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석들을 보는 프리드리히의 눈빛은 조금 다르다. 리즈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자신과 함께 하던 시절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은 프리드리히는 리즈에게는 낯설었고, 저들에게는 친숙했다. 그것에 대해서 리즈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그들보다 먼저 그와 만난 것은 자신인데, 어째서 자신이 모르는 그의 모습을 그들이 알고있는걸까. 그것에 대해 자그마한 불만 하나를 품고 있을 뿐이었다. 불만이라고 하기도 뭐했다. 그저 조금 묘한 감정같은게 피어오를 뿐이었으니까.
레지멘트. 아버지를, 마을을 뒤로하고 향한 그곳은 떠올리자면 아릿하기도 한 곳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틈에서 프리드리히를 만났다. 자신의 끝을 그가 보지 못했고 그의 끝을 자신이 보지 못했다. 죽을 때는 꼭 함께 있자는 약속은 자신이 불태워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허나 이제와서는 쓸데없는 상념이다……. 그가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지부터가 미지수였으니. 이 세계에서 우리들은 대부분의 기억을 소거당했으니까. 리즈가 자신에 대해서, 레지멘트에 대해서 떠올린 것도 근최근의 일이었다. 그러나 리즈가 기억하고 있는 리즈의 레지멘트와 프리드리히와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붕괴 전의 레지멘트는 거리가 멀었다. 2기와 15기의 격차는 굉장히 컸다. 사실 이 세계에 온 그들은 레지멘트와는 거리가 굉장히 멀었기에, 프리드리히가 아니었으면 그들이 레지멘트였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프리드리히가 직접 가르친 제자들. 그 점에서 그 둘은 리즈에게 묘한 느낌을 스멀스멀 피어오르게 해주었다.
"선배, 그거 알아요?"
지시자를 따라 나서는 에바리스트와 아이자크를 보며 프리드리히가 입을 열었다. 리즈는 그의 목소리에 대답 않고 그를 바라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프리드리히는 무엇이 즐거운지 꽤나 들뜬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 둘을 보고있을 때면 프리드리히의 입가에는 언제나 미소가 걸쳐지곤 했다. 스승, 이라는건가. 리즈로서는 잘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이전의 제자였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저렇게 변한 모습이 아닌가. 그들의 레지멘트 시절 모습을 알 수 없는 리즈였지만, 프리드리히가 어째서 그들에게 저렇게나 정을 느끼는 것인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면 그저 이런 세계에서 다시 재회했다는 그런 반가움 류의 감정때문일까.
"저 둘. 14살 때도 저렇게 지겹게 붙어다녔어요. 그리고 15살 때도, 16살 때도, 17살 때도." "그게 뭐?" "아…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드네요. 난 저 아이들의 17살이었던 시절까지밖에 보지 못했는데, 저렇게나 커버렸다니."
그리고 종종 이런 식으로 프리드리히는 제멋대로 감상에 젖고는 하는 것이었다. 리즈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옛날을 추억하는 프리드리히는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교관직을 맡았던 프리드리히는 레지멘트에 있던 그 시절 중 가장 행복해했다고 이전에 들었었다. 자신은 알 수 없는 교관 프리드리히.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후배 프리드리히. 그 갭에 대해서 리즈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온통 쓸데없는 생각 투성이였다. 그런 그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프리드리히에게 리즈는 하던 얘기나 계속 해봐, 하고 약간 가시 돋친 목소리로 쏘아붙혔다.
"어느정도였냐면요, 저 녀석들의 선배 중 하나가 사귀는 사이냐고 비아냥거렸을 정도였어요."
순간적으로 리즈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이, 그거. 괜찮은거냐." "뭐, 사실은 정말 사귀고있는거 아닐까나."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프리드리히에 리즈는 넋이라도 나갈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버렸다. 아무리 아끼는 제자 둘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기본적으로 그것은…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의 이야기지만 꽤나 불건전한 사이가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한 리즈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생각부터가 자폭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프리드리히와 자신의 관계도 그렇게 치면 썩 건전한 사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 사실은 꽤나 미묘한 사이였다. 선후배간이긴 했지만 존재해서는 안되는 감정이라는게 있었다. 그래서 생전에도 굉장히 애매모호한 관계선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세계에 와서 더더욱 그렇게 되어버렸다. 서로에게 서로가 무슨 존재였는지, 잊은 그 시점부터가 문제였을 것이다.
“그래도 은근히 잘 어울리지 않나요. 오히려 어렸을 때가 더 잘 어울렸었는데. 아이자크 녀석은 어쩐지 옛날이랑은 딴판이 되어버려선…”
말을 끊은 프리드리히는 혀를 찼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 지겹게 수다를 떨어대던 것을 멈추었다. 리즈도 잠시 그의 말로 인해 생각에 빠져들게 되었다. 프리드리히는 변했나? 프리드리히가 보는 자신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리즈의 마지막 모습을 본 것이 프리드리히였다. 그의 기억 속 리즈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리즈의 기억 속 프리드리히는? 기본적인 것들은 우스울 정도로 똑같았다. 쓸데없이 수다스러운 것도, 특유의 명랑한 성격도. 이런 세계에서도 프리드리히는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확히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던 틈에 혼자 세월을 지낸 프리드리히는 어딘가 이질감 같은걸 들게 했다.
