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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린디쉬에서 MFL 선수들에게 제공해주는 것은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경기장도 컨셉이라고는 하지만 행잉 스퀘어의 감옥을 활용한 게 다였고, 그 인기와는 다르게 환경은 열악한 쪽에 가까웠다. 대부분이 돈을 목적으로 참가하는 것이고, 그 상금만은 확실했기에 별 상관 없이 느껴지는 것일 뿐. 그래도 경기 전날 선수들이 머물만한 숙소 정도는 제공해주고 있었다. 그때 선수들은 서로 안면을 익히기도 하고, 가볍게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컨디션 조절에도 그 편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그건 많은 선수들이 좋게 생각하는 부분이긴 했으나. 그래도 꼭 한두명 쯤은, 싫어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남과 어울리는 걸 꺼리는 사람이라거나, 남에게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이라거나.
아침을 달갑게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갈가마귀는 장담할 수 있었다. 어딘가의 소녀마냥 세상의 중심은 나로 돌아간다, 뭐 그런건 아니었으나. 보편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갈가마귀는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한 몇 분 즈음 지났을 무렵에 반 쯤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아침부터 경기 일정이 잡혀 있는 걸 기억 해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참 꾸준히도, 이번에도 저만이 일어나 있었다. 매번 그랬다. MFL 선수들 중에 유독 늦잠 꾸러기들이 많기라도 한 건지. 진실은 알 수 없었으나. 이사람 저사람 깨우고 다니는 것도 일이었다. 순순히 일어나주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이 욕을 하거나 했으니까. 물론 하나하나 반응해주진 않았다. 그런 성격도 아니었고 반응 하는 게 오히려 더 피곤했다.
숙소 환경은 그래도 꽤 괜찮았다. 화장실도 깨끗한 편이었고, 필요한 건 다 있었다. 간단하게 세안을 마치고, 갈가마귀는 잠시 슬쩍 고개를 틀어 볼에 손을 대고, 정면의 거울 안에 비친 제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최근 경기 일정이 늘어나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더니 눈 밑에 그가 끔찍히도 싫어하는, 물론 그건 그것과 조금 다르긴 했으나, 아무튼 짙게 그림자가 깔려 있었다. 인상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았지만 피로가 누적되면 파편으로 제어하고 있는 힘이 어떻게 틀어질지 모른다. 그런 일말의 불안함이 존재했기에, 갈가마귀는 합숙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그의 눈에 그제서야 대충 널부러져 자고 있는 청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볼 때마다 참 불편하게 자고 있다. 갈가마귀는 잠시 그 앞에 멈추어 서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옆얼굴에 시선을 두었다. 매번 쓰고 다니는 가면은 벽에 걸려 있었다. …뭐가 그리 불안한지, B는 언제나 가장 늦게 잠에 들었다. 갈가마귀조차도 그가 언제 잠드는 지 모를 정도로 늦게.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갈가마귀는 고개를 돌렸다. 그정도로 보이기 싫어한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 터다. 그는 저가 덮고 있던 얇은 이불을 가져와 대충 B의 얼굴을 덮어버렸다. 그러고 나서야 B를 흔들어 깨웠다.
"…봤어요?"
갈가마귀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젓다가, B가 지금 저를 볼 수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짧게 아니, 하고 대꾸했다. 어쨌든 정면으로 본 건 아니니 거짓말은 아니지 않을까. 물론 이것까지도 거짓말의 범주에 들어간다면, 주여 제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아침이야. 일어나."
미동이 없는 B에게 갈가마귀는 말을 툭 던지고, 그의 앞에서 발걸음을 떼어냈다. 깨울 사람은 한참이나 남아있다. 저도 제대로 씻은 게 아니고 세안만 하긴 했지만, 미리 이렇게 깨워놔야 저가 다 씻고 나왔을 때 다른 이 또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차례대로 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경험에 기인한 판단이었다. 익숙해진 건 달가운 일은 아니었으나. 갈가마귀는 B의 근처에서 죽은 듯 자고 있는 다른 사람을 흔들어 깨우기 위해 살짝 허리를 숙였다.
죽을 듯이 앓는 소리가 들린 건 바로 그 즈음이었다. 으, 으으으으, 아, 으으. 어디서 들려오는 건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갈가마귀는 방금 저가 떠나 온 뒤를 돌아보았다. B다. 오늘 아침도, 예의 그 고통에 시달리는 모양이다.
"약은."
"…방금 먹긴 했는데……."
그렇다면 늦었다는 말이다. 중요한 거라면 재깍재깍 먹지 그랬나, 하고 잔소리를 하려다가 갈가마귀는 애써 그 말을 그냥 목 뒤로 넘겨버렸다. 얼마나 된 고통인지 갈가마귀는 알지 못한다. 그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는, 그리고 현재진행형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 그리고 약효는 빨리 돌지 않는다. 갈가마귀는 잠시 시선을 내리깔아 여전히 이불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는 B를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작 깨워 약을 먹게 했어야 했다. 이런 일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이렇게 같이 합숙을 하는 날이면 열에 여덟은 이랬다. 작은 한숨이 절로 입술 틈새에서 새어 나왔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말아요."
"항상 말만 그렇게 하지."
"그럼 부탁 하나만 할게요…."
B는 비척비척 일어나며 제 얼굴을 덮고 있는 이불을 치워냈다. 그리고 겨우 얼굴을 가릴 수 있을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반대쪽 손을 갈가마귀에게 내밀었다. 일으켜 달라는 뜻이었다. 갈가마귀는 잠시 고민하다가 가볍게 그 손을 잡아 주었다. 이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파편은 믿을 만한 억제기였으니까. 그래도 눈을 감고 속으로 생각 나는 성경 구절을 읊었다. 지속된 불안함은 습관을 만들었고, 행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이젠 불편함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씻게 화장실 좀 데려다줘요. 찬 물 끼얹으면 정신 차릴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처음에는 낯을 가리던 청년이 요새는 꽤나 따박따박 말을 붙이고 있다. 슈퍼 빌런이라는 옛 명성과는 다르게 B는 다소 소심한 구석을 지니고 있는 듯 했다. 적어도 갈가마귀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이렇게?"
"아, 아뇨. 당신 편한 대로."
겨우겨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저보다 키가 작은 청년을 내려다보며 갈가마귀는 두어번 눈을 깜빡였다. 저렇게 가려도 보일 건 다 보이는데. 말하면 안 되겠지. 언뜻언뜻 보이는 청년의 얼굴은 의외로 말짱했다. 지금까지는 무슨 하자라도 있어서 보이기 싫어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싫어한다면 그것도 존중해줘야 하는 것이라고 갈가마귀는 생각했다.
편한대로, 라는 말을 듣고 나서 갈가마귀는 다짜고짜 B를 들쳐 매버렸다. 당황한 B가 뭐하는 거냐며, 내려 달라며 외쳤지만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편한 쪽이라면 이쪽이다. B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렇게 해야 얼굴이 안 보이잖아."
나름대로의 구실이다. B는 끙, 하고 작게 신음하고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긍한 건지, 포기한 건지.
"…얼굴은 진짜 못 본거죠?"
"그래."
이번에는 정말로 거짓말이었다. 그러니까 진심을 담아, 주여. 제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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