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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레이] 냉정과 열정사이 上

이상할 정도로 햇살이 따스했다. 클라우드가 눈을 떴다. 저를 어깨에 기대둔 채 레이븐은 독서에 심취해 있었다. 클라우드는 말없이, 깨었다는 기척조차 내지 않으며 레이븐을 바라보았다. 가볍게 내려앉은 벽안이 가까웠다. 그것은 여느 때처럼 피곤에 젖어 있지도, 차갑게 가라 앉아 있지도 않았다. 그저 잔잔하게 흔들리는 파도의 색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레이븐의 저런 눈을 본 적이 있었던가. 클라우드는 오래 된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저런 눈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쩐지 좋아만져서, 클라우드는 숨을 죽였다. 본래부터 클라우드는 레이븐이 책을 읽는 것을 퍽 좋아했다. 독서와는 멀 것 같은 인상이 책에 집중하고 있는걸 보자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조금 더 두어도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클라우드는 다시 눈을 감았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은 따가웠는데, 이상하게도 덥지는 않았다. 바람 대신 레이븐의 손이 클라우드의 앞머리칼을 슬쩍 치웠다. 이윽고 클라우드가 눈을 뜨자, 붉은색 눈동자와 푸른색 눈동자가 마주쳤다. 클라우드는 작게 웃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레이븐의 볼을 감쌌다. 레이븐에게선 단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따뜻함에 놀라고 말았다.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레이븐이 이내 책을 탁 소리나게 덮었다.

"깼으면 깼다고 말을 해."
"책보는 얼굴 구경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서."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이런 대화를 했던 적이 또 있다는 것을 떠올려냈다. 물론 그 때는 포지션이 반대였다. 레이븐은 평소 이런 식으로 꽤나 자주 클라우드의 집중을 방해하곤 했으므로. 말보다 시선에 클라우드가 더 약해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게 레이븐이었다. 그럴 때마다 당연히 일에는 지장이 갔지만 클라우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레이븐이 저를 바라보는 그 시선은 오히려 좋아했다. 게다가 가끔 그 방해까지도 달갑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상대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레이븐이니까. 평범한 행동 하나하나에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그가 유일하리라.
하기사, 레이븐은 원체가 평범하지 못한 청년이다. 17년 전에도 그랬다. 레이븐이 끔찍할 정도로 인간적이던 그 시절에도. 그 눈에는 과연 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가 언젠가의 흥미요소였던 적도 있었다. 이따금 클라우드는 호문클루스가 아닌 레이븐에 대해서 생각해보곤 했다. 호문클루스가 아니었더라도 지금과 같았을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런 것에 대한 기대는 일찍이 버린지 오래다. 굳이 따지자면 그것은 아쉬움의 문제였다. 가끔씩 너와 나눌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인간적인 교감에 대해서─

"클라우드."

너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지. 과거, 네가 끔찍히도 잃기 싫어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끝끝내 찾아주었다. 너를 위한 것이었다 하고 자기위로를 했다. 하지만 종종 회의감이 들었다. 그를 체스판 위의 일개 말로 전락하게 해버린 것은 아닌가.

레이븐이 입술을 겹쳐왔다. 클라우드는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이제 그만 행복한 꿈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다. 생생한 현실감은 어쩐지 클라우드를 서글퍼지게 만들었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 눈물이 고여 있던 적도 있었다. 꾸고 있을 때는 이것이 현실이라 생각할 때가 잦기 때문에 모르면서, 깨어나면 끔찍할 정도로 행복했다고 깨닫는다. 그것이 더 잔인했다. 힘들다거나, 괴롭다거나 하는 것은 처음 몇 해가 다 였는데 덕분에 최근 다시 그런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이윽고 입술을 떼어낸 레이븐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널 사랑했으면 지금쯤 네 입에서 사랑 운운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꿈 속은 클라우드가 원하는 세계였다. 완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느정도 유사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간혹 루나가 나오는 날도 있었고, 아예 셋이 함께 있을 때도 있었다. 공통점이라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라는 점. 물론 클라우드에게는 그것이 비일상이었다.
레이븐은 언제나 책을 들고 있었따. 사실 클라우드가 자신이 레이븐의 책 읽는 모습을 좋아한다는걸 깨닫게 된게 바로 꿈을 꾸기 시작해서였다. 퍽 아쉬운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일찍 알았더라면 그의 손에 저가 좋아하는 책 몇권 쥐어줘 보았을텐데. 평소 레이븐이 읽곤 했던 것은 그 자신이 손 가는대로 뽑은 것들이었다.
어째서 이제는 늦은 것처럼 말하느냐…….

"그렇다면 도대체 뭘까."

가능하다면 구하고 싶다. 한 발자국 씩 죽음으로 나아가고 있는 그를. 그것은 17년 전 그 날 정해져있는 운명이었다. 그리고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리자면,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살인도, 죄책감도 없는 도시에서. 아니, 도시는 떠나는 편이 나을지도. 그렇다면 어디든지 좋았다. 남들과 같은 아침을 맞고, 타인에 의해 짜여진 일과가 아닌 자신이 직접 만든 일과를 보내면서. 타인과 교류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아마 셋으로 충분할 것이다.

"하긴, 내가 모르는걸 네가 어떻게 알겠어."

그러고는 웃었다. 일종의 자조였다. 가능성의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었다. 되도록 만들어야 했다. 클라우드는 저를 바라보는 레이븐의 뺨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지금의 너는 호문클루스일까, 인간일까.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만은 이상할 정도로 정의내릴 수 없었다. 그저 너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싶은 것이라면.

"좋아해, 레이븐."

……차라리 도망치는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여러번 하고 있다. 네가 이대로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 준다면야. 레이븐은 답이 없었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레이븐에게 원하는 것을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눈을 떴다. 그럼에도 바로 눈 앞에 레이븐이 있어서, 클라우드는 헛웃음을 뱉어냈다. 한참이나 저를 깨운 듯 했다. 다행히 눈물같은건 고여있지 않아서, 부끄러울 필요는 없었다. 클라우드의 웃음에 레이븐이 고개를 갸웃, 했다. 예의 무표정에 최근 이러저러한 것이 담기는게 눈에 띄었다. 대부분 복잡미묘한 감정들이었다. 칩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클라우드는 그대로 레이븐의 목에 팔을 감아 끌어당겼다.

"클라우드?"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어?"

레이븐의 부름을 툭 자르고 클라우드가 작게 웅얼거렸다. 아직 잠이 덜 깬 목소리였다. 레이븐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클라우드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잠시 후에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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