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게 아프네……."
독방에 내던져진 클라우드는 뒷목을 짚고 작게 끙, 하고 신음했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자 주변을 분간할 수도 없을 정도로 어두컴컴해져 버렸다. 순식간에 고요해진 주변, 클라우드는 손등으로 터진 입술에서 새어나온 피를 닦았다. 상처가 그뿐이었다면 별 것 아니라면서 웃어 넘길 수도 있었을텐데. 사실 손가락을 까딱하는 것조차도 무리가 있었다. 허나 통증 자체는 이미 무감각해진지 오래였다. 그저 몇번이고 짓밟힌 탓에 움직이는데에 불편함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클라우드는 괜히 주먹을 꽉 쥐었다. 부러진 뼈가 금방 고통을 토해냈다.
잠시 호문클루스로써의 신체 능력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이럴 때서야 쓸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방 안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손등에 묻어나온 피가 선명하게 보였다. 문득 구역질 난다, 고 생각해버린 것은 어째서일지. 클라우드는 힘없이 손을 떨구었다. 끔찍할 정도로 무기력했다. 무기력함 이후에 찾아온 것은 당연하지만 우울감이었다. 들킬 염려따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철저하게 행동했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단 한번도, 이런 꼴이 될거라는 상상은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했다. 이런걸 절망감이라 말하던가? 이내 클라우드는 고개를 저었다. 17년이었다. 인간성이고, 감정이고 슬슬 흐릿해져 가기 시작한 시점이 아니었던가.
자체 마나도 압류당해 있었다. 주변을 밝히는 일조차 할 수 없었다. 머리를 굴려봐도 마땅한 탈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에게 연락을 취한다면? 가능성도 없을 뿐더러, 그가 자신을 버릴 것이라는 생각에 닿았다. 하기사, 끈끈한 유대감에 묶인 상하관계가 아니었다. 서로의 이해에 따라 협력하고 있는 것 뿐이었지. 클라우드에게 크리스는 은인이긴 했지만, 이런 상황에 도움을 청할 만큼 그를 신뢰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지금의 자신은 그에게 쓸모 없을 테니. 아마도, 묵인 당하는게 당연한 절차겠지. 싶었다.
사실은 알고있지 않나. 원하고 있는 것은 단 한사람 뿐이라는걸. 기다리고 있는 사람. 모든 것을 재끼고 머릿속에 남은 인영. 클라우드는 그대로 제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불가능한 것을 꿈꾸고 있었다. 그대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머지않아 헛웃음을 토해냈다. 다른 둘에게 자신의 죽음은 무엇이라 알려질까. 배신? 그것을 들은 너는 무슨 표정을 할까, 레이븐. 내가 미약하게나마 찾아 놓은 감정을 가진 너는, 과연 여느때처럼 무감각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일까. 클라우드는 지치고 망가진 몸을 애써 움직여 벽에 몸을 기댔다. 마지막을 맞이해야 한다면, 네 얼굴을 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대로 클라우드는 무거운 눈꺼풀을 내리 감았다.
얼마나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른 채로 눈을 떴다. 굳게 닫힌 문 너머가 소란스러웠다. 클라우드는 손으로 벽을 짚고, 삐걱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온몸의 상처가 욱씬거려서 저절로 호흡이 거칠어졌다. 하지만 일단은 밖의 상황을 확인하는게 더 먼저였다. 문 너머,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한번 휘청, 한 순간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오랫동안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절로 감겼다. 동시에 미간 또한 찌푸려졌다. 겨우 실눈을 떠 바라본 앞에는,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벽안이 있었다. 클라우드는 순간 말을 잃었다. 옷과 손,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피는 저 혼자 삼엄한 경계를 뚫고 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절대로 불가능할거라 생각한 일이었다. 클라우드는 헛숨을 들이 마셨다. 마주한 눈동자가 떨렸다.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찾았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무표정한 얼굴이 이리도 반가웠던 때가 또 있었나. 레이븐은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와 그대로 겨우 벽에 등을 기댄 채 서있는 클라우드의 팔을 끌어당겨 안았다. 찾았다, 드디어 찾았어. 하고 연신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레이븐에게서는 아릿한 피냄새가 났다. 강제로 끌어당겨져 급하게 안긴 몸은 바로 삐걱거리면서 고통을 토해냈다. 클라우드는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게 끝이었다. 레이븐을 밀어내지도, 무어라 말을 하지도 않았다. 이대로 으스러질 정도로 안겨도 나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클라우드는 괜히 레이븐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손가락 관절 마디마디가 아파왔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다. 잠시나마 꿈꾸었다가 고개를 젓고, 그런 일이 일어나줄 리가 없다며 부정한게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손 끝부터 실재감이 느껴졌다.
"클라우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다시 마주하게 된 벽안은, 17년도 전에 봤던 그것이었다. 클라우드는 부여잡고 있던 레이븐의 옷자락에서 손을 떼내고, 레이븐의 볼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냈다. 물론 그것은 본인의 것이 아니었다. 억지로 움직인 몸은 더이상 무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우드는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애써 흐릿해지는 정신을 다잡았으나.
