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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테일즈] 권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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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꼭 가야하는 건 아닌데… 아, 캐나다요."

그날은 비가 퍽 많이 내렸었다. 전국적으로 내리는 호우였던지라, 전화 너머에서도 어렴풋이 빗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였다면 좋아했을 그런 날씨다. 빗방울이 창문을 때리는 소리도, 우산을 들고 걷는 거리도 마냥 좋았다. 마음 끝까지 깨끗하게 쓸려나가는 느낌이어서. 하지만 오늘은 이야기가 조금 달라다. 바깥 하늘처럼 기분에도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데에도 그랬다. 그래도 이런 소식은 직접 전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고 내린 결정이었는데 아무래도 잘못된 선택이었나. 그나마도 화상 통화는 엄두가 나지 않아서 음성 통화였다. 안부도 겨우겨우 동생 편으로만 전하는 아들이었기에 얼굴을 보고 싶어 하실 거라는 생각은 있다. 많이 아쉬워하시고 계실 거라는 생각 또한. 실제로 너머의 목소리에는 분명히 서운함이 섞여 있었다.

"…기왕이면 갔으면 좋겠어요. 쉽게 찾아오는 기회는 아니라서……."

말끝이 흐려졌다. 잠시 고민에 잠겼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뵌 게 언제였더라. 거의 4년 치의 기억을 되짚어봐야 했다. 대학교 졸업식 때, 그 다음 해의 결혼기념일 때, 작년의 생신 때. 그게 다였다. 햇수가 넘어서야 전화를 하더니 대뜸 꺼내는 이야기가 외국에 가게 되었다, 라니. 정말로 불효자가 따로 없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더욱 허락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올해 나이 28세, 부모님의 허락 불허락으로 이런 것을 결정할 나이는 아니었다. 허락 해주시지 않더라도 갈 것이고, 물론 허락 해주시지 않을 분도 아니었다. 지금 뜸을 들이고 계신 이유도 그저 섭섭함에 기인한 것이 분명했다. 1년에 한번 볼까 말까한 아들이다. 제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더라도 10살 때부터 키운 정이라는 게 있다. 이번에 한국을 뜨면 3년이었다. 그나마 있던 연락도 끊어지게 될 거라는 사실이 어머니의 입을 막고 있는 것이다.

"네… 매번 감사해요. 아뇨, 돈은 필요 없어요. 지원 받고 가는 거라, 정말 몸만 가면 돼요."

어렵사리 나온 그래, 다녀오렴. 하는 말에 그저 죄송한 마음이 들 뿐이었다. 바로 이어진 것은 돈 이야기였고, 어머니는 기어코 얼마를 보내겠다며 단언하셨다. 계속 받지 않겠다고 고집 부리는 것도 안 될 짓 같아서 짧게 감사하다고 답해드렸다. 20년이 다 되가도록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새어머니와 전처의 아들이라는 이름의 거리감이다. 오히려 가면 갈수록 더 넓어지기만 했다. 어머니는 좋은 분이셨고, 동생과도 차별 없이 대해 주셨다.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에게도 죄송하고 동생에게도 미안했다. 이해해 주는 일도 정도가 있을 텐데. 속으로 혀를 찼다. 언제쯤 제대로 아들 구실하며 살 수 있을는지.

"가기 전에 한번 찾아뵐게요. 몸조심하시고, 네. 끊을게요."

쉭, 쉭 하는 숨소리가 수초간 이어졌다. 어느 쪽에서도 끊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먼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화면이 꺼진 퍼블리케이션의 액정을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괜시리 기능도 없는 버튼만 꾹꾹 눌렀다. 습기에 놓인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진득하게 젖은 마냥 찝찝했다.





그게 딱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총장님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계셨다. 여기 이렇게 마냥 죄송하기 만한 사람 한 분 추가다. 휴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정도로 열심히 준비했고, 이미 캐나다 현지 쪽에도 모든 연락을 취해 놓은 상태였다. 딱 출국 일주일 전이 오늘이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취소라니, 당황하시는 게 당연했다. 한창 핫 토픽인 그 편지가 나에게까지 올 줄을 누가 상상했겠는가.
불현듯 멍청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무니없는 스케일의 장난이라면 소중한 기회도 잃는 거였고,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와 실망만 남기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하루도 고민하지 않은 까닭은 흥미가 동해서였다. 사람이라면 도대체 누구일까.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그 배후에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 또한 놓치기 아까운 기회였다. 구미에 당기는 일은 정말로 오랜만이었으니까.

"네가 괜히 이럴 사람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니?"

…그렇다고 여기에 대고 S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하고 답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그 편지는 알게 모르게 이쪽 분야에서도 큰 관심을 끌고 있었다. 누군가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심리적인 실험을 벌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학계에서 대두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편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건 더더욱 꺼려졌다. 여러모로 귀찮아질 게 눈에 선했으므로.

"한국에서 해보고 싶은 게 생겼어요. 다녀오면 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구요."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그다지 찔리지는 않았다. 총장님은 영 꺼림칙해하시는 낌새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나는 허리를 숙였다. 대학교 시절의 교수님께 소개 받은 이래로 여러 가지를 챙겨주셨던 분이였다. 몇 번이나 사과 드려도 부족했다.

"정말 죄송해요. 일주일밖에 안 남았는데 멋대로 이런 결정을 내려서."
"아니다. 결국 가고 말고는 네 의사니까."

말은 그렇게 하셔도 실망하신 눈치가 가득했다. 도움만 받은 분에게 답례는 해드리지 못 하고 이런 모습만 보이다니, 정말로 자신답지 않았다. ─저,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90도 각도로 허리를 숙이고 총장님의 끄덕임을 보고 나서야 뒤돌았다. 자동으로 열리는 문 너머로 옮기는 발걸음이 썩 가볍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라는 뜻이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머리맡을 더듬거려 퍼블리케이션을 찾았다. 딱 잠들려고 할 때쯤이어서 썩 달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신자를 확인하자 어쩐지 차라리 자는 것보다 얘랑 대화 하는 게 낫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랜 친구였다. 요새는 서로 바빠서 화상 통화가 아니면 얼굴도 제대로 못 보지만, 언제든 만난다면 즐겁고 편안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그런 친구. 동시에 지금처럼 심란할 때 가장 필요한 사람이기도 하다. 역시, 같이 대학원에 진학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통화 연결 버튼을 누른다.

