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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레이] 미송신 메시지

무미건조한 시선이 피웅덩이에 머물렀다. 피라는 것이 다 그렇지만, 유독이나 클라우드는 이런 광경을 볼 때면 기분이 눅눅해지곤 했다. 그래서 굳이 그 찝찝함을 느끼면서 이러고 있는 이유는, 잠시 생각에 잠겨서 였다. 레이븐이나 루나도 이런 기분 나쁜 느낌을 느낄까, 하는 것. 클라우드는 이내 고개를 좌우로 휘휘 저었다.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는 자신이 정상 축에 들어있다는 것을 클라우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에 비관적이라거나, 그런 처지도 되지 못했다.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지 않나. 클라우드는 뒤늦게, 천천히 땅을 눅눅하게 적시고 있는 핏물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돌리는 발걸음은 영 무거웠다. 그리고 두어 걸음 걷다가, 결국 다시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발에 차이는 시체 때문이었다. 굳어가는 시신의 감각이 닿은 발끝을 시작으로 전신까지 퍼져갔다.

싫은 느낌이었다. 이를 테면 숨이 막혀 오는 감각.

그럴 때면 천천히 심호흡을 하곤 했다. 막힌 숨통을 억지로 뚫고, 간헐적으로 숨을 내쉬며 주머니를 뒤적여 무언가를 찾았다. 양산형 스마트폰을 개량한, 굳이 따지자면 PDA로 다운그레이드 한 통신기기였다. 물론 다른 휴대용 단말기─ 이를테면 베이스가 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과 송수신이 불가능 하다 보니 통신기기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나. 남들이 보기라도 하면 통신 기기라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특이 행동을 보여 봤자 좋은 꼴 당할 리가 없었으니. 그래서 굳이 명명하자면 개인적으로 무언가를 기록할 때 사용하는 기기였다.

"레이븐."

이를테면, 전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용도의.

"너는 지금 괜찮아?"

어째서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클라우드 본인조차도 알 수 없었다. 호흡이 불편해 질 때면 레이븐을 찾았다. 하지만 지금의 레이븐은, 찾아보았자 독밖에 되지 않았다. 우습게도 과거의 그를 찾았다. 그리고 지금처럼 전해지지 않는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라고 하기에도 뭣했다. 그것은 일방적으로 클라우드 혼자 시작하는 것이었고, 과거의 레이븐에게선 대답이 없었으니까. 애초에 대답을 원하는 행위는 아니었다. 그것에 씁쓸함을 느끼진 않았으나.

"……나는 네가 돌아와 줬으면 해."

녹음 종료 버튼을 꾹 눌렀다. 이런 행동을 한다고 무언가 후련해진다거나, 그렇지는 못했다. 오히려 답답해졌으면 더 답답해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음 내역은 나날이 쌓여갔다. 아직도 클라우드는 레이븐에게 해야 할 말이, 하고 싶은 말이 많이 남아있었다. 이제는 할 수 없는 말을. 돌아와 줬으면 해, 제일 간절한 바람을 입에 담았더니 어쩐지 계속 입가에 맴돌았다. 클라우드는 손을 들어 제 입가를 만지작거렸다. 피를 뒤집어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특유의 눅눅한 느낌이 몸을 짓눌렀다.

*

그리고 그 눅눅함은 그날 따라 오래 갔다. 제 몫으로 마련된 자료실에 들어와서도 치덕치덕한, 피를 밟는 감각에 몸서리를 쳤다. 나름대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자리에 앉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런 상태로는 잡무고 뭐고 할 수 없는데. 주머니에서 거치적거리던 기기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어쩐지 기분이 착잡해져 버렸다.
따지고 보면 너무 오랜 시간 현장을 나가지 않았기에 생긴 일일지도 모른다. 예의 대학살 때도 이정도로 숨이 막히진 않았었는데. 아니면 불현듯 레이븐의 생각이 나서일까. 이따금 클라우드는 상상했다. 자신이 서 있던, 그 피웅덩이 위에 레이븐이 서 있는 것을. 과거에도 레이븐은 피를 치덕치덕 묻힌 채로 돌아오곤 했다. 물론 그 때와 지금의 차이는 컸다. 그 때는 그 피에 저의 것이 어느 정도 묻어있었다면, 지금은 온전히 남의 피였다. 클라우드는 아직도 그것이 레이븐에게 다행인 일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것은 과거의 레이븐만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굳이 클라우드 본인의 푸념을 해보자면, 최악이었다.

레이븐에 대한 생각을 접기로 했다. 그에 대한 것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괴로운 건 자신이 아니었나. 자학하는 걸로 밖에 결과가 나지 않았다. 낮은 한숨을 쉬고 클라우드는 제 몫의 서류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수려한 글씨체로 쓰여 있는 것은 Raven. 필체 또한 그의 것이었다. 너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한 순간 네가 작성한 보고서를 잡은 것은 무슨 모순일지. 굳이 꼬박꼬박 나에게 임무 보고서를 제출하는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클라우드는 잠시 보고서로 제 얼굴을 덮어버렸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클라우드."

