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Unlight

[아이에바] 세계관 크로스오버 합작 - DTB

Hewa 2015. 4. 19. 02:27

아이자크 로스바르드는 밤 하늘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혐오했다. 그는 자신들이 보고있는 이 하늘이 진짜 하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몇 안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았다고, 아이자크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도 별이 떨어졌다. 그것도 무더기로. 아마 평범한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면서 감탄을 하겠지만, 아이자크는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자크가 옆에서 자고 있는 에바리스트의 손을 꽉 잡았다. 깊은 잠에 든 에바리스트의 안경을 벗겨주고, 영 불편한 자세로 잠들어 있는 에바리스트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 저 떨어지고 있는 별은 영원히 너의 별이 되어서는 안된다.

밤 하늘이 변한 것은 그란데레니아, 수도 파이두에 게이트가 나타나게 된 이후였다. 그 전까지는 아이자크 또한 밤 하늘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에바리스트가 좋아했었으니까. 참으로 간단한 이유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아이자크는 밤하늘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게이트 자체를 혐오했다. 제국의 수도 파이두는 반 이상이 불가침 구역으로 변해버렸고, 행동 범위도 제한되어버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이자크의 마음을 쿡쿡 찌르는 것은 에바리스트가 변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에바리스트는 눈 하나 꿈쩍 않고 사람을 죽였으며, 본래 잘 웃지 않는 성격임에도 아이자크에게만은 지었던 미소조차 짓지 않게 되어버렸다. 에바리스트 바르트는 계약자였다. 차라리 자신도 그와 같은 계약자가 되었으면 편했을까. 아이자크는 종종 그런 고민에 빠졌지만, 이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랬더라면 너를 생각하는 감정 마저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그것이 아이자크에게는 제일 최악인 일이었다.

아이자크는 아직도 종종 그 때의 꿈을 꾸었다. 에바리스트의 아버지는 포레스트 힐의 영주였다. 아마도 그 때의 일이 아니었다면, 지금 쯤 에바리스트는 영주가 해야 할 여러가지 일에 대해서 배우고 있었을 것이다. 10년 전, 포레스트 힐은 게이트의 생성과 함께 불타 사라져 버렸다. 훗날 밝혀진 일이지만, 에바리스트의 아버지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던 자─ 원하는 것을 모두 불태울 수 있는 계약자가 된 사람의 소행이었다. 그로 인해 포레스트 힐의 주민들은 대부분 죽었고, 아이자크와 에바리스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포레스트 힐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그나마도 에바리스트가 능력을 발현한 덕분이었다. 에바리스트는 포레스트 힐을 불태운 사람을 죽여버렸고, 그것이 그의 첫 살인이었다. 당시의 에바리스트는 16살이었다.

갈 곳을 잃은 두 사람을 거둔 곳은 지금 몸담고 있는 조직이었다. 계약의 대가를 위해 잠든 에바리스트를 끌어안고 울고 있던 아이자크에게, 조직의 에이전트가 손을 내민 것이었다. 당시의 조직은 계약자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어린 계약자라면 더더욱 선호했다. 그들은 이용하기에 더 쉬웠고, 동시에 버리기에도 쉬웠기 때문이었다. 조직에 들어가면서 겨우겨우 연명하게 된 아이자크는 에바리스트와 함께 살인 병기가 되는 훈련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자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계약자가 아니었다. 합리적인 판단도 하지 못했다. 그저 에바리스트를 위해서만 행동했다. 그를 위해 살육을 행했고, 그를 지키기 위해 감정을 숨겼다. 에바리스트는 아이자크에게 소중한 소꿉친구였고, 단 하나 남은 가족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초월한 감정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아이자크는 결국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해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를 보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가 살육에 취해 있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상은 달랐다. 아이자크의 살인은 오로지 에바리스트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26세가 된 두사람을 조직은 한 팀으로 묶어 그란데레니아의 수도 파이두로 보냈다. 그곳에서 두사람이 하는 일은 타 정보기관을 견제, 소속된 계약자들을 죽이는 것이었다.

"…아이자크."