「미쳤구나, 정말.」

하지만 다짜고짜 들려온 말은 썩 기분 좋은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더럽게 소문만 빠른 동네다. 재학생이면 모를까, 설마 저기까지 소식이 갔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화면 속 질렸다는 시선을 피해버린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기방어였다. 알고 지낸 세월이 길수록 쏟아지는 잔소리 또한 비례한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미친 거 맞지?」
"네─ 그런가봅니다."

괜히 뚱하게 대답하자 재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결국 어색하게 웃으며 미안,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제야 그도 조금 표정을 푼다.

"어떻게 알았어?"
「총장님이 교수님께, 교수님이 나한테. 유학 취소라는 건 의외로 복잡하단다.」

놀리는 듯한 어조다. 놀림 받아도 싸고, 혼나도 싸다. 애초에 이해 받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복잡함이랑 이 복잡함은 조금 다른 것 같지만……. 태클을 걸려다 말았다. 바로 앞까지 나온 말을 꾸역꾸역 목구멍 뒤로 집어넣는다. 지금의 재준은 훌륭한 한 사람의 전투 민족이다. 잘못 건드렸다가 어디를 꼬투리 잡혀서 더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으니, 차라리 말을 삼가는 게 나았다.
그러다가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혹시 너한테 유학 건이 돌아간 거야?"

취소가 복잡하다는 말처럼, 사람 간의 연관 관계도 조금 복잡했던 문제였다. 총장님이 교수님에게 추천할 학생을 물었고, 그 교수님이 제일 연락을 자주 주고받던 재준과 나에게 다른 추천인이나 혹시 모를 우리의 의사도 물으셨던 게 유학 건의 시작이었다. 재준의 추천인은 나였고, 그걸 거절하기도 뭣하고 너무나도 좋은 기회였던 나로서는 바로 승낙했던 건이었던 거다. 그러니까 재준에게 다시 한 번 의사를 물으셨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몇 달 후에.」
"다행이다. 너라도 갈 수 있게 돼서."

살짝 웃으니 멍청하게 웃지 마, 멍청아. 하는 날카로운 대답이 돌아왔다. 기분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괜히 기분만 더 축 처지는 느낌이다.

「너라도 갈 수 있게 돼서, 가 아니라. 난 갈 생각 없어.」
"뭐야. 왜? 그럼 몇 달 후는 무슨 말인데?"
「이 형이 또 능력 있지 않냐. 너, 몇 달 후에 캐나다 행 비행기에 오를 거야. 내가 다 말해놨으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람?

「총장님께 양해도 구해놨어. 내가 가더라도 어차피 몇 달 후니까, 네 볼 일이 끝나게 되면 네가 가는 거로.」
"…내 의사는 없는 거고?"
「내가 알 게 뭐람.」

조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고마웠다. 하루도 안 지나서 유학 쪽을 포기하기로 결정하긴 했어도 정말로 아쉬웠던 거다. 그리고 동시에 미안해졌다. 저도 가고 싶을 텐데, 도대체 몇 번이나 양보해주려는 생각일까.

「…련아, 혹시 가기 싫어서 취소한 건 아니지?」

그 표정을 잘못 읽기라도 했는지 조심스레 물어오는 말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몇 년 전까지는 정말 제멋대로인 녀석이었는데, 나이 좀 먹었다고 이런 식으로 사람 마음도 헤아릴 줄 알게 되고. 사실 뒤통수를 처음 맞아 본 상대가 재준이 아니었나. 미안하다고 하는 사과에 맘 약해져서 다시 받아주고 말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아닌가보네. 그만 웃어! 그래, 이유나 좀 들어보자.」
"잠깐만-"

여전히 실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손등으로 입을 가려 숨기고,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S의 편지를 집었다. 퍼블리케이션을 잡고 있는 손을 멀리 뻗고, 편지를 바로 얼굴 옆에 보여준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웃는다. 짜잔─ 하니까 재준이 질색한다.

「애인? 미쳤냐?」

그리고 미처 떠올려내지 못한 것. S가 보낸 편지는 러브레터스러운 면이 있다는 점이다. 분홍색 편지 봉투, 거기다가 사랑하는 너에게. 라는 문구.

「와, 실망이다. 애인 있는데 나한테 말을 안 했어? 그전에 설마 청혼이라도 받았냐?」
"…조금 많이 잘못 짚으셨는데."
「뭔데, 그럼.」
"S의 편지, 라고. 설마 모를 리는 없겠고."

순간 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뭐, 너 그거 진짜냐?!」
"깜짝이야. 갑자기 소리 지르지 마. 놀랐잖아."
「세상에」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얼이 빠져 있던 재준은 한참이나 그렇게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꼭 잔소리를 하려고 할 때의 버릇이다. 역시 조금 어이없고 말도 안 되는 이유인가. 쏟아질 잔소리 세례를 속으로 그리며 긴장하고 있는데, 재준이 다시 표정을 푼다.

「하긴. 넌 원래 그런 놈이었지.」

흥미 본위로 행동하는 녀석. 덧붙이는 말에 부정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흥미 본위에 어울려 준 사람들은 많았고, 그 중에는 재준 또한 포함되지 않나.

「너 답다.」

이내 납득한 듯 재준이 중얼거렸다.

이어진 대화는 영양가 없는 것들 뿐이었다. 재준은 굳이 내용은 묻지 않았고, ─사실 이야기 해 줄 마음도 없긴 했지만─ 그런 거면 네 마음대로 하라며, 잔소리를 하기 위해 걸었던 전화인데 이게 뭐냐며, 잔뜩 푸념이나 늘어 놓는 것이다. 나는 그냥 웃음으로 응대 할 뿐이었다. 이번 일로 고마운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만들어 버렸다. 이 빚은 또 뭐로 갚는담. 통화를 종료 한 후 잠시 그런 고민에 잠겨 있다가, 그런 건 그 때 가서 생각해야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생각을 접어버린다.




