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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레이] Midnight Blue

복잡한 인파 틈으로 저 혼자 사라지는 레이븐에 클라우드는 앞머리를 쓸어올려 이마를 짚었다. 흥미 없다고 굴 때는 언제였는지. 막상 오니까 저 혼자 가버리는 꼴이 썩 유쾌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그건 둘째 칠 문제다. 놓치게 되면 곤란한 고로, 클라우드는 빠른 걸음으로 레이븐을 따라갔다. 가을에 접어드는 계절이었다. 추운 날씨에 나오기 전에 눈에 잘 띄는 하늘색 목도리를 메어 줬기 마련이지, 아니었으면 그대로 잃어버릴 뻔 했다. 인파 속에 멈추어 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레이븐의 손을 클라우드가 맞잡았다. 그제야 하늘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내려가 클라우드에게 닿았다. 그리고 이내 클라우드는 옅게 웃고 말았다. 묘하게 들떠 있다는 말을 하면 바로 부정할게 뻔하기에, 그 웃음에 고개를 갸웃 하는 레이븐을 보며 그저 고개만 두어번 저었다.

"까마귀는 반짝이는걸 좋아하지……."
"뭐?"
"아무것도."

매년 이맘 때 쯤 열리는 연례 행사였다. 축제라고 하기에는 볼거리가 불꽃놀이 뿐이긴 했지만, 웬만한 축제 뺨 칠 정도로 사람이 모이곤 했다. 사실은 그동안 클라우드는 이런 곳에 왜 오는거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레이븐도 처음엔 그런 생각으로 싫다며 가기 싫다 버틴 것일게 뻔했다. 애초에 둘 다 사람이 많은 것은 그닥 즐기지 않았다. 어째서냐 묻는다면, 클라우드가 느끼는 제일 큰 이유는 바로 낯설음이었다. 마주치는 인간들은 일 때문에 만나는 몇몇이나 연구원들이 고작이었고, 그 수가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애초에 사람에 대해서 이질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부정할순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당연한 것이지만, 주변의 인파는 부담스럽고 거기서 그치지 않아 싫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밤하늘에 수놓아지는 불꽃을 바라보는 레이븐의 시선이 꽤나 흥미롭다고 해야 할까. 레이븐은 한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웃는 것도, 그렇다고 들뜬 것도 아니었지만서도. 불꽃이 쏘아올려질 때마다 그것을 비추는 눈동자에 감도는 빛이라는 것이. 사실은 불꽃놀이를 보는 시간보다 레이븐을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저것도 마법이야, 클라우드?"
"요새야 마법을 쓰겠지만."

한참동안 하늘이 조용했다. 아무래도 잠시동안 쉬는 모양이었다. 그제야 레이븐이 치들고 있던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어쩐지 계속 보고 있다 했더니, 뒷목이 뻐근한듯 목도리 안으로 손을 넣어 몇 번 뒷목을 꾹꾹 눌렀다. 이럴 때마다 드물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묘하게 귀여운 면이 있다는 것이다. 한참을 그러던 레이븐이 문득 클라우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예전에는 어떻게 했어?"

그 물음에 짐짓 고민하는 척 클라우드는 제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이내 어깨를 으쓱, 하고는 흐트러진 레이븐의 목도리를 다시 제대로 바로잡아주었다. 레이븐은 재촉없이 클라우드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결국 대답을 듣지 못한 채로 다시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그럼에도 레이븐은 여전히 클라우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클라우드는 결국 피식 웃고 저가 먼저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는거, 좋아하잖아. 저거나 봐."
"…좋아하는게 아니야."
"시치미 떼긴."

신기한 것 뿐이니까……. 레이븐이 자그만하게 흘리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내 레이븐의 시선이 다시 하늘에 고정되었다. 자연스럽게 클라우드의 시선은 레이븐에게로 돌아갔고. 푸른색 눈동자에 비춰지는 불꽃이 꽤나 예뻤다. 본래 깨끗한 파란색이어서 그런 생각을 종종 하긴 했지만, 다른 색깔이 더해지니 그것은 또 그것대로. 괜시리 클라우드는 레이븐의 손을 더 꽉 잡았다. 아무래도 레이븐은 제 손이 잡혀있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다 끝나고 이야기 해 줄게."

레이븐의 대답은 없었다. 불꽃놀이에 정신이 팔려서 듣지 못한 것일지도 몰랐다. 딱히 상관은 없었던지라, 클라우드는 입을 꾹 다물었다. 들떠있는 쪽은 레이븐이 아니라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평범한 일상을 동경했던가. 꽤 크게 터진 불꽃에 레이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결국 클라우드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고, 레이븐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저를 흘겨보는 시선에 클라우드는 어깨만 으쓱 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터지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레이븐."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클라우드는 레이븐을 불렀다. 역시 정신이 다른 곳에 가있어서인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가고, 큰 불꽃 두어개가 터진 뒤에야 느즈막히 레이븐이 입을 열었다.

"불렀으면 말을 해."

