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문클루스는 추위도 안타나. 거기까지 생각한 클라우드는 일찍이 그 생각을 접어버렸다. 호문클루스의 범주 안에 자신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클라우드는 간혹 레이븐을 보고 있자면 잊곤 했다. 저쪽이 비정상인지 이쪽이 비정상인지에 대해서는 따져보았자 입만 아픈 일이었으나. 피에 절은 옷은 이미 본인이 기분 나쁘다며 집어 던져버린지 오래고, 일단 급한 대로 자신이 걸치고 있던 겉옷을 벗어 주긴 했는데 영 신경 쓰이는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클라우드는 잠시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고 레이븐의 옷장을 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클라우드는 눈 앞에 보이는 새까만 색의 옷들을 전부 불태워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잠시간 휩싸여버린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 겨울에 저런거 입고 다니면 안춥냐?"
넌지시 건넨 말에 레이븐은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이내 어깨만 으쓱 하고 말았다. 굳이 따지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쪽이 많았다. 추위는 둘째치고 애초에 몸이 가벼운 쪽이 편했으니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을 바라보는 클라우드에 레이븐은 팔을 들어 물끄러미 클라우드가 입혀준 그의 겉옷 소매를 바라보았다.
"…이거로도 괜찮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결국 클라우드는 제 옷가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사이즈가 맞지 않을 리도 없었으니까, 일단 급한 김에 뭐라도 입혀놓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손에 잡힌 옷이 하나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클라우드는 그것을 보자마자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고 말았다
─언제였더라.
제 옷가지를 사러 나갔을 때, 무의식적으로 딸려서 사버린 옷이었다. 그러니까 굳이 말하자면, 클라우드 본인이 입기 위해서 산 옷은 아니었다. 언젠가 잠시 손이 겹쳤을 때 차가웠던 생각이 나서, 그 기억에 이끌리듯 사놓고 쳐박아 둬버렸던. 물론 그렇다고 잊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줄만한 타이밍을 놓쳤, 정확히는 없어서. 작은 한숨소리에 레이븐이 물끄러미 클라우드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닿았던 손에서 그 때의 차가운 느낌이 다시 올라왔다. 썩 기분 좋은 것은 아니었다. 기왕이면, 따뜻했으면 했다.
"……일단 이거 입어."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옷을 꺼내 건네자 자동으로 고개가 반대로 돌아갔다. 쑥쓰럽다거나, 머쓱하다거나, 그런 감정 다시는 느끼지 못할 줄 알았는데. 사실 지금 느끼고 있는 것도 착각이 아닐까, 싶었다.
"클라우드."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가 돌아간 것은 반사적인 행동 같은 것이었다.
"고마워."
그 말에 어쩐지 클라우드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잠시만."
살짝 허리를 숙인 클라우드는 레이븐이 하나하나 채우고 있는 단추를, 레이븐이 채운 부분의 다음부터 천천히 채워주기 시작했다. 이번에 시선을 돌려버린 쪽은 레이븐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은 것은, 묘하게 손등이 덮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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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 너 손톱 좀 자르면 안돼?"
레이븐이 눈을 뜨자마자 들은 말은 바로 그것이었다. 이내 레이븐은 잠이 덜 깬 눈으로 클라우드를 바라보았다. 깬 것은 또 어떻게 알았는지, 말을 붙혀온 클라우드가 느껴지는 시선에 뒤돌았다. 한참이나 눈만 깜빡이며 클라우드를 바라보던 레이븐이 천천히 시선을 내려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굳이 따지자면, 그 눈동자는 잠보다는 새벽의 나른했던 공기에 물들어 있는 쪽이 더 맞았다.
"……별로 길진 않은 것 같은데."
"그런 문제가 아니라서."
클라우드는 이내 어깨를 으쓱 했다. 그리고 천천히 레이븐이 누워있는 침대로 다가와서, 대충 걸터 앉았다. 그제야 레이븐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그 시선은 손가락 하나하나에 고정된 채였다. 그 모습에 클라우드는 고개를 두어번 저었다. 사실 손톱 길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역시 자각 자체를 못하고 있나. 문득 레이븐이 손을 뻗어 클라우드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잡아당겨서 가까이 오게 하더니, 기어코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취소. 지금 보니 나른함이고 뭐고 잠에 빠져들어 있는 쪽이 맞았다.
"신경 쓰이는거면 자를게."
"됐다. 말을 말자."
단칼에 클라우드는 레이븐이 말을 끊어버렸다. 잠시 그 반응에 레이븐은 실눈을 뜨고 고개를 갸웃, 했다. 무엇이 문제냐고 말한다면, 뒤늦게야 찾아오는 아픔 같은 것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모르다가 지금처럼 날이 밝아서야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것. 어차피 금방 나을 상처였지만, 생긴 날을 기점으로 딱 신경 쓰일 정도로만 아프니 거슬리는건 사실이었다. 약을 바를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고. 레이븐에게 부탁한다는 선택지가 하나 있긴 했지만, 굳이 그런 습관을 자각시킬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다. 애초에 밤일 습관이라는게 쉽게 고쳐질 문제도 아니었고.
잠시 저 혼자 생각에 잠겨있는 클라우드를 어느새 눈을 뜬 레이븐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그 시선은 제 손 끝에 닿았다. 검지로 엄지 손톱의 끝을 만지작거리던 레이븐이 이내 그 엄지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클라우드의 시선이 레이븐의 입술에 닿았고, 이내 클라우드는 한숨을 내쉬며 레이븐의 손목을 잡아 입에서 손가락을 떼어냈다.
"…야."
잘근잘근 깨물려서 짧아진 손톱이 클라우드의 눈동자에 비춰졌다. 괜한 말을 했나, 싶었다. 레이븐도 제 엄지 손톱에 시선을 두었다. 보기 흉하게 짧아져버렸다. 본래부터 길었던 손톱은 아니었던지라, 아마 조금 더 깊게 깨물었으면 피가 났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신경 쓰는 것 같아서."
아까의 것보다 긴 한숨이 레이븐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저정도로 짧으면 당연히 상처도 안남겠고, 애초에 아프지도 않겠지만 보기에 흉했다. 누가 보냐 묻는다면 내가 본다. 클라우드는 레이븐의 충동적인 행동에 고개를 내저었다. 보기 흉해졌잖아. 짧은 타박에 레이븐이 시선만 내리깔았다. 클라우드가 레이븐의 손목을 잡고 있는 손에 어쩐지 힘이 들어갔다. 그 손목을 끌어당기더니, 클라우드는 레이븐이 잘근잘근 깨문 엄지손톱을 슬쩍 혀를 내밀어 핥았다.
"괜찮으니까, 하지 마."
"……응."
그리고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클라우드는 레이븐의 손 끝에서 혀를 떼어냈다. 그러고도 계속 신경이 쓰이는지 그 손톱을 제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손 끝에 걸리는 느낌도 거친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괜히 그 손을 꽉 맞잡았다. 애초부터 레이븐의 손톱 길이가 어떻든 클라우드가 참견할 문제는 아니었다. 손톱이 임무를 수행 할 때 걸치적거릴 정도로 방치할 레이븐도 아니었고, 은근히 자기 관리도 철저했으니. 굳이 참견할 영역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괜히 말한게 맞았다. 차라리 아프고 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