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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네일] 인연의 증표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 때 한낮의 따스한 햇볕을 느껴본 건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네일은 정자세로 누운 채 한참이나 눈만 깜빡였다. 그러다가 고개를 돌려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았다.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곗바늘이 째깍, 하고 3 쪽으로 약간 움직였다. 새벽에 비교적 일찍 잠들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거의 하루의 반을 잠으로 보냈다고 할 만 했다. 한 번도 깨어나지 않고. 네일은 비척비척 몸을 일으켜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았다. 오래 누워만 있었기 때문일까, 영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편하게 자본 것도, 그 와중에 한 번도 깨지 않은 것도 드문 일이었더랬다. 이내 네일은 픽 웃고는 짧게 마른세수를 했다.


  많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지금 나. 문득 깨닫게 됐다.


  네일은 손을 뻗어 탁자 위에 올려둔 안경을 손에 쥐고, 캘린더 또한 집어 들었다. 안경은 쓰고 캘린더는 무릎 위에 올려둬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손을 뻗어 캘린더의 제일 앞으로 넘기자 2015년의 9월이 나왔다. 2015년은 참 이상한 해였다. 죽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살기로 마음먹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도 생겼다. …정말로, 정말로 이상하고 또 이상한 일인데. 그마저도 기쁘고 행복해서 마음속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낯설지만 좋은 느낌. 캘린더 한 장을 넘기니 10월이 나왔다. 네일은 제 심장 위에 손을 얹고 가만히 심장이 뛰는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한참을 더 넘겨서 다시금 2016년의 7월.

  며칠 전은 제 생일이었다. 졸업 직후 따로 집을 구해 나와 살게 됐다는 걸 전하면서, 갑작스레 생긴 정적을 틈 타 넌지시 7월 6일. 이라고 말했던 것은 일종의 변덕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고, “내 생일.” 하고 덧붙여 말하자 웃음을 터뜨렸었다. 그 웃음의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떠들썩한 생일은 아니었으나 인생 최고의 생일을 보냈다고 말 할 수 있었다. 그가 옆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너무나도 행복했으므로.

  그렇게 생일을 지나 18살이 되었다. 18살은 네일에게 있어서 조금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나이였다. 딱 이 나이 때에 형이 자신을 감싸다가 어머니와 함께 죽었다. 살아남은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형이 살아야했을 인생을 대신 살 것이라 마음먹고, 오로지 형만을 좇아 살았었다. 중간에 기분 나쁜 열등감으로 변질되었을 정도로 집착했다. 18살……. 그래서 이 나이를 넘어 살지는 못 할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아니, 생각해왔었다. 과거형을 쓰는 편이 더 맞는 표현이었다. 앞으로는 온전히 저만의 삶을 살아갈 터다. 어떤 형태로든 연인의 곁에서. 스무 살이 넘어도, 한창 아름답고 꽃다울 나이를 넘어도, 수명이 다해 죽을 그 때까지도.


  네일은 침대에서 일어나 길게 기지개를 켰다. 갑자기 하고 싶은 게 생겼다. 혼자 외출하는 건 산책을 빼면 오랜만이 될 듯싶다. 마법 세계는 별로고, 아마도 머글 세계 쪽으로 가야겠지. 무작정 필요한 곳을 찾아갈 생각이라, 시간은 최대한 많이 필요했다. 네일은 욕실로 쏙 들어갔다. 닫힌 문 틈 사이로 작게 물줄기 소리가 새어나갔다.


* * *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고,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네일이 찾아낸 곳은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시계방이었다. 다이애건 앨리나 호그스미드 쪽으로 갔으면 시계방쯤이야 헤매지 않고 바로 찾았겠으나, 마법사가 운영하는 시계방은 곤란했다. 그래서 잘 알지도 모르는 영국 한복판의 시내 여기저기를 헤짚고 다녔던 것이다. 네일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시계방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문에 달린 종이 딸랑, 하고 울리며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안으로 들어오자 약간 진한 향수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그닥 좋아하는 류의 냄새는 아니었다.


  “어서오세요.”


