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프 더 레코드 주의
《기계가 되고 나서도 욕망이 존재하다니, 기묘한 얘기군.》
《욕망이 인간을 형태화하는 거지.》
로쏘는 그 날 이후로 자꾸만 꿈을 꾸었다. 마르그리드의 입술이 얼굴에 닿고, 팔이 감겨오는 꿈을. 촬영한 장면을 꿈으로 꾼다는 것은 제법 기묘한 일이었다. 저가 배우 로쏘인지, 테크노크라트 로쏘인지 구분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대담하게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다. 촬영과는 다르게 행동해서일까.
그 다음 똑같은 꿈을 꿨을 때에는 촬영과 똑같이 행동 해 보았다. 하지만 똑같이 잠에서 깨어나, 어두운 천장만이 눈 앞에 펼쳐졌다. 오로지 그 장면만이 반복되었고, 로쏘는 결국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꿈 속에서 마르그리드는 언제나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행동을 하고 똑같이 로쏘에게 말을 건넸다. 오로지 한마디만을.
* * *
배우 로쏘는 테크노크라트 로쏘를 이해했다. 괴짜, 불쾌한 취향, 온갖 욕을 다 듣고 온 그였기에. 대본을 받아 보면서 놀랄 정도로 자신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마치 제 옷을 입은 마냥 로쏘는 로쏘를 소화해냈다. 인기와 인지도는 화수에 비례해 수직상승 했으며, 연말에 상까지 받은 그는 톱 배우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마르그리드」라는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그것은 어느날 회식 자리에서 있었던 대화였다. 그건 당신이 제일 잘 알겠지, 하고 던진 뚱한 대꾸에 마르그리드는 웃었다. 그리고는 제멋대로 로쏘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평을 시작하는 것이다. 제멋대로, 흥에 취해서 사는 싸가지 없는 천재죠. 솔직히 말하자면 들으면서 기분이 나빴다. 로쏘는 어느정도 언라이트 안의 로쏘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었으므로. 아니, 애초부터 로쏘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 험담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끝내 로쏘는 마르그리드에 대해 평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취해서였던가, 흥이 깨져서였던가.
그날 술에 취한 마르그리드를 집으로 데려다 준 것이 바로 로쏘였다. 명색에 여배우라는 사람이 테이블에 엎드려 쓰러져 있는 걸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로쏘가 울며 겨자먹기로 맡아 대충 들쳐업고 나오는데, 그녀는 매우 능청스럽게 로쏘에게 말을 건넸다. "키, 딸리지 않아요?" 로쏘는 그 자리에서 마르그리드를 그대로 내팽겨쳐버릴까, 하는 충동을 겨우겨우 참아냈다.
"취한 척 하고 있었던 건가? 웃기군."
"원래 잘 안 취하는 체질이라서요."
다소 동문서답일지도 모르는 대꾸를 끝내고 마르그리드는 가볍게 땅에 내려섰다. 사람을 그렇게 거칠게 업어서 쓰나, 하고 중얼거리는 그녀를 로쏘는 가볍게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금방 제 옆으로 따라 붙어오는 마르그리드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흥, 하고 비웃었다. 마르그리드는, 남이 본다면 하염없이 아름다워만 보이겠으나 로쏘가 보자면 징글징글 해 보이기까지 하는 미소를 지었다.
"날 왜 그렇게 싫어해요?"
세간에는 두 사람이 꽤나 친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둘은 그리 사이가 좋은 편이 되지는 못했다. 접촉이 많은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촬영장에서는 대화 한마디 오가지 않았으며, 그나마 술자리에서는 언쟁만 오갈 뿐이었다. 로쏘는 미간을 찌푸리고, 마르그리드는 말을 돌려 그를 놀리고. 일방적으로 한쪽이 한쪽을 싫어한다기 보다는 맞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돌려줘야 할 말 같은데."
마르그리드가 고개를 갸웃한다. 로쏘는 여전히 그녀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몇번이고 반복한 꿈에서, 몇번이나 몸이 닿았던가.
"나는 당신을 별로 싫어하지 않는 걸요."
"거짓말."
로쏘는 눈을 돌렸다. 빙글빙글 웃고 있는 그녀에게 따가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마르그리드는 여전히 웃고 있는 채로, 로쏘는 오히려 불쾌감만을 느꼈다. "말 해봐요. 왜 그렇게 싫어 해요?" 마르그리드는 손을 뻗어 로쏘의 어깨를 잡았다.
싫어, 한다. 정확히는 혐오한다. 로쏘는 미간을 구기고 그녀를 마주하다가 점점 더 가까워져 오는 마르그리드를 견디지 못하고 그녀를 거칠게 밀어냈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녀와 자신은 애초부터 평행선 위, 그것도 가장 끝에서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영원히 맞닿을 수 없는 관계. 마르그리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웃었다.
그의 꿈에는 오늘도 자신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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