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릭마틴 - 음악합작] When you're gone

Hewa 2015. 4. 25. 04:05

기다려 주겠소, 하는 그의 말에 마틴 챌피는 고개를 끄덕였었다. 잠시동안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그 어느때보다도 의연하게, 웃으면서 그랬더랬다. 실제로 그에게는 항상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긴 했다. 애초부터 그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이임에도 불구하고, 홀로 있는 것에 익숙한 자였다. 그와 사람 사이에는 일종의 벽이 있었으므로. 릭 톰슨은 그런 마틴이 마음의 문을 연 몇 안 되는 사람중 하나였다. 살면서 처음으로 진심을 맞이한, 그런 사람. 허나 재단 일이 바빠지면 아무리 그라고 하더라도 맘 편히 만날 수 없었기에, 차라리 잠시동안 서로의 일에 집중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시에는 그러했다.

그가 없는 어느 날 밤에 마틴 챌피는 홀로 방에 주저 앉아 눈물을 닦아냈다. 그가 있었던 이상은 그가 필요했다. 힘들다고 말하면 괜찮냐고 물어 줄 사람, 말 하지 않아도 먼저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줄 사람. 그게 바로 그였던 것이다. 있을 때는 모르는 법이라고,  자신이 버텨 올 수 있었던 이유가 그임을 그가 떠났을 때 알았다. 그가 곁에 있었을 때 마틴은 하염없이 강했지만 그가 없어지고 나니 하염없이 약해지고 말았다. 손등으로 수차례 비빈 눈가가 발갛게 물들었다. 꽤 아프다.

─당신이 있을 때는 하루가 너무 짧게 지나갔는데, 혼자 있으니 하루가 몇년처럼 느껴져요.

그에게 보내는 편지에 마틴 챌피는 그렇게 썼다. 물론 그것은 발송될 수 없는 편지였다. 지금쯤 그는 어디에 있을까. 행선지조차 가르쳐주지 않은 릭이 있을 만한 곳을 머릿속으로 짚어보며 마틴은 앉아 있던 침대 곁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아직도 그의 자리로 남아있는, 그가 눕곤 했던 곳이었다. 온기가 여전한 것 같아 마틴은 괜히 주먹을 꽉 쥐었다.

떠날 때 그는 마치 아쉽다는 것처럼 능력도 쓰지 않고 걸어가며 여러번 뒤를 돌아봤었다. 그런 그와 눈이 마주칠 떄마다 마틴은 옅게 웃었고. 이윽고 그가 뒤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걷기 시작하자, 마틴은 그의 발걸음을 세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생각없이 한 행동인 줄로만 알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른 그리움의 표현이었다. 뒤늦게 깨달아 후회할 만큼 마틴 챌피는 그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가 필요한 나날을 쉼없이 보내고 있었다. 알고 있어요, 릭? 속으로 중얼거려보지만 닿을 리는 없다. 그 사실이 마틴을 더 슬프게 만드는 듯 했다.

심장의 조각조각이 모두 그를 그리워하고 있기라도 한 듯, 최근은 심장조차 제대로 뛰지 않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가 찾아오지 않는 주화상점은 한가했고, 마틴은 잠시 시선을 멀리 두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빈자리는 생각보다도 더 크다. 언제나 시선 끝에 있던 그였는데. 마틴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따금 저도 모르게 읽었던 그의 생각을 들으며 키득거렸던 시절이 있다. 매번 릭이 알아채서 무어라 하긴 했었으나. 최근, 간혹 그의 얼굴이 흐릿해질 때가 있었다. 그 때마다 마틴은 가슴이 아팠고 숨이 막혀왔다.
이렇게 멍하니 서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생각이 났다. 매번 먼 발치에서 말을 걸어주었던 사람이었는데. 당장 나오기 전만 해도 집 안에 남겨져 있었던 그의 옷가지들에서 그를 느끼고 말았다. 마틴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는 광장에 서 있을 때마다 지루하다는 생각만을 했으나, 마틴은 그를 언제나 시야에서 볼 수 있게 해 준 그의 일마저 사랑했다.

"뭘 그리 멍하니 있어? 오는 손님도 놓치겠다."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에 마틴은 고개를 돌렸다. 인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하랑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틴이 저를 알아차리기 전, 그의 시선 끝에 있던 곳으로 흘끔 눈동자를 돌리고 혀를 찼다. 최근 들어 들려오는 그의 이야기가 좋지 않음을 하랑은 떠올려냈다. 언제나 먼 곳을 바라보고, 답지 않게 어느 것에도 집중을 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그 이유를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 뿐이었고, 그중에는 하랑 또한 속해 있었다. 그로서는 아직 이해하지 못할 감정이었으나.

"그렇진 않을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사부의 편지. 별 건 아니고, 저번에 있었던 회의 안건을 정리 한 거라던데."

잠시 마틴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하랑은 쉽게 잡아낼 수 있었다. 설마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자신에 대해 들려오는 소문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그가 아닌데. 하랑은 가볍게 혀를 두어번 찼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말 해도 될까. 솔직히 말하자면 하랑은 그에게서 적지 않은 답답함을 느꼈다. 이럴 거면 왜 가는 그를 붙잡지 않았는지. 겉으로는 재단에 집중하려고 부던히 애를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걸 하랑은 알고 있었다.

"조선에는 무당이라는 직업이 있어."
"하랑군 아버지가 그거였다면서요. 대충은 알고 있어요."
"아무튼. 굿이나… 뭐 그런 거 말고도 관상이라고 사람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운명을 점 쳐주기도 해."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하랑은 두어번 입술을 달싹였다. 함부로 말 할 사안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히려 마틴에게 상처를 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처를 줘서라도 깨닫게 해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다. 어차피 마인드 리더인 그인지라 이미 제 생각을 읽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역마살이라고 알아?"
"돌리지 말고 제대로 말해요, 하랑군."
"그 사람, 릭 톰슨. 평생 그렇게 떠돌면서 살 사람이야. 어디에 정착하지 못하고."
"그래서요?"
"다시 생각해보라고."

마틴은 잠시 말을 잃었다. 정확히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웃었다.

"그정도도 견디지 못했다면 아마 애초부터 그를 만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입가의 미소와는 다르게 힘 빠진 목소리였다. 하랑은 잠시 조용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결국, 선택은 그의 몫이다. 어떻게 하든 자신이 참견할 영역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충고를 해줬을 뿐이니까. "갈게." 그의 어깨를 두어번 툭툭 두드려주고 하랑은 뒤돌았다.
그 뒷모습을 보다가, 마틴은 바닥에 시선을 고정했다. 정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리고 이내 고개를 두어번 저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그가 그렇게 말 했었다. 정말 그렇다고 마틴은 믿고 있었다. 그러니 그가 알아줬으면 했다. 내 심장과 영혼은 당신의 것이라고, 그러기 위해서 모든 것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릭. 당신이 여기에 함께 있다고 느끼고 싶어. 전해지지 못 할 말을 오늘도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고,

"…보고싶어."
"내가 말이오?"

마치 답변하듯 들려오는 목소리에 마틴이 고개를 돌렸다. 매번 그가 서있곤 했던 자리에, 익숙한 인영이. 이내 마틴 챌피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