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라이트 AU 주의
클라우드는 소녀가 그러한 지시를 내린 연유를 알 수 없었다. 무감정한 눈동자를 가진 인형이었다. 대체 저의 기억을 본 뒤에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사실 인형에게 느끼는 동질감이라거나, 그런 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누군가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만든 것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차이라면 소녀는 정말 말 그대로 인형 그 자체라는 점이다. 느낄 수 있는 것의 유무를 이야기하자면, 사실 자신도 본래는 소녀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 지는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최근 클라우드는 하고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클라우드가 고개를 두어번 휘휘 저었다. 어쨌든, 지금은 그가 지시자라고 부르는 인형에 대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떤 이유에서였든 소녀는 클라우드를 먼 지역까지 탐색에 내보냈다. 그것도 레이븐과 함께. 소녀가 본 클라우드의 기억 속에는 그가 있었을 터였다. 물론 대부분 레이븐이 존재했던 기억이었으나, 이번 기억은 조금 달랐다. 레이븐의 죽음이 담겨 있었으니까. 저 혼자 저만치 가버린 레이븐의 뒷모습을 보며 클라우드는 제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레이븐이 기억을 어느정도 되찾았는지 클라우드는 알지 못한다. 기억을 찾아주는 주체인 소녀도, 당사자인 레이븐도 유독이나 그의 기억에 대해서는 코멘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기억에 대해서 말하자면, 처음부터 레이븐이 있었다. 레이븐이 저를 알아보는 것으로 보아 레이븐도 그럴 것이라고 클라우드는 추측만 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그건 당연했다. 루나 까지 합해서 세명의 호문클루스였다. 살아오면서 제대로 된 인간관계란 서로 밖에 없지 않았나. 레이븐의 첫 기억에는 분명히 자신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떠올려낸 것들은? 지금의 너는 과연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클라우드는 오른손을 펴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 식으로 레이븐이 찾은 기억의 갯수를 새어보았다. 하나, 둘, 셋, 네개. 그리고 이내 침묵했다. 레이븐이 그제야 뒤를 돌아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클라우드가 한참이나 멈추어 있던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가까이 까지 올 때까지 레이븐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클라우드를 바라보기만 했다.
클라우드와 어느정도 가까워지자 레이븐이 다시 움직였다. 아무래도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랜 시간 닿아 있던 푸른색 시선 또한 떼어져나갔다. 그것에 한순간 아쉬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으나. 클라우드는 말없이 앞서가는 레이븐을 따랐다. 이 탐색의 목적지는 오로지 레이븐만이 알고 있었다. 그것이 지시였고, 이 세게에서 전사로 살아가게 된 이상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레이븐이 멈춘 곳은 날카롭게 깎아 내려진 절벽 위였다.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호수를 내려다 보고 있는 레이븐에 어쩐지 클라우드는 다가갈 수 없겠다는 느낌을 받고 말았다. 떠올려보면 언제나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가장 가까울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멀리는 아니지만 한 발자국의 간격이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자신은 들어본 적도 물은 적도 없지 않았나. 따지자면 끔찍할 정도로 미적지근한 관계였다…….
"클라우드."
레이븐이 먼저 불러온 것이 얼마만의 일일까. 근최근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클라우드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사실 간격은 더 넓었던 것이 아닌지. 대답이 없자 레이븐이 돌아 서 클라우드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클라우드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슬픈 눈을 하고 있다. 저것이 무엇인지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알 수밖에 없었다. 저가 죽기 얼마 전부터 저런 눈을 하고 있지 않았었나, 레이븐은. 클라우드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끔찍하게도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나아가서 어째서 그런 눈을 하고 있는 거냐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부탁이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줘, 잊고 싶었지만 떠올라버린 기억이 생각나버려. 하고. 하지만 좋지 못한 말이 함께 나올 것이 뻔하기에 클라우드는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클라우드."
레이븐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저의 표정을 살피는 모습과, 한번 더 이름을 불러오는 모양새가 대답을 독촉하고 있었다. 하지만 클라우드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맞춰주는 것 만으로 응수했다. 잠시동안의 정적이 흘렀다. 정적 사이를 바람이 갈랐다. 호수 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꽤나 차가웠다. 결국 포기한 쪽은 클라우드였다.
"여기가 목적지야?"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반응한 레이븐에, 클라우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익숙하진 않지만 몇번 와 본 장소였다. 처음 왔을 때와 그 이후에도 검어서 기분 나빴던 호수였다.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호수 밑바닥의 사는 괴물을 처리했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것의 숨통을 끊어 놓은 후에야 호수는 깨끗해졌다. 어째 그 때보다도 더 깨끗해진 듯 했다. 괴물은 계속 출몰한다고 하지만서도.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 레이븐은 다시 클라우드에게서 멀어져갔다. 절벽 끝 아슬아슬한 위치에 멈춰서서 레이븐은 가만히 풍경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있었다. 바람은 멎었다가 다시 불었다가를 반복했고 클라우드는 굳이 레이븐에게 다가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리와, 클라우드."
