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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바] Wither

청년은 전장에서 마주치는 적에게 있어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 자신이 검과 총을 빼들고 직접 전투에 임하든, 후방에서 지휘를 담당하든 그 흑발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본 적은 곧바로 패배와 죽음을 예감한다고. 물론 청년 본인부터가 검에서든 총에서든 손에 꼽히는 실력자였고, 뛰어난 지략을 가진 지휘관이었지만 적군을 더더욱 공포로 몰아넣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 옆에 그림자마냥 붙어 다니는 흉견. 그란데레니아의 충실한 군견이었으나 동시에 한사람만의 충견. 맹우의 이름으로 충성을 약속한 아이자크 로스바르드. 그리고 그의 제어권을 유일하게 쥐고있는 청년, 에바리스트 바르트.

까만 머리칼이 식은땀에 살짝 젖어들었다. 삐딱하게 임시 막사의 벽에 기댄채 잠들어있는 에바리스트의 미간이 문득 찌푸려졌다. 청년은 악몽을 꾸고있었다. 옅은 숨소리가 어둠에 잠긴 공간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유독이나 큰 빗소리가 텅 빈 막사 안을 가득 메웠다. 평소의 에바리스트라면 그 빗소리에도 쉽사리 잠을 청하지 못했겠지만, 아무리 그여도 고된 여정에 꽤나 지쳐있었다. 비록 썩 좋지 못한 꿈을 꾸고있는 듯 했지만 그로서는 실로 오랜만인 단잠이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숙면을 방해해오는 악몽 덕에 에바리스트는 머지않아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옅은 한숨이 한기에 새파래진 입술 틈새로 새어나왔다. 몇 번 눈을 깜빡이던 그는 고개를 숙여 제 몸에 덮여져 있는 담요를 쳐다보았다. 잠들기 전에는 덮고 있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제 몸을 사리지 않고 남에게, 특히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줄 이는 단 한사람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묘한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한 에바리스트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남이고 자신이고 나발이고, 지금은 아이자크와 단 둘이서 단독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지. 그런 것을 잊다니. 평소의 그답지 않았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안경을 찾기 위해 주변을 더듬거렸다. 시야가 어둠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안경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일단 주위를 밝혀야 할 것 같았다. 잠들기 전, 하나뿐인 등불을 자기가 가지고 있겠다고 한 아이자크가 금방 생각났다. 자신이 잠에서 깨어버렸다고 그의 잠까지 깨우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오래 있는 것도 썩 좋지는 못하다는 판단을 했다. 비가 그치면 곧장 다시 떠나는게 좋을 것 같았다.

“아이자크.”

유년 시절부터 오랜 시간동안 입에 담아왔던 맹우의 이름을 작게 읊조렸다. 허나,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에바리스트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면 자다가도 깨어나는 아이자크였다. 그렇기에 괜히 초조해져서 에바리스트는 제 몸을 덮고 있는 담요를 꽉 쥐었다. 꿈자리도 썩 좋지 못했다. 에바리스트는 바닥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참을 쪼그려 앉은 상태로 잠에 들어서일까, 온 몸이 삐걱거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칠흑 같은 어둠. 자칫하면 빨려 들어가서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 에바리스트는 고개를 두어번 저었다. 여러모로 좋지 못했다. “아이자크 로스바르드.” 그 풀네임을 불러보지만 여전히 따르는 대답은 없다. 미동도 없이 잠겨있던 금빛 눈동자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휘청거리며 에바리스트는 밖으로 나갔다.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잔뜩 낀 먹구름 때문에 달빛조차 비추지 않았다. 최악. 작게 중얼거리며 에바리스트는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비는 천천히 그의 몸을 적셔갔다. 임무에 나서기 전부터 좋지 못했던 몸상태였다. 금방 콜록, 하고 기침이 나왔다.

"에바?"

정말로 평소의 에바리스트 바르트 답지 못했다. 그는 언제나 날카로운 가시나무숲을 제 주변에 치고 살아온 남자였다. 그 안으로 들어서는 것은 그의 허락이 있지 않는 한 무리였고, 그 허락을 받을 수 있는 사람조차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에바리스트는 어딘가가 무뎠다. 굉장히 중요한 나사 하나가 빠진 느낌이었다. 부르는 목소리조차 듣지 못한듯 에바리스트는 미동하나 없었다.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인 아이자크는 평소와 다른 그 모습에 적지않게 당황했다. 다시 한번 그를 부르려다가 이내 고개를 젓고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가 그를 끌어안을 뿐이었다. 그제야 푹 숙여져있던 에바리스트의 고개가 들렸다. 평소였다면 뭐하냐며 밀어냈을텐데, 살짝 기대오는 것이 정말로 평소의 그답지 않았다.