  맞이해준 건 인상이 좋은 여인이었다. 네일은 작게 고개를 까닥여 인사하고, 가까이 가 유리장 안에 있는 시계들을 물끄럼 쳐다보았다. 향수 냄새가 조금 더 진하게 났다. 아무래도 이 여인이 사용하는 향수의 냄새인 모양이었다. 한참 시계들을 둘러보던 네일은 저가 잘못 찾아온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내부의 모습, 그리고 진열되어있는 시계들에 네일은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표정을 무슨 의미로 읽었는지 여인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뭐 찾는 거라도 있으세요?”

  “……회중시계 제작을 맡기려고 했는데.”


  생각이 짧았다. 과학이 아닌 마법으로 살아가는 세계에서야 아날로그식의 시계를 사용하지, 머글 세계에서는 전자식 시계를 사용할 것 아닌가. 머글 세계에서 시계 제작을 맡길 거라면 마법 세계의 상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시계방이 아닌, 전문적인 시계 공방을 찾았어야 했다. 흘끔 보니 그녀 또한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로 유리장 위를 손톱으로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뻘쭘한 상황에 마른세수라도 하고 싶어졌다.

  네일이 다른 곳을 알아보겠다며 자리를 피하려고 할 때 즈음, 문득 그녀는 밝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제작을 할 만한 공방으로는 안 보이는 데도요?”

  “안쪽에 작긴 해도 공방이 있긴 있답니다. 수리용으로 쓰는 공간이긴 한데, 제가 제작은 할 줄 모르거든요. 대신 부탁드릴 만 한 분이 계셔요.”


  대신 가격이 조금 많이 나올 거예요. 엷게 웃으며 그녀는 저가 서 있던 유리장의 건너편, 더 안쪽으로 네일을 안내했다.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확실히 공방이라고 부를 수 있을 공간이 나왔다. “아무래도 회중시계 같은 걸 찾는 사람은 많이 줄었다보니 제작은 배워놓지 않았거든요. 원래 여기, 어머니가 운영하는 곳이었어요. 그 때는 주문 제작 의뢰도 받으셨던 거로 기억한답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그녀는 양해를 구하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참 밝은 여자다, 싶다. 처음 보는 손님에게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다 늘어놓고.

  네일은 눈을 돌려 작은 공방의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낡은 쇠 냄새는 적어도 그녀에게서 나는 진한 향수 냄새보다는 나았다. 여기저기 늘어져 있는 시계 부품들과 도구들을 둘러보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밝은 표정으로 네일에게 말을 붙여왔다. 아무래도 좋은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지금 바로 갈 테니 손님 잘 붙잡아두라고 하시네요.”


  그녀가 빙긋 웃자 네일도 어색하게나마 따라서 작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작은 의자 두 개를 더 가져와, 세 개가 된 의자들 중 하나에 앉았다. “생각해놓은 디자인은 있으세요?” 네일은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의자 두 개 중 하나에 따라 앉았다.


  그리하여 그 여름, 네일은 약 이주일 동안 내내 먼 듯 멀지 않은 머글 세계의 시계방으로 매일 같이 찾아갔다. 디자인 협의나 주문은 첫날 방문 때 다 끝내놓았으나, 세부적인 디자인에 있어서 주문자에게 직접 보여주며 조정하는 편이 완성도에 있어서 더 좋다는 말 때문이었다. 물론 제작 과정부터 완성까지 제 눈에 다 담아두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고. 시계 안쪽에 새겨질 이름을 직접 쓰기 위해서, 이따금 은판에 글씨를 새기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어차피 딱히 할 일도 없는 사람이라 뺀질나게 들르는 것쯤이야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렇다보니 진한 향수 냄새를 두르고 다니는 그 여인과 종종 사담을 나누기도 했다. 제작을 맡아준 그녀의 어머니 또한 종종 그 대화에 낄 때가 있었으나, 제작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이야기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지 말이 없었기에 보통은 둘만의 대화였다. 물론 사적인 이야기까지는 네일이 딱 잘라서 끌고 가지 않았고, 보통은 제작하는 시계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이를테면,


  “하나는 누구 주려는 거예요? 역시 애인?”


  이런 이야기들 말이다. 네일은 그 물음에 드물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계방을 찾은 네일은 억지로 웃거나 애써 웃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런 식으로 부드럽게 웃는 건 처음 보는 일이라 그녀는 조금 묘한 표정을 지여보였더랬다.


