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레이] to. 체온님
내려다보는 시선이 썩 달갑지는 않다. 2cm는 그리 큰 차이가 아니었기에, 느낌도 생소했다. 어쩐지 관찰대상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레이븐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책상에 턱을 괸 채로 멀뚱히 클라우드를 보고 있었다. 몇 센티 정도일까. 1/10 정도 크기로 줄어든 것 같은데. 20cm도 안 되는건가. 클라우드는 머릿속으로 분명히 놀리고 있을 거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실상 레이븐에게는 그런 실없는 생각들 뿐이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클라우드는 여전히 영 불만스럽다는 표정으로 레이븐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노트북이나 좀 가져다 줘."
"내가 왜?"
심드렁한 대꾸에 클라우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루나에게 들키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루나는 대놓고 놀려대려나.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클라우드는 혀를 찼다. 어쩐지 상상이 되어서,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지금 눈 앞의 레이븐처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감도 안 잡히는 것보다야…….
"야!"
갑자기 옷깃이 잡아 당겨져 들어올려졌다. 적지 않게 놀란 클라우드는 눈을 크게 뜬 채로 레이븐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어째 지금은 더 그런 것 같다. 마치 더러운 것이라도 옮기는 양 클라우드의 옷깃만 살짝 잡은 채로 레이븐은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클라우드에게만 채감 발걸음을 옮긴 것이지, 레이븐 본인은 몸을 돌려 몇발자국 움직인 게 다였다. 몸이 작아지니 온갖 감각들이 다 왜곡되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쾌하다.
"그런데 그 몸으로 어쩌게?"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을 건넨 레이븐에 클라우드는 물끄러미 닫혀 있는 노트북을 쳐다봤다. …마법을 쓰면 열 수는 있지 않을까. 시도는 해 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한참을 레이븐은 클라우드가 끙끙거리며 마법으로 노트북을 여는 것을 쳐다보기만 했다. 아무래도 도와줄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일분여가 지나고 나서야 노트북을 열기만 하는 데 성공한 클라우드는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어딘가 자존심이 상한다. 직접 깎아먹기까지 하는 자존심이지만, 없진 않다. 클라우드는 훽 고개를 돌려 레이븐을 쏘아보았다.
"조금 도와주면 덧나?"
"도와주려고 말 시킨건데 네가 대답이 없었잖아."
…우문현답인지, 현문우답인지. 그제야 레이븐은 손을 뻗어 덜 열린 노트북을 제대로 열어주었다. 도통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뾰루퉁하게 레이븐을 흘겨보던 클라우드는 이내 고개를 돌려 꺼져 있는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손을 뻗어도 전원 버튼에 닿을 리가 없다. 끙,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클라우드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걸어가 노트북 위로 올라섰다. 그대로 또 걸어가 버튼 앞까지 가서야…… 그래. 이 작은 손으로 버튼을 눌러봤자 라는 걸 왜 이제서야 깨달았을까.
"……."
"……."
잠시동안의 정적이 흘렀다. 레이븐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손을 뻗어 버튼을 꾹 눌렀다. 갑작스러운 부팅음에 화들짝 놀란 클라우드는 저도 모르게 두어번 주춤했다. 또 그걸 본 모양인지 레이븐은 피식 웃었다. 클라우드는, 적당히 여기서 혀 깨물고 죽어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노트북으로 뭐 하려고."
"당연하잖아. 일."
퉁명스러운 대꾸에 레이븐은 그대로 팔짱을 꼈다.
"워커홀릭."
글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클라우드의 대꾸가 없자 레이븐은 다시 입을 열었다.
"좀 쉬지그래."
"그럴 시간도 없어."
"정말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하는 거야?"
…솔직히 말하자면, 그럴리가. 일종의 오기였다. 영 무심하게 시선을 내리고만 있던 레이븐은 이내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손이 다가오자 저도 모르게 움찔하고 눈을 감아버린 클라우드는 다시 몸이 들리는 느낌에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취급을 당하고 있는 건지. 클라우드를 대충 노트북 옆으로 치워버린 레이븐은 근처에 있던 의자를 끌어 와 앉았다.