에바리스트가 깨어났다. 그가 계약자로서 능력을 사용하는 데에 사용하는 대가는 잠이었다. 숨조차 쉬지 않는 것처럼 잠들어서, 에바리스트가 처음으로 능력을 사용한 날 아이자크는 정말로 그가 죽은 줄로 착각했었다. 이제는 익숙해졌다. 에바리스트는 짧게는 한두시간, 길게는 하루 종일 잠들어있기도 했다. 그리고 깨어난 에바리스트의 곁에는 언제나 아이자크가 있었다. 밤하늘을 보고 있던 아이자크는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에바리스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아이자크는 언젠가부터 에바리스트의 앞이 아니면 웃지 않게 되어버렸다. 벗겨두었던 에바리스트의 안경을 씌워주며, 아이자크는 에바리스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무감각한 눈동자의 에바리스트는 그런 아이자크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잘 잤어?"

에바리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너는 자지 않은 것 같군,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아이자크는 쓰게 웃으며 눈을 부볐다. 졸음이 몰려오긴 했지만 잘 수 없었다. 대가를 치루기 위해 잠든 에바리스트는 물리적 충격으로도 깨어나지 않았기에, 그를 두고 잠들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이자크는 언제나 에바리스트가 깨어난 이후에 쪽잠을 자곤 했다.

"네가 깼으니까 이제 내가 자야지. 조금만 잘게, 한 시간 있다가 깨워줘."

언제나의 일이었다. 아이자크는 길어봤자 3~4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벽에 기댄채로 아이자크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금방 다시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에바리스트가 그를 흔들어 깨웠기 때문이었다. 아이자크는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막 잠이 들려 한 참이었다.

"관측령."

에바리스트는 손가락으로 창문을 가리켰다. 아이자크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임무였다. 이전 임무가 끝난지 채 반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최근들어 임무가 잦아진 것에 대하여 아이자크는 불만이었다. 본인의 수면이 보장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계속해서 에바리스트가 위험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꼴에 계약자라고, 전투 시에는 당연히 아이자크보다 에바리스트가 나았다. 계약자가 되면서 감정을 잃은 에바리스트였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아이자크였다.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치고 에바리스트는 언제나 아이자크보다 먼저 움직였고, 덕분에 타겟의 표적이 되기 쉽상이었다.

"혼자 다녀와도 괜찮다. 조금 더 자라, 아이자크."
"아냐, 괜찮아. 금방 끝내고 와서 자면 되지 뭐."

빙긋 웃으며 아이자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바리스트는 그런 아이자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일어섰다.

*

두 사람이 찾은 사람은 프리드리히였다. 아무래도 새벽이었으니, 당연히 그는 자고 있었다. 그럼에도 대뜸 찾아온 두 사람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임무가 늦어지면 늦어질 수록 상부에서 찌르는 것은 에이전트인 두 사람이 아니라 전달자인 프리드리히였으니, 당연했다. 프리드리히는 아이자크와 같은 인간이었다. 둘과 똑같이 고향을 잃었고, 계약자인 쌍둥이 형이 있었다. 그만큼 아이자크와 공통점이 많았기에 은연중에 프리드리히는 아이자크의 처지를 동정했다. 10년 전, 어렸던 아이자크에게 검을 가르친 것 또한 프리드리히였다.

"괜찮아? 눈이 잔뜩 충혈되어 있는데."
"이틀 정도 못자서 그래요. 괜찮습니다."

프리드리히는 작게 혀를 찼다. 산발이 된 머리를 대충 정리하며 우편함에서 무언가를 꺼낸 프리드리히는 두사람에게 먼저 보여주기 전에 그것을 뜯어보았다. 몇 시간 전 도착한 따끈따끈한 지령이었다. 프리드리히는 임무 내용을 꼼꼼히 훑어보다가 한 부분에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그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아이자크에, 프리드리히는 지령서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협정 심문관이라면 판데모니움의 최고 에이전트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렇지. 아마도 위험할거야. 지금까지 너희가 해온 일과는 차원이 다르겠지."

