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취, 하는 재채기에 이어서 훌쩍이는 소리까지 들리자 엘리후는 저도 모르게 픽 웃어버리고 말았다. 바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긴 했지만. 제 시선은 깡그리 무시하고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는 엘리후를 한참이나 더 바라보다가, 네일도 하늘 쪽으로 눈을 돌렸다. 변덕스러운 영국 기후를 생각해 보자면,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고 날씨도 좋은 아주 드문 날이었다. 물론 밤하늘을 보러 나가자고 한 건 그런 것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한 아주 충동적인 말이었으나. 결과가 좋으면 별 상관 없지 않나, 싶다. 방금 전 훌쩍거렸던 것 때문인지 엘리후는 네일의 어깨를 끌어당겨 제게 바싹 붙게 했다. 네일은 자연스레 연인의 어깨에 기대며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아직도 몸은 으슬으슬 추웠지만 마음 속만은 따뜻해졌다. 네일은 제 손을 엘리후의 손 위에 살며시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후는 그 손을 빼내어 다시 저가 네일의 손 위에 올리더니, 부드럽게 맞잡았다.
“담요라도 가져올 걸 그랬지?”
계속해서 네일이 훌쩍이는 소리에 엘리후는 키득거리며 장난스레 말을 붙였다. 네일은 뚱하니 입술만 삐죽 내밀고 있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대로 감기에 걸릴 건 이미 확정인 듯싶은데. 두어번 더 나오는 기침에 네일은 제 입을 손으로 가렸다. 옮기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그래서 엘리후가 그 손을 잡고 내려버리자, 조금 불만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고개라도 돌릴까 했으나 그러면 턱을 잡고 저를 보도록 고정시킬 게 뻔해서, 그냥 관두고 그의 어깨에 제 머리를 툭 올리고 눈을 감기만 했다. 어쩐지 힘이 쭉 빠져버렸다. 이렇게 붙어있을 수 있는 건 좋지만.
“…그럴 걸 그랬네.”
네일이 뒤늦게 답하자 엘리후는 눈동자만 데룩 굴려 그런 네일을 잠시 보았다. 잠시 동안 시선이 마주치고, 잠시 후 엘리후는 제 어깨에서 네일을 떼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풀밭 위에 앉아있던 터에 옷에 잔뜩 묻은 풀을 대충 털어내며 엘리후는 저를 빤히 올려다보는 네일의 볼에 허리를 숙여 짧게 쪽, 하고 입맞춤을 남겼다. 네일은 온기가 닿았다가 떨어진 제 이마를 두어번 문질렀다. 그러다가 스산하게 부는 바람에 살짝 몸을 움츠렸다.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은 이래서 불편하다. 식사를 잘 안 챙기긴 해도 비실거리진 않고, 면역력이 약한 것도 아닌데도 감기에 쉽게 걸려버리니까. 작게 콜록이고는 네일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목이 아파오진 않는 게 다행이었다.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담요 가져올테니까.”
“괜찮은데.”
