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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 - 아이자크]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너에게

* 약간의 자크에바 성향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김없이 느껴지는 통증이었다. 아이자크는 반사적으로 구겨지는 얼굴을 최대한 에바리스트에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 허나 애석히도 그런 눈속임에 넘어갈 에바리스트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에바리스트는 당장에 뒤따라오는 아이자크를 멈춰 세웠다. 아이자크는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오히려 예민하게 반응하는 에바리스트가 더 이상하다는 듯 의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른쪽 눈에 감아놓은 붕대에서 새어나오는 피는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에바리스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에바리스트의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금방 알아챈 아이자크는, 어깨에서 에바리스트의 손을 떼어내었다. 저 혼자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양 구는 것이 에바리스트에게는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너는 이제 앞으로 평생 두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 에바리스트는 무의식적으로 아이자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내가 할게.”

그 말에 에바리스트는 붕대로 향하던 손을 거두었다. 너는 가끔 이런 식으로 쓸데없이 상냥해서, 바보 같기 까지 하다. 아이자크는 에바리스트가 은연중에 자신의 텅 빈 눈을 보고 싶지 않아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언제나 피가 묻어난 붕대를 갈 때가 되면 그가 자고 있을 때 몰래, 아니라면 일부러 그에게서 등을 돌린 채로 갈곤 했다. 에바리스트가 했던 말처럼 빨리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다면 멀쩡했을지도 모를 눈이었다. 하지만 설령 한쪽 눈이 멀어버린다 하더라도 아이자크는 상관없었다. 에바리스트를 지켰다는 명예의 상처, 하나 쯤 남게 되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이자크는 에바리스트에게서 등을 돌렸다. 서툰 손놀림으로 대충 묶어놓은 매듭을 반 쯤 찢어 풀어냈다. 아이자크는 물끄러미 스르륵, 흘러내려 떨어진 붕대를 쳐다보았다. 기분 나쁜 색깔의 피였다. 거칠게 안구를 빼낸 탓에 난 상처에서 나온 것이 안보아도 뻔했다. 응급처치 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자크는 주머니를 뒤적여 부유정에서 대충 뜯어 가져온 붕대를 꺼냈다. 그나마도 얼마 남지 않았다. 물론 여차하게 되면 옷을 뜯어도 될 것이다. 상처에 더러운 천이 닿으면 더 악화될 것은 뻔하지만, 어차피 이제 세상을 볼 눈조차 남지 않은 오른쪽 눈가였다. 통증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면 그거로 충분했다. 애초에 주머니에 구겨 넣었던 붕대도 그다지 위생적이진 못했으니. 이제 와서 위생을 따져봤자 하등 쓸모없는 일이었다.

“계속 가자, 에바.”

아이자크는 뒤돌아 에바리스트를 바라보았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청색 눈동자는 앞서 나아가는 에바리스트만을 좇았다. 이윽고 아이자크도 에바리스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

순식간에 벌어진 모든 일들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두 사람 모두 너무 어렸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람의 충고를 따라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근근히 연명해가는 것 뿐이었다. 자신들 레지멘트가 이용당한 것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그뿐이었다. 아직도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했고, 무언가 결단을 내리고 행동하기에는 눈 앞의 놓인 당장의 생존이라는 문제가 1차적으로 급급했다. 지쳐가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누던 이야기마저 끊어져가고 있었다. 확실한 목적지 같은 것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그것부터가 너무나도 불투명했기 때문이었다. 레지멘트의 이름을 가지고 살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정말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에바리스트는 답지 않게 초조해하고 있었다. 이대로 마냥 방랑하며 살 수는 없었다. 소용돌이가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황야는 위험한 장소였다. 스톰 라이더도 아닌 두 사람이 살아나갈 수 있을 확률은 0에 가까웠다. 차츰 평화를 찾아가고 있는 세계, 하지만 그 점은 오히려 에바리스트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레지멘트 였다는 사실을 발각당해서는 안된다. 철저히 이용당한 레지멘트였기에, 그 생존자들의 최후야 뻔했다. 에바리스트가 느끼고 있는 이러한 초조함은 아이자크 또한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모닥불이 꺼졌다. 불침번을 서고 있던 아이자크 보다도  먼저 에바리스트가 움직였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야 여럿이었다. 언제 누군가에게 습격당할지 모르는 환경이니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교대로 불침번을 서자는 약속을 하긴 했지만, 쉽게 잠들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아이자크는 물끄러미 어둠 속에서 불씨를 되살리고 있는 에바리스트를 바라보았다. 옛날, 영주의 아들 에바리스트 바르트 였다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새삼스레 저런 모습을 어색하다 생각하기에는 이미 너무나도 오랫동안 봐온 모습이었지만. 아이자크는 나무에 기대고 있던 등을 떼어내고,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불씨는 쉽게 살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냥 자, 에바. 그렇게 춥지도 않으니 괜찮을거야.”
“하지만…….”
“불침번 계속 서면 되는 거잖아. 내가 설게.”

