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Unlight

[아이에바] to. 라르모님

Hewa 2015. 4. 19. 02:36

* 호그와트 AU

"이 거, 네 거야?"

부모의 곁을 떠난 아이가 다들 그렇듯, 나 또한 아버지의 손을 놓은 그 시점부터 우왕좌왕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홀로 남겨진 것은 처음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 정신 없는 와중에 나는 아버지가 공부 열심히 하라며 주신 책갈피를 잃어 버렸다. 호그와트로 가는 기차를 눈 앞에 두고, 멍청하게 눈으로 바닥을 훑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때다. 조금만 더 지체 되었다면 울어 버렸을 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그 책갈피는 부모님과의 마지막 연결고리였으니까. 생각해보면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다. 이대로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기차는 빨리 타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즈음 들려온 목소리가 있었다. 아직 앳되었지만 잔뜩 어른스러운 척 하고 있는 또래 아이는 마침 내가 애타게 찾고 있던 것을 찾아 주었다.

"아, 응! 내 거야."

그리고 나는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 버렸던 것이다. 지금 와선 조금 후회한다. 에바리스트는 순혈, 유서 깊은 마법사 가문의 외동아들이었으니까. 예의 바르게 커 온 소년의 눈에는 그 때의 내가 어떻게 비추어졌을까. 지금 물어봐도 대답 해 주지 않을 게 뻔하다. 아무튼, 에바가 그 책갈피를 주워 준 이래로 내게 그것은 조금 더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겁에 질린 어린 아이가 소중히 할 수밖에 없는 부모님의 흔적에서 조금 벗어나, 에바와의 첫 추억이 서린 물건으로.

-에바와 같은 기숙사에 가게 해 줘.

그리고 나는 기어코 마법 모자에 대고 그런 말까지 해버렸던 것이다.

* * *



아이자크는 지루해서 딱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쯤 되면 아이자크가 질려서라도 도서관에 따라가지 않거나, 에바리스트가 아이자크를 떼어 놓거나 하는 편이 나을텐데도 둘은 자그마치 7년째 이 기묘한 동행을 유지해왔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안 붙어있으면 오히려 이상하다고.
매번 시험 때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다. 에바리스트는 자기가 이렇게라도 강제로 아이자크가 책을 들여다보게 만들어 그의 성적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아이자크의 목적은 시험 공부가 아니라 에바리스트였지만. 그는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에바의 얼굴을 특히나 좋아했다. 가끔 내려간 안경을 똑바로 하고,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집중력이 떨어질 때면 미간을 꾹꾹 누르기도 했다. 사실 공부 하는 시간 보다는 그런 에바리스트를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에바리스트는 알련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러고 있으면 잠이 솔솔 오기 시작하곤 한다. 바로 지금처럼. 에바리스트는 어김없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이자크를 발견하고 작게 혀를 찼다. 처음 몇 년은 매번 깨웠지만, 소용 없는 짓이라는 걸 깨달은 이후에는 그냥 자게 내버려뒀다. 그는 시선을 내리고 다시 책의 활자에 눈을 두었다.
하지만 이날은 이상하게도 에바리스트마저 집중을 하지 못하는 날이었다. 정말로 중요한 마지막 시험이라 잘 봐야하는데. 에바리스트는 저마저 감기기 시작하는 눈을 두어번 비볐다. 수면 부족이 이유인 듯 싶었다. 시험공부 때문에 최근 제대로 자지를 못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에바리스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자크는 어느새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작게 혀를 차고 그는 아이자크를 흔들어 깨웠다. 금방 눈을 뜬 아이자크는 아직 잠이 덜 깬 눈동자를 두어번 굴리더니, 시간을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에바리스트를 바라보았다.

"어디 아파?"

아이자크는 에바리스트의 이마에 손을 올리며 열을 재는 시늉까지 했다. 그리고 그 손을 제 이마에도 가져다 대더니, 열은 없는데. 하고 중얼거리는 것이다. 에바리스트는 뒤늦게 고개를 젓고 대답했다.

