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U주의
전화, 안 받네.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며 클라우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석을 할 일이 있으면 같이 했고, 깨어 있는 시간에는 거의 계속 함께 있어 온 지가 햇수로 3년 째였다. 갑자기 비어 버린 옆 자리는 상상 이상으로 허전하다. 뭔가 일이 있다면 말을 했을 텐데. 아프기라도 한 걸까.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클라우드는 책상에 엎드렸다. 빼꼼하니 고개만 돌린 채로 레이븐의 자리를 쳐다보다가, 아예 얼굴을 팔에 묻어버렸다. 올해 들어서 가장 우울한 날이 될 것 같다.
뜬끔없는 레이븐의 결석에 의아함을 품은 것은 비단 클라우드 뿐만은 아니었다. 특별반 녀석들에게 왜 네가 이유를 모르냐는 둥, 네가 모르면 누가 아냐는 둥, 드디어 사랑이 식어가는 거라는 둥. 하루 종일 특별반 녀석들에게 시달린 클라우드는 결국 교실에서 뛰쳐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럴 리가. 당장 어제만 해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대화하지 않았던가. 최근의 일을 되짚어 보았지만 딱히 레이븐에게 잘못 한 것도 없었다. 거짓말을 못 하는 레이븐이니까, 싫어졌다면 그렇다고 딱 잘라서 말 했을 것이기도 하고. 이유 모를 공백에 마음이 답답했다.
교실에서 뛰쳐 나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갈 곳이 없었다. 한참을 방황하고 다니다가 클라우드가 자리 잡은 곳은 학교 도서관이었다. 이럴 때면 특별반 신분이 참 좋았다. 특별반 누구누구인데요, 하면 별 말 없이 문이 열리곤 했으니까. 레이븐과도 이런 특권을 꽤나 자주 써먹어 왔다. 교실은 언제나 시끌시끌했고, 신경 긁는 사람도 많아서 둘만 있기에는 도서관이 딱이었다. 게다가 레이븐은 독서를 좋아한다. 정확히는 활자를 읽는 거긴 해도. 클라우드는 책을 읽는 레이븐을 좋아한다. 완벽한 조합이었다. 그러고 앉아 있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리고 몇 시간 째. 집중이 전혀 되지 않았다. 교실에서 나오면 그나마 빈 자리가 덜 느껴지지 않을까 했는데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당연했다. 도서관도 으레 레이븐과 함께 하던 장소였으니까. 도대체 어딜 간거야. 속으로 투덜거리며 클라우드는 괜히 잡히지도 않는 공부를 파고 또 팠다. 뭐 하는 짓이지, 하는 생각이 들 때 쯤 샤프를 내려놓고 펜을 들었다. 정답지를 꺼내서 내내 풀었던 문제들을 채점 해보는데, 결과가 꽤나 참담했다. 수능에서 이런 점수가 나오면 혀 깨물고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답지 않게 비가 내리는 문제집을 덮고 클라우드는 결국 도서관에서도 뛰쳐 나왔다. 그의 생각이 나지 않는 장소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또 한참을 헤매고 다니던 클라우드는 복도 한 복판에 우뚝 멈춰 섰다.
레이븐과 함께 하지 않았던 장소 따위 존재 할 리가 없잖아.
