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Unlight

[군견조 합작] 개인

Hewa 2015. 4. 19. 02:31

─그러고 보니까, 오른쪽 눈이 이 꼴이니 울게 되면 한쪽 눈에서만 눈물이 날까? 그건 좀 이상할 것 같네.
─그래, 그래서 웬만한 일로는 울지 않기로 했어.

그것은 네가 한 말이었다. 어느 시절에 했던 말인지는 잠시 기억을 되짚어보면 금방 떠올려낼 수 있다. 그 말은 우리가 그란데레니아에 들어섰을 무렵, 네가 붕대를 풀고 안대를 하기 시작했을 때에 했던 것이었다. 잊고 있던 기억, 어찌 그것을 잊을 수 있었는지. 그 말을 들은 에바리스트는 한참이나 말문이 막혀선, 아이자크에게 가볍게 웃어줄 수조차 없게 되어버렸지 않았나. 비록 그 말을 했던 아이자크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으나, 에바리스트는 웃지 못했다. 그저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아이자크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버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너는 정말로 그 이후로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다. 어린 기억의 포레스트 힐, 뒷산에서 뛰어 놀다가 넘어지기만 해도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해졌던 소년이 아이자크였다. 물론 바로 손등으로 눈물을 슥슥 닦아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는 하였으나. 생각해보면 귀염성 있는 성격이 아니었던가, 어렸던 아이자크 로스바르드.

그런 그를 광견, 늑대로 만든 것은 에바리스트 본인이 아니었나.

*

"에바?"

귓가에 들려온 것은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섞여 들리는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에바리스트는 눈을 떴다. 하지만 눈부실 정도로 따가운 햇볕 때문에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눈을 뜬 것은 누군가가 미간을 꾹 누르는 감각 때문이었다. 아이자크. 너무나도 당연한 목소리, 너무나도 당연한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허리를 숙여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외눈도 언제나의 것이었다. 멀뚱멀뚱 자신을 쳐다보기만 하는 에바리스트에 아이자크는 작게 웃었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 떨어진 나뭇잎 하나를 주워, 에바리스트의 코 위에 올려버렸다.

"일어나셔야죠, 도련님."

그러고는 안경을 건네주는 것이다. 에바리스트는 나뭇잎을 털어내고 받은 안경을 썼다. 그제야 시야가 환하게 보였다. 아이자크는 여전히 멍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에바리스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에바리스트가 잡기 전에 저가 먼저 덥석 잡더니, 강제로 에바리스트를 일으켰다. 그리고 덕분에 반동으로 나가떨어질 뻔 한 에바리스트를 잡아 지탱해주었다. 에바리스트는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아이자크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걸쳐져있는 옅은 미소가 눈동자에 비추어졌다. 에바리스트는 한번 그를 노려보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 일이야. 네가 책 보다가 잠도 다 자고."

아이자크는 허리를 굽혀 에바리스트가 일어나면서 떨어진 책을 주워들었다. 『제국 전쟁사』딱딱한 제목의 하드커버. 책의 표지를 본 에바리스트는 어딘가 위화감을 느껴버렸다. 제국, 그란데레니아. 에바리스트는 갑작스럽게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아이자크가 이상하게 쳐다보았으나. 에바리스트는 이내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위화감이 무엇인지 눈치 챌 수 있었다. 아이자크와 함께 서 있는 이 공간은 포레스트 힐도, 레지멘트도, 그란데레니아도 아니었다. 잠시 말없이 에바리스트를 주시하던 아이자크는 금방 에바리스트가 느끼고 있는 감각을 눈치 채고, 그가 무언가 말을 시작하기 전에 저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평화롭지, 에바. 내가 꿈꾸던 세계야."

그러고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에바리스트도 마찬가지였다. 에바리스트가 기대어 자고 있던 나무에 기대 선 아이자크는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리쬐는 햇볕, 아이자크가 원한 세계. 언젠가 할 수 있었던 선택이 떠올랐다. 했었던 약속 또한 스쳐지나갔다. 알고 있었다. 아이자크가 무엇을 원했던가. 특히 그란데레니아, 그 시절에 무엇을 애타게 바랐던가. 알고서 모른 척 하지 않았던가, 자신은. 모든 것이 아이자크를 위한 일이라고 자위하면서.

그란데레니아로 가지 않은 세계였다. 레지멘트라는 사실을 숨기고, 한적한 시골 마을에 숨어 살자는 선택을 한 자신과 아이자크. 바깥사람의 왕래가 적은 이 마을은 레지멘트에 관한 이야기도, 제국와 왕국에 관한 이야기도 잘 들려오지 않았다. 그나마 지금 아이자크가 들고 있는 책도 한참이나 떨어진 큰 장에서 겨우겨우 구해 온 것이었다. 유독이나 전쟁사 책을 좋아하는 에바리스트를 위해서, 아이자크가. 책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기에 전쟁의 결과 또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궁금하지 조차 않았다.

