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은 기억 속에는 언제나 한 어린 아이가 있었다. 그 자그마한 아이는 몸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다. 심지어 아이의 아버지 마저도 아이를 포기한 순간에도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이에게 바쳤다. 공학에 쏟던 열정도, 고고한 자긍심도 모두 아들을 살리기 위한 일념으로 변하였다. 결국 엔지니어, 그중에서도 테크노크라트의 이름을 지닌 그녀는 기어코 손 대면 안 될 영역에 까지 손을 대고 말았다. 다른 이가 보기에는 가능성이라는 이름에 잠식 된 것 같기도 했다. 허나 결국 그녀는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가족도, 아이도, 심지어 자기 자신 조차도.
마르그리드는 마르그리드를 자신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최대한 유순하게 부르는 말이 그녀라는 표현이었다. 기억 속의 마르그리드를 그녀, 그 여자 라고 부르는 마르그리드에 다른 전사들은 이상한 표정을 짓곤 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타인에게 공감을 얻으려고 했다. "참 이상한 여자야, 그렇지?" 그 물음에 한 소녀는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하지만 저라도 그랬을거에요." 하고 대답했다. 마르그리드는 굳이 그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내 배 아파 낳은 아들이니까, 하는 답변이 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카드 놀이가 취미인 한 청년은 "글쎄요. 삶에는 행운도, 불행도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라 알쏭달쏭한 답변을 내놓았다. 또 다른 여성은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응수하기도 했다. 마르그리드가 마지막으로 찾는 이는 그녀의 기억을 찾아 준 주체자, 그녀와 다른 전사들이 지시자라고 부르는 인형이었다. 인형은 처음으로 모든 이들이 알고 있었지만 굳이 짚어주지 않았던 부분을 지적했다.
"하지만 그게 마르그리드, 너 자신이야."
그 말을 들은 마르그리드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녀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녀의 주위를 둥둥 떠 다니던 드론이 깜빡깜빡 점멸했다. 마르그리드의 선홍색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이윽고 그녀의 형체는 서서히 스러져갔다. 시간이 지나자 오로지 드론만이 남아 마르그리드를 대신 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회피였다. 인형 소녀는 바닥에 떨어진 드론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그것을 가지고 한 남자의 방을 찾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신경질적으로 응수했다.
"한참이나 안 찾을 것처럼 굴더니 어쩐 일이야? 연구에 방해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그 자리에 박힌 듯 서서 가지 않는 인형에 그는 결국 고개를 돌려볼 수밖에 없었다. 소녀를 바라본 남자는 쓰고 있던 고글을 올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남자의 시선은 소녀가 아니라 소녀가 들고 있는 드론에 가 있었다. 마치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는 그 시선에 인형은 고개를 숙여 드론을 내려다보았다. "뭐야, 그건." 그것이 무엇인지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명 임에도 불구하고 로쏘는 그렇게 물었다.
"함께 가줄 곳이 있어."
이내 로쏘는 하, 하고 헛웃음을 뱉어냈다. 그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번째 기억까지 찾아 주었으면 다음 기억도 찾아주어야 할 것을, 소녀는 그대로 한참이나 로쏘를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기간동안 소녀가 마르그리드의 기억을 찾아 주고 있었다는 것 쯤이야 로쏘도 알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배신감이라거나, 아쉬움이라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로쏘는 성유계라 불리우는 이 세계가 충분히 흥미로웠고, 연구하기도 좋은 조건이어서 꽤나 만족하고 있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기억 따위야 어떻게 되는 상관 없었다.
……그래야 했을 터인데.
그녀가 기억 속의 자신이 자신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었다. 로쏘로 말할 것 같으면, 이상하리만치 그의 기억 속에는 마르그리드가 가득했다. 두번째 기억에서도 그랬지만 세번째 기억에서는 더 했다. 그리고 그 마르그리드는 성유계의 마르그리드였다. 또한 로쏘는 세번째 기억을 통해 마르그리드가 모르는 마르그리드 또한 알고 있었다. 남편이 있었고, 아들이 있었으며, 아들을 살리기 위해 케이오시움에 손을 대었다가 죽어버린 그녀를. 그는 마르그리드가 찾은 기억에 대해서 자세히는 알지 못했으나, 기록을 통해서 그녀의 삶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확실히 그 마르그리드는 이 마르그리드와 비교하자면 심각한 괴리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같이?"
로쏘는 검지 손가락으로 드론을 가리키며 물었다. 인형은 그의 그것이라는 표현에 굳이 태클을 걸진 않았으나, 대답이 아닌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만으로 응수했다. 사실 로쏘에게 마르그리드는 불편한 상대였다. 자신은 마르그리드를 기억하고 있는데, 마르그리드의 기억 속에는 자신이 없다. 어째서일까. 물론 그 이유야 이제는 잘 알고 있었다. 마르그리드는 마르그리드가 아니다. 동시에 마르그리드이다. 심각한 모순을 가진 여자였다, 그녀는.
*
마수가 우글거리는 숲이었다. 들어서면 유독 그림자가 짙어지는 숲이기도 했다. 정신을 놓고 있으면 나무의 그림자에 잠식당하고, 결국 자신의 그림자에 먹혀 버릴 것만 같은 공간. 미쳐버린 늑대의 우우, 하는 울음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로쏘는 미간을 찌푸렸다. 여러모로 불쾌한 공간이다. 거기다가 아까부터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걷기만 하고 있는 마르그리드 덕분에 로쏘의 불쾌함은 더 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건데?"
