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왜 같이 다녀요?"
케이가 묻는다. 물음의 대상은 온몸을 새까만 색으로 휘감고 있는 남자다. 고요함을 가르고 불쑥 튀어나온 목소리에 그는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들고 있던 마른 빵을 갈라, 조금 더 큰 쪽을 케이에게 건넸다. 그 반응이 케이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팔을 뻗어 빵을 받고 한 조각 베어 물었다. 불만은 허기를 이기지 못한다. 물론 그 불만이라는 놈은 질기고도 질겨, 그렇게 굴복했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텁텁한 질감의 빵을 씹으면 씹을수록 대답 없는 그에 대한 케이의 불만은 계속해서 커져만 갔다.
케이가 그에게 던진 물음은 아주 옛날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언제부터였던가.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음에도 알 수 없는 세계에 떨어져 버린, 이 여정의 시작부터 이어져 왔을지도 모른다.
객관적으로 보기에 그에게 케이는 짐이었다. 생활력이나 적응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시간만 되면 투덜거리며, 게다가 모종의 설명할 수 없는 일을 원인으로 그에 대한 태도가 마냥 바르지만은 않았다. 케이가 잠든 사이에 두고 가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케이는 그가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케이가 봤을 때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좋은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일하던 서점의 사장이 은밀하게 움직여 약을 훔치던 것을 발견한 그 날. 케이는 어느 정도 그가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도둑질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건 아닐 거라고 끊임없이 부정했고, 그래서 그를 따라갔다. 그리고 도왔다. 이후의 일이다. 그는 케이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그의 의도는, 약을 구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훔친 약을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그 모습까지 목격한 케이의 기분은 어쩐지 미묘하게 요동쳤더랬다.
함께 다니지 않는 편이 그에게는 편하리라.
케이는 그의 능력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그가 능력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다는 것쯤은 파악할 수 있었다. 만약에 위험해 처해서 그가 능력을 사용해야 할 때가 온다면, 케이는 걸림돌이었다. 전투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분명히 그는 케이를 지키려 들 것이다. 그런데도 꾸준히 그가 자신을 챙겨 다니는 이유를 케이는 알 수가 없었다. 자고 있는 사이 두고 가도 될 것을.
사실 케이는 매번 잠들기 전, 깨어난 직후를 상상하곤 했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가버린 갈가마귀. 그리고 홀로 남은 자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케이는 그런 의문이 들 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죽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의 편안함을 바라는 것인가. 자신의 희생으로 그가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인가. 자신은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면, 그가 자신의 무언가라도 되는지─
……부질없는 자문자답이다.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무슨 뜻이에요?"
갈가마귀가 하는 말 중에서는 케이가 이해하지 못할 것들이 너무 많다. 케이는 성경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서점에서 일할 때, 갈가마귀가 그리도 열심히 읽는 모습을 보며 저게 뭐 그리 재밌을까. 하고 눈길을 둔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아주 잠깐의 일이었다. 도저히 흥미를 붙일 수가 없었고, 무턱대고 사버린 성경책은 케이의 방 한구석에 대충 버려지게 되었다.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돌아간다면, 다시 한 번 읽어볼까. 케이는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
갈가마귀가 성경에 집착하는 이유를 케이가 알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몰랐다면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알게 된 이후에 듣고 나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화를 내지도 않고, 즐거워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으며, 모든 것들 참았던 이유. 그저 죽고 싶지 않아서.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동시에 이해하기 힘들었다. 케이는 그나이대 여자아이들과 비슷하게 살고 싶어 하면서도 죽고 싶어 하기도 했다.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는 뜻이지."
"기적을 바랄 정도로 나랑 같이 있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거네요."
어쩐지, 기가 죽어버린다. 케이는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지금까지 계속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갈가마귀가 그제야 케이에게 흘끗 시선을 두었다. 그와 동시에 케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제 손만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차라리 그렇다면 버리라는 말이 하고 싶다. 그렇다고 혼자 남겨지기도 싫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케이조차 케이 자신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갈가마귀는 이 예민한 사춘기 시기의 소녀에게 최대한 잘 해주려 노력하고 있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챙겨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뒤늦게 저가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은 갈가마귀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짐이 아니라는 대답을 듣고 싶었으리라. 허나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그런 말을 해주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지. 아직 세상을 많이 경험해보지 않은 소녀에게는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것이 어느 정도 필요했다.