* * *


  얼마만에 보는 거더라. 엘리후는 네일의 팔을 끌어당겨 그를 제 품에 안았다. 네일은 딱히 바르작거리지도 않고 얌전히 연인에게 제 몸을 맡겼다. 이렇게 저를 뒤에서 끌어안을 때면 귓가에서 미약하게 들리는 숨소리가 있어서, 묘할 정도로 마음이 진정되곤 했다. 얼굴을 보지 못하는 건 아쉬웠으나 그래서 좋았다. 엘리후는 허리를 숙여 네일의 뒷목에 가만히 코를 묻었다. 아주 옅게, 눈치 채지도 못 할 정도의 낯선 향기가 났다. 네일에게선 찾아 볼 수 없었던, 동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향기가. 향수 냄새였다.


  “네일.”

  “응?”

  “요새 누구 만나고 다녀?”


  그 말을 듣는 순간 네일은 심장이 덜컹 할 뻔 했다. 아니, 확실하게 덜컹 했다. 엄연히 따지자면 만나고 다닌다기 보다는 시계 제작을 위해 만나는 것뿐이었으나, 어쨌든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맞는 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어?” 하며 얼빠진 소리만 낼 뿐 딱히 답을 내놓지 않고 있는 네일의 뒤통수만 물끄럼 바라보며 엘리후는 자세를 바로 하고 고개를 숙였다. 바로 닿는 네일의 정수리에 코를 묻고 두어번 부비자 어쩐지 낯선 향기가 더 진해지는 느낌이었다. 아주아주 미약하고 딱히 유쾌하지는 않은, 그런 감각. 네일에게는 정말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류의 향기였기에 그가 쓰는 향수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한참을 입술만 달싹이던 네일은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솔직히 말할까. 선물은 조금 서프라이즈로 주고 싶은데. 그럼 어쩌지. 엘리후에게 들키지 않을 거짓말을 할 자신은 전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후는 손을 뻗어 네일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입술을 깨무는 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야속해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내가 괜히 이상한 생각 하게 될 것 같은데. 여자 향수 냄새가 나. 너한테서.”

  “그런 거 아냐.”


  그런 말을 들어버리니 저마저 괜히 불안해지지 않나. 저가 갖고 싶어져서 제작을 의뢰한 거기도 했지만 동시에 선물해주고 싶어서─동시에 회중시계 정도는 커플로 맞춰서 갖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나, 아니. 정확히는 맞춰서 가지고 있고 싶어서─ 한 일이었다. 그러니 어느 정도는 연인을 위해서도 있는데, 괜한 오해가 생기는 건 싫었다. 네일이 시선을 저 쪽으로 돌리며 단호하게 말하자 엘리후는 푸스스 웃었다.


  “알아.”


  그 대답까지 듣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네일은 제 팔을 들어 킁킁, 하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시계방이 향수 냄새로 가득 차 있었던 게 생각났다. 처음이야 거슬렸지, 지금은 적응 됐다보니 생각을 하질 못 했다. 그 냄새로 가득 찬 공간에 있는데다가, 향수를 쓰는 당사자와 매일같이 만나고 있으니 냄새가 안 배기가 더 힘들었을 터다. 그렇다고 그리 강하게 나는 것도 아닌데. 알아차린 걸 보니 제 연인이 대단하기도 하고, 그만큼 저에 대해 모든 것에 있어서 신경이 곤두서 있다는 이야기니 기분이 좋기도 하고.

엘리후는 네일의 고개를 잡아 돌리고 제 고개도 슬쩍 틀어 입술을 맞대었다. 혀를 내밀자 닫혀있던 입술이 부드럽게 열리고, 그 안의 혀를 끄집어내 제 혀와 얽히게 했다. 일부러 타액이 섞이는 소리를 노골적으로 내자, 네일이 귀 끝까지 붉히는 게 보여서 엘리후는 속으로 쿡쿡 웃어버렸다. 이내 작게 뜨고 있던 눈까지 감고, 키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받아들이는 것마저 서툴러서, 가만히 있다가도 적극적으로 응해보려고 혀를 얽는 시늉을 하는 게 마냥 귀여워보였더랬다. 그 시늉이 저가 하는 키스와 상당히 많이 닮아있기에 더더욱.