저를 바라보는 레이븐의 얼굴에 순간 클라우드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어째서일까. 언제나 창백했던 볼을 물들이는 빛깔은 눈동자에 비춰지는 불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막 터진 붉은색 불꽃 덕에 발갛게 물든 볼을 보고 있자니 클라우드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을 뻔 했다. 레이븐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클라우드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잠시 맥이 끊겼던 말을 이었다.

"왜 사람들 틈으로 들어온거야?"
"…어째서 그런걸 물어봐?"

오히려 되돌아온 물음에 클라우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 도통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데, 바로 이런 때에 그랬다. 물음에는 답을 해줘야 하는 법이고, 답을 받아야 오는 질문에 대답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법이 아닌가. 어째 레이븐과의 대화는 영 일방적으로 밖에 흘러가지 못했다. 레이븐이 인간성을 잃은 것에서 그 이유를 찾기에도 뭐한 것이, 그 전부터 그러했으니. 레이븐 자체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오래 전 부터 해온 일이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것조차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으니.

본래 생각에는 근처 건물의 옥상으로 갈 생각이었다. 레이븐은 높은 곳을 좋아했고, 클라우드 또한 높은 곳 특유의 선선한 바람을 좋아하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내리자 마자 레이븐은 제멋대로 걷기 시작했고, 기어코 인파 속까지 들어와 버린 것이다. 꽤나 의아했다.

"주변이 시끄러우면."

레이븐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시선이 내리깔렸고, 그 시선은 슬며시 꽉 잡고 있던 손에 가 닿았다. 한참을 입술을 달싹이는 레이븐에 클라우드는 레이븐? 하고 뒷말을 재촉했다. 그리고 레이븐이 작게, 옅은 불편한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안그러려고 해도… 더 집중하게 되니까."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알아 듣지를 못해서, 멍청하게 응? 하고 되물었다. 레이븐은 말이 없었고 여전히 그 시선은 클라우드의 눈동자를 피하고만 있었다. 그리고 몇분 후의 정적이 흘렀다. 레이븐이 클라우드의 손을 괜시리 더 꽉 잡아왔다. 그제야 그 정적의 끝, 클라우드는 뒤늦게 그 말을 이해하고 작게 탄식했다. 레이븐,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하필이면 불꽃이 쏘아올려지는 소리와 겹쳐서 묻혀버렸다.

그리고 몇 초 후 분위기는 완전히 깨져버렸다. 저에게 온 호출을 레이븐이 확인하고,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다녀와."
"…먼저 들어가. 오래 걸릴테니까."

클라우드는 옅은 미소를 띈 채로 어깨만 으쓱 할 뿐이었다. 그런 클라우드를 보면서 레이븐은 어쩐지 마음이 허했다. 저는 마치 즐겁지 않다는 양 무심하게 이야기 했지만, 어쨌든 먼저 오자고 한 것도 클라우드였고 그 또한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레이븐은 잘 알고 있었다. 급한 호출이 생길 거라고는 두 사람 다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더욱.
인파를 헤치고 나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

레이븐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클라우드의 방 문을 열었다. 없어. 작업실에도, 실험실에도 없었다. 평소라면 임무 후에도 피 하나 묻지 않고 깨끗했을 레이븐의 옷자락에서는 어째선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급한 마음이 존재했다. 이유 모를 화도 났고. 그래서 저도 모르게 조금 난폭하게 날뛰었더니 이 꼴이었다. 레이븐 자신의 피는 하나 없었지만, 찝찝한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찝찝함을 뒤로 하고 레이븐은 클라우드를 찾고 있었다.

본부 안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가 임무를 아무리 일찍 끝냈어도, 아무리 오래 불꽃놀이가 지속되었어도 어찌되었든 끝나고도 한참 남을 시간이다. 늦은 새벽. 레이븐이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텅 빈 광장을 둘러보며 레이븐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덕분에 일찍 찾을 수 있었다.

"…클라우드."

뭐하러 이러고 있어, 하는 말이 목구멍 끝에 막혀서 나오지 않았다. 제 앞에 선 인영에 클라우드가 고개를 들었다. 가뜩이나 평소 업무로 지쳐있던 눈동자가 어째 두 배는 더 지쳐보여서, 레이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지쳐있다기 보다는 정확히 말하자면 힘이 없다고 해야할지. 레이븐과 눈이 마주치자 클라우드가 옅게 미소지었다.

"기다린다는 말은 안했었구나."
"난 먼저 들어가라는 말 했어."

힘은 빠진 주제에 웃고 있는 얼굴이 불만이었던지. 레이븐 한참동안 클라우드의 얼굴을 뚫여져라 쳐다보다가, 슬쩍 허리를 숙였다. 벤치 등받이 부분을 손으로 짚고 얼굴을 가까이 했다. 놀란 눈치에 그제야 속이 풀리는 것 같았다. 어쩐 일이야, 하고 작게 중얼거리는 입술에 조심스럽게 제 입술을 가져다 댔다. 차가운 공기에 오래 방치된 터에 미적지근한 느낌이 썩 좋진 못했다.