《연락 바랍니다》
《확인 하는데 왜 답이 없어요?》
《메시지 많이 보내기 힘든데》
《저기요 제발 답좀》

련유는 하루에 하나 꼴로 온 메시지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묘하게 계속 바뀌는 어조다. 사람이 하는 거라면 재밌는 사람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프로그램이라면 그것도 그것대로 재밌겠다는 생각이다.

《부탁입니다....ㅠㅠ》

그사이 또 하나가 보내졌다. 이번엔 꽤나 비굴하다. 결국 련유는 미소에 그치지 않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더 이상 지체하면 정말 화낼지도 모르겠다. 련유는 재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미안해요, 결정해야 할 복잡한 일이 있었어요.》

다소 투박한 투의 메시지다. 그리고 거의 즉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참여는?》
《참여 보상 같은 거 있나?》
《몰라》
《화났어요?》

제법 귀여울지도. 이번에는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메신저 창을 아래로 내리고, 미완성 상태인 e북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무슨 이야기를 원하는 것일까. 하지만 복잡한 생각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응하기로 결정 한 일이다. 다시 메신저 창을 올린 련유는 아까와는 다르게 조금 느릿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문장을 완성해나갔다. 총 두 개의 메시지를.

《꽤나 중요한 걸 미뤄버렸으니, 기대 할 거예요》
《참가 하겠습니다.》


ch 01. 비


《그럼! 행운을 빌면서 Good Luck!》


다소 제멋대로라는 생각이다. 련유는 액정에 떠 있는 S의 메시지를 보고 작게 혀를 찼다. 북스들 끼리 쓰는 메신저에도 개입 할 수 있었구나.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서프라이즈? 나쁘진 않지만 조금 많이 당황스럽다. 이윽고 뜨는, 새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하는 팝업에 그제야 련유는 정신을 차렸다. 이제 정말로 시작인 모양이다. 그는 굼뜨게 손가락을 움직여 S와의 메신저창을 열었다. 실없이 나눴던 S와의 대화 밑, 다소 딱딱하게 띄워져 있는 키워드에 련유는 어째 웃을 수는 없었다. 다른 북스들 또한 조용했다. 아마도 공통된 생각은, 이거로 뭐 어쩌라는 건데? 일 테다.

사실 권련유는 그리 문학에 조예가 깊지는 않았다. 활자에 약한 편은 아니었으나, 언제나 문학보다는 비문학을 끼고 있었다. 전공 서적이라드지, 공개 사건 파일이라든지 그런 것들 말이다. 이따금 심심풀이로 문학에 관심이 많은 친구 ─이를테면 재준이라든가─ 에게 e북을 전송 받아 읽는 게 고작이었다. 물론 이건 조금 사연이 있는 이야기지만. 게다가 또 하필이면 주어진 키워드는 련유가 자주 읽곤 하던 범죄 관련 서적에 자주 나오는 단어였다. 이러하다보니 두 글자를 눈에 담은 순간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독살을 이용했던 유명 살인마들이라든가, 그들이 사용한 수법이라든가, 주로 사용되는 독… 뭐 이런 것들이 고작이었다. 이번에 찾아야 하는 건 소설인데 말이지. 련유는 작게 혀를 찼다. 어쩐지 시작부터 기운이 빠져버렸다.


살인사건, 이라 한다면. 수법이 어떻든, 범인이 누구든 상관 없이 자신의 일인 것처럼 느꼈다. 자살을 위장한 타살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되도록 문학을 멀리 하며 사는 것이기도 하다. 그 속의 허구적인 살인 사건에도 감정 이입을 하기 마련이었으니까. 물론 그 감정 이입이라는 것이 문학 이해의 중요한 요소임은 사실이지만, 그의 경우에는 과다했다. 어머니의 사건이 있었던 해 이후로 허구의 사건을 현실이라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인지 부조화가 생겨버린 거다. 어렸던 그에게서 위화감을 느낀 그의 아버지가 당시 소년이었던 련유의 손을 잡고 심리 치료실을 찾았던 게, 그 일이 있은 직후 한참이나 지난 14살 무렵의 일이다. 하지만 시기도 늦었고, 충격적인 사건에 의해 생겨버린 정신적인 상처는 쉽게 치료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직도 남아있을 정도니까. 그나마 장기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허구적인 살인 사건에 접촉하지 않는 것이었다. 고등학생 때 만난 재준이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자극적인 내용이 전혀 없는 순문학만을 권해주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평생 문학과는 다른 세계에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시기에 진로 또한 결정해버렸다. 순수 심리학 쪽에서는 남들과 다를게 없었지만 범죄 심리학 쪽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케이스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분석하고 학생 신분에서 웬만한 전문가들 못지 않게 정확한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 인지 부조화 덕이었다. 모든 사건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니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그것은 양날의 검이었다. 다 해결된 사건에서도 감정적으로 발언했고, 매번 가벼운 후유증을 겪었다.


그러니까, 독살이라는 키워드는 그에게 있어서는 복잡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전공 내의 단어였지만 동시에 어느정도 다행인 면도 있었다. 그의 어머니의 죽음에는 독살이 관련 되어 있지는 않았으니까.


단순하게 연결 짓자면 비 오는 날 독을 이용해 벌어진 살인 사건일까. 련유는 안경을 벗어 놓고 의자에 기대 몸을 살짝 뒤로 젖혔다. 그대로 으레 해왔듯이 팔로 눈을 가린다. 살인자들이 비 오는 날을 애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에서는 분위기 연출 따위는 필요 없지 않은가. 빗소리 덕분에 살인 도중 발생하는 비명소리 같은 소음이 가려질 수 있고, 핏자국이나 지문 등의 결정적 증거가 쉽게 훼손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범죄를 위한 최적의 선택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발전된 기술을 적용하게 되면 글쎄. 심하게 훼손된 증거로 복원해낼 수 있게 된 시대다. 그렇다보니 독살도 자주 쓰이는 수법은 아니었다. 옛날이라면 검출해낼 수 없는 미확인 독극물이 꽤 많았으나, 요즈음에는 부검 한번으로 약물이란 약물은 모두 검출해낼 수 있다. 그럼에도 미제사건이 생긴다는 건 조금 아이러닉하지만. 그러니까, 고전적인 수법이라는 이야기인데.

