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C.D.S

[클라레이]

Hewa 2015. 4. 25. 03:39

너에 대한 모든 것을 기억한다. 아마도 호문클루스로써 갖게된 능력이 아니었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이제는 없는 과거의 너 또한 나의 기억 속에서 숨쉬고 있다.
나는 이따금 그 기억 속에서만 살아 숨쉬는 너와 대화를 하곤 한다. 그 때마다 너는 죽여달라고 부탁을 하고,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러면 너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그 시절의 너도, 지금의 너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퍽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 이제 너는 안타까워, 하는 말을 남긴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너 자신이 망가진 자신에게 보내는 말이 아니라 눈 앞에 있는 나에게 보내는 것이다. 끔찍할 정도로 안타까운 사람. 귓가에 다가와 속삭이고, 너는 내 볼을 감싸오더니 옅은 입맞춤을 남긴다. 그리고 사라져간다. 나는 그 순간을 가장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싫어한다. 과거의 네가 사라짐으로써 현재의 너를 만나러 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과거의 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너 아닌 네가 한 부탁을 끝까지 거절할 수가 없다. 만약 내가 네 원을 들어준다면 너는 어떻게 말할까. 더이상 안타깝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내가 보고 싶어하는 그 미소를 보이며 상냥한 사람이라고 말해줄까.

꿈을 꾸는 빈도가 잦아졌다. 클라우드는 그것을 쉽사리 악몽이라고 정의내리지 못한다. 가장 보고싶어 하는 사람은 그곳에서밖에 만날 수 없지 않나. 이내 클라우드는 제 이마를 짚는다. 피식 웃는데, 그것은 자조에 가깝다. 안타까운 사람도, 상냥한 사람도 아니다. 그저 한심한 사람. 현재의 너를 보면서도 과거의 환영에 씌여있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너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척을 하면서 살아갈 뿐. 너는 변했지만 우리의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네가 나를 대하는 태도 또한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또한 똑같아서, 나도 결국 너를 똑같이 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꼭 그 때의 너와 지금의 네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괴감을 느끼곤 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저 감정의 유무만이 차이 있을 뿐 너는 다른 사람이 아닌데.

우습게도 너는 아직도 상냥했다. 오롯이 나에게만은. 그리고 클라우드는 그것에 오히려 더 견디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너는 꿈 속의 너와 너무나도 똑같고, 꿈 속의 너는 계속 나에게 죽여달라 부탁을 한다. 꼭 네 손으로 죽여달라고. 네 손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울고 싶은 기분이 되어 버린다.

특히 현재의 너에게서 과거의 너를 볼 때는 관계 도중이다. 사실 클라우드는 아직도, 어째서 레이븐이 이런 것에 어울려주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 정말 저도 좋아서 하는 것인지, 아니라면 처음부터 이어져온 그 상냥함인지. 기어코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고, 클라우드는 고개를 젓는다. 물론 잔인한건 자신 쪽이다. 그 상냥함을 이용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일말의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클라우드는 괜히 레이븐의 손을 깍지까지 껴서 꽉 맞잡았다. 아직도 관계 후의 나른한 기분에 취해 있었다. 굳이 그것 때문이 아니더라도 겹쳐 누운 상태로 있자면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려서, 그리고 이렇게 가까이 있을 때마다 느껴지는 옅은 숨결이 좋았다. 클라우드는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시체의 무더기 사이에 네가 있다. 주변은 온통 피바다고, 네 옷 여기저기 뿐만 아니라 손, 그 얼굴에도 피가 잔뜩 묻어 있다. 물론 너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위안 삼지는 못한다. 볼에 튄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고, 네가 고개를 돌린다. 네 얼굴을 본 순간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자신을 잃고 싶지 않다며 울던 네가, 퍼뜩 마주한 너와 겹쳐진다. 꿈 속에서 수없이 들었던 죽여달라는 목소리가 웅웅 맴돈다. 사실은 오래 전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의 너를 그 때의 네가 본다면 아마도 너는 네 손으로 목숨을 끊으려 할지도 모른다. 푸른색 시선이 클라우드를 바라본다. 차라리 너에게는 정말로, 죽는 것이 나은게 아닐까. 이런 식으로 네가 전혀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살 바에는.

옷 너머로 파고 들어오는 손톱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공기에 맴돌던 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클라우드는 차갑게 피가 식는 느낌이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떨리는 눈동자에 레이븐이 비춰졌다. 미간만 살짝 찌푸린 얼굴이 보였다. 그제서야 클라우드는 레이븐의 목에서 손을 떼어냈다. 숨을 거칠게 내쉬는 레이븐을 내려다보면서 클라우드 또한 숨이 막힘을 느꼈다. 눈동자만이 떨리는게 아니었다. 레이븐의 목을 조르고 있던 양손마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클라우드는 세차게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 손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다시 한번 레이븐에게 시선을 두었다. 그리고 말없이 끌어안았다. 눈꼬리에 맺힌 생리적인 눈물조차 닦아줄 수가 없다. 겨우 안정적으로 호흡하기 시작한 레이븐은 한참이 지나도록 말이 없었다. 클라우드도 무엇을 말해야할 지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여버려서, 그대로 아랫입술만 꽉 깨물었다.

잠시동안 죽여달라는 목소리에 홀렸다. 하지만 평소와 크게 다름 없이, 고통에 따른 반응이 오직 미간을 찌푸리는 것 뿐임을 보고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팔을 잡아오는 손에 흔들리던 초점이 오롯이 레이븐에게 맞추어졌다. 레이븐은 말없이 클라우드를 밀어냈다. 화가 났다거나, 질렸다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여느때와 다름없이.

침대에 걸터 앉은 레이븐의 시선이 클라우드에게로 향했다. 무감각한 푸른색 시선. 눈이 마주치자 클라우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차라리 무어라 해주기를 원했다. 무슨 짓이냐며 몰아붙혀줬으면 했다. 레이븐은 질타 하나 없이 입을 꾹 다문 채로 한참을 클라우드만 바라봤다. 그러더니 문득 클라우드에게 졸린 제 목을 쓰다듬었다. 한참을 입술을 달싹이다가, 들릴 만큼의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거, 괜찮았어."

레이븐을 마주보는 붉은색 눈동자가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걸까, 자신은.

그 이후 클라우드가 레이븐의 목에 손을 대는 일이 잦아졌다. 우습게도 레이븐은 그것을 즐기는 듯 했다. 아니면 정말로 너도 죽는 것을 은연중에 원하고 있는지.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네가 그것을 즐기는 이유가 정말로 죽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남아 있어서라면, 레이븐의 안에 그 시절이 남아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아직도 클라우드는 감정이 존재하던 시절의 레이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착잡하게 기쁘다.

클라우드는 여느때처럼 제 목을 손으로 쓰다듬는 레이븐을 바라보았다. 끝내 자신은 간접적으로나마 레이븐을 죽이게 될 것이다. 어떤 방법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이내 클라우드는 제 손으로 제 눈을 가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