"행복하고, 즐거워. 포레스트 힐에 살았던 때처럼."
"아무런 걱정 없이… 인가."
"그리고 너와 함께."

빠르게 말을 마친 아이자크, 이내 다시 에바리스트를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에바리스트는 마주하고 있는 아이자크에게 덧씌워진 것을 보고 말았다. 피. 아이자크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피. 제국 군복에도 덕지덕지 묻어있는 사람의 혈흔. 들고 있는 검. 감추어 놓은 총. 당장이라도 앞을 가로 막은 사람을 죽여 버릴 듯 한 눈빛의 군견. 그것은 에바리스트 바르트가 만든 아이자크였다.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어느 순간부터 눈을 돌려버렸다.

"나는 괜찮았어."

그리고 아이자크를 좀먹기 시작한 것은 죽음과 살인이었다. 에바리스트가 아이자크를 그 구덩이 안으로 밀어버렸다. 그러고 손조차 내밀지 않았다. 혼자 그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아이자크는 계속 그러했듯이 에바리스트의 뒤를 따랐다. 이따금 그의 앞으로 나아가 가로막는 사람을 죽여 버리고, 아무런 감흥 없는 눈동자를 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즐기는 듯 보이기까지 했으니. 그럼에도 에바리스트를 돌아볼 때에는 언제나 웃었다. 포레스트 힐, 레지멘트, 그 곳의 웃음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것을 에바리스트에게만 지어보였다.

"네가 있었으니까. 어린 시절부터 에바는 내 빛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지."

에바리스트는 이따금 그런 아이자크에게서 소름끼침을 느끼곤 했다. 당장 자신을 위협하는 사람들만 물어뜯는 송곳니가 언젠가 자신에게 향할 것 같아서 였던가. 아니었다. 그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곁에서 자신을 지킬 것은 아이자크였고, 그것은 진실이었다. 생에 유일하게 평생을 믿은 이가 아이자크 로스바르드였다. 아이자크 로스바르드에게도 에바리스트는 그런 존재였다.

"사실 나는 에바만 옆에 있으면 어느 곳이든 상관없다는 이야기야."

그렇다면 어째서 느낀 소름끼침일지……. 에바리스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아이자크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 감각은 다름 아닌 에바리스트, 자신에게서 느낀 것이었다. 평생 자신을 믿고 따른 아이자크. 자신만을 바라보았던 아이자크. 문득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아이자크를 망쳐버렸다. 한쪽 눈을 후벼 파고 그나마 남은 벽안의 빛을 빼앗은 것은 자신이다. 혐오감은 다름 아닌 에바리스트가 에바리스트에게 느꼈다.

"괜찮아."

아이자크가 에바리스트를 향해 웃었다. 그 눈에 빛이 담길 때는 오로지 에바리스트를 바라볼 때뿐이었다. 아이자크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에 의해서 어떻게 변해버렸는지. 어쩌다가 살인의 감각에 익숙해지고, 무의식중에 그것을 즐기게 되었는지. 에바리스트를, 에바리스트가 한 일이 아니었나. 그가 지시했고, 그가 원한 일이었기에 행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한 번도 아이자크는 그를 매도한 적이 없었다. 그러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차라리 원망을 하지 그랬나."

미소 지은 아이자크는 고개를 저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사박거리는 소리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여기서 에바와 함께 지낸 건 즐거웠어.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장난스럽게 웃은 아이자크. 떨어진 나뭇잎이 두 사람 사이를 가르면서, 에바리스트의 시야가 암전되어버렸다.





정신을 차리자 보인 것은 아이자크의 뒷모습이었다. 그란데레니아의 아이자크 로스바르드 대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든 채,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눈부시다 생각한 금발 또한 피를 머금어 물기를 뚝뚝 떨어트리고 있었다. 에바리스트는 아이자크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아이자크는 돌아보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점점 멀어져간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에바리스트는 아이자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조금씩 좁혀지는 거리, 에바리스트는 그의 어깨를 잡아챘다. 돌아본 아이자크는 울고 있었다. 표정은 무덤덤했지만 눈동자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에바리스트는 그것을 마주하자 숨이 턱 막히고 말았다.

─울지 않기로 했어.

웃으며 말하던 아이자크 로스바르드.




