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C.D.S
[클라레이] Trust?
Hewa
2015. 4. 25. 03:34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레이븐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대로 나무에 등을 기댄 채로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기본적으로 암살 타입 유저인 레이븐은 타겟에게 발각 당한 그 순간부터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잘못이라면 방심한 것 정도일까. 텔레포트를 사용해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 날, 마법사들이 멸절된 이후로 살아남은 도사들은 이를 악물고 저항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복수의 칼날을 갈면서. 추적자가 붙게 될 것이 뻔했다. 레이븐은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꽉 틀어 막았다. 심한 상처는 아니었지만, 험한 전투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당장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임무가 뒤트린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 아닌가. 레이븐은 이마를 짚었다. 사실 위치야 이미 진즉에 발각 당했을 것이다. 독 안에 든 쥐새끼 꼴이니, 스스로 기어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게 분명했다. 레이븐이 한참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있을 때 즈음, 굉음이 바로 근처에서 울려퍼졌다. 레이븐은 고개를 확 치들었다. 마법전이 벌어지는 소리가 분명했다. 만약 루나였다면, 이런 굉음을 낼 만한 광역 마법이 사용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단 한명 뿐 아닌가. 레이븐은 뜬금없이 벌어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상부에서 문제가 생겼음을 안 것이라면 루나를 보냈을게 당연했다. 하지만, 어째서 그가? 일단 추궁은 나중에 할 일이었다. 자신 혼자로도 벅찬 상대, 그라고 다른 것이 있을 리는 없었다. 물론 그와 레이븐, 둘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클라우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머리는 눈조차 감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계속 이런 식이었지. 매번 봐 온 일이었지만, 굉장히 유감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은 안도의 한숨을 쉬어야 했다. 물론 목에 닿아온 칼날 덕에 곧바로 소름이 돋은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은신조차 감지해내지 못한걸 보니, 확실히 그 일 이후로 물러 터져지긴 한 모양이었다. 물론 레이븐이 실력 있는 암살자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서서히 느껴지는 존재감에 클라우드는 두 손을 들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이내 그 피냄새라는 것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확실히 최근의 레이븐 답지 못한 처사였다. "꼴 좋네, 클라우드." "누가 할 소리를. 내가 안왔으면 넌 죽었어." "너도 마찬가지지." 소모전이라는 것을 금새 깨닫고 클라우드는 혀를 찼다. 사실은 사실이었다. 신선급 도사도 아니라고 방심해서 덤벼들었다가, 바로 역관광 당하고 버로우 탈 뻔한게 방금 전의 상황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선타를 기세 좋게 광역 마법으로 날리지 않았겠지! 클라우드는 한참을 속으로 투덜거리다가, 더 깊숙하게 닿아오는 칼날에 힐끔 레이븐을 쳐다보았다. 표정 없는 얼굴은 꼭 귀신 같아서는. 하기사, 자신이 현장에서 제압 가능 할 정도라면 레이븐이 진즉 정리하고 돌아왔어야 했지. 그나저나 자신은 왜 갑자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레이븐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지. 칼날의 차가운 감촉에 식은 땀이 절로 흘렀다. "어떻게 알았어? 우리 끼리는 서로가 위험해지면 감지해 낼 수 있는 센서라도 있나?" "설마."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알고 왔어, 하는 물음에 클라우드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런 레이븐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도와주면 오히려 이런 식으로 추궁 당하게 될 것이라고,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성보다는 몸이 먼저 움직였다고나 할까. 그저 지켜만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였다. 그것은 두 사람─ 순교자들이 속한 단체의 존속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었다. 그것을 말할 수도 없을 뿐더러……. 평소에 지겹게도 보고 있는 모니터들, 그 중 한 귀퉁이 자신이 앉은 곳에서 제일 눈에 잘 띄는 모니터는 언제나 레이븐의 임무 수행 장소를 비추고 있다는 사실. 그것을 클라우드가 어찌 레이븐에게 말할 수 있겠는가. "…뭐, 됐어." 레이븐은 계속 입을 꾹 다문 채로 어색한 미소만 계속 짓고 있는 클라우드를 한참이나 주시하다가, 이내 추궁을 포기한 듯 떨어져 나갔다. 