  숨이 막힐 즈음이 되어서야 엘리후는 입술을 떼어냄과 동시에 여전히 잡고 있던 네일의 고개도 놓아주었다. 그제야 네일은 슬며시 몸을 돌려 엘리후의 허리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엘리후 또한 마찬가지로 네일의 허리에 팔을 둘러 마주 안았다. 향수 냄새. 의식하고 나니 쓸 데 없이 더 선명하게 느껴져선, 엘리후는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역시 안 되겠다.”


  어, 하는 사이에 네일은 뒤쪽의 소파로 밀려 반 강제로 눕게 됐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만 깜빡이며 저를 올려다보는 네일과 가만히 눈을 맞추며, 엘리후는 빙긋 웃어보였다. 채 1년을 채우지 못 한 연애 기간, 확실히 이런 쪽으로 눈치가 키워지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모양이다.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었고, 사실 이대로도 귀여우니 마음에 들었지만.

  엘리후는 고개를 숙여 툭 튀어나온 목젖에 짧게 입을 맞추고, 그대로 내려가 목 언저리에 입술을 대었다. 입을 벌려 약하게 물고 빨아들이자 붉은 자국이 남음과 함께 네일이 몸을 떨었다. 제 머리채를 잡으며 밀어내는 손을 맞잡아 내리며, 엘리후는 고개를 들어 네일과 눈을 맞췄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몸은 오로지 제 손으로만 온전히. 이렇게 숨김없이 이리 솔직하게 떨린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행여나 남의 손길이 닿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남의 손이 닿는다는 것부터 불쾌한 일이었고, 그래서 하는 일종의 영역표시 같은 것이었다. 불필요할 정도의 짓궂음을 보이는 행위이기도 했다.


  “네가 실수한 거니까, 불만은 없지?”

  “……으.”


  대답 대신 작게 신음하며 네일은 잡히지 않은 한 쪽 팔로 제 얼굴을 가려버렸다. 물론 순순히 그렇게 둘 엘리후는 아니어서, 금방 그 팔을 치우고 다시 눈을 맞추며 웃어보였다. 이내 다시금 제 목에 얼굴을 묻고 흔적을 남겨가는 걸 보며 네일은 살짝 눈을 감았다. 아까와는 달리 부드럽게 연인의 머리칼을 잡고, 움직이는 데에는 방해되지 않도록 약하게 쓰다듬었다. 목 언저리에 닿는 혀와 숨은 그 자체로도 노골적이어서, 단순한 심술이 아니라 섹스의 전초전이라는 것쯤이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음대로 하라지. 속으로 중얼거리고 네일은 맞잡고 있는 손에 꽉 힘을 주었다.


* * *


  그리하여 10월을 며칠 정도 앞둔 9월의 끝자락. 거슬리는 곳 없이 깔끔하게 마감 처리까지 끝난 한 쌍의 시계를 네일은 집까지 가져와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손을 뻗어 겉면을 쓸어내리자, 세밀하게 새겨진 그림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하나에는 여름날의 해바라기가, 다른 하나에는 겨울날의 나무가. 딱히 별 이유는 없으나 나름대로의 의미를 담았다. 시침의 끝에는 각각 푸른색 보석과 붉은색 보석을 작게 하나씩 박아놓았다. 분침의 끝에는 그보다도 더 작은, 반대색의 보석을 박아놓았고. 그리고 뚜껑의 안쪽, 오로지 서로만이 볼 수 있을 공간. 그곳에는.



2015. 10. 15

Elihu Alfieri

Neil Claes



  제 손으로 직접 그리 새겼다. 그 작업까지 마치고 나자, 정말로 완성되었구나. 하고 실감이 났다. 깔끔하게 새겨진 이름까지 손끝으로 쓸어보고, 네일은 두 시계의 뚜껑을 덮었다. 제 것은 겨울의 나무가 그려진 것. 주머니에 소중하게 넣어두고, 다른 하나는 상자에 다시 잘 넣어놓았다. 언제쯤 주는 게 좋을까. 작년에 챙겨주지 못 했던 생일에? 너무 많이 남았는걸. 그 전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참지. 네일은 속으로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결국 오래는 기다리지 못하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 불현듯 예감이 들었다. 1년이 되는 그 날에, 주게 되겠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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