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깼어?"
제 얼굴을 쓰다듬는 손길에 네일은 눈을 떴다. 시야가 조금 흐릿한데. 깬지 얼마 안돼서 그런가. 그 손에 뺨을 부비니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 소리가 들렸다. 두어번 눈을 깜빡이니 그제야 조금 선명하게 보인다. 확 떨어진 시력 탓에 그리 만족스럽게 보이진 않지만. 여전히 뺨을 쓰다듬고 있는 손을 꼭 맞잡아 내리고, 네일은 빤히 엘리후를 쳐다보았다. 얼굴을 보니 깬지는 오래 된 것 같은데. 목소리도 그렇고. 잠긴 목소리 좋은데, 좀 아쉽다. 이런 별 쓸모도 없는 생각들을 하며, 네일은 두어번 목을 큼큼. 하고 가다듬었다. 목감기 기운이 조금 있는 것도 같았다. 하긴, 겨울이니까.
"왜 그러고있어, 안자고."
"그냥. 한 번 깼더니 잠이 안오네."
그래도 자야지. 한숨 섞인 목소리로 그리 중얼거리며 네일은 침대 헤드에 기대고 있는 엘리후의 무릎 위에 제 머리를 올렸다. 꽤나 제멋대로 무릎을 베개삼아버렸는데, 엘리후는 그저 작게 웃을 뿐이었다. 애초에 이러고 있으니까 잠이 안오지. 당연한걸. 그리 말하고 싶은 걸 꾹 참고, 네일은 눈을 감았다. 더 자고 싶은 마음이 조금 큰데. 가만히 엘리후가 가만히 제 머리를 쓰다듬어오자, 이거로도 묘하게 잠이 깨는 느낌. 결국 자는 걸 포기하고 네일은 다시금 눈을 떴다. 안 자고 얘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큰 모양이다. 애초에 당연한 거지만.
그나저나, 날씨가 꽤 춥다. 네일은 주섬주섬 내려간 이불을 끌어올렸다. 얘는 안 추운가. 이불은 혼자서 다 덮고 있어서 덮어줄 수도 없고. 빤히 얼굴만 보고있으니, 엘리후가 손을 뻗어 네일의 눈을 감겨주었다. "안 잘거야." 그리 말하니, 문득 이마에 느껴지는 감촉에 살짝 눈을 떴다. 어쩐지 아쉬워져, 네일은 그대로 두 팔을 뻗어 엘리후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슬며시 입술을 맞대었다. 딱히 깊은 키스로 이어지진 않았지만서도. 이것만으로도 꽤 기분이 좋았다. 속에서부터 간질거리는 느낌. 입술이 떨어져나가고 네일이 작게 키득거리자, 엘리후는 그 입술에 한 번 더 쪽. 하고 입맞추었다.
"계속 이러고 있으면 안돼?"
"허리 아플 것 같은데."
그래도. 칭얼거리며 네일은 눈을 떴다. 그리고 안고 있던 엘리후의 목을 더 꽉 끌어안았다. 그러나 머지 않아 그냥 놓아주었다. 역시 네가 아픈 건 싫네. 그리 중얼거리니, 이내 엘리후가 웃음을 터뜨리고 이번에는 좀 더 깊게 입을 맞추었다. 혀가 얽히자 정말로 잠이 확 깨버렸다. 숨이 막힐 정도로 길게 이어질 즈음, 네일은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고 주변을 더듬어 엘리후의 손을 찾았다. 그대로 엘리후의 손 위에 제 손을 올려, 손가락으로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숨이 막힌다는 의미였다. 알아줄진 모르겠지만. 다행히 두어번 더 두드리니 입술이 떨어져나갔다. 얼굴이 멀어져나가는게 아쉬워졌지만. 네일은 작게 숨을 고르기만 했다.
"밖에 눈 와."
"그래서 더 추웠나보네."
"…분위기 없긴."
"원래 없었는걸. 애초에 연애는 네가 처음인데."
