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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Square] 디셈버

로그 소실의 고통


with 디디님


보통 동료들 중에 워커 홀릭이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기기 마련이다. 은근슬쩍 저의 일을 떠넘겨도 그 이들은 군말없이 처리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하지만 그 워커 홀릭에도 종류가 있는데, 조정반의 유명한 워커 홀릭 디셈버는 가끔 조정반의 오지라퍼들을 착잡하게 만드는 부류였다.

분명 이번 달 그는 그가 가장 반기는 저녁조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왜 야간조의 업무가 반 이상 끝나갈 무렵까지도 남아 있냐, 이 말이다. 게다가 그의 출근 기록은 멀쩡하게 오후 5시에 찍혀 있었다. 물론 초과 근무야 할 수 있다. 특히 디셈버의 경우, 집까지 일거리를 들고 가는 걸 꺼리는 편이기에 최근처럼 부쩍 바빠진 시기에는 한 두 시간 씩 남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니 지금처럼 길어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선배, 밥은 드셨어요?"

"아니."


바로 이것이다. 저녁만 걸렀다면 그럭저럭 넘어갈 만 했으나, 그가 저녁을 안먹었는데 점심을 먹었겠냐는 추측이 난무했다. 결국 누군가가 "오늘 아예 안 드신 거예요?" 하고 물었고, "응." 이라는 답변을 받은 후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미 퇴근한 지 오래인 저녁조에 수소문해보니 요 일주일간 그가 저녁 먹는 것을 본 적이 없단다. 차마 대답이 무서워서 그 누구도 묻질 못하고 있지만, 정말로 그 일주일 동안 굶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쯤되면 오지라퍼가 아니더라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조정반 내에서 사람이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단숨에 소란스러워 질 게 뻔했고, 그 소란이 지속되면 초과 근무를 해야 할 게 안 봐도 뻔했으니. 그래서 바야흐로 디셈버 임시 대책 위원회까지 결성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허나 디셈버는 예사 상대가 아니었다. 주는 간식을 거절하지 않나, 억지로 안겨주면 쌓아두기만 하며 뭔가 먹으러 가자고 해도 요지부동, 심지어 예의 그 살벌한 시선으로 쳐다보기까지 했다. 임시 대책 위원회는 완전히 넉 다운 상태였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디셈버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바삐 손을 움직일 뿐이었고.


"최후의 수단을 써야 할 것 같다."


누군가가 비장하게 던진 말에 대책 위원회 모두가 동의했다. 작전의 총대를 맬 사람은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로 정하게 되었고. 작전명, 루쿤스. 옆에 있기만 해도 사람을 배고프게 만드는, 유사 걸어다니는 생화학 무기인 아트라스를 부르는 게 작전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혹여 자고 있다면 큰일이긴 하지만, 통화가 연결되자 지켜보고 이던 모든 이들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음은 아트라스도 디셈버도 영영 모를 일이었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조정반으로 아트라스가 들어왔다. 그가 출현하자마자 느껴지는 단내음에 아닌 새벽 2차 피해자가 속출했음은 나중에 할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 새벽에 날 부른 이유가 저녀석 때문이라고?"


노골적으로 디셈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기까지 하며 아트라스가 되물었다. 그러자 그를 둘러싼 열댓명 가까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뭐라 하지도 못하고 아트라스는 헛웃음만 흘렸다. 급한 목소리로 긴급 상황이라 하기에 막 잠드려는 몸을 꾸역꾸역 이끌고 왔더니, 사유가 너무나도 허무했다. 신입 조련사들이 육식 동물에게 밥을 못 줘서 안달인 모양새라고 해야 하나.

물론 고참 조련사는 당연히 신입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저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쳐다보는 이들을 무시하고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팔짱까지 끼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트라트는 느즈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늦어서 뭔가 사올 수는 없으니, 비축분을 꺼내야만 했다. 한참이나 제 서랍을 뒤적이는 그를 대책 위원회 전원은 숨 죽이고 바라봤다.


