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부터 사교 모임은 네일이 가장 기피하는 자리중 하나였다. 글쎄, 대외적인 이미지로는 대부분이 그럴리가 없다. 라고 생각할 것이지만. 네일이 대외적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실제 그의 성격은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 그러니 그 이미지를 유지해야 하는 자리가 피곤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애초부터, 사람을 사귀는 일이나 어울리는 일에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한마디로 말해서 딱 질색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매번 피할 수 있는 자리는 피해왔다. 피할 수 없는 자리라면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와야 했지만. 클라이스가 주관하는 행사라던지, 정기적인 모임 같은 것에는 불가항력이 작용했다. 굳이 따지자면 외가 쪽에도 그런 것은 있었으나. 본가는 불편했다. 아는 사람도 본가에 많았고, 평소 가까이 지내왔던 것도 본가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어릴적부터 불편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아버지 또한 불편해했고, 그 이유는 충분히 알고 있기에 똑같은 이유이겠거니 싶었다. 허나 시간이 꽤 흐른 아직까지도 불편했다. 가족들이 없다고 이름 뒤에 붙은 클라이스가 때어지는 것은 아닌데. 네일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그 한숨에 반응하듯 제 손을 잡아오는 연인의 손에, 또 금세 기분이 좋아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 오늘은 이전처럼 불편한 자리만은 아니다. 고개를 돌리자 눈이 마주쳤다. 엘리후는 빙긋 웃었고, 네일 또한 비슷하게 웃어보였다. 네일이 이런 자리를 싫어한다는 것도, 대외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느라 피곤해한다는 것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엘리후였다. 그러니 굳이 한숨의 의미를 묻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내가 있잖아. 미소 뒤에 숨은 말을 네일은 이미 읽어낸 뒤였다. 안그래도, 깨달은 순간 기분이 나아진 차다. 네일은 괜히 그 손을 한 번 꽉 잡았다가 놓았다. 보는 눈이 많은지라. 그래도 연인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냥 좋은, 네일은 그런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엘리후를 이런 자리에 데려온 것은 처음이었다. 데려오고 싶지 않아서 데려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항상 같이 오고 싶었지. 비단 비밀 연애 때문만은 아니었다. 엘리후 알피에리, 라는 이름을 입 밖으로 내기조차 무서웠던 때가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디멘터즈의 테러로 클라이스가 입은 피해는 지금까지 너무나도 컸다. 그 디멘터즈의 일원이었다는 과거가 있는 게 다름아닌 엘리후였고. 졸업하자마자 따로 집을 얻어 나온 이유도 그게 대부분을 차지했다. 안그래도 호그와트와 덤스트랭이라는 심각한 원거리 연애를 해왔는데, 졸업 이후 같은 영국에 있으면서까지 만나기 힘들고 싶진 않았더랬다. 아무튼, 저가 어찌저찌 집안에 잘 말하고 여론도 잠잠해진 시기. 그때에 처음으로 찾아온 기회였다. 그러니 더더욱 놓칠 수 없었고. 이런 자리에 같이 있어본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아마도, 그 트리위저드 시기의 호그와트에서 있었던 무도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괜시리 떨리기도 했다.
"너무 붙어있으면 티날텐데."
"그런가?"