…또 생각이 삼천포로 새버렸군. 련유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전공을 원망해보았다.

아무튼, 그렇다면 독살이 쉽게 쓰였을 만한 시대를 찾아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학과 친하지 않은 련유로서는, 게다가 이런 류의 사건이 나올 만한 책은 더더욱 읽어보지 못한 그인지라. 할 수 있는 건 방대한 인터넷의 바다를 뒤져보는 일 뿐이었다. 비, 독살, 소설. 검색. 수도 없이 나오는 검색 결과에 련유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차라리 S가 남긴 말에서 힌트나 더 찾아볼까. 련유는 캡쳐 해 놓았던 S의 말을 조목조목 뜯어보았다. 비극의 비, 라고 말 한 건 제법 수상한걸. 비극이라……. 살인 사건의 피해자 입장에서 보자면, 어찌되었던 그 사건은 비극에 속한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련유는 이미 오래 전 외워버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자고로 친구란, 이렇게 써먹어햐 하는 거다. 신호음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왜?」


밖에 있는 모양인지 전화는 음성으로 연결되었다.


"비극 하면 생각 나는 소설, 뭐 있어?"

「…다짜고짜 질문이냐. 음,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역시, 책 하면 이재준이다. 셰익스피어라. 아무리 련유라도 그정도는 알고 이었다. 5대 비극이라고 이름 붙여져 지금까지도 필독서, 교양 도서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게 셰익스피어의 글이었다. 독살이 사용 될만한 시대에도 그럭저럭 맞고 말이지.


「설마 읽을 생각은 아니지?」

"그건 아니고. 그래서 네가 도와줘야 할 게 좀 있는데, 거기서 사용된 살인 수법은 어떤 거야?"

「한 두개가 아니잖아. 대부분 네가 모르는 게 나은 거야.」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기에 련유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니까, 자살이라는 말이지.


「읽은 지 너무 오래 되서 기억 안 나는데.」

"뭐, 괜찮아. 내가 찾아보면 되지. 그거 떠올려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 됐어."

「자세하게 필요하면 내가 대신 읽어줄까?」

"오늘따라 왜 이렇게 상냥해, 이재준?"

「착각인데.」


쌀쌀맞은 대꾸에 련유는 작게 웃었다. 셰익스피어와는 연결도 못 지었는데, 꽤 큰 수확이다. 유명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고전 작가이니 굳이 읽지 않더라도 검색 해보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게다.


「나 밖이니까,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문자로 넣어. 니가 그런 거 함부로 읽는 건 반대.」

"고마워."


그럼 끊는다, 하고 바로 끊어지는 전화에 련유는 물끄러미 꺼진 액정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바쁜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냥 혼자 찾아볼 수 밖에. 애초에 S의 편지와 관련된 일인데, 남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좀 그렇다. 련유는 손가락을 움직여 셰익스피어 5대 비극, 줄거리. 하고 검색을 해 보았다.


……당연하지만, 살해 수법 같은 게 나올 리가. 게다가 독살도 한 두개가 아니다. 련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ch 02. 여인


"원문이고 번역본이고, 제대로 된 건 하나 찾을 수가 없었어."


그리고 그를 만나고 나서야 뒤늦게 난 생각은, 북스들이 찾아야 할 책은 어떠한 이유로 유실된 책이라는 것이다. 헛걸음을 하게 한 것 같아 어쩐지 미안해져버렸다. 답지 않게 얼굴에 그득한 피로감은 말로 하진 않았지만 아마 밤새 웹이란 웹은 다 뒤져봤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재준도 할 일 없는 백수라 하지만. 게다가 할 일 없는 건 저또한 마찬가지인지라. 그러니까, 처음부터 헛고생이었다는 건 저 멀리 마음 속에만 묻어두기로. 부족한 연기능력으로나마 그렇구나, 하고는 련유는 씁쓸하게 웃었다. 게다가 정답이 햄릿이었다는 걸 이미 알아버린 뒤인지라.


"뭐, 더 뒤져보니까 셰익스피어의 작품만 유실된 것도 아니더라. 그쯤 되니까 음모론 같은 게 자꾸 생각나는게, 분서갱유라든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사상 탄압을 논해?"

"그것도 그렇지만. 재미 없긴."


재준은 그냥 어깨를 으쓱 하고 만다. 그러더니 갑작스레 눈을 빛내며 제 퍼블리케이션을 련유의 눈 앞에 가져다 댄다. 련유는 살짝 눈을 크게 뜨고 띄워져 있는 화면을 쳐다보았다. 기사문이다. 그것도 꽤 된 날짜의. 련유는 손을 뻗어 재준의 퍼블리케이션을 받았다. 기사를 읽고 있는 모양인지 그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2035년, 세계 각지의 도서관 출판사 서점 등이 습격을 받았다는 사건이었다. 한창 종이책에서 E북으로 판도가 갈아타질 때의 일이다.


"15년 전의 기사인데, 어쩌다보니 찾았어."


련유는 퍼블리케이션을 재준에게 돌려주었다. 종이책보다 몇 배는 더 간편한게 E북이다. 광적으로 종이책에 집착하는 사람이면 모를까, 대부분 오히려 좋은 판도라며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 15년 전 정도면 어렴풋 기억이 날 만도 한데, 그렇지 않은 걸 보면 정말로 작게 보도되었던 사건인 모양이다.


"이쯤되면 뭔가 이상하지 않아? 지역 단위면 모를까, 세계적이라니."

"너 그러다가 잡혀간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까 저가 한 말이다. 어쩐지 한 방 맞은 기분이라, 련유는 눈을 흘겼다. 재준은 그냥 웃어버릴 뿐이고.