머지 않아 곁으로 다가오는 단내음에 디셈버는 시선만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제 앞에 툭 놓여지는 무언가에는 고개까지 돌렸다.


"스페셜 에디션. 아무한테도 안 줬던 거야."

"…원래 이 시간 출근이었나, 너?"


차마 면전에 대고 니놈 때문에 왔다,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아트라스는 작게 한숨만 내쉬었다.


"먹기나 해."


이어지는 동문서답에 디셈버는 과자가 든 종이 박스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별 거 없어 보이는데 스페셜 에디션이라니. 아니, 애초에 과자에 그런 것도 있나. 실없는 생각을 이어가던 디셈버는 이내 만년필을 내려놓고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지켜보고 있던 자들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도 느껴지는데, 이녀석은 도대체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둔한 건지. 아트라스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포장을 뜯는 디셈버를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하루 종일 굶었다면서."

"음."


과자를 입에 물어서 그런지 디셈버의 입에선 발음이 뭉개져 나왔다. 그 순간 터지는 환호성에 아트라스는 뒤돌아 "일이나 해, 이것들아." 하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장장 3시간 동안 활약─한 건 없었지만─한 디셈버 대책 위원회의 해산 순간이었다. 삽시간에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는 사람들을 보고 있던 아트라스는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못난 놈들. 문득 디셈버가 어쩐 일인지 먼저 입을 열었다.


"굶는 건 며칠 더 굶었지."

"사람이 그러고 살 수 있냐?"

"배가 안 고파서."


말은 그렇게 하면서 디셈버는 잘도 과자를 야금야금 먹어 치우고 있었다. 아트라스는 한켠에 수북히 쌓여 있는 간식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왜 저건 먹고 쌓여있는 건 안 먹는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스페셜 에디션이라는 말에 혹한 거라면, 그럴 놈은 아니지만 정말 그렇다면, 미안하지만 구라였다.


"맛있냐?"

"달아."

"내가 주는 게 다 그렇지 뭐."


하긴 그래. 작게 대꾸하고 디셈버는 마지막 한 조각까지 모두 입 속에 넣어버렸다. 고작 과자 한 상자로 며칠씩이나 굶은 게 괜찮을 리는 없었지만, 단 걸 먹었으니 입맛도 돌고 잊고 있던 허기도 돌아올 것이다. 매번 그랬듯이.

문득 디셈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 끝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터는 모양새가 손을 닦으러 가나 싶었는데,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그럼 일 열심히 해라."



미션1 


사실 총을 쥐는 것은 그다지 달가운 감각은 아니었다. 아무리 사람을 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물론 어디까지나 '달갑지 않다'의 범주일 뿐, 디셈버는 테이커들 못지 않게 사격에 능숙했다. FPS 게임으로 단련된 실력이라 하면 남들이 웃겠지만, 솔직히 정말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달갑지 않다에 이어져 사람을 쏴야 하는 상황에서는 꺼리게 되는 걸 보면 혹여나 전생과 관련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디셈버 본인은 자신이 사무직에 더 맞다고 생각하는 듯 했으나, 남들이 보기에는 다른 법이다. 비록 그 실력과는 별개로 총을 쏘는 데 약간의 주저가 있어 부상이 잦긴 하나, 디셈버는 완벽한 현장 체질이었다.




M#1 ERROR 404, 연결할 수 없습니다. 기억의 잔상




저의 등 뒤에서 들려온 총격에 디셈버는 시선을 돌렸다. 동행한 테이커 한명과 눈이 마주쳤다. 이름이, 릴리였던가. 제법 유명인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이 정신 없는 와중에도 그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방해야." 릴리는 입모양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디셈버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릴리를 바라보다가, 대뜸 들고 있던 총을 바로잡아 대충 조준하고 쏴버렸다. 그를 덮치려던 크랙 하나가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이내 디셈버는 그를 향해 어깨만 으쓱했다. 누가 방해라고? 하고, 디셈버의 눈동자가 말하고 있었다.



"돕고 도운 셈 치지."

"뭐, 그래. 그러기로."