새삼스럽게 자신에게서 그의 존재감을 느꼈다. 한심하긴. 이정도로 좌지우지 되는 사람이었던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 누르고 클라우드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특별반의 특권 두 번째. 언제나 잠겨 있는 옥상의 자유 이용권. 이건 원래부터 주어졌던 건 아니었고, 다른 녀석이 해 준 일이긴 했지만 아무튼.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평소라면 쓸데없이 계단만 많다며 투덜거렸을 것이다. 레이븐에게. 하릴없이 계단의 숫자만 세다가, 어느새 다 올라온 클라우드는 꽉 쥐고 있던 열쇠로 굳게 잠겨 있는 옥상 문을 열었다. 기름칠을 안 했다는 티가 팍팍 나는 금속음이 들렸다. 문을 열자 마자 불어오는 바람은 꽤나 기분이 좋다. 레이븐이 옆에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굳이 잠글 필요는 없겠지. 문을 돌아보며 클라우드는 난간에 기대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날씨가 쌀쌀해서 그런지 텅 비어 있다. 그 덕에 너무나도 조용해서 어쩐지 더 쓸쓸해져 버렸다. 어디 둘 곳이 없어서 들고 와버린 문제집을 내려놓고 클라우드는 털썩 주저 앉았다. 잠이라도 조금 자면 나으려나. 얼마 지나지 앉아 아예 누워버린 클라우드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날씨도 정말 쓸 데 없이 좋다. 차라리 확 비나 와 버렸으면. 축축하니 젖어서 감기라도 걸리면 그걸 핑계로 조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레이븐에게 무슨 일이 있어서 학교에 오지 못 한 건지도 알 수 있을텐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클라우드는 휴대폰을 꺼넀다. 단축 번호 1번을 꾹, 누르자 무미건조하게 <레이븐> 이라고 저장 해 놓은 그의 번호가 화면에 띄워졌다. 조금 더 애교 있게 저장 할 걸 그랬나. 명색에 사…사귀는 사이인데. 클라우드는 끙, 하고 작게 신음했다. 하기사, 레이븐의 휴대폰에도 자신은 꽤나 무미건조하게 저장 되어 있더라. 똑같이 클라우드, 라고.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포기다.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쑤셔넣고 클라우드는 눈을 감았다.
"클라우드. 야, 클라우드!"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흔들어 깨우며 이름을 불러 오는 목소리에 클라우드는 어렴풋 눈을 떴다. 눈을 뜨자 의외의 얼굴이 보였다. 레이븐이었으면 저도 모르게 와락 껴안아 버렸을 지도 모르겠는데.
"…뭐야, 무슨 일이야."
"찾느라 죽는 줄 알았네. 너, 진짜 레이븐이랑 무슨 일 있어?"
그럴 리가 없잖아. 괜히 까칠하게 대꾸 할 뻔 했다. 억지로 꾸역꾸역 말을 목 뒤로 집어 넣으며 클라우드는 고개를 저었다.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지만, 정말로 별 일 없었다. 레이븐도 평소와 똑같았고 자신도 그랬다. 그리고 또 다시 한 번. 불만이 있다면 말 했을 레이븐이다.
"하지만 네가 모를 리가 없잖아."
"아까도 말 했잖아. 정말로 모른다고."
결국 잔뜩 짜증이 섞인 채로 대답이 나와 버렸다. 디토엠은 머쓱해진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다른 둘도 아니고 클라우드와 레이븐이다. 가끔 부럽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사이가 좋은 그 둘 말이다. 둘이 짜고서 장난이라도 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황은 꽤나 비현실적이었다. 클라우드의 반응을 보아하니 장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쏙 들어가 버렸지만, 사실 지금도 그냥 장난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사실 내가 걱정 되서 여기저기 좀 물어보고 다녔단 말이지. 그런데 교무실에서 들은 거야."
어쩐지 뜸을 들이는 디토엠에 클라우드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왜 내가 모르는 걸 선생님이 알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은 조금 뒤로 하고, 클라우드는 애써 성격을 죽이고 디토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레이븐, 이사 갔대."
거짓말.
사실 약속이 있었다. 학교 일과 중에는 웬만해선 밖으로 나돌지 말자는 약속. 결석도 하지 말고, 지각도 하지 말고. 다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레이븐과 함께 다니기 시작한 이래로 클라우드는 꽤나 학교 생활에 풀려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약속이 다 무슨 상관인가. 클라우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갑자기 왜. 곧바로 든 생각이었다. 그 다음에는, 어째서 말을 하지 않았어. 당장 어제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일 봐, 하던 레이븐의 얼굴이 생생했다. 무슨 의미인데, 이건? 당장이라도 따져 묻고 싶었다. 그리하여 학교에서 뛰쳐나간 클라우드가 향한 곳은 레이븐의 집이었다. 디토엠의 거짓말이라면 정말로 화를 낼 수 있을 것 같았고, 레이븐의 장난이라면 차라리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화 내지 않을게. 차라리 서프라이즈, 뭔가의 이벤트, 그런 거라고 해 줘. 레이븐.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클라우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정말로 빈 집이었다. 이웃에 물어보니 오늘 아침에 이사를 가던 것 같다, 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그 자리에서 곧장 클라우드는 다시 휴대폰을 꺼냈다. 레이븐은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는다. 싫어졌다면 차라리 말로 해. 내가 무언가 잘못 했다면 차라리, 화를 내 줘. 어째서야.