들려오는 목소리에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동시에 초점이 없는 벽안과 눈이 마주쳤다. 레이븐은 클라우드의 얼굴 위에 올려져 있던, 저가 작성한 보고서를 들고 있었다. 클라우드가 눈을 뜬 것을 확인하자 레이븐의 시선이 그 보고서 쪽을 향했다.

"맘에 안 들기라도 했나."

넌지시 건네 오는 말에 클라우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 잠깐 훑어본 보고서는 완벽했다. 물론 사실은 보고서의 내용보다는 의외로 깔끔하고 세련된 필체에 더 눈이 갔지만, 아무튼. 클라우드는 레이븐의 손에 들어가 있던 보고서를 낚아챘다. 그러자 레이븐의 시선이 다시 클라우드에게로 향했다. 뒤늦게 다시 한 번 내용을 눈으로 훑고, 클라우드는 고개를 저었다.

"바로 결제 할게."
"어쩐 일이야. 워커홀릭 마냥 일하더니."
"그런 인상이었던가."

클라우드가 길게 기지개를 켰다. 그렇게 생각할 만 하다고, 클라우드는 일단 긍정했다. 레이븐이나 루나와는 다르게 어느 순간부터 내근직이 되었으니까.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만큼 하는 일이 많아보이게 된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달리 워커홀릭이라던지 한 것은 아니었다. 레이븐이나 루나가 밖으로 나돌면서 사람을 죽이는 거나, 클라우드가 책상 앞에 앉아서 서류를 보고 있는 거나 기본적인 일의 양은 같았다. ……고 클라우드는 일단 생각하고 있었다.

"아아… 너, 오늘 임무가 있었다고 했지. 들은 것 같네."

어질러진 책상 위에서 펜을 찾던 클라우드가 순간 움찔했다. 그리고 레이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니 잊으려고 한 것이 맞았다. 오랜만에 본 피는 영 적응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만큼 정신적인 타격도 꽤 컸다. 익숙해 졌다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착각이었다. 그저 순간적으로 무뎌진 것뿐이었을 터. 애써 지우고 있던 피의 눅눅함이 다시 클라우드를 집어삼켰다.

"안색이 안 좋은데."

대답 대신 클라우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피식 웃고 말았다. 저 목소리에 과거가 겹쳐졌다. 몇 년 전이었던가. 「안색이 안 좋아, 클라우드」하고 말을 붙혀오던 레이븐이 있었던 시절은. 물론 레이븐에게는 끝까지 저에게 인간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눈치를 챘던 것 같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거기까지 였을 것이다. 클라우드는 레이븐의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눈앞의 레이븐은 그 때의 레이븐이 아니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차이가 적어서 그것이 화가 났다. 그 때도 무표정이었고, 지금도 무표정이었다. 그 때에도 저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지금 또한 없다. 어째서 별개의 존재라 생각되는 것인지. 그저 변한 것뿐인데.

……변한 것 뿐일 텐데. 안타까운 감정이 피어올랐다. 레이븐의 눈동자는 계속 클라우드의 시선을 쫓았지만, 클라우드는 끝끝내 그 눈을 피해버렸다.

"산책좀 하고 올게. 너도 네 볼일 보러 가, 보고서는 다녀와서 바로 결제 할 테니까."

그리고 결국 자리까지 피할 수밖에 없었다. 견디기 힘든 시선이었다. 처음부터 묻은 적도 없었던 피의 눅눅함까지 더해서. 앉아서 잠든 시간이 꽤 되었는지 몸이 찌뿌둥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클라우드는 레이븐에게 시선을 한번 두고, 금방 고개를 돌려버렸다. 언젠가 레이븐이, 그 이름과는 전혀 다르게도 빛이었던 시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지금의 레이븐은 클라우드에게 있어서 말 그대로 필요악이었다.


사라진지 오래인 클라우드의 뒷모습을 레이븐은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저 내근직이었던 클라우드가 오랜만에 현장을 나간 터에 피로가 쌓인 것뿐일 터. 이상할 정도로 신경이 쓰여서, 레이븐은 그 자리에서 두어 번 고개를 저었다. 해야 할 일은 없었다. 오늘의 스케줄은 끝난 지 오래였고, 그저 짬이 나서 클라우드를 찾아왔을 뿐이었다. 어째서 클라우드냐, 하고 묻는다면 그것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오래 전부터 무료할 때면 클라우드를 찾곤 했던 기억이 잔류하고 있어서, 버릇이라도 된 마냥 언제나 발걸음은 클라우드의 자료실로 향하곤 했다. 물론 클라우드가 나가버린 지금, 굳이 이곳에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런 레이븐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 뿐만 이었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나치게 흠집 하나 없는 깨끗한 모양새는 조금 이상하게 와 닿았다. 레이븐이 알기로는, 저 기종은 꽤나 오래된 양산형 스마트폰의 기종이었다. 클라우드의 책상 위에 있다는 것은 당연히 그의 물건일 터. 그 클라우드가 저런 구형을 사용한다고? 레이븐은 무심코 기기를 잡아들었다.


