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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가마귀 & B] 이름

그는 종종 식은땀을 흘리며 악몽을 꾸었다. B는 그 낯선 모습에 매번 심히 당황스러워했고,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을 책망했다. 그의 악몽에 대해 B는 아무런 책임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룻밤이 흐르고, 며칠, 몇 달이 흐르면서 B는 그가 악몽을 꾸는 날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른 수건을 가져와 식은땀을 닦아주고, 고열에 시달리기라도 한다면 이마 위에 얼음 주머니를 올려 주었다. 그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밤이 지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감정 하나 실리지 않은 시선으로 B를 보았다. B는 그러려니 했다. B가 심성이 착하거나, 참을성이 많거나 하는 보편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B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그런 밤이 반복될 때마다 그는 이름을 불렀으니까. 과거의 이름들. 사실 B 또한 그런 그의 곁에 있을 때마다 평소의 그처럼, 싸늘하고 식어있는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 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가식을 떨듯 그를 챙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B는 그를 대하는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을 대하는 그에 대해서는 아주 많은 걸 알았다. 까마귀가 모르는 것들 또한 알았다.
 


최강의 군단, [갈가마귀&B] 이름

 

 

S.

 

갈가마귀는 그 이니셜을 참으로 싫어했다. 간혹 헤이디어즈와 있을 때 띠는 미소를 제외하면 표정 변화가 없는 그가, 그 이니셜만 들으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를 S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은 그 사실을 신경 쓰지 않았다. 마인드도, 피오나도 그랬다. 그건 그녀들이 배려심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이니셜 능력자. 그저 그렇게 불러야 하니 그렇게 부르는 것뿐이었다. 갈가마귀 또한 그런 반응을 보이면서도 그녀들에게 화를 내거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감정을 억눌렀다. 그건 열한 번째 그룹의, 헤드헌터 오베론을 제3세계로 돌려보냈다는, 아름답지만 감정이 없는 머신건의 그녀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는 화를 느꼈다. 짜증을 느꼈다. 즐거움을 느꼈고, 애틋함도 느꼈다. 그림자에 먹히지 않기 위해. 목숨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런 감정들에서 눈을 돌릴 뿐이었다. B는 그런 그를 딱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점은 다른 의미에서 갈가마귀와 B의 공통점을 만들어 주었다. B는 살을 태우고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도 아직은 살고 싶었다. 갈가마귀 또한 아직은 살고 싶었다.
B 또한 처음 갈가마귀를 S라고 불렀다. 그건 브린디쉬에서는 당연한 행동이었으니까. 하지만 마인드와 피오나와는 다르게 B는 그의 감정 변화를 주시했다. 애초에 슈퍼 빌런이었던 B는 고정 관념에 얽매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 무어라 불러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던 B는,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요?"
"?"

 

그에게 묻기로 했다. 백넘버 198, 선수가 된 B의 곁에는 그를 거둔 비광이나 함께 다니는 나그네, 또는 다른 프리랜서 동료들 등 사람이 많아졌지만, 종종 B는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그는 그 외로움을 갈가마귀를 찾아 풀었다. 물론 그 외로움은 옛 동료, IQ나 마인드를 찾아가서도 풀 수는 있었다. 같은 브린디쉬 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그는 다른 5명처럼 제대로 된 슈퍼 빌런은 아니긴 했지만, 어쨌든 6인의 슈퍼 빌런이었다는 것. B는 그 외로움이 갈가마귀를 찾아도 풀리는 이유를 거기에서 찾았다. 그리고 또, 그는 꽤 멋있었다. 행동 하나하나가 그랬다. 말도, 몸짓도, 품행도. 오래전 죽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한 소년은 뜻밖에 B의 안에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그건 바로 어른에 대한 동경이었다.

 

"호칭을 말하는 건가."
"네."
"…갈가마귀, 라고 부르면 되지 않나."
"그건 별로 이름 같지가 않잖아요. 애초에 진짜 이름도 아니고."