"거의 다 왔어."
주변의 분위기가 음산했다. 몇 발자국 더 나아가자 문득 마르그리드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어섰다. 로쏘와 인형 또한 함께 멈추었다. 마르그리드의 고개는 한 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곳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로쏘는 짐짓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마르그리드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로쏘가 마르그리드의 어깨를 거칠게 잡았다.
그리고 상황이 일어난 것은 한 순간이었다. 마르그리드는 그대로 어깨에 닿아온 로쏘의 손을 내팽개치고 바라보고 있던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당황한 로쏘가 인형을 돌아보았지만, 인형은 그 인형인 그대로의 표정으로 무심하게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이, 저거 괜찮은 거냐."
"이 숲은 악몽을 보여주기로 유명하지."
하, 하는 헛웃음이 로쏘의 입에서 나왔다. 인형의 무심한 눈동자는 로쏘를 비추었다. "조급해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네." 그리고 이어진 말에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조급해 해? 내가? 되묻는 로쏘에 인형은 답하지 않았다.
"따라가지 않을 거야?"
젠장. 낮은 욕지거리가 인형의 귓가에 날카롭게 꽂혀왔다. 신경질적인 발걸음이 마르그리드가 달려간 방향으로 향했다. 인형은 그 자리에 덩그러니 선 채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
마르그리드가 본 것은 그녀의 아이였다. 기억 속, 너무나도 자그마해서 잘못 건드리면 깨져버릴 것만 같았던 아이. 그것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성장한 아이였다.
그녀가 멈추어 선 곳은 숲의 끄트머리, 거목의 앞이었다. 거기에는 소년이 서 있었다. 제 어머니보다 긴 머리카락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닌 남자아이였다. 잘못 보았다면 여자아이로 착각할 만도 했다. 마르그리드는 천천히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지금의 마르그리드는 마르그리드였다. 동시에 마르그리드가 아니었다. 드론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깜빡깜빡 점멸했다.
"크레니히……."
이름을 불린 소년이 고개를 돌렸다. 마르그리드가 손을 뻗었고, 동시에 그런 그녀의 앞을 한 남자가 가로막았다.
"정신 나갔어?"
로쏘의 수도가 시공을 비틀었다. 동시에 소년의 형체가 흐려졌고, 그것은 금새 본 모습을 되찾았다. 마르그리드도 익히 자주 봐 온 것이었다. 악몽. 그림자 숲의 몽마 중 강력한 개체들은 환영을 통해 악몽을 보여준다고 했던가. 악몽의 환영은 마르그리드가 사용하는 기술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악몽과 환영을 사용하는 자가 악몽과 환영에 당할 뻔 했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소년에 마르그리드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르그리드."
그녀는 대답이 없다.
"이상한 일이지. 자신이 자신임을 인정하지 못하다니."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군, 인형."
양 손으로 귀를 틀어막은 마르그리드는 몸을 떨고 있었다. 로쏘는 제 이마를 짚었다. 약의 복용으로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르그리드에 눈에 밟혀서, 로쏘는 차마 눈까지 감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아들, 크레니히 라고 했던가."
그 말에도 마르그리드는 반응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 주위의 모든 것을 차단해버렸다. 상처받지 않기 위한 일종의 방어 기질일까. 로쏘는 그녀에게 손을 뻗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는 그렇게 상냥하거나, 이타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남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본 적 있어."
"당연하지. 마르그리드의 기억엔 크레니히가 필요하니까."
"전사들을 위하는 척, 생각하는 척 하면서도 인형은 인형이군."
이해를 하지 못한 듯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로쏘는 가볍게 "잔인하다는 뜻이다." 하고 덧붙혔다. 인형은 그마저도 이해하지 못한 듯 했다. 어느새 마르그리드의 고개가 인형 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로쏘는 어이가 없었다. 제 입에서 나온 크레니히, 라는 이름에는 반응하지 않았으면서 인형의 목소리에는 반응 한 것인가. 마르그리드가 일어섰다.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인형에게 다가가 인형의 어깨를 잡았다.
"그 말이 정말이야?"
"그럼. 크레니히는 계속 네 근처에 있었어."
그 순간 마르그리드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기쁜 듯도 했고, 슬픈 듯도 했으며 절망에 빠진 듯 하기도 했고 동시에 행복해 보이기 까지 했다. 로쏘는 그런 그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녀가 기억 속의 자신 또한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못해서, 다른 사람 취급을 해서 였다. 하지만 지금 로쏘는 마르그리드 라는 사람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자신과 그녀의 끝은 어떠했던가. 문득 로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현세에서의 마지막에서도 자신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었나.
"돌아가자, 마르그리드. 크레니히를 만나야지."
마르그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악몽의 환영. 자신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취해버린 자신. 아이, 아들, 크레니히. 네번째 기억에서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떠한 기분이었던가. 마음 속의 마르그리드는 고개를 저었다. 환영 따위에 속아넘어가는 너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거야.
마지막 기억을 되찾는다면 마르그리드는 마르그리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마르그리드의 뒤를 따르는 드론 또한 알지 못하는 난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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