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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네일] 아프지 마.

  "몸이 안 좋으면 오지 말고 그냥 쉬지."


  걱정이 잔뜩 섞인 말에 엘리후는 어깨만 으쓱하는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약한 감기 기운에 괜찮겠지 싶어서 온 게 화근이었다. 어지럼증 때문에 휘청거릴 줄이야. 덕분에 네일에게 감기 걸린 걸 들켜버려선, 이렇게 침대 신세를 지게 되어버렸다. 네일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그의 얼굴 여기저기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뭐랄까, 조금 묘했다. 평소에는 언뜻언뜻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돌려 피하거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곤 했는데, 이럴 때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똑바로 보고있는 걸 보면. 걱정과 쑥스러움은 별개라는 건가. 엘리후는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어?" 묘하게 신경질이 섞인 목소리에도 마찬가지로 대답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저었다. 한숨 소리가 또다시 들려온다. 이번에는 아까 것보다 더 길었다. 그제야 엘리후는 꾹 다물려 있던 제 입을 열었다. 딱히 계속 네일이 푹푹 내쉬는 한숨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슬슬 말을 할 때가 됐다, 싶었을 뿐.


  "딱히 오는게 힘든 것도 아닌데 뭐."

  "그건 그래도."

  "플루 가루로 올 수 있으면 더 편하겠지?"


  네일은 그 말에 수건을 쥔 손을 내리고 눈동자를 데룩 옆으로 굴렸다. 대놓고 시선을 피하는 것이다. 엘리후는 픽 웃고는 네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일은 그 손을 따라 고개를 까닥였다. 이럴 때면 저랑 동갑인데도 불구하고 어린 연인인 것만 같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태어난 년도가 다르니, 영국이 아닌 다른 어느 나라에선 저보다 더 어리다고 말하기도 할테지만 말이다. 또, 마법 세계에서는 17살부터 성인이라고는 해도 마법사의 평균 수명을 따지자면 한참 어린 나이인 게 맞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어린 연인… 말고도 조금 소동물 같다는 생각도 했다. 고양이나 강아지 정도의. 고양이였으면 귀를 접으며 냐앙 거렸을까. 그런 상상을 하니 엘리후는 어쩐지 즐거워져버렸다. 한참을 엘리후의 손에 제 머리를 부비던 네일은 느릿하게 대답했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편이 느낌은 더 좋지 않아?"

  "내가 직접 열고 들어온 적은 몇 번 없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느 날에 네일이 독립을 알리며 보내온 편지에 동봉한 열쇠는 항상 지니고 있긴 했으나 써본 적은 별로 없었다. 항상 습관적으로 문을 두드리고, 그 소리를 들은 네일이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네일이 산책으로 집을 비웠을 때나 잠을 자고 있을 때. 어찌되었든 문을 두드렸는데도 반응이 없을 때 쓰는 게 고작이었다. 그나마도 몇 번 없는 일이었고. 네일은 그런가. 하고 짧게 대꾸하곤 제 뒷머리를 긁적였다. 엘리후의 땀을 닦아주던 수건은 어느새 손에서 놓아져 시트 위에 놓인 지 오래였다.

  그나저나, 네일은 항상 이런 화법을 사용했다. 싫다는 표현을 잘 하지 않았다. 거부를 할 때에는 직설적이기보다는 간접적이었다. 거부 대신에 별로 부정적이지 않은 다른 이유를 든다던지, 핑계를 댄다던지.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로 볼 수도 있겠으나. 어찌되었든 중심된 말은 싫다는 말이다. 그걸 못 알아챌 엘리후는 아니었다. 몸에 밴 배려인가 싶은데, 간혹 네일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를 보면 딱히 그런 건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역시 저에게만 보이는 모습일까. 싫진 않았다. 좋았으면 좋았지. 쓰다듬던 손을 떼고 와락 끌어안으니 하얀 머리칼에서는 제법 좋은 향이 났다. 희미한 종이 냄새가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그래도 네가 그게 편하다면 벽난로 놓을게."