"왜그래, 에바. 무슨 일이야?"

에바리스트는 별 대꾸없이 고개만 저었다. 그는 당최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아이자크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이자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인지 말을 해주어야 어떻게 해주든 할텐데. 일단 그의 몸상태를 보아 빗속에 있는 것은 썩 좋지 못할 것 같았다. 이미 감기걸린 것 같은데. 걱정이 되어서 그를 데리고 들어가려했지만 에바리스트는 요지부동이었다. 자신이 깊이 잠들어있던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걸까. 본인이 묵묵부답이시니 도무지 아이자크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점점 떨어져가는 체온를 잡기 위해 그를 더 꽉 끌어안을 뿐이었다. 계속 답지않게 행동하는 그가 걱정이 되었다.

"아이자크 로스바르드."

에바리스트에게 듣는 호칭으로는 익숙한듯, 낯선듯한 풀네임. 아이자크는 에바리스트를 바라보았다. 맨 눈의 그를 이런 식으로 아무런 말없이 마주하는 것은 꽤나 오랜만인 것 같았다. 한참이나 에바리스트의 말이 없자 아이자크는 몇 번 목을 가다듬고는 그 귓가에 상대가 했던 것처럼 에바리스트 바르트, 하고 속삭였다. 자신의 풀네임을 듣는 것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의 풀네임을 입에 담는 것은 더 어색했다. 아이자크가 살짝 미소지었다. 에바리스트는 잠시 시선을 내리깔고 입술만 두어번 달싹였다.

"가지마."

그렇게 말한 뒤에도 이내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목소리로 가지 말아줘, 하고 에바리스트는 중얼거렸다. 아이자크는 그런 에바리스트를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다가 가늘게 떨리고있는 그 눈동자에 눈을 맞추어 조심스럽게 입술을 반사적으로 감기는 그 눈 위에 가져다대었다. 어딘가 위태로워보여서. 천천히 입술을 아래로 미끄러져내려가게 해 그 입술에 입맞추었다. 그 말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과연 이 남자는 이런 식으로 어디까지 자기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싶은걸까. 오랜 시간을 에바리스트의 뒤에서, 이따금 가장 가까운 옆에서 그를 지켜보았던 아이자크로서는 이제 그만 그가 나아가지 못하도록 잡고싶었다. 빗물이 섞여들어 썩 좋은 느낌의 입맞춤은 되지 못했지만, 아이자크는 별 상관 없다는듯 혀를 얽었다.
─사실은 벼랑 끝에서 그가 떨어져버릴까봐 두려웠다.

"가지않아."

네가 그런 식으로 떨어져버리도록 두지 않아. 숨이 막힐 때 즈음 입술을 떼어내며 아이자크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무어라 말하려는 에바리스트의 입술을 다시 입맞춰 막아버렸다. 네 말은 필요치않아. 속으로 그렇게 으르렁거리고, 아이자크는 손을 뻗어 자신을 응시하고있는 눈을 감겨버렸다. 네가 떨어지는건 내가 용납하지않아. 언제나 너와 가까운 곳에 머물면서, 네가 떨어져버리려 한다면 내가 잡을거야. 누군가가 너를 벼랑의 끝으로 몰아간다면, 너를 떨어트리려한다면 그 사람을 물어뜯어버릴거야. 있지, 에바.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건 너와 함께 있는거고, 두번째로 즐거운건 네 앞을 막는 모든걸 산산히 찢어버리는거야. 닿지는 않겠지만 확실히 느껴질 말. 가늘게 떨리는 에바리스트의 아랫입술을 물어뜯으며 아이자크는 씩 웃었다.

"나는 언제까지나 여기에 있을거야, 에바. 네 옆에."