그러고보니 첫번째 단서를 받은 지도 꽤 오래 지나지 않았던가. 슬슬 두번째 단서가 올 때 즈음 되지 않았을까. 련유는 주머니에서 제 퍼블리케이션을 꺼냈다. 그러고보면 저가 S의 편지를 받았다는 걸 알고 있는 재준인데, 어째서 그것에 대해 캐물어오지 않는 것인지는 조금 의문이었다. 아니면, 자신의 이 행동들을 이미 그 편지와 지레짐작으로 연관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되었든 캐물어 오지 않는 건 련유로서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메신저의 메세지는 꽤나 밀려 있었다. 개인적으로 온 것이나 S에게 받은 것은 없고, 모두 공용 메신저의 것이다. 련유는 느릿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채팅창을 띄웠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띄워지는 S의 메시지에 작게 혀를 찬다. 제법 좋은 타이밍이다. 게다가 덕수궁이라면 그리 가깝지도 않지만 먼 거리도 아니다.


"이만 가봐야겠다."


그리 말하며 련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준은 꽤 의외라는 표정이다. 조금 더 어울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쉽게 얼굴 표정에서 읽어 낼 수 있었으나. 굳이 지금 가야 할 필요성은 없겠지만 어쩐지 서둘러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재준과 어울리다가 집으로 돌아가서 내일 나오기에는 귀찮을 것 같고.


"할 것도 없는 놈이 바쁜 척 하긴."


련유는 그냥 어깨를 으쓱 해버리고 만다. 카페의 위치를 속으로 두어번 더 새겼다. 초행길은 언제나 신선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거리와 새로운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새로운 경험 또한. 그런 것을 바라고 S의 초대를 승낙 한 것이 아닌가.


"간다. 조심히 들어가."


짐짓 삐친 척을 하던 재준은 손만 흔들어 준다. 그리고 그 길로 카페에서 나와버린 련유가 깨달은 사실 하나. 계산 안 했는데. 그는 잠시 닫힌 문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그대로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마셨던 커피는 썩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알아서 하겠지 뭐, 하고 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퍼블리케이션에 개새끼, 라는 짧은 메시지가 전송 되 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게다. 련유는 그냥 그대로 웃어버렸다.


*


걸어 가기에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기에, 막연하게 길가에 서서 대중교통을 검색해보면 련유는 얼마 안 가 퍼블리케이션을 그냥 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대중 교통을 이용하다가 헤매는 것 보다는 조금 다리가 아프더라도 안정적이게 걸어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나름대로의 현명한 판단이다. 길치, 방향치까지는 아니었으나 초행길에는 남보다 길눈이 어두운 편이었다. 특히 내려야 할 정류장에서 못 내리는 게 제일 심했으니.

아직 완연한 여름은 아니라는 듯 제법 날씨가 쌀쌀하다. 걸칠 거 하나 쯤 들고 오기라도 할 걸, 하고 후회가 되는 순간이다.

여인의 이름은 오필리어라고 했다. S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그 이전에 왜 하필 그 이름일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본명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어떤 부모가 딸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 주겠는가. 셰익스피어의 오필리어는 확실히 아름다운 여성이긴 했지만, 동시에 비극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던 여자다. 그렇다면 가명이겠지. 지레짐작하며 련유는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덕수궁 자체에 처음 가보는 것이었다. 보통 그런 곳에는 어릴 적 부모님의 손을 잡고 가기 마련 아닌가. 련유의 가족은 그가 여덟 살 되던 해에 망가져버렸다. 화목했던 가정이, 한번에 와르르 하고.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이었기에 가족끼리 외출을 했던 기억은 몇 번의 놀이공원이 끝이었다. 그래도 매 해 련유의 생일에는 시간을 내주셨던 두분이었기에, 그 일만 없었더라면 그 해에 와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련유는 덕수궁 안으로 들어섰다.

벌써 20년 전의 일이라는 걸 실감이라도 하게 만드는 듯 슬프지도 않았고 아쉽지도 않았다. 그저 그 세월에 대한 씁쓸함 뿐이다. 아버지가 재혼을 하시고 동생이 생기면서 다시 화목한 가정을 되찾았지만, 어쩐지 련유만은 그 분위기에서 동떨어져 있었다. 가족 여행에서도 언제나 빠져 있기 마련이었고, 새어머니와 단 둘이 남는 것을 꺼렸기에 그럴 때에는 독서실에서 밤을 지새웠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아예 독립을 해버렸으니, 뭘 더 말하겠는가.

상념들을 지워내고 련유는 카페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잠시 뒤돌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구경, 하다 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러고 안경을 고쳐 썼다. 동행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잠시 재준의 생각이 나기도 하고. 카페 앞에서 서성이고 있자니 가이드 아르바이트로 보이는 여성이 머뭇거리며 다가온다. May I help you? 는 꽤나 익숙한 멘트다. 먼저 다가오는 사람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련유는 속으로 혀를 찼다. 그녀를 무안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짧게 No, Thanks. 하고 대꾸한다.

카페에는 제법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아는 사람도 없었고, 다른 북스로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면 첫번째로 도착일까. 이쪽을 힐끔거리는 시선은 익숙한 것이지만 썩 유쾌한 것은 아니었기에 련유는 빨리 볼 일만 보고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카페 안을 두리번거리고 있자, 어렵지 않게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련유는 그것이 표식이라는 양 퍼블리케이션을 꺼내 거기에 달려 있는 클립, 정확히는 팬던트를 보였다. 그녀, 오필리어는 별 다른 고민 없이 그에게 다가왔다. 오필리어, 라기에는 다소 거리가 먼 전형적인 동양 여인이었다. 어쩐지 그는 조금 위화감이 들었다.


"뭔가 시킬까요?"

"아뇨. 그리 이야기가 길어지진 않을 거예요."


그리고 그녀는 눈짓으로 입구 쪽을 가리켰다. 안을 둘러보며 누군가를 찾는 모양새가 꼭 처음 카페에 들어섰을 때의 자신과 똑같아서, 련유는 바로 알아 차릴 수 있었다. 그가 모르는 또다른 북스겠지.


"같이 들으면 되지 않나요?"

"그쪽에게는 더 들려 드릴 게 있어서요."