"키스도 해줄거야?"
"싫어."

따갑게 쏘아붙히는 목소리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클라우드는 웃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 할 생각이 있다는건 아니고. 그대로 클라우드는 레이븐의 목에 팔을 감아 깍지까지 끼고, 단단하게 고정했다. 질렸다는 표정이 돌아왔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참을 닿은 채로 있다가, 결국 저가 졌다는 듯 레이븐이 먼저 입술을 겹쳐왔다. 서툴게 혀를 넣어온다 하더니 두어번 얽고 말았다. 얌전히 리드당해줄까, 하는 생각을 클라우드는 하고 있었으나 이내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속으로 웃고 말았다.
길게 이어질 때면 언제나 중간중간 숨 쉴 틈이 본인에게도 필요했기에 겹친 입술을 떼어내고 잠시 가까이서 숨을 나누곤 했다. 요령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븐에게는 도중에 숨조차 쉬지 않는 버릇이 있어서, 비교적 짧은 템포로 그렇게 숨을 고르곤 했다. 문제는 나름 레이븐을 신경 쓴다고 그렇게 하는건데, 정작 그 레이븐이 못마땅해 한다는 것 정도. 레이븐은 눈 앞에서 얌전히 숨을 고르는 클라우드를 불만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럴 때면 레이븐은 제멋대로 다시 입술을 겹쳐 서툴게 혀를 얽어 오는 것이다. 지금도 그랬다. 조용한 주변 덕에 혀가 얽히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들려왔다. 그 소리에 레이븐이 작게 몸을 떨었다. 그 떨림이 마음에 들어서, 클라우드는 레이븐을 더 끌어당겨 깊게 입맞췄다. 레이븐이 제멋대로 얽었던 혀를 은근슬쩍 빼내고, 입천장을 훑다가 천천히 치열을 따라 혀로 덧그렸다. 한참을 그렇게 뜸을 들이다가, 저도 모르게 뒤로 빠져 있던 레이븐의 혀와 제 혀를 다시 섞었다. 부드럽게 제 혀를 쓸어내리는 느낌에 레이븐은 잡고 있던 벤치 등받이를 더 꽉 잡았다. 점점 경직되는 몸을 느끼고 클라우드가 한 쪽 눈만 떴다. 레이븐의 목을 감고 있던 팔을 내리고, 은근슬쩍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레이븐의 오른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레이븐도 슬며시 실눈을 뜨고 클라우드를 바라보았다. 레이븐이 먼저 입술을 떼어내는 일은 드물었다. 어느새 다시 눈을 내리 감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 레이븐을 바라보며 클라우드는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어 레이븐의 입술을 쓸어내렸다.

"……숨막혀."
"알고 있어."

한참을 숨을 고르던 레이븐이 굽히고 있던 허리를 폈다. 옷 소매로 입술을 몇번 쓸다가, 새삼스럽게 클라우드의 시선을 피하기 시작됐다. 그러자 클라우드가 먼저 슬며시 잡고 있던 손을 놓았고, 레이븐은 물끄러미 잡혀 있던 제 오른손을 내려다 보았다. 꽤 오랜시간 정적이 감돌았다. 클라우드는 말없이 레이븐의 옷자락에 손을 가져갔다. 군데군데 피가 스며든 자국이 눈에 띄었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것은 금방이라도 떨어져내릴듯 핏방울에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돌아갈까? 너 좀 씻어야겠다."

레이븐은 대답 대신 고개만 저었다. 그리고 클라우드의 옆에 앉았다. 공기는 점점 차가워져갔고, 주변은 조용해져만 갔다. 아까 레이븐이 머물렀던 곳과 같은 장소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한참동안 레이븐은 클라우드를 바라볼 수 없었다. 그저 클라우드가 만지작거리던 제 옷자락만 내려다봤다. 그러고보면 피 묻는걸 싫어하지 않았던가. 레이븐은 제 몸을 옆으로 뺐다.

"괜찮아."

그리고 그럴 수록 오히려 클라우드가 더 바싹 붙어와서, 레이븐은 결국 나름대로 해본 배려를 관둘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찾아온 정적을 굳이 깨지 않았다. 이내 레이븐은 클라우드의 어깨에 기대 눈을 감았다. 그러고 한참 입술을 달싹이다가, 입을 열었다.

"클라우드."
"응?"
"…다 끝나고 얘기해주기로 했잖아."

클라우드가 작게 웃었다. 눈을 감고 있는 레이븐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레이븐의 앞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미동도 않는 레이븐에 머리도 슬쩍 쓰다듬어 보았다. 레이븐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옅은 숨만 내쉬고 있었다. 한참 뜸을 들이던 클라우드가 예전엔 말이지, 하고 운을 뗐다. 한참동안 이어지는 클라우드의 목소리에 레이븐이 눈을 떴다. 그리고 저 혼자 들떠선 이야기를 하고 있는 클라우드를 시선만 올려 바라보았다.

새벽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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