덩그라니 문 앞에 서 있던 클라우드는 한참이 지나서야 뒤돌았다. 어디로 가야하지. 그냥 집으로 갈까. 끈적한 무기력함이 등 뒤에 늘어 붙어 있었다. 기분이 나쁘다. 뭐가 나쁜 건지 모르겠는데, 서럽고 야속하다. 처음으로 찾은 소중한 사람이었다. 스킨쉽을 하거나, 낯간지러운 말을 속삭이는 게 부담스럽다면 그냥 친구로 지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떠나는 건 아니잖아. 너무 한 일이잖아, 레이븐.
그러고 또 한참을 서 있었다. 학교에도, 집에도 돌아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꽤나 비참한 기분이었다. 삶 이래로 처음 느껴 보는 듯한 그런 것. 정말이지 싫은 감각이다. 심호흡을 하고 클라우드는 눈을 꽉 감았다.
"……클라우드?"
목소리에 클라우드는 퍼뜩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꽤 놀란 표정의 레이븐이 눈 앞에 있었다.
숨이 막힐 것 같다.
"왜 여기에 있어? 학교는?"
뭔가 클라우드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챈 레이븐은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가 팔을 잡았다. 어디 아파? 조심스러운 물음에 클라우드는 숨을 멈췄다. "아픈 거면 여긴 왜 왔어, 병원으로 가야지." 이마에 닿아 오는 손에 정신이 들었다. 열은 없는데. 말 좀 해봐, 하며 레이븐은 계속 클라우드에게 말을 붙였다. 이내 숨을 토해냄과 동시에 클라우드는 레이븐의 팔을 끌어 당겨 안았다.
"왜 그ㄹ─"
"…아무 말도 하지 마."
바들바들 떨리는 어깨를 보며 레이븐은 시선을 내렸다. 그러고보니 시간이, 꽤 많이 지나버렸구나.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연락을 한다고 해 놓고 학교에만 했구나.
"전화 많이 했어. 한 번도 안 받더라."
"미안해. 바빠서 전화 오는 것도 몰랐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니까."
레이븐은 그 말에 입술을 앙다물었다. 가끔 이렇게 아이같이 굴 때가 있다. 이번에는 넘어가기로 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니까. 많이 놀랐겠구나. 덤덤한 표정으로 레이븐은 괜히 딴청을 피웠다. 별로, 울지 말라던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상처를 줘 버릴 것 같아서.
"아무 데도 가지 마……."
떨리는 목소리에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클라우드가 우는 걸 보는 것은 처음이구나. 애초에 별로, 울 일도 없었다. 만나고, 함께 있고, 내내 즐거운 일만 있었으니까. 처음 특별반 편성 얘기가 나올 때 일이 갑자기 생각났다. 저 레이븐 없으면 그런 데 안 들어갑니다. 자퇴 할 거예요. 꼴에는 위협적이게 말 해본다고 목소리도 깔고, 반항적으로 대들기도 한 주제에 뒤에서는 진짜 퇴학 당하면 어쩌나 했어 하며 어색하게 웃던 클라우드가 있다.
"안 갈게."
말 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 얘기는 하고 싶었다. 가만히 그를 토닥이며 레이븐은 주머니를 뒤졌다. 참 상황에 안 어울리는 짓인 것 같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하나는 복사본이고, 하나는 진짜 집 열쇠다. 굳이 진짜 열쇠를 쥐어주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손으로 클라우드의 손을 꽉 잡으며 건네 주었다.
"네 거야."
작게 웅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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