하고 그녀는 다소 의미심장하게 미소 짓는다. 다른 사람을 기다리게 해도 될 만큼의 짧은 이야기라는 사실은, 어쩐지 김이 빠지게 했다. 그런 그렇고 더 들려드릴 게 있다니. S도 그렇고, 통 알 수가 없는 사람들 뿐이다. 북스들 빼면.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나의 역사가 있습니다. 책에 관한 역사이지요. 지금의 E북이 만들어지기 전, 하나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책이 없어지는 사건. 세상의 모든 책이 어째서인지 불타버리는 그러한 잊혀진 역사."


……어라. 이거 어디서 들었던 이야기 같은데. 2035년, 습격 받은 서점과 도서관, 출판사들. 습격이 아니라? 련유는 잠시 짧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불타 사라진다면 설마 분서갱유가 정말 맞는 건가. 터무니 없는 이야기지만 이렇게 되면 정말로 음모론에 사로 잡힐 수밖에─


"보통은 여기까지만 얘기 해 드리는데."


오필리어의 목소리에 련유는 겨우 이어져가는 더 터무니 없는 생각들을 지워낼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가 일어난 시기는 2035년경. 한창 E북이 만들어질때쯤의 이야기입니다. 어떠한 세력에 의하여 E북으로 만들어지고 있던 책들이 불태워지고, 손실되고 하였지요."

"……진짜 분서갱유?"


말을 끊고 들어오는 작은 중얼거림에 그녀는 살짝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역시 이건 좀 어이 없는 이야기인가. 련유는 어쩐지 부끄러워져서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꼈다.


"전세계적인 움직임이였습니다. 그때, 유실되었던 책 중 하나가 햄릿입니다. 제 이름과 동일한 여자가 나오는 햄릿."


아니, 이건 그냥 대놓고 음모론을 예상하게 만드는 이야기 아닐까. 련유 또한 어색하게 미소 짓고 말았다. 햄릿 정도의 책이라면 정말로 전세계적인 움직임이어야 할 테다. 게다가 어떤 세력이라니.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기엔 전혀 찾을 수 없었던 햄릿의 원본 그리고 번역본과, 찾을 수 없는 책이 더 있었다던 재준의 말이 걸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깠던 게 바로 두어시간 전인데 말이지.


"…뭔가 더 묻고 싶은 건 많지만, 반칙이겠죠?"

"애초에 들려 드릴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녀는 옅게 웃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지. 련유는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대신했다. 어쩐지 머리가 복잡해져버렸다. 이야기는, 덕수궁 안을 걸으면서 조금 정리해보는 게 나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봤자 어이 없는 생각만 날 것 같고. 그녀가 아까 들어온 사람을 잡고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 걸 보며 련유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꽤 어려보이는 인상이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북스들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정도였는데. 대학생 정도 되려나 싶었다.


문득 기다려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거절당하면 조금 머쓱할지도 모르겠는데, 같이 좀 걷자고 해보면 안 되려나. 어차피 같은 북스라면 친해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문 옆에 기대어 서 있던 련유는 생각보다도 더 짧게 끝난 대화에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확실히 저에게 두어마디 더 해준 건 맞는 모양이었다. 그 또한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저기."


련유는 그대로 밖으로 나서려는 그─ 이 안에게 말을 붙여 멈춰 세웠다. 저요? 라는 말 대신 손으로 자신을 가리켜 보인다. 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식의 만남은 이미 한 번 있었던 지라, 련유는 언제나 클립과 팬던트를 퍼블리케이션에 연결해 둔 채로 다니고 있었다. 퍼블리케이션을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페리도트. 이름은 권련유 라고 해요."

"…아, 조금 놀랐어요. 여기서 이렇게 만날 수도 있구나."

"뭐, 같은 서울 안이다보니 예상치 않게 만나기도 하고 그러더라구요."

"하긴. 저도 되게 의외의 곳에서 만난 적 있긴 해요."


저의 외형 탓에 조금 꺼릴 만도 한데, 상대는 예상외로 밝게 맞아주었다. 련유가 만나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멀리 하기 마련이었어서,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이는 북스들이 제법 낯설기도 하고 그랬다. 싫은 것은 절대로 아니고, 오히려 좋은 편이지만.


"전 이 안이라고 해요. 호칭은 구름이고요."


어쩐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맞았구나. 채팅방에서도 꽤 밝은 분위기를 물씬 풍겨서 딱 봐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어린 편이겠구나, 했는데 정말이었다. 애초에 성격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련유는 이런 사람들을 제법 좋아하는 편이었다. 대하기도 편하고, 친해지기도 편하니까.


"음, 그러니까… 련유 씨? 이름 특이하시네요."

"그 소리 자주 들어요. 부르기 힘드시면 그냥 편한대로 줄여 부르셔도 되고."


그러고 옅게 웃어보이자 안 또한 웃었다. 역시 사람은 지르고 봐야 하는 법이다. 망설이다가 잡지 않았다면 아쉬울 뻔 했다. 조금 무뚝뚝한 사람이었다면 제법 뻘쭘하기도 했겠고, 말을 꺼내기도 힘들었을텐데. 사실 주변에 있는 건 동갑 아니면 형들이 대부분인지라 어린 사람은 제법 신선하기도 하고. 잠시 흐르는 정적을 끊고 련유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조금 갑작스럽긴 한데, 시간 있으세요?"

"어… 별 일정은 없긴 해요."

"그럼 같이 덕수궁 구경이나 하다 가실래요?"


안은 잠시 눈을 두어번 깜빡이며 련유를 쳐다보았다. 이거 너무 뜬금 없나. 련유는 머쓱해져서 괜히 뒷머리를 긁적였다. 별로 안 땡기시면 거절 하셔도 괜찮아요, 하고 입을 떼려는 찰나 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까요?"