"…가자."
그 말에 대답을 했는지, 안했는지 조차 잘 모르겠다. 클라우드는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
한참을 열병에 시달렸다. 레이븐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따금 클라우드는 악몽을 꾸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말없이 손을 잡아줬다. 안전한 장소로 도망온 후에야 안 것이지만, 클라우드는 만신창이였다. 타박상과 골절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언제나 먼저 손을 잡아오고 팔을 잡아당겼던 손에도 멍이 가득했다. 도대체 어떻게 몸을 움직였던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옷자락을 꽉 잡아오던 손을 기억하고 있다. 레이븐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었다. 상처 부위에 급하게나마 응급처치를 해두는게 고작이었다. 딱 안죽을 정도로, 완전히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만 팬 것이 분명했다. 상처를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일단 클라우드가 깨어나는게 우선이었다. 하지만 클라우드는 도무지 정신을 되찾을 기믹을 보이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숨을 내쉬고, 악몽에 시달릴 때는 미간을 찌푸렸다.
죄책감을 느끼고 있나. 인간성과 감정이 완전히 돌아온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클라우드가 이지경이 된 것에 대해 어느정도 자신의 책임은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제멋대로 행동했고, 기어코 배신을 감행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레이븐도 알고 있었다. 만약 그 장소에 클라우드가 없었다면 어쨌을 생각이었는지. 하지만 확신이 있었다. 사라진 클라우드는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를 구할 사람은 자신 뿐이고, 구하지 못한다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주체할 수 없었다. 오래 전, 레이븐이 절대로 잃고싶지 않아하던 것을 잃자 오랜 시간에 걸쳐 다시 찾아준건 클라우드였다. 일련의 계획들이 하나라도 들킨다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몰랐을 클라우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또한 목숨을 걸었으니 레이븐도 목숨을 담보로 도박을 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만약 그곳에 갇혀 있다면 구해야 한다, 오로지 그 생각 뿐이었다.
깨어나 줬으면 했다. 고맙다는 말을,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클라우드가 눈을 뜬 것은 며칠이나 지나서였다. 의식을 찾자 마자 클라우드는 레이븐을 찾았고, 그가 곁에 있다는걸 인지하고 나서야 숨을 돌렸다.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나서야, 레이븐은 클라우드가 더이상 마법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클라우드는 그게 뭐, 하는 태도로 일관했지만 충분히 초조해하고 있다는걸 레이븐은 알고 있었다.
"얼마 안가 발각될거야."
한참을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해둔 클라우드가 툭 내뱉었다. 레이븐은 시선을 내렸다. 그쯤은 알고 있었다. 그들 집단이 얼마나 거대한지, 가장 잘 알고 있는 두사람이었다. 이 나라 어디를 가든, 심지어 해외로 뜨더라도 끈질기게 추격해올지도 모른다. 클라우드가 탁, 소리나게 노트북을 덮었다. 묘하게 신경질적인 행동이었다.
"후회할거야, 레이븐."
정말로 그렇게 될까. 레이븐도 장담할 수는 없었다. 훗날, 클라우드를 질책하며 그를 몰아붙힐지도 모른다. 아마도 클라우드는 말없이 그 질책을 받아들일 것이다. 지금도 그는 일련의 모든 상황이 자신의 실책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 작은 한숨소리가 레이븐의 귓가에 들려왔다. 클라우드는 고개를 들어 레이븐을 쳐다보았다. 여느때와 같은 무표정.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 맞긴 맞는지, 클라우드는 알 수 없었다. 그게 가능하다는 확신조차 없었지 않았나. 어쨌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인건 여전했다. 레이븐은 얌전히 저를 올려다보는 시선에 제 눈동자를 맞췄다. 지금이라도 떠나란 이야기를 하고 있나. 평범한 인간과 별 다를게 없어진 자신은 짐만 된다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건가.
"괜찮아."
나즈막한 대꾸였다. 레이븐은 벽에 기대 앉아 있는 클라우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추격 해오면 다시 도망치면 되니까."
한참을 클라우드는 말없이 레이븐과, 자신을 향해 뻗어진 손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런 클라우드에게 레이븐은 작게, 그리고 짧게 같이. 하고 덧붙혔다. 결국 클라우드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가볍게 눈 앞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아직까지 몸은 삐걱거리고 있었지만, 그런대로 움직일 만은 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호문클루스의 신체능력은 더럽게 뛰어나고, 재생능력도 완전히 망가진게 아닌 이상은 평균 이상이니까. 어두운 방 안에서는 그것을 혐오스럽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 이상으로 고마운게 없었다. 레이븐은 괜시리 클라우드가 잡은 손을 더 꽉 맞잡았다. 상황은 더럽게 안좋았지만 기분은 나름 괜찮았다.
"가자, 레이븐."
레이븐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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