묵묵히 점점 멀어져가는 아이자크와 에바리스트의 뒷모습을 보던 프리드리히에게 리즈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넌 저 녀석들이 이상하지도 않냐? 너도 모르는 사이에 훌쩍 커버렸고, 네 기억과는 딴판으로 변해버렸잖아. 사실은 그냥 닮은 동명이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해본 적 없어?” “그렇다기엔 저 아이들도 기억이 있잖아요.” “그건 배제하고 말이야.”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리즈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던 프리드리히는 고민에 빠진 표정을 했다. 리즈는 영 무심한 표정으로 그런 프리드리히를 바라보다가 묘하게 변하는 그의 표정에 속으로 혀를 찼다. 어딘가 어두워지는 표정. 아끼는 제자들. 존경했던 스승님. 처음에는 서로를 기억조차 못했지만 각별한 사이였을 그들. 아마 서로를 잊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꽤나 아픈 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교묘하게 찔러버렸으니, 프리드리히의 기분이 썩 좋지는 못할 수밖에. 리즈는 사과라도 해야하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입을 열려 했다.
“선배는 제가 이상해요?”
그리고 오히려 역으로 질문해온 프리드리히에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선배 말대로 제가 기억하는 저 아이들과 지금의 저 아이들은 딴판이죠. 그런데 그건 선배가 저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잖아요?”
핵심을 짚혔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프리드리히는 어떻게 안 것인지. 못보던 사이에 독심술이라도 배운건가. 사실은 그런 말이 하고 싶었다. 자신이 모르는 후배들의 이야기를 즐겁게 하는 그. 자신이 사라진 이후 그의 이야기. 모든 것이 이질적일 수밖에 없는 리즈였다.
“이상해요?”
대답을 재촉하는 되물음에 리즈는 작게 욕지거리를 뱉었다.
“...젠장. 솔직히 말하자면 안그런 것도 아니다만.”
프리드리히는 잠시 리즈를 힐끔 쳐다보다가 생긋 웃었다.
“괜찮아요. 제 기억 속의 선배와 지금의 선배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으니까.”
그 미소에 어쩐지 안심이 되는건 어째서일까. 그 말에 마음이 놓이는건 어째서일까. 그를 보고있자면 마음속에서 활활 불타던 분노, 억누르느라 고생했던 그것이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왔다. 생전에도 그랬었다. 사실 이곳에서 서로에 대한 기억이 전무한 채로 마주쳤음에도 그런 기분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프리드리히는 리즈를 안심시키는 존재였다. 하지만 사실 감정을 그렇게 정리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감정을 서술하려면 조금 더한 말들이 필요했다. 두 사람 모두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때도, 지금도 선배는 멋지고 이렇게 귀여운 면이 있는걸.”
그리고 이렇게 조그맣고요. 리즈의 머리에 손을 탁 얹으며 프리드리히가 웃었다.
“...너.” “괜찮아요, 선배. 선배는 리즈고 전 프리드리히니까.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가 전혀 딴판이라고 해도- 물론 그럴 리는 없지만, 기억은 새로 만들어 가면 되잖아요?”
그래. 그것은 절대로 틀린 말이 아니다. 그는 변하지 않았다. 그저 리즈가 알 수 없는 세월만이 둘의 사이에 존재했을 뿐이다. 프리드리히가 슬쩍 리즈의 손을 잡았다. 살짝 붉어진 얼굴을 반대쪽 손으로 가린 채인 리즈는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싫은 것은 아니었다.
“이 곳에서는 다시는 헤어질 일이 없으니까... 계속 함께니까.”
리즈는 그 눈에서 약간의 슬픔을 읽어버렸다. 프리드리히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E중대의 전멸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소용돌이에게 먹혀버린 E중대. 그리고 리즈를. 그 날의 리즈는 프리드리히를 놓고 훌쩍 떠나버렸다... 리즈는 어쩐지 참을 수 없게 되어버려서 말없이 프리드리히를 끌어당겨 안았다. 그리고 작게 그의 등을 토닥였다. 프리드리히를 위로하며 동시에 자신도 위로받는다. 어찌보면 조금 이기적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위로를 위해 그를 위로한다. 하지만 그런 이기적인 리즈여도 프리드리히는 용서할 것이다. 그렇게 믿었다. 그렇게 믿고 전생에서부터 함께 해왔다.
“괜찮아.” “리즈 선배.” “네 말대로 이곳에서 우리들은 무한하니까.” “네.” “괜찮아, 이제는.”
그리고 미안해. 작은 속삭임이 프리드리히의 귓가에 들려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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