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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바] God Knows

인생에 있어서 끔찍할 정도의 무기력함을 느낀 것은 딱 두번이었다.

그 감각은 흡사 무언가에 집어삼켜지는 것과 같았다. 흩뿌려지는 피와 건물들. 어렸던 아이자크는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함께 굳어있던 에바리스트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수년처럼 느껴지는 몇초가 지난 후였다. 손이 잡히고, 끌어당겨지는 순간 퍼뜩 정신이 들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의 정체는 약하다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 그 자체였다. 에바리스트가 저를 끌고 달리기 시작하는 그 발걸음에도 메마름이 섞여 있었다. 포레스트 힐로, 아이자크의 손을 잡은 채 뛰기 시작하는 에바리스트의 눈동자 또한 떨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은 이내 너에 대한 미안함으로 번져갔다. 너 또한 겁에 질려있는데.

두번째는 네가 처음으로 나에게서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환자옷을 입은 채로 병실에 앉아 있던 에바리스트는 끝을 이야기했고, 아이자크는 그것을 거절하지 못했다. 에바리스트가 말하는 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이자크는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 명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에바리스트의 표정에서 아픔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잡아주기를 바랐다면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더이상 에바리스트가 아이자크에게 그 아픔을 나누는 것 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아이자크는 결국 에바리스트의 시선마저 피해버렸다.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커져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해야할 것은 에바리스트가 무구하게 살 수 있도록, 저의 길만을 똑바로 보며 갈 수 있도록 떠나는 것 뿐이었다. 그렇기에 아이자크는 등돌려 에바리스트의 병실에서 나와버렸다.

외로움을 느낀 순간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홀로 남은 길 위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아이자크는 알 수 없었다.

*

무너진 포레스트 힐, 상냥하게 인사를 주고 받던 주민들은 폐허가 된 마을 곳곳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저의 부모님은 끝끝내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차라리 다행인 일이라 훗날 생각했다. 그 일 이후로 영영 어둠 속에 잡겨버린 고향. 그 날 이후로 나의 세계는 암흑으로 가득 차고 말았다.

하지만 그 무채색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빛을 내는 것이 너였다. 그래서 너와 함께 가기 시작했다. 암전된 세계에서 앞서가는 너만은 그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제 존재감을 표출해내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너를 따르는 일 뿐이었고, 하고 싶은 것도 너를 따르는 일 뿐이었다. 기왕이면 다른 것 아무것도 필요 없이, 이 괴로운 세상의 어둠 속에서 너만은 빛나줬으면, 했다. 단 하나의 바람이었다. 사선을 넘어오면서, 미래의 네가 부서지지 않기만을 끊임없이 바랐다. 부서지게 된다면 그렇게 두지 않을 거라고.

에바리스트는 고향을 떠난 후로 부쩍 어른이 되었다. 본래 어른스러운 면모를 지닌 소년이긴 했지만, 아이자크는 알고 있었다. 더이상 아이자크에게 투정을 부리지 않았고, 제멋대로 행동하지도 않았다. 물론 아이자크에게는 그런 에바리스트의 변화가 하나도 상관이 없었다. 눈 앞의 에바는 여전히 에바리스트 바르트였다. 부서져가는 우리들의 세계였지만, 둘이었기에 살아갈 수 있었다. 둘만의 꿈을, 아름답다고 이야기하긴 뭐하지만 그것을 그리면서 아이자크는 에바리스트를 쫓았다. 에바리스트 또한 그럴 것이라 굳게 믿고서.

*

"에바, 부탁이야. 그만 해."
"…아이자크."
"거짓말 하는건 너랑 안어울리는걸……."

아이자크는 어쩐지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있었다. 부쩍 저 혼자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 아이자크였지만, 그 표정만은 어릴 적의 그것과 꼭 닮아서 에바리스트는 살풋 웃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아이자크에게는 너무나도 아파보여서. 아이자크는 한 걸음 멀어진 에바리스트에게 다가갔다. 그 어깨를 잡자 금색 눈동자가 아이자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나마도 금새 떨어져 나갔다. 에바리스트가 시선을 피해서였다.

"여기 봐, 에바. 지금부터의 일만 이야기하자."
"하지만 어떻게 해야……."
"에바가 어디로 가든, 뭘 하려고 하든, 난 각오하고 있으니까."

에바리스트는 순간적으로 턱 막히는 말문에, 흔들리는 시선으로 아이자크를 바라보았다. 대충 붕대로 감아놓았지만 잃은 눈에서는 계속 피와 섞인 정체불명의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음이, 의지가 약해진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거짓말도 아니었다. 아이자크에게, 이만 갈라지자고 한 것은 진심이었다. 함께 있으면 계속 아이자크가 다치게 될까봐, 자신을 밀치고 눈을 감싸쥐던 아이자크가 계속해서 눈에 맴돌았다.

"어두운 미래라도 괜찮아."

─괜찮아. 어릴 적의 아이자크도, 그런 말을 했지 않았었나.

"내가 강해질게. 강해지면 운명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
"…운명을 믿나, 아이자크?"
"만약 우리의 세계가 부숴지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만약 그렇다면, 바꾸고 싶다고.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그순간의 아이자크는 그런 생각을 했다. 강함을 추구하는 이유는 에바리스트였다. 몇번이고 버려진 세계를 살아가면서, 그를 지키기 위해 강해져갔다. 그러면서 그 운명을 바꿀 수만 있다면.

"네가 있고, 내가 있어. 부모님도, 영주님도, 레지멘트도 다 사라져버렸잖아."

그로 인해서 많은 것이 변화했다. 어릴 적 철없었던 꿈이 너를 위한 미래가 되었고, 그것은 너무나도 희미한 꿈이었지만 너와 함께하는 미래였기에 그 아름다움을 마음 속으로 그렸다. 어린 시절, 무너지던 포레스트 힐. 잃어버린 레지멘트. 있을 곳이었지만 돌아가지 못하게 되어버린 곳들은 그대로 상처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에바리스트가 곁에 있었기에, 그 상처자국을 어루만지고 그대로 깊은 곳에 묻어둘 수 있었다.

"난 네 곁에 있을거야. 함께 가자, 에바."

*

검을 뽑아들었다. 몸을 휘감는 불길한 예감을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었다. 앞을 가로막은 인퀴지터에게 검을 겨누었다. 남겨진 세상, 괴로운 어둠 속에서 단 둘이라는 생각으로 몇번이고 이겨내왔다. 그랬던 과거를 가지고 있었고, 현재를 살고 있었다. 그란데레니아로 가자. 에바리스트의 어깨를 잡고 이야기 했던 그 날의 며칠 후, 에바리스트는 그렇게 말했었다. 아이자크는 이번에도 그를 따랐다. 다시 한 번 그와 함께 어둠으로 가득 찬 자신의 세계에서 빛을 찾기 위해서. 하지만 에바리스트 자체가 자신의 빛이라는 사실을 아이자크 또한 이미 알고있었다.

그러니까, 너만은 영원히 반짝이고 있어줘.

신이란게 정말로 존재한다면 우리들의 행복을, 뛰어넘은 미래의 끝에서 아직 연약한 우리들이 부서지지 않기를, 그런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들의 노력에 달린 것이라 아이자크는 생각했다. 그저 어두운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두사람에게 일말의 축복을. 단지 그것만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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