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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네일

"오늘따라 표정이 별로네."


불쑥 걸어오는 말에 네일은 고개를 돌려 엘리후를 바라보았다. "…그런가?" 짧게 대꾸하고 떨떠름한 태도로 네일은 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별로 안 웃었나? 나도 모르게 좀 딱딱하게 굴었나? 딱히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진 않은 것 같은데. 네일은 나름 심히 심란하게 고민하며 제 입가를 만지작거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기라도 하는듯, 엘리후는 손을 뻗어 네일의 손을 꼭 맞잡아 내렸고. 조금 가까이 다가와 부드럽게 시선을 마주치는 행동에, 네일은 딱히 그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기분이 그닥 좋지 않은 건 어찌 알았는지. 다른 손으로 제 볼을 쓰다듬어오자 네일은 그제야 눈을 돌려버렸다. 최대한 숨기려고 했는데, 역시 연인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주 가끔씩은, 자신보다 엘리후가 저를 더 잘 알고있는 느낌이었다. 머릿속도, 속마음도. 꿰뚫어지는 느낌은 사실 그리 나쁘진 않았다. 다른 이였다면 어느정도 기분이 나빴겠지만. 상대가 엘리후이기에 오히려 더 알아주었으면 했다. 표현하는 것에는 아직도 서툴어서, 아직 저도 모르게 숨겨버릴 때가 많았으므로. 표현하더라도 항상 한계에 부딪히곤 했다. 마음속에 있는 감정은 더 큰데, 할 수 있는 것은 너무 적어서.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손을 잡는 일이나 입을 맞추는 일 같은 일상적인 스킨십으로도 속마음을 다 내보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니까, 그 안에 있는 것을 굳이 표현하지 않더라도 알아주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더더욱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무슨 일 있어?"

"일이라기보다는."


거기까지 말하고 네일은 그냥 제 말을 뚝 끊어버렸다. 명백하게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흐음. 묘한 소리를 내며 엘리후는 볼을 쓰다듬고있던 손을 거두었다. 기왕 쓰다듬어주는거 조금만 더 해주지. 부드러운 느낌이 좋아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있던 네일은 느릿하게 눈을 뜨고, 그런 말을 하는 듯한 표정으로 엘리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소 진득하게 들러붙는 아쉽다는 시선. 평소였다면 웃음을 터뜨리며 꼬옥 끌어안아주거나 가볍게 입을 맞춰줄만도 한데. 엘리후는 가볍게 무시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일은 의아한 표정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도통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만 가봐야겠다."

"…응? 온지 얼마 안됐잖아."

"네 기분이 별로 안 좋아보여서."


정말 갈 기세로 엘리후가 뒤돌자, 네일은 괜시리 조급해져 저도 똑같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팔을 잡아당겨 꼬옥 끌어안았다. 볼을 등에 철썩 붙이고 나서야 팔을 꽉 잡고 있는 손의 힘을 조금 풀었다. 읽고 있던 책은 이미 오래 전에 내려놓은지 오래였다. 뒤에서 끌어안은 거라 표정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즐겁다는 듯 웃고 있지 않을까. 네일은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이번에도 또 페이스에 말려들어간 기분이었다. 엘리후의 등에 이마를 툭 대고 네일은 조곤조곤 중얼거렸다.


"보통은 말이지. …애인이 기분 안 좋으면 같이 있어줘야 하는게 정상 아니야?"

"애인이 기분 안 좋을 때 자리를 피해주는 것도 정상이라고 보는데."

"아, 진짜."


조금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대꾸하자, 엘리후는 키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것봐. 또 페이스에 말려들어간 거라니까. 그러면서도 안은 팔을 풀지는 않았다. 혹여나 진짜 가버릴까봐, 그것은 또 겁이 나서. 확실히 엘리후의 말도 일리가 있긴 했다. 괜히 기분 안 좋을 때 같이 있다간 별 것 아닌 것으로 싸울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네일은, 저가 말한 쪽에 더 무게를 두는 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기분이 안 좋으면 같이 있고 싶다고.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물론 방금 전의 경우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묘한 기분의 이유에는 바로 엘리후가 아주 크게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걸 노려서 기분 안좋은 척 했던 거라고?"

"아니거든."


계속 쌀쌀맞게 굴긴. 작게 혀를 차고, 엘리후는 제 허리를 꼭 끌어안은 네일의 손을 한 번 꼭 잡아주었다. 어쩐지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느낌이라 네일은 천천히 숨을 뱉어냈다. 물론 네일이 쌀쌀맞게 굴 때는 어디까지나 쑥쓰러워서 그러는 것이라는 걸 엘리후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네일의 팔을 제 허리에서 떼어내고는, 뒤돌아서 더 꼬옥 안아주었다. 그러니 기다렸다는 듯 품에 얼굴을 묻고는 어리광을 부려오는 것이다. 엘리후는 네일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주었다. 기분이 안좋다는 건 정말로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유는 정말로 말 안해줄거야?"