"그렇게 바쁘면 내가 하면 되잖아."
그리고 한 쪽 손으로 턱을 괸 채로 마우스에 손을 얹었다. 레이븐의 그 말에 클라우드는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진심인 듯 레이븐은 눈동자를 데룩 굴려 그런 클라우드와 시선을 맞추었다. 뭘 하면 되냐고 묻고 있는 눈이다. 클라우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래도 너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은데."
굳이 꺼려지는 점 하나를 꼽자면 이런 식의 돌직구였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왔지만 도저히 곱게 봐 줄 수만은 없었다. 뭐라 쏘아 붙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클라우드는 그냥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불필요한 언쟁을 해봤자 힘이 빠지는 건 저 쪽이라는 사실을, 클라우드는 잘 알고 있었다. 영 못 믿음직하긴 하지만, 관둘 생각도 없어 보이고. 한 번쯤 맡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클라우드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몇시간 후, 레이븐은 잡고 있던 마우스를 놓아버렸다. 아무리 작아졌다고 해도 시선이 정말로, 아주, 매우 심하게 부담스러웠다. 시선을 내리면 마치 안 보고 있었다는 듯 훽 고개를 돌려버리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면 어김없이 시선이 쏟아져온다.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맡긴 일이 영 불안한 건 알겠는데, 이런 식의 감시당하는 느낌은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레이븐이 마우스를 놓아버리자 클라우드는 애써 외면하고 있던 시선을 다시 그에게 고정시켰다.
"…솔직히 별 거 아니잖아?"
레이븐이 말대로, 클라우드가 그에게 맡긴 건 그냥 간단한 자료 찾기일 뿐이었다. 굳이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지 않아도 그정도는 할 줄 안다. 마치 그정도도 할 줄 모를테니 지켜보고 있는 편이 낫겠지, 하는 느낌이었다. 클라우드도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착잡한 기분이 드는 것이, 자꾸 그에게로 눈이 갔다. 기분 나빠 할 거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눈은 안 마주치려고 했는데, 당연히 들킬 수밖에 없었다.
"그냥 가서 쉬어. 쳐다보고 있지 말고."
"…그러고 싶긴 한데."
작게 한숨을 푹 내쉬는 클라우드에 레이븐은 고개를 갸웃, 했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 한숨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 몸으로 책상 위에서 어떻게 내려가겠는가. 마법을 쓰면 될 일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마법조차 마음대로 써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레이븐은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또다시 아까처럼 클라우드의 옷깃을 잡고 들어 올렸다.
"이렇게 안 잡으면 안 돼?"
"그럼 어떻게 잡아."
"……그것도 그렇네."
어쩌다 이렇게 처량한 신세가 되어 버렸는지. 클라우드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방 한구석에 자리잡은 침대에 클라우드를 내려놓은 레이븐은 제 허리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였다.
"쳐다보지 말고, 좀 자."
클라우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레이븐은 아마 그러진 못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쓸데없이 걱정만 많은 녀석이었다. 일이 많은 때와 적은 때가 어느정도 정해져 있는 레이븐으로서는 그의 일을 조금 덜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언제나 정색을 하고 가라며 성을 내던 클라우드에 알 수 없는 느낌을 여러번 받았었다. 이번에도 영 께름칙해 하면서 별 것 아닌 일을 맡긴 거고. 매번 일에 치이는 클라우드인지라 신경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긴 하겠지만, 레이븐은 가끔 불만스럽기도 했다.