 

갈가마귀는 잠시 B가 생각보다도 더 많이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브린디쉬에 있던 시절, 여기저기에서 들은 것이야 많겠으나. 아마 본인이 궁금해서 여기저기에 물어보고 다니며 알게 된 것들이 더 많을 것이다. 갈가마귀는 딱히 그런 행동을 했다고 B를 책망할 마음은 없었다. 멋대로 뒤를 캐고 다닌 거긴 했지만, 한창 궁금할 게 많은 나이 아닌가. B는 아직 호기심에 사로잡혀 있을 소년이었다. 어차피 가장 중요한 것들, 혹은 들키지 말아야 할 것들은 자신만이 알고 있다. 자신을 제외하자면, 아주 오래전 그림자에 먹혀버린 S뿐이다. 갈가마귀는 그녀 이후로 타인에게 자신을 노출하는 일을 최대한 꺼리게 되었다. 까마귀는 그때의 일로 충격뿐만이 아니라 상처 또한 입었다. 평생 치료할 수 없을 상처를.
이제 와서 이름을 숨길 이유는 딱히 없었다. 어디까지나 아폴로의 눈을 피하고자 필사적으로 숨긴 것이었을 뿐으로, 지금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래도, 아직 이름으로 불리는 건 어색했다. S조차 갈가마귀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으니까. 어릴 적 부모님이 다정하게 헤르만, 하고 불러준 것 이외에는 딱히 이름을 불린 적이 없었다.
 
"B도 딱히 이름 같진 않은데."

 

그 말에 B는 잠시 갈가마귀를 삐딱하게 쳐다봤다. B도 이름을 불리지 않은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다. 마이너리티에선 다들 제임스라고 불러줬었는데. 그리고 그 소녀가, 페인이. 제임스, 하고. 다정하게, 때로는 불만 있는 듯이, 혹은 그 마지막처럼 처절하게. 제임스.
 
"제임스 리스."

 

B의 이름쯤이야 이미 알고 있었다. 부르질 않았을 뿐. B에게 이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조금 이질적이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은 채로, 그저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세상에 부딪히며 살아온 소년 같은 느낌. 게다가 브린디쉬의 이니셜 능력자란 자고로 저의 이름을 뒷면으로 보내고 그 이니셜만을 가진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 칭호를 빼앗기지 않는 이상은. 선대 S가 그랬고, 지금 S인 자신이 그러했으니 B 또한 그럴 것이다.
제 이름을 읊어준 B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어쩌면 그렇게 불렸던 과거의 일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임스라고 불러요."
"B."
"…마음대로 하던지."

 

제멋대로다. 딱히 이름으로 불리길 원한 건 아니기에 별 상관은 없었으나. 사실 은연중에는 그닥 제 이름을 듣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 날 들었던 페인의 그 목소리를 잊고 싶지 않아서. 그 위에 덧씌워질 것들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환청이어도 괜찮았다. 페인의 마지막 목소리였으니까. 그것도 어느 때보다 더 애절하게 제 이름을 불러줬으니까. 처음으로 생긴 소중한 사람이었다. 품었던 감정과는 별개로 평생 마음 속에 담아두고 싶었다. 과거를 이겨내기 위해,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
갑작스레 사뭇 달라진 B의 분위기에 갈가마귀는 슬쩍 눈을 크게 뜨고 흘끔 B를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과 B는 비슷한 부류라고 갈가마귀는 생각하고 있었다. 살아온 구조라고 해야 할까. 남들과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하게 태어났으나,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갈가마귀는 사실 어렸을 적의 자신을 B에 빗대어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왕이면 이 아이는 자신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 매일매일을 죽음과 싸우며 살아가는 자신보다는 더 순탄하게 살아갔으면 한다.

 

"헤르만 디히터."

 

툭 내뱉듯이 중얼거린다. B는 그 가면 너머로 눈을 크게 뜬다. 그가 말한 것은 아마도 갈가마귀의 본명이리라. B는 한두 번 입술을 달싹이다가, 갈가마귀가 제 이름을 말했던 그 어조를 따라 하듯 중얼거렸다.

 

"갈가마귀."

 

역시 이렇게 부르는 게 편해요. B는 작게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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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가 pve 업데이트 되기도 전에 쓰기 시작했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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