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들려온 것은 익숙한 목소리였다. 클라우드는 읽고 있던 일기장을 탁, 소리나게 덮었다. 레이븐은 그런 그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별 생각 없이 클라우드의 옆에 섰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 잠시 레이븐이 어떻게 찾아왔는지에 대해 고민하던 클라우드는, 이내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고층 빌딩 위는 레이븐이 선호하던 장소가 아니었던가. 밤 늦은 통신을 할 때도 레이븐은 언제나 빌딩의 옥상이나, 건물의 위에 앉아 있었다. 종종 그 위를 걸어다니곤 하며 위험한 곡예를 하기도 했고. 자신을 닮는 것은 그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그를 닮는 경우도 있었구나 싶었다. 실제로 최근 클라우드는 본부에서 나와, 무작정 높은 곳을 찾아 멍하니 도시의 야경을 보고 있는 때가 잦아졌다. 그것은 비단 최근의 심란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가한가봐?" "그럴 리가." 그리고 그럴 때면 언제나, 지금처럼 레이븐이 찾아오곤 했다. 이 도시는 레이븐의 영역, 특히 고층 건물 위는 더더욱 그러했다. 둥지를 빼앗긴 것이나 다름 없는 까마귀는 까칠하게 굴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븐은 군말 없이 클라우드에게 말을 붙히곤 해왔다. 클라우드는 레이븐이 철저히 단독 행동을 하는 이유가 혼자가 편해서 라고 생각했기에 약간 이해가 안되는 면이었다. 생각을 수정할 필요성을 최근 들어서 많이 느끼게 되는 듯 했다.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할 정도의 시간. 몇 년을 레이븐과 함께 했던가. 20년이 가까이 되는 세월이었다. 비록 시간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 호문클루스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너도 변한 것인지. 클라우드는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레이븐을 바라보았다. "요새 안들어간다고 들었는데." "호출이라도 있었어?" 레이븐은 고개를 저었다. 본부로 돌아가지 않은 것이 오래 된 것은 사실이었다. 이유를 묻는다면, 그저 변덕이었다. 외근직인 레이븐이면 모를까, 클라우드가 돌아가지 않는 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긴 했다. 따로 내려온 임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호문클루스 클라우드가 활동을 개시한 이래 처음으로 있는 일이었으니, 상부에서 이야기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무래도 그 판단 또한 틀린 모양이었다. 클라우드는 제 이마를 짚었다. 상황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나? 그럴 리는 없을텐데. 아니면 그저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이러는 것일까.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납득은 할 수 없었다. 계획은 완벽했으니까. 물론 클라우드의 주관적 생각이었으나. "어째 일주일 밤 샌 얼굴보다 더 피곤해 보이네." 레이븐의 말에 클라우드는 제 볼을 만지작거렸다. 피곤할 일이 있었던가. 그간 한 일이라면, 일기장을 훑어보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것 뿐이었다. 잠도 잘 잤고 밥도 잘 먹었고. 단순히 레이븐의 착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금방 클라우드는 자신이 착각했으면 착각했지 레이븐이 착각할 리는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완벽한 존재 쪽에는 레이븐이 훨씬 더 가까웠으니까. 멍하니 있던 클라우드는, 그 손이 잡혀서야 고개를 돌려 레이븐을 쳐다보았다. "…?" 그리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머리를 슬쩍 치우고 이마에 닿은 것은 레이븐의 입술이었다. 눈을 감은 채로, 그 답지 않은 꽤나 분위기 있는 행동이긴 했으나. 따뜻하지는 못한 감촉이어서 클라우드는 그냥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 웃음에 레이븐이 입술을 떼어냈다. 언제나와 같은 무표정, 무감각한 눈동자. 애초에 한번도 사람 답지 못했던 눈이었다. 한번 쯤 인간다운 눈을 하고 있는 레이븐을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으나, 그것은 영영 불가능 한 일이니까 일찍이 포기했다. "니가 예전에. 임무 마치고 오면 해줬잖아." 얼마나 전의 일이던가. 