릴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디셈버가 들어 온 릴리는 굉장히 유한 사람이었으나, 아무리 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찰을 빚기 쉬울 상황이었다. 실제로 며칠 사이 많은 이들이 크고 작은 싸움을 벌이기도 했고. 그 까칠한 태도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지금 상황은 누구에게든 짜증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얼마나 더 지속될지 모른다는 사실 또한 그 짜증을 가중시켰다. 오페라와의 연락이 끊긴지 하루, 이틀, 며칠이나 지났다. 업무 또한 혼선을 빚고 있었다. 하필이면 큰 사고가 터진 직후에 이모양이 되었으니.

동료들과 함께 주변의 크랙들을 모두 정리한 뒤 디셈버는 작게 혀를 찼다. 혹시해서 시계를 꺼내봤으나 근방의 반응은 없었다. 일단 이 구역의 일은 모두 끝난 셈이다. 테이커와 컨트롤러를 가리지 않고 다들 지쳐 있었다. 며칠 연속으로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시간과 미아를 회수하고 크랙을 퇴치하고 있으니 당연했다. 아무래도, 쉴 시간이 필요한 듯 싶다. 물론 매일매일을 과업으로 다진 디셈버는 그닥이었다. 이정도로는 지치지 않는다.




"어디 가십니까."

"산책."



소리 없이 무리에서 이탈하는 그를 잘도 필릭스가 잡아냈다. 디셈버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디셈버를 영 믿음직하지 못하다는 표정으로 마주 바라보며 필릭스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디셈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다행일지, 아니면 불행일지. 같은 컨트롤러로 몇 년 동안 함께 일을 하면서는 매번 다행이라 생각해왔지만 지금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 않나. 참견 받는 것은 사양이었다.



"이런 상황에 단독 행동은 안 좋습니다."

"그쯤은 알아."



……역시, 지금의 경우에는 불행으로 해두자. 혼자 크랙 처리에 나서려는 생각인 건 어떻게 알았는지 디셈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큰 놈을 잡는 건 무리니 자잘한 녀석들만 어찌 해 볼 생각이었다. 이럴 때는 빠르게 회피하는 게 상책이다. 디셈버는 따박따박 쏘아 붙이기 위해 입을 떼려는 그보다 더 빠르게 입을 열었다.



"피곤해보이는데, 조금 쉬어."



그리고 순간 말문이 턱 막힌 그를 뒤로 해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필릭스는 그런 디셈버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작게 중얼거렸다. "못말리겠네, 저건." 물론 디셈버는 듣지 못 할 말이었다.


.

.

.



탕! 어두운 골목길에 총성이 울렸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은 듣지 못 할 것이었다. 디셈버는 갑자기 쏜 총의 반동으로 얼얼해진 오른손을 두어번 털며 총을 맞은 크랙에게로 다가갔다. 평소 팀을 꾸려 상대해 온 크랙과는 차원이 다르게 작았다. 애완 강아지 정도의 크기일까. 크랙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주제에, 죽음이 두렵기라도 한 듯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디셈버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물끄러미 크랙을 쳐다봤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크랙을 보는 것은 12년 근무 동안 처음이었다.


하기사, 이미 죽은 사람인 건 저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종류의 차이일 뿐. 이미 죽은 것, 하고 크랙을 보며 몇번이나 되새기던 디셈버는 이내 생각을 접어버렸다.


"뭘 그리 욕심을 내고 그러냐. 남 시간을 훔친다고 네가 되살아나는 것도 아닌데."


심드렁한 목소리가 크랙에게 꽂혔다. 말을 알아듣긴 하려나. 디셈버는 무감각한 눈을 하고 크랙에게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마치 쓰다듬기라도 하듯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문득 디셈버는 이 녀석을 놓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크게 다쳤으니 허튼 짓도 하지 못할테고, 자연 소멸 되지 않을까. 하고. 회백색 눈동자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크랙은 의미 모를 행동을 하는 그의 손을 대뜸 물어버렸다. 디셈버는 미간을 찌푸렸다.



"할 수 없지."