허나 그런 말을 들을 에바리스트는 아니었다. 에바리스트는 그 말을 들었는지 안들었는지 여전히 죽은 불씨를 살리려 하고 있었다. 아이자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 고집 강한 것만은 어릴 적과 하나 변하지 않은 점이었다. 아이자크는 에바리스트의 손에서 부싯돌을 빼앗아 갔다. 에바리스트는 잠시동안 그런 그를 흘겨 보았으나, 자신이 계속 해보았자 될 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듯 그저 시선을 떨굴 뿐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아이자크의 손에 부싯돌이 돌아옴으로서 알게 된 것이지만, 언제 어디서 젖은 것인지 부싯돌에는 물기가 묻어있었다. 그것을 에바리스트가 모를 리는 없었으니.

“…피곤하겠지.”

작게 중얼거린 아이자크는 그대로 부싯돌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소용돌이는 사라졌다고 하나, 아직도 황야에는 수많은 요마들이 남아 있었다. 불을 피우지 못한다면 당연히 위험하겠지만……. 아이자크는 그대로 털썩 누워버렸다. 막연하게 괜찮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도 누워, 에바.”
“어쩔 생각이지.”
“괜찮아. 우린 옛날처럼 그렇게 약해 빠지지 않았잖아?”
에바리스트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아이자크가 내던져버린 부싯돌을 주웠다. 그제서야 묻어있는 물기가 느껴졌다. 벌써 얼마나 황야에서 방랑을 하고 있었는지. 언젠가부터 날짜를 세는 것을 포기했다. 부싯돌을 다시 주머니에 넣은 에바리스트 또한 아이자크의 옆에 누워버렸다. 그러고보면, 아이자크는 부쩍 어른이 되어 있었다. 어릴 적 소극적인 면만 가득했던 소년은 어디로 가고, 꽤나 믿음직해졌다. 느껴지는 시선에 아이자크도 에바리스트를 바라보았다. 아이자크는 어쩐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에바리스트에게, 뚫어지게 쳐다보지 말고 하늘이나 봐. 하고 다시 제 시선도 하늘로 가져갔다.

“별, 예쁘지.”

그제야 에바리스트도 시선을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까만 밤하늘에, 별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그러고보면 어렸을 적 포레스트 힐에서도, 레지멘트에서도, 지금 이 황야에서도 밤하늘만은 변하지 않아 있었다. 소용돌이 속에서 마저도 밤하늘의 별만은 빛났었다. 문득 아이자크가 하늘로 손을 뻗었다. 한쪽 눈으로만 보는 밤하늘의 별은 어떤 느낌일까. 에바리스트는 순간 아이자크에게 묻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저히 못할 짓이었다. 아이자크가 눈을 잃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에바리스트 자신의 탓이었다.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자각하고 있었기에. 에바리스트는, 더 이상, 아이자크에게 모진 짓을 하고 싶지 않아졌다. 혹여나 나중에라도 모진 짓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어느정도 그를 위한 일일 것이라.

“고향에서는 더 잘 보였었는데.”
“그래도 나쁘진 않지. 아예 안보이는건 아니니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아마 아이자크는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지루할 정도로 평화로운 세상에었지만 지금은 그런 평화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만약 그 때 소용돌이가 고향을 집어삼키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랬다면……. 에바리스트와 지금처럼 깊은 관계가 될 수 있었을까. 물론 그 점에선 고개를 저었다. 단 하나뿐인, 마지막 남은 가족 에바리스트. 적어도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 아이자크는 과거로 돌아가려는 의식을 포기했다.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에바리스트였다. 가장 지키고 싶은 것도 에바리스트였다. 그렇기에, 이런 순간마저도 너무나도 소중했다. 밤하늘의 구름이 별을 가려버렸다. 아이자크는 신경질을 내며 몸을 일으켰다. 아마도 훗날, 이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 날도 오게 될 것이다.