그리고 클라우드가 기기를 놓고 왔다는 것을 인지한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끙, 하고 작게 신음하고 클라우드는 제 이마를 짚었다. 누가 그것을 건드릴까 싶었지만, 몸에 지니고 있지 않으면 그것대로 불안한 물건이 아니었던가. 결국 다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마도 레이븐이 없다면 다시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시작하겠지.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레이븐을 피해서 나온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가끔 지금의 레이븐은 클라우드를 견딜 수 없을 정도로까지 밀어붙이곤 했다. 물론 본인 의지는 하나도 없는 행동이었고, 클라우드가 제멋대로 그렇게 느껴버리는 것이긴 했으나.


─그리고 들려오는 저의 목소리에 방에 들어선 클라우드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버렸다. 숨이 턱 막혀왔다. 기기를 들고 있는 것은 레이븐이었고, 동시에 가장 들키고 싶지 않아했던 상대도 레이븐이었다. 클라우드는 멈춰버린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 성큼성큼 레이븐에게 다가갔다.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던 것들이었다. 동시에 너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은 말들이었다. 레이븐은 멍한 표정으로 저의 손에 들린 기기를, 클라우드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녹음된 목소리가 말을 붙이고 있는 상대는 분명히 자신이었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기기를 빼앗기고 나서야 레이븐은 고개를 돌렸다. 클라우드는 화난 것인지, 부끄러워하는 것인지 잘 파악이 안 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단 하나 레이븐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을 클라우드가 죽도록 숨기고 싶어 했다는 사실이었다. 기기의 전원을 꺼버린 클라우드는 아무런 말없이 레이븐을 바라보았다. 유독이나 그 시선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보고 싶어? 버틸 수가 없어? 힘들어?"

모두 그 기기에 녹음해 놓은 말이었다. 클라우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따금 너의 이름을 부르곤 했으니 빼도 박도 할 수가 없다. 차라리 무시하고 넘어가줬으면 했다. 그게 맞지 않나, 지금의 레이븐이 보일 반응은.

"내 이름은 왜 부르는데."

대답 할 수 없다.

"이런 성격이었나, 클라우드?"

초점이 없는 벽안과 눈이 마주쳤다. 해야 할 말이 따로 존재하나? 변명을 해야 하나, 해명을 해야 하나. 아니면 과거의 너는 이러이러했다고, 나는 그런 너를 되찾고 싶다고 그 본심을 말해야 하나. 그렇게 하면 너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부질없는 생각들이었다. 클라우드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주책없는 성격이 아니란 건 네가─ 아니. 과거의 너는 알고 있을 터였다. 클라우드는 무의식적으로 계속 레이븐과 레이븐을 다른 객체로 여겼고, 지금의 레이븐은 레이븐이 아니라 생각했다. 이러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아도 어느새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레이븐이 그것을 눈치 챘을지는 모르겠으나.

"클라우드."
"못들은 거로 쳐.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불러오는 목소리에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클라우드는 꽉 쥐고 있던 기기를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완벽한 본인 불찰이어서, 이 이상 할 이야기는 없었다. 그렇다면 아까처럼 도망치면 되지 않나. 어째서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지, 클라우드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여기에 있어, 클라우드."

꽂혀오는 시선이 어쩐지 아프다.

"…그래."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 레이븐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 바로 눈앞에, 필요할 때 찾을 수 있는 자리에 여전히 있었다. 그저 변한 것뿐이었다. 물끄러미 제 눈을 쳐다보는 레이븐에게 클라우드는 물음을 던지고 싶다는 충동에 빠져들었다. 너는 지금 괜찮아? 부질없는 물음이었고, 오늘의 물음이었다. 너는 그것까지는 듣지 못했겠으나.

짧게 레이븐의 입술이 클라우드의 입술을 스쳤다. 사실상 변했다고 칭하기에도 뭣했다. 레이븐은 과거에도 여기까지가 한계였고, 이것밖에 할 줄 모른다는 눈으로 클라우드를 바라봤었다. 클라우드는 말없이 레이븐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잠시 그 어깨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현재의 너에게서 과거의 너를 찾는 것은 나에게도, 너에게도 너무나도 잔인한 짓이다.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쪽은 오히려 클라우드였다. 이대로 서서히 녹아들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지금의 너에게서 그때의 너를 찾지 않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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