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Logout Link+ Admin Write

[Finite Triwizard] 네일 클라이스 엔딩 로그

 

체크메이트.

 

그제야 네일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몸에 힘은 아주 오래 전에 다 빠져버린지 오래였다. 깡으로 버티고 있었을 뿐. 몸도 마음도 너무 만신창이였다. 몸이 만신창이인 이유는 알겠는데, 마음은 어째서일까. 들고 있던 지팡이 마저 떨어뜨리고 습관적으로 네일은 제 얼굴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리고 안경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주변에서 다들 미친놈 보듯이 쳐다봤으나. 별로 개의치 않았다. 무엇을 위한 웃음인지, 이것은. 단지 그것에 대한 의문만이 있을 뿐이었다. 결국 살아남았다는 것? 승리했다는 것? 혹은 결국 삶을 택했다는 사실에 대한 자조인가. 네일은 쉽사리 하나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저 어떤 것들의 복합적인 작용이리라.
갈 곳을 잃은 손으로 그대로 마른 세수를 했다. …끝까지 저를 경멸의 뜻을 품고 자신을 보던 이들. 끝에 끝이 다가온 순간 저도 모르게 마음을 열었던 일이 이리도 상처가 될 줄은 몰랐다. 세상에는 가면 쓴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는데, 결국 또 이런 식이라니. 마음이 만신창이인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믿지 않는 삶을 살아온 자가 손을 뻗었다가 그 손을 잘린 셈이지. 깊은 곳이 쑤시고 쑤셔서 네일은 얼굴을 가리고 있는 손을 떼어낼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본다면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착각을 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마냥 잘리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 그 잘린 손마저 잡아준 사람들도 있었더랬다. 그리고, 가면을 썼다고는 하나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더랬다. 가능하다면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그런. 지금도 변치 않은 마음이었다. 그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래서 살아보기로 결정했다. 또한 도망치지도 않기로 했다. 있을 곳은 여기. 네일 클라이스로서 살아온 이 곳.

 

교수님의 챙김을 받는 것은 익숙했다. 제 입으로 말하고 다니지 않았던가. Teacher's pet 이라고. 하지만 그 교수님이 어째서 자신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는지,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 저를 보며 몇몇 사람들이 수근거렸고 네일은 상황파악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살아남은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내밀어진 손을 잡고, 지팡이도 주워 품 안에 잘 넣어두고. 겨우 몸을 일으켜 섰다가 한 번 휘청하고. 그 모습을 보다가 또 어떤 여교수가 눈물을 보이더라. 네일은 당황하고, 고개를 갸웃하고. 그리고 억지로 병동에 밀어넣어졌다. 멀어지는 교수님들에게서 작게나마 무엇을 들었는데.

 

─나중에 말하도록 하죠. 지금 말해봤자 아이를 망가뜨리는 일이 될 것 같으니…….

 

그 눈은 말이지, 혼자 남겨진 이를 보는 눈이었다.

 


* * *

 


6년 여만에 모습을 다시 드러낸 아버지와 아들을 보며 사람들은 온갖 소문을 만들어냈다. 심지어 아버지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고, 아들은 아비의 장례식에서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가까운 친척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고, 네 명의 가족 중 혼자 남아버린 소년의 앞에서만이라도 조용히 해달라 부탁을 하고 다녔다. 소년, 네일 클라이스는 이를 모두 알고 있음에도 아무 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릴 뿐이었고. 그저 꽤 오랫동안 가십거리로 남겠구나, 하는 생각만 했다.

 

생각을 하지 못한 건 아니라 충격이 덜한 걸까. 아니면 정말로 자신은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던 건가. 소중하다고, 줄곧 생각해왔는데. 아버지는 클라이스 가의 온 가족들이 본가에 숨어 방어 마법에 열중하고 있을 동안, 몰래 빠져나가 뒷산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고 했다. 참으로 머글다운 방법이었다. 남겨진 것은 죽었을 거라 생각한 아들에게 쓴 편지 한 장. 장례식이 끝난 지금까지도 네일은 그것을 읽지 않고 있었다. 자살의 이유도 너무 당연한 것이라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내와 큰아들을 잃고, 비슷한 방식으로 작은 아들까지 잃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았겠지. 어쩐지 결국은 인정받지 못한 것 같다. 호그와트에서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그리 확신을 했나.

8년 전, 아버지가 도망치듯 자신을 데려와 살았던 집은 그대로였다. 친척들이 일부러 남겨놓았다고 했다. 방 밖은 밤 늦게까지 아버지 쪽 친척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로 시끄러웠고, 네일은 입고 있는 정장을 벗지도 않은 채 침대에 누워 남겨진 편지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편지를 열었다가 닫았다가를 수십 번,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네일은 낡은 종이에 쓰여진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내 아들, 네일에게.

 

그리고 몇 분 지났을까, 네일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옆에 내려놨다. 그리고 눈가를 수도없이 비볐다.

나는 당신을, 당신들을 단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노라고. 그리고 당신들 또한 나를 단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너무 뒤늦게 알아버린 사실들에 소년은 소리없이 울었다.

 


* * *

 


어머니의, 아버지의, 그리고 형의, 또한 자신의 학교는 아직도 복구되지 못한 채였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일어서겠지. 미래는 없을지도 모르나 현재는 분명히 존재했다. 앞으로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지는 아직 하나도 몰랐다. 하지만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계속 해서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중 몇은 과연 어떤 눈으로 자신을 봐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잃고 싶지는 않다고.

 

네일은 며칠인가 꺼내지 않았던 지팡이를 꺼냈다. 너무나도 뛰어난 형을 가져 그 형 만큼이나 완벽하고 싶었던,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된 동생이 몇 안 되게 할 수 없던 것이 있었다. 형은 할 수 있었지만 자신은 할 수 없었던 이유. 뭐가 부족한지 생각하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았다. 모두가 사랑했기에 자신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학교로.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온 네일은 작게 주문을 외웠다.

 

이윽고 빛과 함께 나타난, 조금은 작을 지도 모르는 독수리를 보며 네일은 웃고 말았다.

 

 

-

 

Doubt that the stars are fire

별의 반짝임을 의심할 망정,

Doubt that the sun does move

태양이 움직임을 의심할 망정,

Doubt truth to be a liar

진리가 거짓임을 의심할 망정,

But never doubt that I love you

나 그대들 사랑함은 의심치 말라.

-

 

나는 네일이에요. 클라이스가 아니라. 그렇게 기억해줘, 평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