  그리고 꼭 이런 식으로 저가 한 수 접고 넘어가곤 했다. 이 또한 저에게만 보이는 행동이었다. 저를 멀뚱멀뚱 쳐다보는 안경 너머의 붉은색 눈동자와 눈을 마주하며, 엘리후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고 웃었다. 감기 기운 때문에 약한 현기증이 돌아 계속 어질어질 한데도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좋았다. 엘리후는 고개를 숙여 네일의 머리칼에 코를 묻고 약하게 부비적거렸다. 왜 싫어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다른 곳과 연결되는 것조차 제 영역이 침범받는 거로 느끼는 것일 터다. 집 안에 뭐가 있으면 거슬린다고 집요정 조차 놓지 않은 위인이 제 연인인데, 충분히 그럴만 했다.


  "그냥 한 말이었으니 그럴 필요는 없어."

  "응."


  코를 떼어내며 엘리후는 장난스레 네일의 머리를 헤짚어놓았다. 엉망이 된 제 머리를 손으로 정리하며 네일은 작게 툴툴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래도 역시 벽난로는 놓는 게 좋을지도……. 깊어가는 겨울을 생각하면 말이다. 네일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조만간 놓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플루가루 네트워크에는 연결 시키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유야 엘리후가 짐작하고 있는 것과 완벽히 일치했다. 그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마음을 고쳐먹을 수 있었지만. 엘리후도 딱히 원하지 않는 눈치니까.


  "좀 누워있어. 아프잖아. 물수건 놔줄게."

  "괜찮은데."


  그리 말하면서도 약하게 미는 손길에 엘리후는 가볍게 뒤로 누워주었다. 그걸 보고 네일은 침대에 걸터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주방 쪽으로 향했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느낀 건데, 둘이 눕고도 조금 남는 침대는 혼자 누워있으니 널널하다기보단 어딘가 쓸쓸했다. 저가 없을 때 네일은 이런 기분을 느끼며 누워있는 걸까. 새벽잠이 없는 게─물론 반 이상 습관이 된 것이기도 하겠지만─ 조금은 이해가 됐다. 낮잠은 보통 소파에서 자는 것 또한. 저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던 몇몇 날, 네일이 소파에 누워 색색거리며 자고 있는 모습이 문득 생각났다. 불편해 보여서 꼭 굳이 깨워 침대로 이끌거나, 깨우지 않고 제 손으로 침대에 눕혀주곤 했는데. 앞으로는 그냥 그대로 재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면 저도 같이 침대로 가 누워주던지. 아마 후자의 빈도가 높지 않을까,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일은 물수건과 물컵 하나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아까처럼 침대에 걸터앉자 그 부분이 푹 꺼지는 게 느껴졌다. 네일은 엘리후의 앞머리를 쓸어올려 차가운 물수건을 이마에 놓아주었다. 그 손길이 퍽 다정했더랬다. "물 필요해?" 가져온 잔을 제게 내미는 손에는 고개를 저었다. 네일은 저가 마시지 않고 침대 옆에 있는 서랍장 위에 올려두었다. 애초에 엘리후에게 주려고 떠 온 물인 모양이었다. 네일은 한 손으로는 엘리후의 가슴팍을 약하게 두드리고, 다른 손으로는 이불 안에 있던 엘리후의 손을 꺼내 꼭 맞잡았다.


  "뭐 또 필요한 건 없어?"

  "음."


  엘리후는 맞잡은 손을 끌어당겼다. 네일은 자연스럽게 가까이 끌려왔다. 거리가 가까웠다. 엘리후는 네일의 입술을 가볍게 한 번 제 입술로 물고 놓아주었다.


  "네가 필요한데."