아이자크는 주먹을 꽉 쥐었다. 여차하면 타겟을 죽이고 함께 죽는 방법이 있었다. 에바리스트는 홀로 도망치게 하면 됐다. 아이자크가 없어도 에바리스트를 돌보아 줄 사람은 많았다. 가령, 눈 앞의 프리드리히만 해도 그를 잘 챙겨줄 것이다. 아이자크는 끙, 하고 작게 신음했다. 협정 심문관. 두 사람이 속한 조직 만큼이나, 아니 그것보다 더 큰 정보 조직이 바로 판데모니움이었다. 최근 게이트와 관련된 정보를 손에 넣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아마도 협정 심문관에게 그것의 운반을 맡긴 모양이었다. 결국 임무의 최종 목표는 게이트 관련 정보의 탈취였다. 죽이든, 죽이지 않든 그것은 관계 없었다. 하지만 아마도 죽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죽이지 않는다면 자신이 죽을테니까.

"정오. 시간은 충분하네."

어느새 아이자크의 손에서 지령서를 빼앗아 간 에바리스트가 임무의 내용을 읽었다. 그리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아이자크에게 쉬어도 괜찮아, 하고 덧붙혔다. 프리드리히도 기왕이면 아이자크가 쉬었으면 했다. 탈취라면 에바리스트 혼자서도 충분한 일이었다. 위험이 동반되긴 하겠지만, 들키지 않고 근처에 다가가 그의 능력인 감전을 사용하면 되는 일이었다. 감전시켜 기절시킨 후에 정보만 빼오면 임무 완수였다. 조직도 그것이 제일 이상적인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더 거대한 정보망을 가진 판데모니움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인데, 에이전트까지 죽이게 되면 여러모로 꼬일 것이 뻔했으므로. 에바리스트와 아이자크의 팀이 움직이기로 했지만, 보조로 베른하드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에바리스트가 정보를 탈취한 후에 곧바로 대가를 위해 잠들 것을 대비한 일이었다.

"좀 쉬어라, 아이자크. 네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에바리스트도 곤란해져."
"…그건 알고있지만……."
"괜찮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베른하드가 함께 행동하니까."

아이자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에바리스트 또한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계약자다. 피곤에 찌든 아이자크가 함께 행동해봤자, 오히려 짐만 될 것이 뻔했기에 더더욱 하는 이야기였다. 결국 아이자크는 둘의 의지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정오, 게이트에서 꽤나 가까운 지역이야. 조심하도록 해. 거기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까."
"알고 있습니다."
"베른하드는 임무 한시간 전에 보내도록 할게. 임무 수행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어."

─참, 그리고 아이자크는 우리 집에서 재우도록 할게. 에바리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자크는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에바리스트를 바라보았다. 에바리스트는 작게 미소지으며, 아까 아이자크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미소에 벙 찐 아이자크가 멍하니 에바리스트를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 에바리스트는 프리드리히에게 작게 고개숙여 인사하고 임무 준비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괜찮겠죠?"
"괜찮을거야. 에바리스트는 강하니까."

아이자크는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

에바리스트는 숨을 거칠게 몰아 쉬었다. 임무가 뒤틀렸다. 판데모니움의 협정 심문관, 아니 판데모니움 자체가 굉장했다. 계약자의 능력을 봉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계약자라니. 먼저 잠복해 있던 베른하드가 능력을 봉인당한 채로 당하고 있던 것을 에바리스트는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 점에서 에바리스트는 계약자답지 못한 계약자였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긴 하지만, 두 쌍둥이와 특히 아이자크와 관련된 일에는 마치 인간인 마냥 정에 휘둘렸다.

"미리 이야기를 들었지. 판데모니움의 정보력을 얕본건가, 너희 조직은."
"…아니면 협정 심문관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희생시키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렇기엔 너무나도 유능한 에이전트가 아닌가, 너는. 메시아 코드 RS-001."