물론 엘리후에게만 초대장을 넘겨준 것은 아니었다. 아마 이 시기가 네일이 태어난 이래 가장 열심히 남에게 연락을 취한 시기일 것이다. 이제와서는 안부조차 주고받지 않는 호그와트 동급생들에게까지도 보냈으니까. 다행히 생각보다도 더 많이 와주었고, 일종의 위장술은 어찌저찌 잘 풀릴 듯 싶었다. 일단 사귀고 있다는 사실은 비밀이니까. 아무리 잠잠해졌다고 해도 여파는 클 것이 당연했다. 남자와 남자인 것도 그랬지만. 일단 과거, 서로에게 지팡이를 겨누었던 사이가 아닌가. 그래서 한동안 둘이 친하게 지낸다는 사실만으로도 소문이 꽤나 일었다. 신기할테지. 저도 아직도 신기한데. 밝힌다면 신문 한 면은 무리더라도 한구석에 정도는 실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네일은 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염려일지도 모르겠으나. 굳이 그런식으로 엘리후의 대외적인 이미지에 타격을 주고 싶진 않았기에, 네일은 사실을 숨기는데에 급급했다. 정작 당사자인 엘리후는 그닥 신경 안쓰는 듯 했지만. "종종 올테니까. 좀 이따가 봐." 네일은 엘리후의 손을 한 번 더 꽉 잡았다가 놓고 멀어져갔다. 굳이 안그래도 될터인데. 연애중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괜히 주변에 눈치가 보였다. 이거로 걸리지 않을까, 저거로 걸리지 않을까 하며. 연인이 아니었더라면 별 신경 안썼을 문제들에 모두 신경이 쓰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서도. 좋아졌던 기분이 다시금 푹 가라앉았다. 데리고 오면 뭐해. 같이 있을 수가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네일은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인사를 해야 할 친인척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저는 이리 기분이 상했건만. 인사를 모두 마치고 온 네일은 저도 모르는 여자와 미소까지 띄운 채 대화하고 있는 엘리후를 보며 얼척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누구는 애인 대외적 이미지까지 챙겨주느라 이리 고생하고 있는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저도 모르게 울컥하여 네일은 손에 들린 와인잔에 담긴 와인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얼떨결에 받은 것이었는데, 진짜 마시게 될줄은. 말술은 아니더라도 주량이 작진 않았다. 그러니 몇 잔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홧김에 마시는 거라도. …취해버렸을 때의 상황이 좀 공포스럽긴 했지만. 설마 이런 자리에서까지 엘리후에게 매달려 징징거리겠어. 그런 생각도 있었다. 아무튼, 날 두고 저리 혼자 즐거워하고있단 말이지. 네일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저 또한 상대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제 연인이 쓸데없을 정도로 사교성이 좋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네일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본인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큰 장점이었으나, 그 애인인 네일에게만은 묘하게 속쓰린 점이었다. 인기가 많은 건 좋은 거지. 그렇게 생각하고는 있으나, 역시 속이 쓰린 건 당연하고도 어쩔 수 없다. 마음 속에서 슬며시 고개를 드는 질투심에 네일은 한 번 더 잔에 담은 와인을 들이켰다. 눈 앞에 있는 여성―비슷한 자리에서 여러번 만나 이미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이 고개를 갸웃했으나, 네일은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 답할 뿐이었다. 억지로 걸치고 있는 미소. 격식을 잔뜩 차린 말투와 태도. 모든것이 불편했으나, 억지로 사람을 마주하고 있지 않다간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정도로 질투심이 심했던가. 처음 안 사실이다.
느릿하게 취기가 돌았다. 와인을 그 뒤로 몇 잔을 더 마신건지 모르겠다. 짓고 있는 미소에 슬슬 힘이 풀려가며 이야기가 길어질 즈음. 네일은 팔이 잡아당겨지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얼굴과 마주하자, 괜히 미소가 더 짙어졌다. 조금만 더 취했더라면 평소 취했을 때처럼 늘어진 목소리로 연인을 불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정도로 취한 것은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엘리후의 표정 때문에 어느정도 취기가 가시기도 했다. 평소처럼 웃고 있었지만 네일은 알 수 있었다. 심기가 건드려졌다는 걸. 네일은 멍청하게 눈만 깜빡이며 엘리후를 바라보았다. 몇 초 정도 시선이 겹치고, 엘리후는 네일이 대화하고 있던 여성에게로 눈을 돌렸다.
"친구가 좀 취한 것 같아서. 데려가도 괜찮겠죠, 미스?"
"얼마든지요."
모르는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 미묘한 살기를. 반 쯤 엘리후에게 끌려가는 형태로 발걸음을 옮기며, 네일은 조심스레 엘리후의 표정을 살폈다. 내가 실수한건가? 하지만……. 네일은 잠시 엘리후가 다른 이와 살갑게 대화를 하고 있던 것을 떠올려냈다. 조금 취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수시로 살폈기에 알고 있었다. 속이 쓰렸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엘리후도 비슷한 것을 느꼈다면 무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자기도 그랬으면서? 오히려 자신이 엘리후에게 화를 내야하는 것 아닌지? 생각이 이리저리 뒤섞여 네일은 속으로 작게 신음했다. 아무래도, 아직 술이 덜 깬 모양이었다.