"그냥 조금 피곤해서."
"하긴, 너 요새 잠도 못 잤지. 들어가서 눈좀 붙여. 그러고 있으면 공부도 안 된다?"
"그러려고."

많이 피곤한가. 먼저 발걸음을 떼는 에바리스트의 뒷모습을 보며 아이자크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눈 밑에 그늘이 짙어진 것 같기도 하고. 매번 몸좀 챙겨가면서 공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들을 에바리스트가 아니니 굳이 잔소리는 하지 않아왔다. 게다가 요새는 저도 이런 저런 일로 심란할 터다. 에바가 말을 하진 않았지만 아이자크는 알고 있었다.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을 건 당연했다. 그 에바리스트의 진로가 모호하다니. 사실은 학교 전체에 알게 모르게 소문이 나 있었다. 저학년 시절부터 촉망 받던 학생이 바로 에바리스트였다. 7년 내내 수석에 지금은 슬리데린 기숙사장, 거기다가 집안까지 완벽. 하지만 오히려 그 사실들이 그의 숨통을 옥죄이는 것 같다고 아이자크는 생각해왔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다. 에바리스트는 답지 않게 초조해 하고 있었다.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하루 종일 고민 해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자크는 답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 정말로 그의 생각에 에바리스트는 뭘 하든 잘 어울렸다. 잘 해낼 것이 분명하기도 했고. 사실 에바리스트가 그렇게 헤메고 있는 것은 아이자크에게도 큰일이었다. 그야 말로 막연하게 에바를 따라 가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며 7년을 보냈으니. 하지만 그런 자신은 안중에도 없이 아이자크는 에바리스트만이 걱정되었다. 그간 쌓인 자존심도 높았고, 해 온 일도 산더미처럼 많았다. 목적 없이 N.E.W.T를 준비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더 몸을 혹사 시키는 게 아닐까, 하고 아이자크는 생각했다.

차라리 어리광이라도 부려주면 좋을 텐데.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힘들까. 방에 돌아와 눕자마자 금방 잠든 에바리스트를 보며 아이자크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하기사, 처음 기차를 타고 호그와트에 올 때부터 어른스러운 척으로 무장했던 소년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저가 방학 때마다 에바리스트에게 방학이 빨리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편지를 붙이는 것 정도의 어리광은 부려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7년 동안 함께한 자신인데. 저러다가 언젠가 펑, 하고 폭발해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됐다. 그 때에는, 지금처럼 하염없이 곁에 있어주기는 힘들 틴데. 결국 제 침대를 박차고 나온 아이자크는 에바리스트의 침대에 걸터 앉아 가만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자신의 걱정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잘 자고 있는 것에 어쩐지 조금 억울해져 버렸다.

사실 진로를 마땅히 정하지 못한 것은 아이자크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막연하게, 에바가 가는 대로 따라가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보낸 7년이었던 것이다. 비록 에바리스트의 성적에 맞추지는 못했으나 그의 뒤에서 그를 따라 갈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그런 저보다도 역시 에바가 걱정인 아이자크다. 저야 어떻게든 되겠지, 정 안 되면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 되니까, 그런 막연한 것들.

아이자크는 손을 뻗어 흐트러진 에바리스트의 앞머리를 가지런히 정돈해주었다. 그러자 문득 에바리스트가 눈을 뜬다. 하여간에, 깊게 잠들지를 못하는 녀석이다.

"더 자, 에바."
"…아이자크."

나즈막히 불러오는 목소리에 아이자크는 고개를 갸웃, 한다. 에바리스트는 한참동안 말이 없다. 그러고는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아이자크는 작게 혀를 찼다. 잠꼬대를 보통 눈을 떠서도 하던가.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던 손을 옮겨 아이자크는 가만히 에바리스트의 눈을 가려주었다. 자장자장. 작게 웅얼거리며.