과연 판데모니움, 이라고 밖에 에바리스트는 설명할 수 없었다. 조직의 에이전트 중에서도 탑에 속한 자신의 정보는 극비리에 보호되는 것이었다. 조직 자체에 천문부가 개설되어 있다는 것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에바리스트는 입술을 짓씹었다. 베른하드는 설상가상 상대의 능력에 의해 마비까지 되어버려 움직이지 조차 못하는 상황이었다. 대 계약자전에서는 누구도 이기지 못할 능력을 가진 상대였다. 둘이 힘을 합쳐도 모자를 판에, 이런 상황이라니. 에바리스트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

"코드네임 인퀴지터. 브레이즈다. 이 정도 알려줄 가치는 있겠지, 너에겐."

물론 여기서 죽게 되겠지만. 브레이즈는 에바리스트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움직여 피하려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에바리스트 또한 어느샌가 마비 상태에 빠져있었다. 진작에 피했어야 했나. 하지만 의식을 잃은 베른하드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검을 겨눈 채로 브레이즈가 입을 열었다.

"너에게는 소중한 사람이 있나?"
"계약자에게는 그런 것이 존재할 수 없다는걸 네가 제일 잘 알텐데. 그 누구보다도 이기적인 존재이니까."
"…하지만 내게는 있다.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에바리스트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혈육은 아니지만, 소중한 가족이지. 그녀를 위해서는 너를 죽일 수밖에. 넌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계약자답지 못한 계약자군, 너는."

에바리스트의 안경 너머의 금안이 붉게 반짝였다. 브레이즈는 반사적으로 에바리스트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브레이즈의 마비 능력은 능력을 봉인했을 시에만 함께 발동하는 것이었고, 능력의 봉인은 지속시간이 짧았다. 너무 시간을 질질 끌었다고 브레이즈는 생각했다.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격의 충격이 어느정도 브레이즈에게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나도 너에게 타박을 줄 처지는 되지 못해."

에바리스트의 말과 동시에 와이어가 브레이즈의 팔을 감아 꽉 옥죄었다. 에바리스트가 바로 직전에 본 것은 근처 건물의 창문에 비추어진 관측령이었다. 에바! 하고 그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곧바로 들려왔다. 임무가 틀어진 것을 어떻게 안 모양이었다. 브레이즈의 팔을 옥죈 아이자크가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그 벽안에는 살의가 가득했다. 브레이즈는 압박되는 팔의 감각에 결국 들고있던 검을 떨구고 말았다.

"괜찮아? 다친 곳은 없는거야, 에바?"

아이자크는 브레이즈의 한쪽 팔을 와이어로 포박한 채로 천천히 움직여 에바리스트의 곁으로 다가갔다. 브레이즈는 단숨에 알아챌 수 있었다. 금발은 계약자가 아니다. 아마도, 에바리스트의 소중한 이가 바로 저 이일 것이다. 세상에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가진 계약자는 자신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온 브레이즈였다. 그렇기에 그의 존재는, 어딘가 묘한 기분을 가져다주었다. 동질감일까.

"얌전히 게이트 정보를 넘겨라. 목숨만은 살려줄테니까."
"무슨…!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에바! 네가 죽을뻔했다고, 그걸 몰라?"

그럴리가. 에바리스트는 고개를 저었다. 평소였다면 눈하나 깜빡 않고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에바리스트는 그럴 수 없었다. 소중한 사람을 가진 사람은 소중한 사람을 가진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 없다. 그것이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매사에 냉철한 계약자라고 하더라도. 에바리스트에게는 브레이즈를 죽일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를 죽이지 않는다고 아이자크나 자신이 죽게되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죽이지 않는 것이 임무의 내용이 아니었던가. 아이자크는 지금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와이어를 더 꽉 옥죄어버릴 기세였다.

"괜찮아. 내 말 들어, 아이자크."

결국 화가 난 아이자크가 에바리스트에게 한 마디 하려는 순간, 두 사람의 앞으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두 사람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게이트 안의 물질이었다. 함부로 가지고 나올 수도, 가지러 들어갈 수도 없는 물건이었다. 그것은 브레이즈가 품 안에서 꺼낸 것이기에,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브레이즈는 또 하나의 똑같은 것을 손에 들고 있었다.