그제야 클라우드는 정말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나마 레이븐이 웬만한 일에 대해서 굉장히 무감각한 성격이기에 다행인 노릇이었다. 몸을 돌려 레이븐을 마주하려는 순간 클라우드에게 보인 것은 자신의 옷에 묻은 피였다. 절로 클라우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자신의 피는 아니었다. 나이프에 묻은 피를 닦고 있던 레이븐은, 문득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클라우드에 짐짓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부상까지 당했어?" 그제야 클라우드의 옷 옆구리 쪽에 묻은 피가 레이븐의 시야에 들어왔다. 클라우드를 붙잡으면서 밀착한 탓에, 자신의 피가 묻어버린 듯 했다. 부상이 저렇게 심했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성큼성큼 레이븐의 앞으로 간 클라우드는 옷 위까지 피가 스며든 레이븐의 옆구리를 살짝 움켜쥐었다. "윽!" 그 신음소리는 두 사람의 입에서 함께 나온 것이었다. 부상 부위를 잡히자 그제야 느껴지는 강한 통증에 레이븐이 반사적으로 들고 있던 나이프를 휘두른 것이다. 다행히 미리 알아챈 클라우드가 뒤로 빠진 덕에, 클라우드는 볼의 생채기로 그칠 수 있었다. 그나마도 선혈이 흐르고 있었으니. 클라우드는 혀를 차고 옷소매로 본의 선혈을 닦았다. 분명히 죽을 뻔한게 맞음에도 클라우드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겉옷을 벗고는 레이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레이븐의 손에서 묘하게 능숙하게 나이프를 뺐어버렸다. 레이븐은 작게 아, 하고 탄식했고 클라우드는 벗은 옷을 나이프로 길게 잘라냈다. 그리고 남은 천쪼가리로 레이븐의 상처를 꽉 눌렀다. "아프…" "가만히 있어. 지혈하는 거니까." 피가 철철 흐르는 것을 참은건지, 아니면 정말로 모른건지. 정말로 한심한 놈이 아닌가, 하고 클라우드는 생각했다. 흰색 천이 붉게 물들어갔다. 본래 흡수 소재도 아니고 얇은 재질인지라 채 흡수되지 못한 피가 클라우드의 손에까지 묻었지만, 그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돌아가면 치료받을 수 있잖아." "연금술사를 말하는 거라면 제일 유능하신 분이 출장을 가셨지. 내 조달자 건으로. 하도 외진 곳이라 바로 연락이 안돼." "…들었어. 그럴 만도 하지." 대충 지혈이 끝나자 클라우드는 피가 잔뜩 묻은 천을 떨구고 길게 찢은 옷을 꽉 쥐었다. 그리고 잠시 힐긋, 레이븐을 올려다 보았다. 레이븐은 클라우드의 묘한 시선에 살짝 눈썹을 꿈틀 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클라우드는 레이븐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레이븐의 겉옷을 올려는 것이었다. 잠깐 잡고 있어, 하는 목소리에 레이븐은 작게 탄식했다. 그제야 클라우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꼴에 붕대 대신이라고, 나름대로 열심히 묶긴 했지만 진짜 붕대는 아닌지라 엉성한건 사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소독도 하지 못했으니, 오히려 안하리만 못한 처사였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클라우드가 이러는 까닭은, 그저 자기 만족 같은 것이었다. "돌아가서 제대로 붕대 감아줄테니까, 불편해도 참아." "…있지, 클라우드."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던 클라우드는 그 목소리에 레이븐을 쳐다보았다. 그 눈동자에서 문득, 옛날의 것을 발견해버린 것은. 클라우드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옛날의 레이븐은 죽었다. 엄밀히 말하면 죽은 것까진 아니었지만, 그것이 죽은게 아니라면 무엇이라 설명하겠는가. 그 레이븐은 당시의 기억과 함께 깨끗하게 폐기 처분 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레이븐에게서, 그 때의 레이븐을 찾는 것은 못할 짓이다. 기억 조차 가지고 있지 않기에 차라리 별개의 사람으로 취급 하는 쪽이 클라우드에게도 옳았다. "또 이런 적이 있었던가? 묘하게 익숙한 기분이 들어서." …하지만 이런 경우의 수 때문에 클라우드는 그 때의 레이븐과 지금의 레이븐을 똑같이 대할 수밖에 없었다. 또 이런 적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 당시의 레이븐은 임무마다 자질구레한 부상 하나 쯤은 달고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었으므로. 그리고 그런 자질구레한 것을은 다 클라우드의 몫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자원 쪽이 맞았지만. 클라우드는 잠시 레이븐을 쳐다보다가, 옅게 미소지었다. 많은 것이 변화했다. 살육의 밤은 끝이 났고, 클라우드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에 끝끝내 익숙해지고 말았다. 만약 클라우드의 이런 변화를 알게 된다면, 본래의 레이븐은 어떤 말을 할지. 지금의 너는 아무래도 우리가 그 떄 똑같은 감정을 나누었다는 사실 조차 잊은 모양이었다. 클라우드는 레이븐이 그것을 깨닫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저 언젠가 자신의 필요 하게 그것을 깨우게 되겠지, 하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감정을 되찾고 나서 레이븐이 어떤 행동을 보일지, 그것을 예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정말로 모진 짓이었다. "돌아가자, 레이븐." 만약 내가 그런 짓을 하게 되더라도, 너는 용서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