"나, 조금 바보 같은 것 같아."

그리고 머지 않아 정말 말 안 듣는다는 생각을 한다.

"뜸 들이지 말고 말 해."

에바리스트는 제 손을 움직여 눈을 가리고 있는 아이자크의 손을 치웠다. 안경을 벗은 에바는 제법 신선하다. 함께 한 세월이 그리 긴데, 본 적이 몇 번 없었다. 맑은 호박색 눈동자가 아이자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듣고 안 웃을 거야?"
"나는 언제나 에바의 말은 진지하게 들어."

그 말에 오히려 에바리스트가 옅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랬었다. 저의 일이라면 별 쓸 데 없는 것에 까지 예민하게 반응했고, 저의 편을 들어주었던 아이자크였다.

"진로 문제 말이야."

역시 마음에 담아 두고 있구나. 아이자크는 손을 움직여 에바리스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쩐지 애 취급을 받고 있는 느낌이라 에바리스트는 고개를 휘휘 저어 아이자크의 손을 떼어내버렸다. 에바리스트는 이내 눈을 데룩 굴려 저를 바라보고 있는 파란색 눈동자를 피했다. 어쩐지, 입에 담기에는 뭣한 이야기다.

"…예전에 약속 한 적 있잖아. 만약 내가 하고 싶은 걸 이루게 되면 그 때, 가르쳐주겠다고."
"뭘 말이야?"
"네가 어떻게 슬리데린에 올 수 있었던 건지."

아이자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보니,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3학년 때인가, 4학년 때인가. 아무튼 그때 즈음 일 것이다. 아이자크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자신에게 슬리데린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숙사였다. 그렇다고 어울리는 다른 기숙사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에바리스트에게도 꽤나 의문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나눴었다. 아직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냥 지나가듯 했던 약속이었는데.

"그래서 되게 열심히 했는데."

어쩐지 억울한 목소리다.

"……정신 차려 보니까, 그걸 듣기 위해서만 정신 없이 달려왔던 거야. 하고 싶은 건 생각도 못하고 말이지."

거기까지 이야기 한 후, 에바리스트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잠깐의 취침 동안 찌뿌둥해진 몸을 풀었다. 기지개도 키고.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네."

아이자크는, 조금 어안이 벙벙해졌을 뿐이다.

"…그럼 하고 싶은 걸 찾아, 에바."
"뭐?"
"너는 아마 뭘 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네가 그걸 찾으면 그 때 이야기 해줄게. 약속 수정."

그리고 살풋 웃는 금발의 소년에 에바리스트는 작게 헛웃음을 쳐버렸다.

* * *



─에바는 슬리데린에 보내줬단다. 그 아이에게 그 기숙사는 정말 잘 어울리지 않니?
─하지만 너도 알지 않니.
"…알아요. 나는 슬리데린에 하나도 안 어울린다는 거."
─야망도 없고, 리더쉽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영특한 편도 아니지. 그렇다고 순혈인 것도 아니고.

마법 모자가 말 하는 그 이야기들은 모두 어린 아이자크의 마음을 후벼파는 것들 뿐이었다. 그렇다고 틀린 말이 있었냐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소년의 말대로 아이자크 또한 알고 있는 사실들이었다. 그저 부정하고 싶을 뿐이다.

─에바와 같은 기숙사에 보내 달라고?
"내가 원하는 건 그것 뿐이에요."

그리고 한참 동안 마법 모자는 말이 없었다. 역시 후플푸프일까. 괜히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에바와 다른 기숙사라니, 그런 건 싫었다. 아직 만난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그 소년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그리고 한참 후, 마법 모자에서 흘러 나온 말에 소년은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저를 바라보고 있던 에바리스트를 돌아보았다.

─그렇다면 그 아이의 야망을 네 야망으로.

─슬리데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