"너희에게 준 것은 원본이다. 확인하고 싶다면 너희 조직에 가져가봐라."
"…어째서?"

아이자크가 브레이즈를 향해 작게 으르렁거렸다.

"나는 판데모니움을 좋아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행동하는 것 뿐이지."

에바리스트는 아이자크에게 눈짓을 보냈다. 어차피 무기도 멀리 떨어져 있고, 무기를 주우러 가려 한들 아이자크가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아이자크는 결국 작게 쳇, 하고 그의 팔을 옥죄고 있던 와이어를 풀어냈다. 잠시간의 대치상태가 이어졌다. 에바리스트는 허리를 숙여 브레이즈가 건진 것을 주웠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물질은, 어쩐지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져다 주었다. 유성의 조각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얼핏 알고만 있는 물건이었다. 그것이 무슨 용도로 사용되는지, 말단인 그들은 알지 못했다.

"돌아가. 너에 대한 정보는 조직에 알리지 않도록 하지."

아이자크는 도통 에바리스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를 따를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저 입술을 꽉 깨문 채로, 천천히 뒷걸음질 치다가 뒤돌아 사라져가는 브레이즈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에바리스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동시에 다리의 힘이 풀리고, 그대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놀란 아이자크가 에바리스트를 받쳐 안았다. 에바리스트는 눈을 감고 있었다. 뜬금없이 시작되는 대가라는 것이었다. 아이자크는 결국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

"깬거 알아, 에바. 자는 척 하지 마."

새벽, 공원에 누운 채로 아이자크가 에바리스트에게 쏘아붙혔다. 그제야 에바리스트는 눈을 뜨고 시선만 돌려 아이자크를 바라보았다. 아이자크는 영 심통 난 표정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아이자크는 에바리스트의 행동이 이해 가지 않았다. 아무리 죽이지 않는 것 또한 임무의 내용이었다 하더라도, 죽이지 말라는 말은 없었는데. 게다가 상대는 에바리스트를 죽이려 하지 않았던가. 합리적인 계약자라면 그를 살려두어서는 안됐다.

"…고맙다, 아이자크."
"뭐가. 난 당연한 일을 한거 뿐이야."

퉁명스럽게 이야기하는 아이자크에 에바리스트는 몸을 일으켰다. 아이자크는 여전히 누운 채로 밤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에바리스트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

"이야기 해봤자 더 화만 날거야."
"네가 얘기 하기 싫다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
"화 난 주제에."

그 말에 아이자크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다 무슨 상관인가. 나중에 죽여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일단은 에바리스트를 구했고, 그가 아무런 상처도 없다는 것이 중요했다. 에바리스트는 다시 아이자크의 옆에 풀썩 누웠다. 풀밭에서 보는 하늘이라니, 영 괴상한 취향이었다.

"기억 나, 에바? 포레스트 힐에서. 가끔 이렇게 같이 별을 보곤 했지. 그 때의 별은 진짜였는데 말야."

그랬었지. 에바리스트가 짧게 대꾸했다.

"…처음엔 네가 계약자라는 현실이 너무나도 증오스러웠는데, 이젠 차라리 돌(doll)이 아니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적어도 계약자는 웃을 수도 있고, 이것저것 이야기 할 수도 있으니까……."

에바리스트는 지금 아이자크가 반 쯤 잠에 든 채로 횡설수설 하는 것이라고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런 아이자크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주며 에바리스트 또한 하들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모두 가짜 별이었다. 저중에 자신의 별도, 베른하드의 별도, 또한 그 브레이즈의 별도 있을 것이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별이. 아슬아슬하게 가짜인 밤하늘에 걸려있는 계약자의 별이었다.

"…잘게. 잔다, 에바……."

그렇게 웅얼거린 아이자크는 정말로 금새 잠들어버렸다. 에바리스트는 그런 아이자크를 보며 혀를 찼다. 이런 곳에서 자면 감기에 걸릴 것이 뻔했으니, 프리드리히라도 불러 집으로 데려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조금 후에. 에바리스트는 이 장소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선선한 밤바람이 불어왔다. 그것마저 가짜일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이내, 별이 하나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