어느새 다시 생각에 잠겨 있던 클라우드를 레이븐이 불렀다. 고개만 돌린 채로 저를 바라보는 표정에는 티 하나 없어서, 기억을 찾은 것이 아니라 되려 잃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클라우드는 영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레이븐의 옆에 서는 것이 어째서인지 어색했다. 클라우드가 어쩡쩡하게 자리 잡은 후에야 레이븐은 절벽 끝에 걸터 앉았다. 생전에도 레이븐은 이런 장소를 좋아했었다. 어느 경치가 보이든, 높은 곳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것을 즐기는 듯 했다. 클라우드도 따라 앉았다. 남이 본다면 기겁하며 당장 일으켜 세울지도 모를 만큼 위태로운 장소였지만 어차피 상관 없었다. 다시 죽어도 멀쩡하게 복구되 살아날 몸 아닌가.
그리고 어쩐지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먼저 입을 연 쪽은 클라우드였다.
"탐색의 목적은 도대체 뭐였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대신 클라우드에게 주어진 것은 다른 것이었다. 클라우드는 눈만 두어번 깜빡이며 고개를 레이븐을 향해 돌렸다. 레이븐의 시선은 여전히 호수 근처에 고정된 채였다.
"내 죽음은 어땠어?"
그리고 이어진 말에 클라우드는 머리를 무언가로 세게 한대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머지않아 헛웃음이 나왔다. 어째서 알고 있냐, 에 대해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뻔했다. 인형. 아무런 감정없이 흔들흔들 거리는 인형의 짓이다. 말하지 않았으면 했다. 레이븐이 영영 알지 못했으면, 저의 마지막 기억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으면 했다. 레이븐은 저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 끝까지 클라우드를 괴롭혔던 사실도 그게 아니었던가. 레이븐은 한 수 위의 청년이었다.
"…이상한 세계지. 정작 본인은 모르는 죽음을 남이 알고 있으니."
"특이케이스라고 들었어."
레이븐은 클라우드의 말을 돌리려는 행동을 단칼에 잘라버렸다. 끝내 저의 목적만을 관철시킬 확고한 태도다. 클라우드는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클라우드에게 있어서, 레이븐의 죽음은 크나큰 실책이었다. 또한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기도 했다. 반절 가량 찾은 기억에 하필이면 그런 것이 끼어 있었으니, 앞으로의 일 따위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물론 지금 이렇더라도 나중에야 다르겠지만, 당장은 그랬다. 레이븐은 종종 이런 식으로 클라우드를 후벼파곤 했다. 자각이 있지는 않겠지만서도. 하지만 그럼에도 클라우드는 레이븐을 종종 상냥하다던가, 사려깊다던가 하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사여구로 수식하곤 했다. 그 이유는 본인만이 알 터였다.
"이야기 하기 싫은거야?"
"그래."
그제야 레이븐이 고개를 돌렸다. 살짝 기울어진 채로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워서, 이번엔 클라우드가 그것을 피해버렸다.
"그럼 하나만 대답해 줘."
이번에도 클라우드는 답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내 의사로 죽은거지?"
레이븐이 이런 것을 물어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클라우드는 짐짓 미간을 찌푸렸다. 위안을 얻으려 한다면 이런 것을 묻지 않았어야 했다. 혹시 너는 아직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끔 클라우드는 레이븐에게 그를 상처줄만한 독설을 날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곤 했다. 실천한 적은 거의 없었지만─ 그리고 클라우드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차라리 그런 독설을 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것이다.
레이븐이 손을 뻗었다. 클라우드의 볼에 닿아온 손은, 기억 속의 그것과 똑같이 차가웠다. 하지만 클라우드는 굳이 그것을 떼어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차라리 이런 식으로 계속 붙어 있어 주었으면 했다. 이유를 말하라면 못 하겠지만. 제 얼굴을 조목조목 뜯어보는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어째서 그런 걸 묻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클라우드의 말문이 턱 막혔다. 생전, 자신의 실수는 명백했다. 그리고 늦은 뒤에야 그것을 깨달았다. 후회를 했던가? 레이븐의 죽음에서 뚝 끊겨버린 기억은 그것까지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후회했을 것이라 클라우드는 확신하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시간을 돌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은 일을 하기 위하여. 허나 지금 와서, 이런 이상한 세계에서 실천해본다 한들 달라지는 게 있을까. 싶었다.
"……네 의사와는 상관 없이, 나는 끔찍할 정도로 싫었어."
결국 클라우드가 내린 결정은, 후회 할 일을 늘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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