엘리후가 네일을 이끌고 간 곳은 인적이 드문 발코니였다. 대뜸 문을 열고 들어서자, 네일 또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공기가 스산했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네일은 짐짓 미간을 찌푸렸다. 잡혀있던 팔이 놓아지고 엘리후가 뒤돌아 저를 바라보는 순간. 먼저 끌어당겨 입을 맞춘 건 네일 쪽이었다. 아직 술기운이 도는 걸지도 모르지. 깊게 이어지는 듯 하다가, 금방 떼어내자 머리가 차갑게 식기 시작했다. 엘리후의 탓을 하든, 미안하다 사과를 하든. 먼저 나오는 쪽으로 말을 할 생각으로 네일은 입을 열었으나. 그 입은 떼어지고 얼마 지나지않아 다시금 겹쳐졌다. 도망칠 수 없게 턱이 잡혔고, 엘리후의 혀가 입 안으로 들어왔다. 혀를 섞기 전 입천장을 훑고, 치열을 따라 덧그리는 느낌에 네일은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이어서 혀가 얽혔다. 그 느낌이 오늘따라 더 질척한 건 어째서일지. 잡아먹힐 것만 같아……. 어쩐지 아득해지는 의식을 꽉 붙잡으며 네일은 엘리후의 목에 팔을 감았다. 어차피 보는 이는 없다.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질투심 유발 같은 거면 상대를 잘못 골랐어."
입술을 떼어냄과 동시에 엘리후는 네일의 귓가에 그리 속삭였다. 그리고 턱을 잡고 있던 손으로 네일의 넥타이를 잡아당겨 느슨하게 풀었다. 이윽고 목을 죄고 있던 셔츠의 맨윗단추가 풀리자 네일은 몸을 움츠렸다. 제법 차가운 주변의 공기 때문은 아니었다. 목을 쓸어올리는 은근한 손길 때문이었다. 어쩐지 숨이 막힌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네일은 입술만 여러번 달싹였다. 속삭이던 목소리가 어쩐지 귓가에 아른거려, 한 번 더 소름이 돋았다. 말을 꺼낼 수 있게 된 것은 셔츠 단추가 하나 풀려져나간 때였다.
"너도 그랬잖아."
설마 나는 되고 너는 안돼, 식의 답도 없는 논리를 펼치는 건 아니겠지. 네일은 허리를 살짝 숙인 엘리후를 흘겨보았다. 그 말에 목을 훑던 입술이 멈췄다. 엘리후는 그대로 눈을 치켜떠 네일과 시선을 맞추었다. 술기운 때문에 조금 붉어져있던 얼굴이 더 새빨개져있다. 최근들어 묘하게 적어진, 보기에 즐거운 그 반응이었다. 자신있게 남탓을 해놓고 여전히 뻘뻘거리고 있는 네일을 보며 엘리후는 픽 웃었다.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에 네일은 그제야 손을 뻗어 엘리후를 조금 밀어냈다. 인적이 드물다고 해도 이런 모습까지 보이면 수습이 힘들어진다. 진하게 키스까지 한 마당에 참으로 새삼스러웠지만은.
엘리후는 손을 뻗어 네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 느낌이 좋아, 네일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어쩐지 이대로 기대어 잠들고 싶은 기분이었다.
"앞으로 이런 자리에서는 그냥 꼭 붙어있어야겠는걸."
"…그 전에 그냥 안 데려올래."
"왜, 난 좋은걸. 안 어울리게 격식 차리는 너 보는 것도 꽤 즐겁고, 이런 옷 입은 모습도 볼 수 있잖아."
평소엔 둘 다 못 보는걸. 조곤조곤 말을 이어나가며 엘리후는 저가 풀어내린 네일의 셔츠 단추를 다시 채워주고, 넥타이 매무새도 잘 가다듬어주었다. 그리고 마무리하듯 네일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추고 떼어냈다. 네일은 괜히 그 볼을 제 손으로 두어번 문질렀다.
"…나도 그건 좋지만."