정신을 차리자 현실이었다. 마주한 아이자크는 꾸었던 꿈속에서 처럼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자신을 끌어안은 채로. 피를 흘리고 있는 쪽은 자신이었다. 아이자크의 군복에 덕지덕지 묻은 피도 자신의 것이었다. 모든 것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자신의 실수였다. 떠나자고 말한 아이자크를 따랐어야 했다. 단 한 번의 선택이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최근 들어 자신보다 아이자크의 선택이 더 낫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 않았나. 이번에는 네가 전적으로 옳았다. 에바, 에바……. 몇 년 동안이나 끊임없이 불러온 그 이름을 아이자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애타게 입에 담았다. 아이자크가 양 손으로 에바리스트의 손을 꽉 잡았다.

"반드시 살려줄게. 걱정하지 마."

굳은 목소리에 에바리스트는 속으로 옅게 웃고 말았다. 가물가물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중얼거렸다.

"……이제 됐어."
"웃기지 마! 이런 건 별거 아니라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돼!"

그리고 에바리스트는 고개를 저었다.

"너답지 않다고, 에바……."

그리고 울었다. 가물가물해지는 시야, 결국 눈을 감고 말았다. 암전된 시야 속에서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러고 보니까, 오른쪽 눈이 이 꼴이니 울게 되면 한쪽 눈에서만 눈물이 날까?

그것을 확인해 줄 수조차 없어서, 그것이 원통한 것이다. "이러지 마……." 이어진 제발, 제발, 하는 목소리에 에바리스트는 다시 한 번 눈을 떴다. 그리고 아이자크의 손을 꼭 잡아 자신의 가슴에 끌어당겼다. 한쪽 눈에서만 눈물이 난다면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우습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의 눈물이니까. 에바리스트는 미소 지었다.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

어두컴컴한 세계에 서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온통 암흑이었다. 저승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장소였다. 습관적으로 에바리스트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자크가 존재할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존재에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림을 느꼈다. 지금까지 해온 일들은 혼자였으면 절대로 할 수 없었을 것들이었다. 모두 다 아이자크가 있었기에 성공한 게 아니었나. 옅은 한숨이 입술에 맴돌았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구나.

퍼뜩 에바리스트가 고개를 들었다. 들려온 목소리는 기묘했다. 여자의 목소리라는 것은 확실했지만 나이를 추정할 수조차 없는 그런 목소리였다. 한참을 주위를 살피던 에바리스트는 그것이 이 공간에 존재하는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어디서 들려오는 목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고, 동시에 에바리스트와 상관이 있는 일도 아니었다.

─네게 그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지.
─물론 무조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란다. 네가 이 제안을 승낙하고, 그 또한 승낙한다면.

그리고 존재하지 않던 목소리의 주인공은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해골. 고개를 쳐들어야 겨우 그 두개골을 볼 수 있었다. 더한 생물도 봐왔기에 에바리스트는 공포감조차 느낄 수 없었으나, 불타는 형상은 미간을 절로 찌푸리기에 충분했다. 불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어보지."

─아이자크 로스바르드.
─만날 수는 있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선택한다면 너는 전생의 기억을 모두 잃을 것이다.
─그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이고, 그 기억을 되찾냐에 관한 것은 전적으로 너희 둘에게 달린 일이다.

"아이자크에게도 똑같은 제안을 하는 건가?"

하지만 해골은 답이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의식인 모양이었다. 에바리스트는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기억. 스쳐지나간다. 포레스트 힐의 빛나던 어린 시절, 고분군투하던 레지멘트의 우리들, 운명에 발악하며 남을 짓밟았던 그란데레니아. 그리고 그 속에 언제나 함께하던 아이자크 로스바르드. 그 기억을 잊고, 그를 잊게 된다.

"만날 수 있다면."

승낙의 표현이었다. 해골의 형상 뒤로 흰색 문이 생겨났다.

─과연 그도 너에 대한 기억을 버릴 수 있을지.

그것은 에바리스트도, 제안 하는 형상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오로지 아이자크에게 달린 일이었다. 아마도 아이자크는 그것을 버리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 형상을 베어버리고, 온전한 기억을 가진 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것이 아이자크다웠으나, 하지만.

너는 아마도 버릴 것이다. 오로지 만날 수 있다는 희망 하나를 가진 채로, 그것만은 잊지 않고.

─그렇다면 저 문을 열고 나가라. 그를 기다려라. 나는 화염의 성녀, 내 딸이 너를 도울 것이다.

하지만 네가 나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이고.

에바리스트는 해골을 지나쳐 덩그러니 형성되어 있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자그마한 소녀, 아니 그것은 인형이었다. 동시에 에바리스트의 의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눈을 감은 청년은 미소 짓고 있었다.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나는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확신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여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