  확 달아오르는 얼굴은 언제봐도 질리질 않는다. 엘리후가 웃음을 터뜨리자 귀 끝까지 붉어지고 만다. 네일은 그를 슬쩍 밀어내고는 마른 세수를 했다. 그러곤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이불을 치우고 생긴 틈으로 들어가 누웠다. 엘리후는 옆으로 움직여 그가 누울 만한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리하여 조금 쓸쓸하게 느껴졌던 2인용 침대가 채워졌다. 네일은 습관적으로 몸을 움츠려 엘리후의 품에 안겼다. 물론 아주 잠시 동안. 슬쩍 떨어져나가나 싶더니, 몸을 위로 움직여 저가 엘리후를 품에 안았다. 1cm 밖에 차이가 나지 않던 것에서 네일이 더이상 크지 않아 조금씩 키차이가 벌어지고는 있으나 아직은 얼추 비슷했다. 덕분에 아직은 이리 쉽게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등을 토닥이며 쓸어주는 손길은 아까 물수건을 이마에 올려주기 위해 앞머리를 쓸어줬던 손길보다도 더 다정했다. 낯설면서도 좋은 것이라, 엘리후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좀 자."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귓가에서 나른한 허밍으로 자장가가 들려왔다.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이내 엘리후는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그를 품에 안은 채로 얼마나 지났을까. 네일은 불편한 자세로 독서를 시작했다. 손으로 책장을 넘길 수는 없었으나, 마법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최대한 그를 건드리지 않도록. 그나마도 갑자기 엘리후의 열이 심해지는 듯하여 오래 가지 못했다. 차마 자리는 뜨지 못해 마법으로 새 물수건을 가져와 갈아주고─물수건을 적시는 것조차 제 손으로 하는 게 더 좋았다. 연인에게 해주는 거라면.─ 방금까지 그의 이마에 놓여 있던 물수건으로는 땀을 닦아주었다. 아픈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라, 아무리 감기라고 해도 자꾸만 걱정이 들고 초조해져버리고 만다. 전전긍긍하게 되고. 진심으로 사랑에 빠져 있다는 걸 자각하게 되는 느낌은 좋았으나, 역시 아프지 말았으면 한다. 열 때문인지 엘리후는 얼굴을 찌푸렸다. 네일은 그의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어 표정을 풀어주려 했다. 해줄 수 있는 건 그게 고작이었기에.


  "…가지 마, 네일."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서 저도 모르게 놀라버렸다. 열 때문에 잠꼬대를 하는 듯했다. 네일은 잠시 엘리후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입술이 열렸다. "옆에 있어줘." 잠긴 목소리는 제법 갈라져 있었다. 네일은 엘리후를 제 품에 더 소중히 안았다. 제 체향을, 온기를 더 짙게 느낄 수 있도록.


  "아무데도 안 가. 옆에 있을게."


  그러니까 아프지 마. 약하게 물기가 서려 촉촉하게 젖은 목소리로 네일은 웅얼거렸다. 가능하다면 대신 아파주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리 별 거 아닌 감기라고 해도. 혹여 다른 병에 걸린 건 아닐까 하는 괜한 걱정까지 들기 시작했다. 네일은 고개를 숙여 엘리후의 머리칼에 제 얼굴을 묻었다. 아프지 마. 다시 한 번 중얼거리자 엘리후의 얼굴이 조금 편하게 풀어졌다. 그 얼굴이 언뜻 보이자 네일은 슬쩍 제 품에서 엘리후를 떼어내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고 있는데도 목소리는 분명하게 전해진 모양이었다. 이내 네일은 희미하게 미소짓고는 투정 섞인 말을 더이상 내뱉지 않는, 앙다물린 입술에 제 입술을 가볍게 겹쳤다. 그러곤 엘리후를 제 품에 다시 끌어안고 저 또한 눈을 감았다. 내가 깨고, 네가 깨면 아픈 게 다 나았으면 좋겠다. 네일은 그리 생각하며 스르르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항상 네 곁에 있어. 완전히 잠에 들기 직전, 네일은 그리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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