……이거 정말, 사교력 좋은 사람들만 골라서 북스를 뽑나. 련유는 속으로 실없이 웃어버렸다. ─저 사실 덕수궁 처음이거든요. ─와, 정말요? 하도 유명한 곳이라 그러기도 힘든데. ─어쩌다보니. 실없는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두번째 단서조차 어영부영 넘어가버린 느낌이다. 뭐 조금 구경하다가 단서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 볼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일단은 구경부터.


with 슈님


요새처럼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은 또 처음이라는 생각이다. 평일 뒤에 찾아오는 주말이라는 특수적인 달콤함조차 없는, 정말로 의미 없는 휴일의 연속이었다. 자고로 휴식이란 고된 노동 끝에 찾아와야 기쁜 법 아닌가. 지금처럼 소모적인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은, 처음 며칠 정도는 좋을지 몰라도 오래 이어지다 보면 끔찍한 권태로움에 사로잡히는 게 정해진 수순이었다. 다른 사람들, 통칭 북스들과의 메신저 대화가 재미없다거나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오히려 즐거운 축에 속하지만, S의 편지 이전에 각자의 삶이 있는 사람들이다. 언제까지나 메신저에 잡아 둘 수는 없었다. 나도 하루 종일 메신저에만 팔려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캐나다를 미뤄버리고 지금 같은 일상을 선택한 것은 옳은 결정이었을까. 또한, 중요한 물건을 선택한 게 후회되지 않을 만큼 가치 있는 일일까. 클립의 끝에 펜던트처럼 매달아 놓은 반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적어도 잃어버릴 잃은 없겠네. 실없는 생각을 하고. 어쨌든, 이미 벌인 일이다.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고, 본격적으로 책을 완성 시키는 일이 시작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지 않을까. 지금의 권태는 그것으로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도 일단 오늘만은 그런 무료함에서 탈출이다. 서로 바빠서 꽤 오래 보지 못했던 친구와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간다면 거의 약속 시간에 딱 맞게 도착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건 둘째 치고 간만의 외출에 기분이 좋았다. 튀는 외형 덕에 잔뜩 시선을 받으면서 뭐 그리 싸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집에 박혀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덜 답답하지 않겠냐고 답할 테다. 그래도 썩 달가운 시선은 아닌지라 혼자 다니는 것은 최소한 삼가고 있었다. 이러면 또 시선이 달갑지 않으면 렌즈라도 빼면 되지 않냐, 하고. 나는 그 말에 대꾸는 못하지만 녹색 컬러렌즈에 고집을 부리고.

아무튼 준비 끝이다. 대충 코 위에 올려두었던 뿔테 안경을 제대로 고쳐 쓰고 밖으로 나섰는데, 계절에 맞지 않게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결국 다시 집으로 들어가 자주 입곤 하는 검은색 가디건까지 걸치고 나왔다. 그래도 햇빛은 꽤나 쨍쨍하다.





《미안, 긴급 근무가 잡혀서 못갈 것 같아ㅠㅠ》


이걸 또 약속시간 10분이 지나서야 말해주면 어쩌라는 건지. 한가로이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 퍼블리케이션으로 e북이나 뒤지고 있던 련유는 그 메시지에 작게 혀를 찼다. 혹시나 불러낼 다른 사람은 없을까, 하고 주소록의 스크롤을 내려 보지만 있을 리가 없었다. 대학 시절이었으면 한두 명 즈음 있었을 텐데, 28살이나 먹고 나니 다들 취직에 심지어 결혼까지 한 녀석도 있었으니. 불러낼 사람이 딱히 없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련유는 하릴없이 퍼블리케이션만 만지작거렸다. 지문이 묻은 액정을 손으로 닦다가, 또 여기저기를 터치하다가. 보던 책이나 계속 읽을까, 하며 e북을 다시 열었지만 흥이 떨어져버렸는지 글씨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S와의 메신저도, 다른 북스들과의 메신저도 조용하다. 어쩐지 혼자 한가롭고 잉여로운 기분이라 련유는 제법 억울해졌다. 28살 권련유, 인맥은 좁지만 굵고 나름대로 좋은 대학교 졸업에 대학원까지 재학 중이지 않나. 휴학 한 번 했다고 사람이 이렇게까지 권태로울 수가 있는지.

결국 련유는 먼저 시켜놓았던 커피를 한 모금 목 뒤로 넘겼다. 시킨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거의 다 식어버렸다. 이 카페 다시 오나 봐라. 속으로 투덜거리고 잠시 내려놓았던 퍼블리케이션을 들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저기, 말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일어나려는 련유의 앞에 대뜸 앉은 남자는 옅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련유는 살짝 당황했다.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은 슬슬 피하기만 하게 만드는 저의 외형인데, 보통 이렇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경우는 오랜 경험상 판매원이라던가, 보험이나 다른 상품 류의……. 그쪽으로 확신을 지은 련유는 애써 입 꼬리를 올려 함께 웃었다. 죄송하지만 별로 관심 없습니다, 라 써진 머릿속 대본의 대사를 속으로 읊으며─


"혹시, S의 편지?"


요새 판매원들은 독심술이라도 배우고 다니나. 남자의 시선이 련유가 꼭 쥐고 있는 그의 퍼블리케이션에, 정확히는 인식부에 꽂혀 있는 클립의 끝에 닿았다. 펜던트가 달려 있는 부분이다. 그는 무언가를 주머니에서 뒤적여 꺼내 선뜻 련유에게 보여주었다. 똑같이 생긴 클립이었다. 그리고, 펜던트. 퍼즐. 련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에 대해 유추해낼 수 있었다. 며칠 동안 메신저 너머로 보기만 했던 사람이다.


"…퍼즐님?"

"그렇게 불리니 기분이 영 이상하네요. 김윤오, 라고 합니다."


북스들끼리 이런 식으로 알아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펜던트로 매단 것이 곧 그 북스의 호칭이었으니. 같은 종류의 클립이야 충분히 있을 수 있겠으나, 북스의 호칭과 연결된 펜던트의 경우는 다르다. 련유는 살짝 내려가 있던 안경을 고쳐 쓰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미 아시겠지만 페리도트… 권련유에요."

"이름 특이하시네."

"그 얘기 자주 듣죠. 연꽃 연이 아니라 련이에요. 한자는 같지만."


윤오는 몇 번 입모양으로 이름을 읊는 듯 했다. 발음하기가 조금 힘든 이름이긴 하다. 발음 어렵다며 친구들 대부분이 그냥 련이라고 부를 정도로. 싫어할만한 이름인데, 련유는 오히려 저의 이름을 좋아했다. 희귀하다거나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라 정말로 순수하게.


"그냥 편하신 대로 불러주세요. 페리도트라고 부르셔도 되고."

