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는 결국 모니터를 꺼버렸다. 귀를 웅웅 울리던 질척거리는 소리도 그제야 멎었다. 불이 꺼져 있던 방 안은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고, 모니터에서 명멸하던 빛에 익숙해져 있던 눈 또한 깜깜하게 암전되어 버렸다. 들리는 것은 자신의 나즈막한 한숨 소리 뿐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려오기 시작했다. 착잡해진 마음에 클라우드는 그대로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주변에 온통 어두컴컴한 와중에서, 눈 앞에 아른거리는 것은 예의 그 무표정으로 꾸역꾸역 받아들이던 레이븐이었다. 저와 관계를 가질 때에도 그 정도 였던가. 적어도 표정 변화는 있었다고 기억한다.
어째서 이런 행동을 하고 있을까. 클라우드는 그대로 시선을 떨구어버렸다. 그래보았자 어차피 어두운 주변,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으나. 레이븐은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그것은 평소에도 그러했지만, 유달리 소리가 없었다. 울지도 않았고, 이따금 불편한 숨을 토해낼 뿐이었다. 살을 찢고 들어오는 감각에도, 숨도 못쉴 정도로 입을 틀어막히는 감각에도 반응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독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당연한 것 처럼 느껴졌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자신은.
클라우드가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 것은 한참 뒤였다. 그때 즈음이면 이미 모든 상황이 정리됐을 무렵에야 발걸음이 떼어졌다. 저가 저지른 만행을 면전에 마주하고 싶진 않았던 것인지. 레이븐이 알게 된다면 같잖은 죄책감을 쓸데없이 느낀다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오늘 아침 까지만 해도 좋아해, 사랑해 하는 말을 속삭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레이븐이 잠든 틈을 타 그를 묶어두고 고용한 자들에게 그를 윤간하라 시킨 것도 자신이다. 과연 레이븐이 그것을 알고 있을까. 차라리 혐오를 해줬으면 했다. 호기심이든 무슨 이유든 절대로 용납 받지도, 이해 받지도 못할 행동이다.
클라우드는 낡은 창고의 문을 거칠게 열어 재꼈다. 그리고 아직도 후끈거리는 안의 공기와 기분 나쁜 냄새에 미간을 찌푸렸다.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봤다. 저 끝 모퉁이 구석에서, 겨우 벽에 몸을 기대고 있는 레이븐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보기에도 만신창이였다. 클라우드는 두어번 심호흡을 하고 성큼성큼 레이븐에게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인 얼굴은 입술이 터져 있기도 했지만 상처가 가득했다. 목덜미에도 붉은 흔적, 아니 상처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을 것들이 속속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밑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 주제에 저 혼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클라우드는 똑똑히 기억 하고 있었다. 이 안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레이븐이 들었을 말을. 그리고 그것은 명백히 본인이 벌인 일이고, 동시에 방치한 일이다. 레이븐에게 다가간 클라우드는 손을 뻗어 흰색 액체가 말라 붙어있는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렸다. 그러자 레이븐이 눈을 떴다. 여전히 초점이 없는 벽안과 눈이 마주쳤다.
"…클라우드."
피곤에 잠긴 목소리였다.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감정의 정체를 클라우드는 알고 있다. 불러오는 말에 대꾸 없이 클라우드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상황이 종료된지 그렇게 오랜 시간은 지나지 않은 모양인지, 레이븐의 얼굴에 묻은 채 말라붙지 않은 액체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말라붙어버린 것들은 물을 묻혀 닦았다. 흔적도 남지 않도록. 볼을 문질러오는 감각에 레이븐이 문질러지는 쪽의 눈을 감았다. 아직도 뜨여진 눈 쪽의 시선은 여전히 클라우드만 쫓고 있었다.
"괜찮아."
"……왜 네가 그런 말을 하는건데."
문득 레이븐이 뱉어낸 말에 오히려 클라우드 쪽이 비참해지고 말았다. 대충 얼굴과 머리카락에 덕지덕지 묻은 것들은 닦아내고 떼어내긴 했는데, 도저히 그 밑으로 내려갈 수가 없었다. 어쩐지 숨이 막혀왔다. 너를 이렇게 만든게 나라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레이븐은 오히려 클라우드를 위로하고 있었다. 결국 클라우드는 레이븐에게서 시선을 떼어내고 말았다. 정말로, 숨이 막혔다.
"돌아가자, 클라우드."
결국 클라우드는 눈을 질끈 감고 제 겉옷을 벗어 레이븐에게 걸쳐주었다. 전라는 아니었지만, 대충 걸쳐지기만 해 있는 옷을 차마 어떻게 추스려줄 엄두도 나지 않았다. 괜찮을 리가 없는데 괜찮다고 말하는게 오히려 더 야속했다. 동시에 안타까워져서 클라우드는 그대로 레이븐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힘없이 끌려오는 몸에 되려 클라우드가 울컥하고 말았다.
"그래… 돌아가자."
해서는 안될 짓을 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
머릿속이 멍했다. 마지마으로 직접 손에 피를 묻혀본 적이 언제였던가. 그런 것을 따질 건덕지 따위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클라우드는 기억을 헤짚는 것을 관두었다. 한 놈 한 놈 찾아내어 가뒀다. 그리고 죽여버렸다. 의뢰주가 되려 자신들을 죽였으니, 원통해 할 만도 하겠다. 무엇이라고 생각하면서 죽었을까. 클라우드는 시체의 틈에 선 채로 어깨만 으쓱 했다. 그들의 생각이야 알 필요가 있을까. 총알에 여기저기를 찢긴 시신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훑어보고 클라우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구역질이 났다.
돌아오자 마자 제 방으로 저를 이끌더니, 다짜고짜 끌어안고 한 말을 클라우드는 기억하고 있다.
─네가 깨끗하게 해 줘.
당연한 것이지만 그 상태의 레이븐을 안을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래서 겨우겨우 재운 뒤에 나와서 한 일이 바로 이것이다. 레이븐은 괜찮을 것이다. 별 것 아닌 일이라고 생각할 테고, 오히려 본인이 죽일 가치도 없다고 여길 지도 모른다. 그래도 클라우드는 이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용서가 안되는 것은 이들이 아니라 자신인데.
변덕이라 욕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들이 아니라, 레이븐이 욕을 해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레이븐은 이번에도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이 넘어갈 것이다. 처음 안았을 때처럼.
"결국 피해보는건 나잖아."
한심한 짓을 한 것도 자신이고. 클라우드는 고개를 젖힌 채로 손으로 제 눈을 가려버렸다. 그리고 문득 피식 웃었다.
……돌아가자. 퍽 레이븐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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