엘리후는 가볍게 네일의 머리를 쓰다듬듯 톡톡 두드려주곤 발걸음을 옮겼다. 곁에서 사라지니 더 추워져서, 네일은 제 무릎을 끌어안고 멍하니 밤하늘만 올려다봤다. 별을 보는 건 어릴적부터 좋아했던 일이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취미 아닌 취미 같은 것이었다. 예쁜 남색의 밤하늘에 작게 빛나고 있는 별을 보고 있자면 생각이 깨끗하게 비워지곤 했으므로. 머릿속이 복잡할 때나 답답할 때에는 항상 이렇게 밤하늘을 보곤 했다. 그걸 알기라도 했던 걸까. 네일이 그의 아버지에게서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도 천체망원경이었다. 학교까지 가져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은. 그걸 조금 서운하게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다고, 네일은 뒤늦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제와서 무엇하나 싶어서 금방 지워버린 생각이었다. 사실 졸업한 후에도 딱히 자주 들여다보진 않았다. 지금까지 들여다본 횟수를 두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콜록임이 조금씩 심해져갈 때 즈음, 제 어깨를 감싸오는 느낌에 네일은 고개만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부드럽게 웃는 연인의 얼굴이 보여서 저도 모르게 똑같이 웃어버렸다. 그대로 엘리후는 네일의 뒤에 바짝 붙어 앉아, 그를 품 안에 끌어안고 편하게 기대도록 했다. 네일은 가볍게 그에게 몸을 맡겼다. 꽤 큰 담요를 가져온 모양인지, 담요로 작지는 않은 남자 두 명의 몸을 얼추 다 둥글게 감쌀 수 있었다. 네일은 앉은 듯 누운 듯한 애매한 자세로 제 위에 올려진 담요자락을 더 끌어올렸다. 엘리후는 고개를 숙여 네일의 정수리, 머리카락 여기저기에 쪽쪽거리며 입을 맞췄다. 그게 괜히 간질거려서 네일은 푸스스 웃고는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네일은 눈을 떴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제 가슴팍 위에 놓여져있는 엘리후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엘리. 하늘 봐봐.”
“음?”
유성우였다.
책에서야 자주 봤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서, 네일은 작게 입을 벌리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봤다. 그리 큰 유성우는 아닌지 별이 긴 궤적을 그리며 떨어지는 건 드문드문하게 보였으나, 그마저도 신기해서. 엘리후 또한 한참동안 아무말 없이 별이 떨어지는 걸 눈에 담기만 했다. 네일은 괜히 아까 잡고 흔들었던 엘리후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담요 속이라 그런가 평소보다도 더 따뜻했다. 항상 끼고 있는 검은색 장갑으로 싸여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너머로 느껴지는, 장갑으로 미채 모두 차단하지 못한 미약한 온기를 언제부턴가 네일은 느낄 수 있게 되었더랬다.
오늘이 유성우가 떨어지는 날이었던가? 호그와트에서 천문학 수업을 들을 때에는 종종 교수님이 언제 유성우가 떨어질 지 가르쳐주시곤 했었는데, 매번 타이밍을 놓쳐서 보지 못하거나 잘 안 보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계산 방법이야 배웠기 때문에 알고 있었지만 졸업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무의식이 기억하고 있어서 오늘 밤하늘을 보러 나오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며, 엘리후를 끌고 나온 충동에 대해서 네일은 괜히 이유를 붙여보았다. 날씨 좋고, 하늘 맑고, 거기다가 유성우가 떨어지는 날. 묘하게 로맨틱한걸. 네일은 옅게 미소를 띠었다.
“유성우를 보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거, 알아? 완전히 미신이긴 하지만.”
“소원 빌었나보네.”
네일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소원 빌었는데?” 엘리후가 되물었으나 네일은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대답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괜히 얄미워져 엘리후는 네일의 볼을 쭉 잡아당겼다. 어눌해진 발음으로 아파, 하는 네일에 금방 놓아버리고 그 볼에 입을 맞추어줬지만은. 네일은 엘리후의 물음에는 답하지 않은 채로 오히려 저가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넌 소원 빌었어?”
“빌긴 했는데 말 안 해줄 거야.”
저도 말해주지 않은 입장에 캐묻기는 좀 그래서, 네일은 어쩔 수 없이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뭘 빌었는지 엘리후가 충분히 눈치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고, 제 입으로 내뱉기에는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하는 것 뿐이었다. 아주 당연한 소원이며 항상 바라고 있는 것. 사실 그 또한 비슷한 소원을 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네일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지. 엘리후는 가만히 네일을 더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별이 떨어지는 게 멈췄을 즈음, 오른손으로 네일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뭘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었기에 네일은 살짝 고개를 돌려주었다. 입술과 입술이 짧게 맞닿았다 떨어졌다.
그러니까, 엘리. 내 소원은 말이지…….
너랑 이렇게 평생 평화롭고 행복하게 같이 지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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