*

으레 권력다툼이라는 것이 다 그랬다. 남을 짓밟고 나아가는 것이야 당연하며 비일비재한 일이었고, 서로가 눈 앞에 없더라도 견제해야하는 심적으로도 신적으로도 피곤한 싸움이었다. 그런 진흙탕에 자신의 맹우는 뛰어들었더랬다. 그것이 그의 오랜 숙원이었고, 그 정점에 이르르는 것이 그의 야망과 직결되어있는 것이기에 아이자크또한 잠시의 고민도 없이 전장에 뛰어들었다. 혈혈단신으로 더 높이 올라가려하는 에바리스트 바르트의 유일한, 그리고 가장 든든한 조력자로써. 제국의 충실한 군견을 가장하였으나 어디까지나 아이자크 로스바르드는 단 하나뿐인 맹우의 충견이었다. 맹우의 앞을 가로막는다면 언제든지 지금 충성하고있는 제국까지도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있는 충견. 그리고 그의 그림자.

"비, 언제쯤 그치려나."

괜시리 제 애검을 꼭 끌어안으며 아이자크가 중얼거렸다. 그것은 두 사람의 제국에서의 입지가 어느정도 굳어졌을 때 에바리스트가 딱 두자루를 맞춤 제작해서 하나를 아이자크에게 건네준 것이었다. 평소 전쟁터에 나설 때에는 그것을 들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단 둘이 있을 때에만 아이자크는 그 검을 손에 잡았다. 쉽게 날이 무뎌질 검은 아닌데, 아이자크는 그것이 마치 규칙인 양 행동했다. 에바리스트는 그의 말에 살짝 열린 문 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빗줄기가 세차다. 도무지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직 여정이 먼데, 괜히 초조해진 듯 에바리스트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다 상처난다. 안그래도 내가 아까 뜯었었는데."
"…그랬었지."

아이자크가 씩 웃으며 해온 말에 에바리스트는 제 입술을 가만히 만지작거렸다. 콜록. 부쩍 잔기침이 잦아졌다. 멍청하게 비를 맞고 서 있었던 탓일 것이다. 아이자크는 미소를 지워내고 그런 에바리스트를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괜히 무리하지 말고 그 혼자 돌려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을텐데. 둘이서 함께 오긴 했지만, 사실상 둘 중 한명만 있어도 충분히 완수 가능한 간단한 작전이었다. 하지만 아이자크를 돌려보냈으면 혼자 돌려보냈지, 죽어도 자신은 돌아가지 않을 남자가 에바리스트 바르트였다. 그 자존심에 직결된 문제이기도 했지만, 아마도 그동안 쌓아온 명성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나는 것이 더 싫을 것이다. 아이자크는 속으로 두어번 고개를 젓기만 했다.

"춥지않아?"

조심스러운 물음에 에바리스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이자크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존심 세우지말고 솔직해주면 더 좋을텐데. 에바리스트는 그런 것 까지도 무리일정도로 벼랑 끝으로 몰려가고있는걸까. 아이자크는 벽에 기대있는 에바리스트를 제 쪽으로 끌어당겨 가만히 어깨에 기대게 했다. 에바리스트도 딱히 싫진 않은 듯 그대로 슬며시 눈을 감았다. 그러고보면 이렇게 나란히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도 꽤나 오랜만인 일이었다. 언제나 바빴었으니까.

"아까 무슨 생각 했어?"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잠들기라도 한걸까. 충분히 그럴만도 했다. 피곤이 누적되어있을테니가. 슬며시 어깨를 껴안으려하자 팔이 쳐내진다. 까칠하긴. 아이자크가 피식 웃었다. 하기사, 에바리스트가 그의 말을 야금야금 못들는 척 무시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 본인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은 언제나 교묘하게 회피하는 그였으니까. 정치판에서의 습관이 일상까지 넘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 곤란한 질문을 피하며 다른 쪽으로 화제를 끄는데, 그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달변가였으니까. 그러니까 윗사람들에게 숙이는 듯 숙이지 않는 듯 하면서도 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것이겠지. 새삼 아이자크는 자신의 맹우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했다. 완벽, 유능, 무결. 그럼에도 자신과 함께 있을 때에는 어딘가 허술해지는, 그런.

"…아무 생각도."

뒤늦은 대답에 아이자크는 괜히 억지로 그 어깨를 끌어안았다. 길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아이자크의 귓가를 간질였다. 거짓말은 좋지 않아, 에바. 속으로 작게 속삭이며. 굳이 그가 말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을 캐묻고 싶진 않았다. 다시 빗소리만이 막사 안을 메웠다. 기분 나쁜 정적. 몸도 마음도 내리는 비처럼 축축 늘어지는 것만 같았다. 사실은 두사람 모두 지쳐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확히는 지쳐가고 있는 쪽은 에바리스트였고, 그것을 옆에서 가만히 바라보아야만 하는 아이자크도 따라서 지치는 것이겠지. 지금까지 계속 앞만 보며 달려왔다. 숨을 고를 틈 정도는 만들어도 나쁘지 않을텐데.