클라우드는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함께 한 세월이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것은 아마도, 레이븐이 이전의 자신을 잃고 나서일 것이다. 언젠가 그랬던 그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꼈던 적이 있었다. 그 무렵의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나마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는데, 현실을 일찍 깨달아버려서였다. 레이븐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순간 클라우드 또한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반 억지긴 했지만, 동시에 클라우드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이제는 자신이 정말로 불완전한 호문클루스가 맞는지에 대하여 고민까지 해야 할 지경이었으니, 가히 성공적이라 할 만 하겠다. 그건 그렇고, 레이븐이 그 옛날 잠시동안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클라우드였다. "어디서 지내는데?" "불법 점거." 짧은 대꾸를 듣고 레이븐은 클라우드의 옆에 앉았다. 건물의 꼭대기는 꽤나 전망이 괜찮았다. 자주 찾곤 했고, 자주 클라우드와 통신을 하곤 했다. 이 곳일 때도 있었고, 다른 건물일 때도 있었고, 심지어 전광판의 위일 때도 있었다. 딱히 장소를 가린 적은 없었다. 그저 높은 곳이면 마냥 좋았다. 호문클루스여도 이런 느낌은 느낄 수 있는 것이었나, 잠시 그런 고민에 빠진 적도 있으나 그냥 넘어갔다. 언젠가부터 따지는 것을 포기했다. 그저, 죄책감에 대해서는 의아함을 가질 뿐이었다. "자고 가." 애초부터 오지 그랬어, 하는 심심찮은 목소리는 기대할 것이 되지 못했다. 이정도면 장족의 발전이 아닌가. 클라우드는 옅게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레이븐이 변한 이유가 자신이 심은 칩 때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면 그것은 그것대로 자괴감이 드는게 사실이었다. 사소한 것 하나로 변할 수 있는게 레이븐과 자신, 호문클루스였다. 자신마저 레이븐의 꼴이 된다면 끈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필사적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나도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가져서는 안될 것이었으나. "먼저 간다." 가볍게 일어선 레이븐은 바지의 먼지를 털었다. 매너없긴. 짧은 질타에 레이븐은 그저 시선을 흘길 뿐이었다. 결국 그 모습에 피식 웃는 것은 클라우드 쪽이었다. 먼저 진이 빠지는 쪽도 클라우드였고. "레이븐." 부르는 목소리에 뒤돌던 레이븐이 고개만 클라우드 쪽으로 돌렸다. 순간적으로 잡아당겨져, 휘청한 레이븐을 가볍게 지탱하고 클라우드는 미소지었다. 붉은색 눈동자에 즐거움이 깃든 것 같은 느낌은 착각일까, 레이븐은 어쩐지 아찔한 느낌을 느끼고 말았다. 입술과 입술이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은 것은 당연하지만 레이븐 쪽이었다. 잠시 맞닿은 입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떼어져 나갔다. "조금 설레시나?" 빙긋 웃은 클라우드는 그 말을 끝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레이븐은 제 머리를 짚었다. 한숨이 입술 틈새로 나왔고, 미약하게 남은 감각에 제 입술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이내 자세를 고쳐 서자 시야에 클라우드의 아티팩트인 일기장이 들어왔다. 중요한걸 놓고 다니다니, 순교자 실격 아닌가. 짧게 혀를 찬 레이븐은 그것을 주워들었다. 우웅, 하고 목에 차고 있던 시계가 반응했다. 잠시 레이븐은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혀 버린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이따금 클라우드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만 주고 홀현히 사라져버리곤 했다. 지금처럼. 물론 지금이야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지만. 발걸음을 돌렸다. 굳이 텔레포트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근처였으니까. 그저, 남의 집에 먼저 들어가선 빈둥거리고 있을 클라우드에게 한방 날려주자는 생각 뿐이었다. 입술에 남겨진 묘한 감각은 나중에 처리하기로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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