"……."

"애초에 말이지. 지금까지 뚱하니 책만 보고 있었던 것부터 티가 난다고."

"…그렇게 티가 나?"

"당연하지. 아무리 마주보고 책 보고 있어도 항상 힐끔힐끔 쳐다봤었잖아."


끄응. 짧은 신음을 뱉어내고는 네일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니 엘리후가 싱긋 웃어보인다. 제 얼굴이 어느정도 붉어져있을 게 뻔했다. 존재만으로 내 약점인 자식. 괜히 속으로 투덜거리며 네일은 괜히 그 품에 더 기댔다. 물론 그런 점이 싫은 건 아니다. 오히려 좋았으면 좋았지. 말을 재촉하는 듯 엘리후가 응? 하고 한 번 더 물어왔다. 네일은 잠시 시선을 가만히 맞추다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듣고 웃기 없기. 놀리기도 없기."

"도대체 뭔데 그래."

"…꿈을 꿨어."


딱 그렇게까지만 운을 떼고는 네일은 다시금 입을 꾹 다물었다. 엘리후는 그런 네일이 언제쯤 말을 이어주나 싶어서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물론 네일에게는 무언의 독촉으로 느껴지겠지. 결국 네일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슬쩍 맞껴안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슬쩍 밀어냈다. 좀 놓아달라는 뜻이었지만, 그렇게 해줄 엘리후는 또 아니었어서. 그저 눈웃음을 지어보이며 밀어낸 만큼 더 밀착할 뿐이었다.

부끄러운 꿈이라도 꿨나? 그렇다고 뚱하게 있을 성격은 아닌데. 오히려 평소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했으면 반응했지. 그렇게 엘리후가 네일이 꿨다는 꿈에 대해서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갈 때 쯤, 네일은 느릿하게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내가 있었는데…"

"응."

"그래, 내가 있었어. 근데 넌 없었단 말이지."

"……?"

"뭐가 문젠지 모르겠어? 내가 있는데 네가 없었다고.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여전히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엘리후에, 네일은 조금 더 세게 그를 밀어냈다. "아, 됐어. 그냥 그랬다고." 묘하게 날이 선 말투. 엘리후는 조금 얼떨떨하게 네일을 바라보았다. 네일은 그냥 그 품에서 쏙 빠져나가, 다시 소파에 털썩 앉아선 읽던 책을 집어들었다. 어디까지 읽었더라. 표시도 안해놨네. 책장을 뒤적이는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엘리후는 뒤늦게 터진 웃음을 숨기기 위해 제 입을 손으로 가렸다.


"네일."


부드럽게 이름을 부르자 반사적으로 고개가 들어진다. 물론, 다 들어지기 전에 엘리후가 네일의 턱을 잡아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반대쪽 손으로는 네일이 뒤적이고 있던 책을 뺏어 엎어두었다. 한 번 겹쳐졌던 입술이 빠르게 떨어져나가는듯 하더니,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다시금 겹쳐졌다.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에는 혀가 들어왔다는 것 정도. 순간 저도 모르게 굳어있던 네일은 괜히 소파만 꽉 잡다가, 손을 뻗어 엘리후의 어깨에 팔을 감았다. 조금 더 깊게. 허나 성이 차기도 전에 입술이 떨어져나가서, 네일은 조금 아쉽다는 듯한 눈으로 엘리후를 바라보았다.


"그게 그렇게 불만이었어?"

"당연하지. 네가 없는데 내가 살 수 있다는 것부터 아이러니라고."

"가끔 넌 참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는단 말이야."

"……그리고 항상 후회하지."


얼굴을 쓸어내리는 손을 잡아 내리며, 엘리후는 붉어진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귓가에 "내가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안 나온게 아닐까?" 하고 속삭였다. 그런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듯, 네일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도대체 어디까지 귀엽게 굴 생각이야. 키득거리며 엘리후는 그런 네일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사실 꿈에 내가 안 나온 게 불만인 거 아닐까나."

"놀리기 없기, 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약속은 안 했는걸."


빙글빙글 웃는 얼굴을 때리고 싶었던 적이 이번까지 과연 몇 번일까. 이제는 새는 것도 포기했다. 애초에 때릴 수도 없지만. 때리려다가 손을 내린 것도 꽤 여러번일 것이다. 네일은 아까 엘리후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진 제 볼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리고 괜히 엘리후를 흘겨보았다. 물론 그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며, 엘리후는 네일의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리고 드러난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오늘 같이 잘까?"

"…대답은 정해져 있잖아."

"네 입으로 듣고 싶어."


애초에 부끄러운 말을 뱉게 하는 것도 네 쪽이잖아. 그리 말하려는 것을 꾹 참으며 네일은 시선을 내렸다. 


"좋아."


언제나 좋은걸. 그리 속으로 덧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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