애초에 넌 뭘 입든 잘생겼는걸. 뒷말은 꾹 삼켰다.
"역시 드레스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또 말도 안되는 얘기 한다."
"난 진심이야, 네일."
엘리후는 키득거리며 슬쩍 내려가 코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네일의 안경을 제 손으로 올려주었다. "그거 입었다간 정말로 신문 한면에 나올지도 모르겠네." 농을 농으로 받아치며 네일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악취미. 그리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방금 전의 살벌한 기운은 어디가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엘리후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네일의 옆머리를 가만히 넘겨주었다.
안쪽에서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 연회장의 안, 노래가 발코니까지 흘러들어왔다. 엘리후는 네일의 손을 가볍게 잡아올려 그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어때. 춤이라도 한 곡?"
"이런 데에서?"
"뭐 어때. 바람도 안 불고."
술기운이 사라져가자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난다. 이크. 네일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엘리후는 어째서, 하는 표정을 지으며 네일을 바라보았다. 아쉬운 기색은 둘 모두에게서 찾아볼 수 있었다.
"아까 할아버님이 조금 이따 잠깐 보자고 하셨어. 까맣게 잊고 있었네."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미안. 다음에는 꼭……."
"괜찮아."
어째 권한 나보다 네가 더 아쉬워하는 것 같네. 엘리후는 웃으며 우물거리고 있는 입술에 가볍게 입맞췄다. 자동으로 감겨지는 눈이 꽤나 귀엽다. 슬쩍 손으로 안경을 벗겨내고 더 깊게 키스하며, 네일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괜찮다고 해도 역시 아쉬운 건 아쉬운거다. 네일 만큼 내색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정작 그때가 되면 또 눈치 보인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래도, 저가 원하는대로 옷을 입고 나온 네일을 보는 것만은 꽤나 기분이 좋은 일이었기에. 애초에 연인을 제 입맛대로 꾸민 걸 누가 싫어하겠는가. 슬그머니 보인 질투심도 금방 들여보낼 수 있었다. 입술을 떼어내며 엘리후는 벗겨낸 안경을 다시 씌워주었다.
"술은 좀 깼고?"
"응."
"얘기하면서 실수하면 안돼."
애 어르는 말투. 네일은 시선을 내리깔며 안 그래, 하고 맞받아칠 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미안했다. 기껏 데리고 와놓고 같이 있어주지 못한 것도, 별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힌 것도, 이리 또 자리를 비우게 된 것도. 모든 것이 다. 숨겨도 연인의 눈에만은 숨길 수 없는 것이 있다. 엘리후도 굉장히 아쉬워하고 있었다.
"좀 오래 걸릴지도 몰라. 안에서 기다리는 게 나을지도."
"그랬다간 우리 여보가 머릿속으로 괜한 상상 하면서 또 질투하느라 제대로 대답 못 할 것 같은걸."
"너 진짜……."
그러면서도 부정은 못하는 모습에 엘리후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네일은 잔뜩 부끄러워하는 표정으로―어떤 부분에서 부끄러워하고 있는지는 엘리후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엘리후를 쳐다보다가, 그냥 꼭 끌어안고 말았다. 표정을 숨기기 위해서도 있었으나. 비단 그것때문만은 아니었다. 하염없이 미안한 마음. 영 지워지지가 않았다. 네일은 제 연인의 어깨에 두어번 얼굴을 부비고는 한 번 더 미안해. 하고 작게 사과했다. 엘리후는 대답 대신 네일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밖에서 기다릴게."
"응…"
몇 번을 더 토닥여주고 엘리후는 네일을 놓아주었다. 네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나… 금방 다녀올게, 자기야."
그리 말하며 대답도 듣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네일은 발코니를 나가버렸다. 바쁜 것도 있겠지만 다른 이유가 더 클 것이다. 뭐가 저리 부끄러운지. 한두번 들은 호칭도 아니고, 한두번 말한 호칭도 아닌데. 엘리후는 작게 웃었다. 그리고 가만히 난간에 등을 기댔다. 불어오는 바람이 꽤나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어쩐지, 그 바람에 맞추어 네일이 자기야. 하고 불렀던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속이 간질거리는 느낌. 엘리후는 괜히 제 귀를 만지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