애초에 크랙을 놓아준다니, 안 될 생각이다. 꼴에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겠다는 듯 제 손을 물어버리고는 여전히 불쌍한 척 떨고 있는 크랙을 보며 디셈버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놓아준다고 해도 서울에는 오페라 직원들이 쫙 깔려 있었다. 금방 다른 사람들에게 처리 당할 터다. 그러니 별 의미 없을 행동이다. 디셈버는 왼손의 잭나이프를 꽉 쥐었다.

디셈버는 사실 총기류보다 날붙이를 더 잘 다뤘다. 왼손에 든 잭나이프는 근접전이라는 무리수를 두는 무기였지만, 위험 부담에 비례해서 성과는 더 컸다. 애초부터 부상을 신경 안 쓰는 타입이기도 했고, 총을 쓸 때도 부상은 잦았다. 물론 디셈버는 남 앞에서 저의 칼솜씨를 뽐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보다 현장에 더 능숙한 테이커들이 언제나 동행했으므로,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다. 보이기 싫다는 이유도 있고.


푹. 크랙 위에 잭나이프가 꽂히는 소리는 퍽 무감각했다. 디셈버는 그 소리처럼 무감각한 눈으로 죽어버린 크랙을 바라보았다. 생명이 꺼져가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나쁘다. 설사 상대가 크랙이라 하더라도. 살아있지 말아야 할 것이 살아있는 것을 탐하려 든다면 죽어야 한다. 그것은 확실했으나. 곧 있으면 사라질 크랙을 놓아두고 디셈버는 비척비척 골목길에서 나왔다. 잭나이프로 크랙의 살을 찢은 왼손의 감각이 선연했다.


그것은 살아있는 것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는 듯한 감각이었다.



"디셈버?"



대로변으로 나온 디셈버는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금발에, 그 단 냄새는 현계에서도 여전했다. 아트라스는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알고 있다. 제 시선이 떨리고 있음은. 회백색 눈동자는 왠만한 일에는 떨리지 않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째서, 하고 묻기엔 디셈버는 그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들었던 왼손의 잭나이프. 익숙하게만 느껴지는 심장을 찌르는 감각. 디셈버는 잠시 멈추어 서 심호흡했다.

들켜선 안되는 것. 티도 내지 말아야 하는 것. 그리고, 애초부터 기억해내지 말아야 하는 것. 다행히 지워진 기억은 복구되지 않았으나, 그 감각만은 굉장히 익숙하다고 디셈버는 느끼고 있었다.


또한, 끔찍하다.



"너 무슨 일 있냐?"



고개를 젓는다. 한 번 눈을 꽉 감고 뜬 디셈버는 아트라스에게 시선을 주지도 않은 채 그를 스쳐 지나가버렸다. 아트라스에게는 디셈버를 잡을 틈조차 없었다. 영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으로 멀어져가는 디셈버를 아트라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바라봤다. 디셈버는 그 시선을 지긋이 무시하며 발걸음을 빨리 했다. 뒤늦게 헛구역질이 났다. 본래 생의 자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나. 한심하고, 답 없는 자식. 속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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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밤을 샌 게 며칠이더라. 이전에는 벤치나 바닥에 앉아서라도 눈을 붙이곤 했는데, 영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무런 문제 없다는 듯 다른 이들과 힘을 합쳐, 또는 저 홀로 크랙을 처리하고 컨트롤러로서 테이커들에게 정보를 전달했다. 극심한 피로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으면 그 감각이 다시금 떠올랐다. 최악이었다.

길에 멈추어 선 디셈버는 앞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기고 회중시계를 꺼냈다. 아무래도, 이 주변에는 크랙이 없는 모양이다. 사람이 많은 대로인지라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문득 디셈버의 시선이 회중시계의 시곗바늘로 향했다. 지금까지 12년. 시침은 아슬아슬하게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던 건지.

순간 디셈버는 휘청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질 뻔 했다. 체력의 한계인 모양이다. 애써 몸을 바로하고 디셈버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자고싶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디셈버는 고개를 숙였다. 이대로 조금만.


……쉬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