"가끔..."

꺼질 둣한 목소리로 에바리스트가 중얼어렸다. 금방 멈추어버린 말을 재촉하듯 아이자크가 응, 하고 작게 대꾸했다. 어느새 제 품 안에 반 강제로 기대게 된 청년은 눈을 감고있었다. 자신에게만 보여주는 이러한 무방비한 모습. 그 모습을 보고있자면 기분이 좋아지긴 했지만, 한 편으로는 불안했다. 언젠가는 자신에게조차 이런 모습을 숨기려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맹우는 시간이 지날수록 비인간적으로 변하고있었다. 제 감정을 숨기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었고, 눈동자에서조차 기분을 읽어낼 수 없게 되고 있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그를 시선 안에 가두었다. 언제라도 제 시야 안에 그가 담기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목 언저리에서 느껴지는 규칙적인 숨결. 그것에 안심하며 아이자크는 눈을 감았다.

"아이자크."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자신의 이름을 불러오는 목소리에 아이자크는 다시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눈에 띄게 움찔하며 읏, 하고 작게 신음했다. 바로 눈 앞에서 느껴지는 옅은 숨결에 아찔해지는 것만 같아서- 아이자크는 다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정말로, 이제는 에바리스트 바르트답지 않은 행동의 절정이었다. 아이자크는 마른 침만 연신 목 뒤로 넘겼다. 아이자크 로스바르드. 가물가물한듯 흐릿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아이자크의 입술 틈에서 옅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자제하는 것도 한계라는게 있는데. 게다가 에바리스트 쪽에서 먼저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더더욱. 아이자크는 슬며시 실눈을 떴다. 그러니까, 너무 가깝다고... 금방이라도 닿아와 겹칠 듯한 옅은 숨결에, 안경 너머에서 자신과 눈을 맞추고있는 금색 눈동자에 정말로 아찔해지는 것만 같았다.

"가깝다고, 에바... 이건 너무,"

조용히 하라는 듯 아이자크의 입술에 손가락 하나를 가져다 대는 에바리스트는 아이자크에게 있어서 그 이상으로 자극적일 수가 없었다. 키스해올듯 말듯한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애간장만 태우는 느낌에 아이자크가 작게 으르렁거렸다. 자초한건 너야. 일깨워주듯 작게 귓가에 읊조리며 아이자크는 에바리스트의 윗입술까지 거칠게 물어뜯었다. 그 행동에 미간을 찌푸렸지만 말릴 생각은 없는듯 에바리스트는 아이자크의 목에 팔을 감아왔다. 어디까지나 물어뜯고 숨을 탐할 뿐인 저열한 키스. 평소의 에바리스트라면 당장이라도 혀를 깨물고 끊어버렸을 방식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은 그쪽에서 더 갈구했다. 영문은 알 수 없었지만 목줄을 쥔 쪽에서 원해온다면야 언제든 응해줄 수 있는 아이자크였으니. 조금씩 틈이 생길 때마다 겨우겨우 하아, 하고 내쉬는 받은 숨결을 아이자크는 즐겼다.

"...언제나 네 멋대로야."

급하게 입술을 떼어내며 아이자크가 중얼거렸다. 에바리스트는 그런 그를 살짝 내리깐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도통 속내를 알 수가 없다. 아이자크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 에바리스트의 어깨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자제해야하는 상황인데. 그것을 자신보다도 에바리스트가 더 잘 알고있을텐데. 관계의 선이 애매해지는 것은 싫다며 밀어내기만 했던 그가 갑자기 이러는 이유. 다짜고짜 가지 말라며 자신을 더 꽉 잡으려 했던 이유. 그 때의 눈동자와 똑같이 가늘게 떨리고 있는 저 눈동자. 아이자크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에바리스트가 당장이라도 떨어져버릴 듯 아슬아슬하다는 것만을 느낄 뿐이었다. 다시 한숨을 내쉬고 아이자크는 에바리스트를 바라보았다. 슬쩍 제 안경을 벗어내며 에바리스트가 작게 속삭였다.

"섹스하자, 아이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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