 아버지와 동생 뿐이었는데, 둘은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어른이 되었다고. 정말로 어른이 되었나보다. 아이젠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어른이란 말이지. 평생 되지 못할 줄 알았는데. 가주 자리에서 내려지자마자 어른이 되었다는 걸 깨닫다니, 참으로 이상하다. 아이젠은 키득거렸다. 그것만은 소년 시절의 그것과 비슷해서, 아이오넬 또한 비슷하게 웃었다. 형제는 분위기가 딴판이었으나 그 웃음 하나만은 닮아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변하기 마련이라고, 동생 또한 변했으나 그덕에 아이젠은 어느정도 적응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릴 때에도 저보다 어른스러웠던 동생은 그때보다도 더 차분하고 어른스러워져 있었다. 참으로 대견한 일이다. 누나에 대한 것을 묻지 않을 정도로 훌쩍 커버렸다.
“짐정리 아직 다 못했지?”
“응. 형이 여기 있다는 걸 듣고 바로 형을 만나러 왔으니까.”
“그렇다면 도와줄테니까 어서 끝내러 가자.”
끄덕이며 앞장서는 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아이젠은 속으로 혀를 찼다. 키가 더 컸으면 좋았을텐데. 몸이 약했던 어린 동생의 모습이 겹쳐져, 아이젠은 조금 속이 쓰려졌다. 지금은 괜찮을까. 이내 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었다… 라. 계속해서 그 말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어른이 되어서 변한 게 있을까. 아리송했다. 호그와트에 다니던 시절, 졸업도 싫었고 어른이 되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졸업은 해야만 하는 것이었고, 결국 해버린 것이었는데. 그 뒤로도 어른은 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었다니. 그래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 문득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다.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죄인처럼 살아가는, 저와 같은 성을 쓰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저가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자신 또한 당연히 받아들이며 살아갔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아이젠은 분명히 그것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힘이 없다면 바꿀 수 있는 것도 없다. 허나 힘이 있다면. 아이젠은 멈춰서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저 끌어내려졌을 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직 제게 남아있음을 아이젠은 알고 있었다. 적어도 저는 달랐다. 그 무엇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존재했다. 혹은,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형?”
인기척이 들리지 않아서일까. 아이오넬이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젠은 고개를 휘휘 저으며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아무 생각도 안 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