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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Cube] 죽음 합작

부모님이 모든 것을 투자해가며 겨우겨우 키워놓은 회사가 휘청하면서, 도망치듯 숨어들어온 슬럼가에서는 언제나 죽음의 냄새가 가득했다. 시아닌은 공교롭게도 거기서 태어났고, 그 불길한 공기를 들이마쉬고 내쉬면서 유년기를 보냈다. 가장 행복하고 아무 생각 없이 즐거워야 할 시기에 그의 옆에 따라다닌 것은 죽음, 오로지 죽음 뿐이었다. 하루를 거르지 않고 죽는 사람이 나왔으며 그것은 어제까지만 해도 이야기하던 친구, 모두가 힘든 사정에도 불구하고 친밀하게 지내며 서로를 위로했던 옆집 사람이기도 했다. 시아닌이 처음으로 죽은 사람을 본 것은 7살 정도 즈음의 일이었다. 허나 의외로 그 시신은 빠르게 시아닌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고, -그만큼 그가 죽음에 익숙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유년기를 지나보내고 10대에 접어들 무렵 그곳에서 떠나 원래 있어야 했을 장소에서 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시아닌의 뒤를 보일 듯 안 보일 듯 꾸준히, 그 뒤를 좇고 있었다.


* * *


죽음을 목도했던 순간, 신비롭게도 침착할 수 있었던 이유. 한 두번 본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무덤덤했냐, 고 묻는다면 전혀 아니었다. 어릴 적 첫 죽음을 마주했던 그 순간보다도 더 충격이었다. 사람이 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가. 아무런 문제 없이 나갈 수 있으리라고, 그렇게 생각했던가. 솔직히 말하자면, 위험은 존재할 것이지만 죽지는 않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허나 결국 첫번째 사망자가 나오면서, 시아닌은 끔찍할 정도로 민감해졌다. 만약 죽어야 하는 수가 정해져 있다면 저가 그 할당량을 다 채워버리고 싶었다. 그만큼 삶에 대한 미련은 없었고, 나가봤자 어떻게 해야할지 정하지도 못했다. 애초에 이곳은 시아닌이 현실에서 도망칠 공간으로 선택한 곳이었다. 이런 곳이란 걸 알고 선택한 건 아니었지만.


날이 갈수록,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죽고싶다는 생각이 교차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다른 이들과 함께 있으면 전자가, 하나의 죽음을 눈 앞에 둘 때마다 후자가. 차라리 구할 수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구할 기회도 주지 않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죽어나갔다. 시아닌은 그걸 버티기가 사실은 조금 많이 힘들었다. 구할 수 있는데 구하지 못한 거라면 차라리 자신을 자책하기라도 했을텐데, 하고. 설사 바로 죽지 않았다 하더라도 도와줄, 살릴 방법이 없었다. 그럴 때 죽고싶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대신해서 죽고 싶다고. 자신은 나가봤자 할 일 하나 없는 사람인데. 저들은 그렇지 않을텐데. 눈이 안보이게 된 순간부터는 그런 생각을 더더욱 많이 하게 되었다.


구할 수 있는 기회.


하지만 끔찍한 무력감.


뒤에 따르는 죽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할 수 있냐의 문제가 아니라, 꼭 해야만 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망설이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괴로워했고 하나둘씩 죽어나갔다. 비명 소리가, 아프다 힘들다 소리치는 소리가 귀를 찢을 것만 같았다. 앞은 보이지 않았지만 손이 떨린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제발. 제발 부탁이야. 차라리 날 죽여줘. 그 짧은 시간 동안 속으로도, 육성으로도 빌고 또 빌었더랬다.

그 날의 일이 끝나고, 사람들은 그곳을 빨간방이라고 불렀다. 사방이 온통 피같은, 온통 붉은색 뿐이라고. 시아닌은 그곳에서 미약한 피냄새마저 맡았기에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눈이 보이지 않더라도 느껴지는 것은 있다. 애초에 눈이 안보이는 이상, 다른 감각에 더 집중해야 했다. 시력에 치중된 능력이긴 하지만, 부분적으로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 수 있는 시아닌이 눈을 잃은 것이라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죽고싶다는 생각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쓸모 없다는,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죽고 싶었다. 겨우겨우 정신을 차린 후에는 쓰러지듯 잠에 빠져 들었다.


* * *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아니 이제는 낯설다고 말하는 게 맞을 천장. 무언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다. 겨우겨우 익숙해진 큐브 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득해진 기억의 정신병원도 아니었다. 너무나도 오래됐지만 절대로,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곳. 돌아오지 않는 걸 바랬다면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 돌아가도 소용없다, 에서 나가는 것을 꿈꾸었지 않았나. 아주 끔찍히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과 함께' 가 동반되어야만 하는 소원이었다.


큐브가 꿈일까, 지금이 꿈일까.


시아닌은 좋은 아침이라 인사해오는 고용인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밖으로 나왔다. 본가였다. 성인이 되자마자 분가한 이후로도 여러 이유로 한 달에 한두 번은 들렸던 곳. 시아닌은 길게 숨을 들이 마쉬고, 2년의 세월 동안 묻어두었던 기억을 꺼내 먼지를 털듯 훑었다. 조금 헤메기는 했으나 어렵지 않게 제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본가와 너무 가까운 것이 몇년 동안이나 불만이었는데, 지금만은 고마웠다.


2014년 9월. 그 해의 여름은 지나, 가을에 접어든 시기였다. 능력은 그대로였다. 청각도, 후각도, 촉각도, 미각도, 심지어 한 번 잃었던 시각까지도 모든 것이 온전했다. 그렇다면, 돌아온 것이었다.


반갑지 않았다.


그 이후에는 흔적을 더듬었다. 큐브 안에서 함께 지냈던 사람들에 대해서. 연락처나 그런 것들은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까웠던 사람들의 뒷조사를 조금 했다. 돌아온 것은 저 혼자 뿐이었다. 대부분 실종, 행방불명, 심지어 사망 처리 된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시아닌은 멍하니 시선을 내리 깔아 조사 차트를 몇 번이나 곱씹어 읽어보았다.

삶의 의지라는 것이 있다. 혼자 돌아오는 것은 바란 적이 없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차트를 올려놓고, 시아닌은 그 옆에 있는 가위를 들었다. 나쁘진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가위의 손잡이를 잡고, 왼쪽 손목을 거꾸로 해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꿈이라면 깨어날 것이고, 아니라면 이대로 끝일 터다. 끝이라고 해도 미련은 없었다. 혼자 돌아온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했던 약속들도, 다짐했던 것도 혼자라면 부질 없었다.


시아닌은 그대로 손목의, 정확히는 그 안의 혈관을 찔렀다. 푹, 하는 소리가 유달리 노골적으로 들려왔다.


* * *


그리고 눈을 떴다.


하지만 여전히 앞은 보이지 않는다. 이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시아닌은 제 이마를 짚고 피식 웃어버렸다. 그1리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소리가 안들리는 걸 보니 아직 다들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또 새벽에 깬 것일까. 시간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하릴없이 앉아 있을 수밖에.

꿈을 꿔도 하필이면 그런 것을 꾸나, 싶었다. 정말로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되면, 꿈과 똑같은 선택을 할까. 시아닌 본인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속으로 그냥 고개를 저어버렸다. 가급적이면 다함께 살아 나갔으면 한다. 했던 약속을 모두 지킬 수 있도록.


그래도 이번 건으로 죽을 각오는 되어 있다는 건, 확실하게 확인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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