잠에 덜깨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고, 네일은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커텐이 쳐져 있어서 몰랐나. 이불을 치우고 침대에서 일어나니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겠네. 겨울에는 꼭 연례행사마냥 한 번 정도는 감기에 걸리고 넘어가곤 했으니.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은 이래서 불편하다. 제 팔을 쓸어내리며 네일은 창가로 다가갔다. 커텐을 슬쩍 치워내니, 밖은 눈이 생각보다 더 많이 쌓여있었다. 딱 보기 예쁠 정도로. 날이 지나며 기온이 낮아지는 것 쯤이야 항상 느끼고 있었지만, 이렇게 눈이 오는 걸 보고 있으니 어쩐지 진짜 겨울이 됐다는 느낌이다.
어느새 엘리후가 곁으로 다가와 뒤에서 네일을 꼬옥 끌어안았다. 그대로 네일의 어깨에 머리를 툭 올리고, 엘리후 또한 창 밖을 내다보았다. 눈은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많이 오진 않았지만. 네일은 엘리후를 빤히 쳐다보다가, 그의 머리를 괜시리 헝클어놓았다. 그러자 엘리후는 허리를 껴안은 손으로 네일의 허리를 간지럽혔다. 물론 얼마 안 가 네일이 그 손을 꽉 맞잡아버렸지만. 엘리후는 능청스럽게 입을 열었다.
"꽤 그쳤네. 아까는 진짜 펑펑 왔는데."
"그러니까 쌓였겠지."
"안 잘거면 나갈까?"
……그럴까. 산책 하고 싶은 기분이긴 한데. 잠시 고민하던 네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엘리후는 느긋하게 떨어져나가, 대충 걸어둔 겉옷 하나를 네일에게 내밀었다. 방한 마법을 걸면 되긴 하지만 하나 쯤은 걸쳐야겠지, 싶어서. 네일은 그 옷을 받고 주섬주섬 입었다. 저 또한 겉옷을 챙겨 입고, 엘리후는 목도리까지 네일에게 단단히 매주고 나서야 만족했다는 표정으로 네일을 바라보았다.
"멀리 갈 것도 아니면서."
"목도리 한 쪽이 더 예뻐."
"참나…"
손으로 제 입을 가리며 네일은 슬쩍 시선을 돌렸다. 하여간에, 낯뜨거운 말은 잘도 하지. 싫은 건 아니지만. "그럼 너도 해." 그리 말하며 네일은 그 목도리 옆에 걸려있던 다른 목도리를 엘리후에게까지 매주었다. 시선은 여전히 피하고 있었지만서도. 엘리후는 손을 뻗어 가만히 네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귀엽긴. 그리 중얼거리자 얼굴이 더 붉어진다. 본인은 알까 싶지만.
손을 뻗으니 차가운 느낌이 드문드문 손바닥 위에 와닿았다. 입을 여니 하얀 입김이 주변으로 퍼지고. 마법을 걸어서 그리 춥진 않았지만서도. 엘리후는 그런 네일을 팔짱을 낀 채 빤히 바라보았다.
사실 네일은, 몇 년 전까지 겨울을 참으로 싫어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추우니까. 감기도 자주 걸리고. 그래도 최근에는 꽤 좋아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엘리후를 만나고 나서부터. 겨울이라는 게, 참 좋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스킨십을 하기에도 좋고. 더 꼭 붙어있을 수도 있고. 애초부터 징글징글할 정도로 붙어있는다는 생각을 종종 하긴 했지만서도, 아무튼 그랬다. 눈 오는 것도 좋아하게 되었다. 아까 엘리후가 분위기 없다며 타박을 주긴 했지만, 그래도 눈 오는 걸 보고 있자면 연인의 생각이 자꾸만 나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곤 하기에.
"좀 걸을까."
"눈 맞으면서?"
"별로 안오잖아?"
싫으면 말고. 네일은 엘리후를 돌아보며 고개를 저었다. 좋아. 그리고 몇 걸음 다가가 엘리후의 손을 꼭 맞잡았다. 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좋았다. 저도, 엘리후도 마냥 체온이 높은 편은 아님에도. 그래도 그냥, 연인의 손이니 좋은 걸수도 있지. 마냥 그렇게 생각하기에도 꽤나 설득력이 있는 일이다. 그만큼 좋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