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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네일] loss of eyesight

 주기적으로 눈에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야 올해 들어 자주 있었던 일이었다. 아직 익숙해지지는 못했지만. 통증에서 끝난다면 별 문제 없이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가끔씩, 그보다 더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네일은 못 견뎌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실명 상태는 제대로 된 원인조차 찾을 수 없는 것이었고백색증의 뒤늦은 증상일 것이라는 진단은 받았으나짧으면 몇 분, 길면 하루 종일 이어지기도 하는 나름대로 큰 문제였다. 사실 당장 눈이 보이지 않더라도 특별한 상황만 아니라면 상관없었다. 그럴 때면 만성적으로 부족한 잠을 보충하면 되는 일이었으므로.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항상 이대로 영영 보이지 않게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잠을 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매번 실명 상태가 찾아오면 잠을 자야지, 하고 마음을 다졌으나 막상 보이지 않게 되어버리면 어찌 할 수 없는 공포감에 생각이 마비되곤 했다. 종종 연인이 없는, 저 혼자 있는 집 안에서 연인의 이름을 다급하게 부를 정도로.

  ……너를 다시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단지 그 뿐이었다.

  그렇다고 걱정 시키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기에. 네일은 철저하게 제 눈 상태에 대한 것을 숨겨버렸다. 평소에는 안경을 끼지 않아도 잘만 보였던 앞이 흐려지고, 안경 없이는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게 되어버린 단순한 시력 감퇴조차도 말 하지 않았다. 그러니 종종 찾아오곤 하는 실명 상태에 대해서 말을 할 리가. 어차피 안경은 잘 벗지 않으니 시력이 떨어진 걸 들킬 리는 없을 것이라며, 연인이 알게 되기 전에 어떻게든 실명 상태만은 원인을 찾아내 해결할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날따라 이상하리만치 눈이 아팠다. 알고 있었는데. 왜 일찍 돌려보내지 않았을까. 갑자기 확 뻐근해져오는 눈두덩이를 꾹꾹 누름과 동시에, 눈을 감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앞에 하얗게 섬광 같은 것이 튀었다. 네일은 이것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눈을 뜨는 게 무서웠다. 네가 보이지 않는 게 내게는 가장 두려운 일인데. 네일은 마른 침을 삼켰다.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사실상 필요 없는 것이었다. 네가 보이지 않으면 나는 무너져버리겠지. 어디까지 무너져 내릴지 감도 잡히지 않아서, 네일은 도저히 눈을 가리고 있는 손을 치울 수가 없었다. 감고 있는 눈조차 뜰 수 없었다. 계속해서 눈을 비비기만 했다.

 

  “네일?”

 

  저를 불러오는 목소리를 애써 외면했다. 분명히 이상하게 보이겠지. 이대로 눈을 뜨더라도 별 문제 없이 보이기를 원했다. 보일거야. 그렇게 애써 마음을 다스려봤지만, 손을 떼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었다. 정말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드물게 실명 상태가 몇 초 정도로 짧게 지속되지 않는 이상은. ……보이지 않겠지. 아무것도. 순간적으로 숨이 확 막혔다. 걱정시키기 싫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널 볼 수 없게 되는 게 나는 너무,

  엘리후는 네일의 손목을 잡고 강제로 내려버렸다. 얼마나 눈을 비벼댔는지 눈가는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엘리후는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눈가가 쓰라린 것은 네일도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왜 그래.” 걱정 섞인 목소리에도 차마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눈이 아파서, 하는 사소한 거짓말조차 나오질 않았다. 당장 눈앞에 네가 있는 건 확실하게 느껴지는데. 눈을 뜨면 보이지 않을 거라는 게 하염없이 무섭기만 해서. 제 눈가를 만져오는 손길을 가만히 느끼며 네일은 천천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막연하게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그냥 정말로 갑자기 눈이 아팠던 거로 끝날 수도 있잖아. 아니면 하얗게 튄 게 착각이었을지도 모르지. 하염없이 자기암시를 걸었다.

물론 그런 기적 따위 일어나지 않았고, 저가 착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엘리.”

 

  숨이 턱 막혔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 숨이 막혔다. 네일은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제 연인이 있을 만한 곳으로. 서툴게 잡은 곳은 다행히도 팔이었다.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붉은색 눈동자는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엘리, 엘리. 하염없이 이름을 부르며 팔을 잡은 손이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손을 잡고 싶은데 보이지가 않으니 제대로 되질 않았다. 네일은 제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엘리후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런 네일을 바라보았다. 겨우 손을 찾아내 꽉 잡고, 네일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꺼냈다.