몸을 돌려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온 레이븐은 의자에 앉기 전에 허리만 살짝 숙여 다시 마우스를 잡았다. 별 뜻 없는 창을 괜히 여러개 띄워 놓고, 고개를 돌려 옆의 책장을 바라보았다. 책은 둘째치고 사이사이가 서류뭉치로 정신이 없었다. 레이븐은 그쪽으로 손을 뻗어 서류 몇 장을 꺼냈다. 내용은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지만, 결제 서류로 보였다. 그럼 간단히 서명만 하고 넘기면 될 것이다. 워낙 정신이 없는 녀석이니 저가 결제한 줄 알지 않을까. 대충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펜을 들고 레이븐은 가볍게 결제란에 서명을 했다. 저의 것이 아니라 눈대중으로 여러번 봐왔던 클라우드의 것으로. 나름대로 그럴듯하다. 등 뒤에선 당연히 시선이 느껴졌지만, 띄워놓은 창 때문인지 아무래도 맡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 하는 듯 클라우드는 별 말이 없었다. 알고 있다면 당장 소리질러 바득바득 화를 냈을 텐데.
그래도 어느 정도 읽기는 해둬야 할 것 같아서 눈으로 훑으며 서명을 하고 있는 지라, 실상 결제 완료 서명이 되어 있는 서류는 아직 적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언젠가부터 느껴지지 않는 시선에 레이븐이 고개를 돌렸다. 앉아서 멀뚱멀뚱 쳐다고 있을 거라 생각한 클라우드는 어느새 누워 있었다. 쉬라고 했더니 아예 잠을 자는구나. 자리에서 일어난 레이븐은 조심스레 그런 클라우드에게 다가갔다. 하기사, 며칠 밤샘을 하며 방에 틀혀박혀 나오지도 않았던 녀석이다. 그래서 살아 있나 확인을 하러 클라우드의 방에 들렀던 게 아니었던가. 어쩌다보니 그의 일을 해 주고 있긴 했지만.
문득,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불필요해진 호문클루스의 처분은 어찌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어."
잠귀는 또 밝은 지라 침대에 살짝 걸터 앉은 것 만으로도 잠에서 깨어난 모양이었다. 클라우드와 시선이 마주친 레이븐은 한참동안 말없이 자그만해진 클라우드를 바라보았다.
"있지, 클라우드."
그렇게 불러놓고 레이븐은 또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가끔 이런 식으로 나오는 레이븐은 답답하기도 했고, 어쩐지 답지 않기도 했다. 뜻모를 행동을 하는 건 그의 종특이었지만서도.
"……이대로 더 작아져버려서, 아예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했어."
클라우드는 눈만 두어번 깜빡이며 레이븐과 눈을 맞추었다. 갑자기 이렇게 변해버렸는지라, 솔직히 말하자면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나저나, 걱정을 하고 있나. 클라우드는 문득 손을 뻗었다. 어쩐지 쓰다듬어주고 싶은 기분이었는데 당연히 손은 닿지 않았다. 아쉬워져서 손을 다른 쪽으로 옮겼다. 그나마 레이븐이 침대 위를 짚은 손이 저와 가까워서 다행이었다. 레이븐의 손 위에 제 손을 올려놓은 클라우드는 시선을 떨궜다.
"사라지진 않을 거야."
"……응."
예전부터 알게모르게, 레이븐은 클라우드를 믿고 있었다. 매번 기만이니 뭐니 하는 말과는 조금 다른 형식으로 말이다. 본인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물론 클라우드도.
"미안, 쓸데 없는 소리 해서."
"너도 피곤한가보지."
픽 웃으며 클라우드는 제 손을 거두었다. 작아졌는데도 닿는 온기는 그대로였다. 묘하게 기분 좋아하고 있는 클라우드를 보다가, 레이븐은 갑작스레 저 또한 침대에 몸을 묻어버렸다.
"일은."
"몰라. 잘래."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녀석이다. 속으로 투덜거리며 클라우드는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사실 방금 전에도 바로 자려고 했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레이븐의 말대로 자고 일어나면 더 작아져있지 않을까, 아예 사라져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없지 않아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눈을 감았을 뿐인데도 슬슬 오는 잠에 클라우드는 얼마 가지 않아 빠져들었다. 레이븐이 옆에 있어서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