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

Poem 6

Hewa 2015. 10. 27. 00:29

다 잊고 사는데도, 원태연


다 잊고 산다

그러려고 노력하면 산다

 

그런데 아주 가끔씩 저려올 때가 있다

그 무언가 잊은 줄 알고 있던 기억을

간간히 건드리면

멍하니

눈물이 흐를때가 있다

 

그 무엇이 너라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못다한 내 사랑이라고는 한다



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 여림


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

내리는 비는 점점 장대비로 변해가고 그 빗속을 뚫고 달리는

버스 차창에 앉아 심란한 표정을 하고 있을 너를 떠올리면서

조금씩 마음이 짓무르는 듯했다

사람에게는,

때로 어떠한 말로도 위안이 되지 못하는 시간들이 있다

넋을 두고 앉아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본다거나

졸린 듯 눈을 감고 누웠어도 더욱 또렷해지는 의식의 어느 한 부분처럼


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

너를

보내는 길목마다



기일, 강성은


버려야 할 물건이 많다

집 앞은 이미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하다


죽은 사람의 물건을 버리고 나면 보낼 수 있다

죽지 않았으면 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를 내다 버리고 오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것만 같다


한밤중 누군가 버리고 갔다

한밤중 누군가 다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


창밖 가로등 아래

밤새 부스럭거리는 소리



고아, 이이체


당신이 나를 불렀다.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메말라 버린 꽃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이 나를 부르는데 왜 내 이름이 아닌지 궁금해졌다.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남진우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한사코 생각하는 내가

이토록 낯설게 마주한 너를

나는 다만 떠올릴 수 없어서

낡은 수첩 한 구석에 밀어넣은 그 말을 물끄러미 들여다 본다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 말에 줄을 긋고 이렇게 새로 적어 넣는다

언젠가 너를 잊은 적이 있다

그런 나를 한 번도 사랑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