"메신저도 아니고 오프라인인데 그건 좀 뭣하고요. 말로 먹고 사는 사람인데, 그 정도는 발음 할 수 있습니다. 권련유씨."


련유는 슬쩍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착각했던 판매원이라는 인상이 지나치게 많이 어울렸다. 어딘가 모르게 하이텐션이고, 타겟으로 정한 사람의 진을 빼놓는 데에는 선수일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물론 좋은 쪽으로 말이다.

련유는 이런 타입의 사람을 환영하는 쪽이었다. 저도 모르게 의심으로 시작했긴 했지만, 정말로 이런 경우가 드물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인상 때문에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하는 것을 언제나 아쉬워해온 사람이 바로 그다. 그러니까 그 인상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붙여오는 사람에게는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면, 그 이유가 어떻던.

련유가 저의 직업을 궁금해 하는 눈치이자 윤오는 주머니를 뒤져 명함─ 은 무슨. 그냥 가볍게 나온 차여서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주말이라 기분 전환 삼아 누굴 만날 생각으로 나온 것이었으니.


"콜센터에서 일합니다. 민원 쪽에서."


련유는 그것도 제법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할 것 같았다. 곧이어 련유씨는? 하고 물음이 되돌아왔다.


"전 대학원생. 전공은 심리학이에요. 지금은 휴학 중이지만."

"혹시 편지 때문에 휴학 하신 건가?"

"설마요. 유학 예정이었는데 그거 받아서 그냥 확 밀어버렸죠."


생각해보면 그거나 그거나다. 게다가 하긴, 유학 건이 없었더라도 S의 편지 때문에 휴학을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이즈음에는 똑같이 무료함에 시달리고 있었겠지만. 그러고 보니, 약속이 깨져버렸다 싶더니 이런 만남이 찾아왔다. 약속 깨져버린 게 다행이라 하면 친구에게는 좀 미안해지는데. 지금쯤 주말에 출근해서 진을 빼고 있을 그를 떠올리며, 련유는 그에게 속으로 심심한 응원을 전한다.


"유학은 어디로 가실 예정이었는데요?"

"캐나다요."

"사실 그쪽이랑 더 어울리는 외모인데… 딱 보고 외국인인줄 알았어요."

"그 얘기도 자주 듣고요."


귀에 익히 들어온 이야기다. 딱히 그것을 가지고 기분 나빠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백금발에 녹안, 확실히 한국인답지 않은 색이다. 흔한 색이 아니기도 하고.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흐르는 듯하더니, 머지않아 윤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나이는 몇 살이에요? 별로 안 먹어 보이는데."

"올해 28살요."

"그렇구나. 은근히 차이 많이 나네요. 전 33살."


그래도 사회에서는 제법 자주 만나곤 하는 정도의 나이 차이다. 실제로 말 트고 있는 그 정도 뻘의 선배가 있기도 하고. 그나저나, 별로 안 먹어 보인다는 말은 돌려주고 싶었다. 얼굴에 만연한 활기도, 생기도 그 정도 나이대의 직장인이 갖기에는 좀 힘든 것이 아닌가. 하지만 조금 실례일 수도 있으니 동갑 뻘일줄 알았어요, 하는 말은 목 뒤로 집어넣는다.


사실 메신저의 퍼즐님은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눠 본 상대는 아니었다. 으레 오프라인 표시가 되어 있었으니까. 콜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니, 그럴 만도 하다. 보통 그런 곳에서는 기기를 수거해가곤 하니까.


"머리는 염색이신가? 탈색이라고 하기엔 너무 말끔해서요."

"아쉽게도 탈색이랍니다. 관리 하는데 좀 고생했죠."

"와. 탈색이나 염색 때문에 머리 상한 건 어쩔 수가 없던데."


련유는 물끄러미 윤오의 회색 머리칼을 쳐다보았다. 저게 정상이긴 하다. 그래서 더더욱 자신이 자연산 백금발이라고 오해 받는 것이기도 하고. 련유는 손을 뻗어 다 식은 커피를 홀짝였다. 아무래도 메신저에서 자주 보질 못했다보니 할 이야기가 많은 건 사실이다. 게다가 대화는 제법 즐거웠다. 목이 탈 정도로.


"음… 그래서 조금 늦게 하는 이야기 같지만. 놀랐죠? 갑자기 이런 식으로 말 걸어서."

"딱히요. 아마 저라도 북스라는 걸 알아봤으면 말 걸었을 거예요."

"그래도 첫인상이라는 게 중요한 건데. 저, 나쁜 사람 아닙니다?"


그가 빙긋 웃었다. ─딱히, 그런 인상으로 보진 않았어요. 련유가 대꾸하며 뒤에 덧붙이려 했던 말은 또 꾹 참는다. 무슨 말이냐면, 솔직히 말하자면 판매원인 줄 알았다고.


"굳이 북스가 아니더라도 련유씨 앞에 앉았을걸요. 낯선 경험이 해보고 싶거든요, 전. 어쩐지 뒤늦게 하는 변명 같지만."

"변명 필요 없을 정도로 오히려 좋은 인상인 걸요. 그래서, 여행에 동참하신 이유도 그거?"


윤오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련유는 어쩐지, 저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또한 흥미 본위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 흥미라는 것이 동해서 유학까지 포기하고─결과적으로 미뤄지긴 했지만─ 참여한 것이었고, 만약에 북스 중에 눈 앞의 윤오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 자체로도 련유에게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럼 련유씨의 이유도 물어봐도 되려나?"

"비슷해요. 저도 구미가 당겨서 참여 한 거니까."

"유학도 미뤄버리실만큼?"


련유는 그냥 픽 웃어버리고 말았다. 윤오 또한 따라 웃는다. 제법 유쾌한 상대를 만난 게 기분이 좋았다. 오늘 날씨 맑음, 기분 또한 맑음. 련유는 어느새 다 마셔버린 커피 잔 안을 들여다보았다.


"뭐 시키실래요?"


입이 심심한 것보다는 뭔가 마실 거라도 시키는 편이 나을 듯하다. 아무래도, 이야기는 더 길어질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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