그대로 둘의 분위기는 어색해져 버렸다. 단둘인 상황에서 불화 다음으로 안 좋은 상황이 바로 이런 어색함이다. 갈가마귀는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처음 갈가마귀와 S가 만났을 때, 둘은 상상 이상으로 어색했다. 그리고 그 어색함은 꽤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그 시간이 끝나고, 친밀함이 쌓여갈 무렵 어색함이라는 것에 대해 S에게 배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최대한 없어야 할 것이라고. 어쨌든 동행해야 하는데, 계속 이렇게 있어 봤자 좋을 것은 없었다.
케이의 기분을 풀어줄 방법을 갈가마귀는 한참 동안 고민했다. 그러다가 겨우 찾아낸 결론은 참으로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갈가마귀는 저가 깨작거리며 먹고 있던 반쪽짜리 빵을 또 한 번 잘랐다. 저가 입을 대지 않은 부분으로. 그리고 그것을 케이에게 내밀었다. 뜬금없이 빵 쪼가리가 눈앞에 보이자 케이는 고개를 쳐들었다. 무슨 뜻이냐는 눈이다.
"더 먹어둬. 그래야 편하게 움직이지."
"오빠는요?"
호칭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다. 그냥 예전처럼 사장님이라고 불러줬으면 차라리 더 나으련만. 하기야, 지금은 서점 사장도 아르바이트생도 아니니 그렇게 부르는 것도 웃긴 노릇이다.
"나는 됐어."
갈가마귀가 신경 써주었다. 케이는 내심 기뻐졌다. 빵 반 쪼가리를 다 먹었는데도 허기가 가시질 않았으니, 자그마한 걸 더 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갈가마귀가 걱정되긴 했으나 원래 잘 먹지 않던 사람이다. 정말로 괜찮으니까 줬겠지, 하고 방금 그의 말에 안심한다. 갈가마귀 또한 평소처럼 돌아온 케이의 분위기에 안심한다.
어째서 케이를 데리고 다니느냐, 에 대하여. 사실 갈가마귀도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했다. 분명히 언젠가는 발목을 잡힐 것이다. 은신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예민한 사람은 알아차릴 수 있고, 이곳을 돌아다니며 본 동물들은 더 쉽게 은신한 케이를 발견할 것이다. 자신이 위험해 처한 케이를 모른 체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그리고 아마도, 자신은 케이를 지킬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일찍 떨어지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케이가 가지고 있는 저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하지만 역시 그럴 수는 없었다.
책임감인가. 괜히 같이 그림자에 말려들게 해 평범하게 살고 있던 어린 소녀를 이런 끔찍한 공간에 떨어뜨려 버린 것에 대한. 그런, 죄책감인가. 따지고 보면 원인 제공은 케이가 하지 않았나. 물론 그렇다고 케이를 탓할 수는 없는 사건이었지만. 너무 복잡한 문제다. 오래 생각해봤자 좋을 것이 없을 것 같다.
…혹은, 다른 감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한다. 하지만 갈가마귀가 감정에 대해 따지는 것이야말로 제일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갈가마귀는 감정이 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느끼기는 느끼지만 남보다 미미하고, 억지로 느끼지 않으려 노력한다. 또한, 머리로는 이 감정이라는 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애초에 그렇게 어릴 적부터 감정을 제어하도록 교육받아왔으니 어쩔 수가 없다. 한 감정과 다른 감정을 헷갈리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니 이것에 대한 고민은 그만두자. 살아남는 것, 자신뿐만 아니라 케이와 함께 살아 이곳에서 나가는 것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슬슬 움직이자."
케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벼운 몸놀림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지가 붙고 찢어져 엉망이 된 옷을 탈탈 털고, 갈가마귀를 쳐다봤다. "어디로 갈 거예요?" 갈가마귀는 그대로 동쪽을 바라본다. 이곳이 어디인지조차 모르니 행선지를 제대로 정할 수 있을 리가.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일 뿐이다. 갈가마귀 또한 천천히 일어났다.
"가자, 케이."
그리고 느릿한 발걸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케이는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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