“날이 밝으면… 그란데레니아로 가자.”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그란데레니아 제국. 간간히 들어온 곳이었다. 소용돌이로 인해 성채에 틀어박혔던 거대 제국.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에바리스트는 따로 언질하진 않았지만, 그쪽의 군으로 들어가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뻔했다. 나쁘진 않았다. 레지멘트에 있던 시절과 크게 다르진 않을테니. 힘들기야 하겠지만 그정도야 감수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다시 한 번 시작할 수 있다면. 에바리스트를 계속해서 지킬 수 있다면. 아이자크는 그것으로 족했다. 어느 장소에 서 있던 상관이 없었다. 세계가 계속 자신들을 거부한다면, 몇 번이고 그런 세계를 굴복시킬 때까지 에바리스트의 곁에서 그를 지킬 것이다. 언젠가 끝내 잔혹한 세계에 승리하고 그의 곁에서, 어렸을 적처럼 웃을 수 있게 될 때까지. 그것이 아이자크가 바라는 평화였다. 에바리스트가 자신들의 미래를 바라보기 시작한 이 순간, 더 이상 과거를 그리워 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 멀진 않아. 앞으로 온 길의 반 정도만 가면 도착할 수 있을거다.”
“그렇다면 조금 자두는게 좋겠지. 자, 에바. 난 괜찮으니까. 두시간 쯤 지나면 깨울게.”

에바리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자크는 자신이 두르고 있던 망토를 벗어 에바리스트에게 덮어주었다. 아직 춥지는 않았지만, 모닥불이 꺼진 탓에 주변 공기는 꽤나 쌀쌀했다. 에바리스트는 무어라 하려 했지만 그냥 포기해버렸다. 자신 만큼이나 고집이 센 아이자크였다. 언제부터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에바리스트에 관한 것에 아이자크를 따를 고집은 없었다. 결국 그대로 눈을 감은 에바리스트는 몰려오는 피로감에 금방 잠이 들었고, 그가 잠든 것을 확인한 아이자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충 주변에서 나뭇가지들을 끌어 모았다. 마찰로 다시 만들어낸 불씨는 아직 작아서, 아이자크는 그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주머니에서 다 써가는 붕대를 꺼냈다. 불씨 위에 그것을 떨어트리자 불씨는 붕대를 촉매 삼아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당연한 것이지만, 에바리스트를 깨울 생각은 없었다. 다시 나무에 기댄 아이자크는 멍하니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란데레니아. 몇 번이고 곱씹었다.

에바리스트에게는 가까운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소용돌이에서 얻게 된 그 능력을 에바리스트는 언제나 유용하게 써왔다. 하지만, 에바리스트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아이자크 또한 비슷한 것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소용돌이에서 얻은 능력은 아니었다. 그저, 언젠가부터 생겨버린 기묘한 것이었다. 예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은 꼭 언제나 나쁜 예감만 들어맞곤 했다. 그리고, 그 예지는 지금도 아이자크에게 찾아오고 있었다.
그란데레니아. 아마 그곳에서 자신과 에바리스트는 멀어지게 될 것이다.

*

“같이 갈래?”

그 목소리는 빛이었다. 무너져가는 포레스트 힐에서 자신의 손을 잡고 뛰었던 어린 에바리스트를 아이자크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 잃지 않겠다는 듯 꽉 잡고 있던 그 손에서는 온기가 느껴졌었고 자신을 막아섰던 그 등은 어째서인지 너무나도 커보였다. 아마도, 그때부터 소중해졌을 것이라. 그때부터 우리들에게 잔혹했던 세상이었지만, 이상하리만치 그때부터 세상은 아이자크에게 너무나도 찬란했다. 찬란해서 눈이 부셨다. 너무나도 잔혹한 이 세계가.

알고 있었다. 지금 저 그란데레니아는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아이자크의 예지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한번도 틀린 적이 없지 않은가. 아마도, 여기서 아이자크가 고개를 젓는다면 에바리스트는 끄덕이고 다른 길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자크는 에바리스트만 곁에 있다면, 슬픔 속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 갈까. 멀어지게 되더라도 끈질기게 붙잡아 그의 곁에 남을 것이 아닌가, 자신은. 그리고 이미 결정한 바가 있었다.

“물론. 같이 가드릴게요, 도련님.”

그리고 잠시 후 서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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