 

  “손 좀 잡아줘.”

 

  제 손을 꽉 잡아오는 느낌에 네일은 그나마 마음을 겨우 다스릴 수 있었다. 그래도 자꾸만 숨이 턱턱 막혔다. 손은 잡고 있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눈을 감고 있는 양 까맣게 암전된 시야는 사실상 별로 상관이 없었다. 그냥 다른 거 다 안 보여도 너만 보이면 되는데.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손 또한 떨리고 있었다. 그 손으로 네일은 잡고 있는 손을 힘없이 자꾸만 끌어당겼다. 저 쪽으로, 더 가까이. 보이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도록. 문득 들키게 되더라도 옆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항상 앞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너무 무서웠는데. 이렇게 손이라도 잡을 수 있으니까. 애써 웃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착각이면 어쩌지? 그런 황망한 생각이 들었다. 보이질 않으니 확인할 방도가 없지 않나.

 

  “엘리, 엘리거기 있는 거 맞지?”

  “여기 있잖아. 무슨 일이야.”

  “, 나 좀…….”

 

  꽉 잡고 있는 손을 억지로 뿌리치고 네일은 다시금 그 손을 허공으로 뻗었다. 그대로 더 뻗어서, 아까 잡았던 팔을 아플 정도로 꽉 잡고 끌어당기다가 순간 작게 휘청거렸다. 좀 안아달라고, 그 말을 하려고 했다. 순간 말문이 턱 막히지만 않았어도. 어쩌지, 울음이 터질 것 같은데. 앞으로 무너져버렸으나 다행히 엘리후의 품 안이었다. 계속해서 떨리는 손으로 팔을, 손을, 그러다가 옷깃을 꽉 잡으며 네일은 그 품에 제 얼굴을 부볐다. 아까 눈을 비비려고 안경을 미리 벗어놓은 게 다행인 일이었다. 네일은 길게 심호흡했다. 앞에 있는 게 맞아. 엘리, 나 안아줘. 겨우 터져 나온 말과 함께 나온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네일은 저를 끌어안는 팔에 가만히 몸을 맡겼다. 정말 이대로 영영 보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언제나처럼 두려움이 온 감각을 지배해버렸다.

 

  “여기 봐, 네일.”

  “싫어…….”

  “고개 들어보라니까.”

 

  고개만 저으며 제 옷깃에 눈물을 닦는 네일을 물끄럼 보다가 엘리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드럽게 턱을 잡아 들어 올리려 해도, 아까 힘이 다 빠졌던 것이 돌아오기라도 했는지 요지부동이었다. 엘리후는 혀를 차며 억지를 부리고 있는 턱을 조금 거칠게 잡아 올렸다. 그리고 저와 시선을 맞추게 했다. 항상 안경 너머로, 종종 맨 눈으로 마주보곤 했던 붉은색 눈동자는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떨리고 있었다. 당장 저를 부르던 목소리와, 저를 잡으려던 손보다도 더 세차게. 그렇게 억지로 맞추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그 눈동자가 저를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정확히는 그 무엇도 보고 있지 않았다. 엘리후는 발갛게 달아오른 네일의 눈가를 느릿하게 제 손가락으로 쓸어주었다.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는 눈물 또한 닦아주었다.

 

  “엘리, 거기 있는 거 맞지? 안 보여. 안 보인단 말이야…….”

  “여기에 있어. 네 옆에.”

  “가지 마. 옆에 있어줘. , 매번 안 보일 때마다 계속 네 이름을 불렀는데 네가 없어서

 

  두서없이 말을 토해내는 입을 제 입술로 막아버리고 엘리후는 가만가만 네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눈을 감는 법을 잊은 것도 아닐 텐데. 엘리후는 뜨여진 채인 네일의 눈을 조심스럽게 감겨주고, 저 또한 눈을 감아버렸다.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한 쪽 손은 꼭 잡아주고, 다른 쪽 손으로는 제 옷깃을 잡게 했다. 네일은 이렇게 키스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도무지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본인조차 뭐 때문에 우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눈을 너무 많이 비빈걸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일까. 혹은 네가 옆에 있다는 게 안심이 되어서? 네일은 결국 생각을 포기하고 제 연인에게 몸을 맡길 뿐이었다. 정말 이대로 영영 보이지 않게 되면 어쩌지……. 그 생각만은 차마 지워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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