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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Cube] 시아닌 에디트 개인 로그

1.

쫓기는 꿈을 꾸었다. 1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잠에서 깨어나면 순간적인 공포심에 몸이 경직되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꿈이다. 하지만 단순한 악몽으로는 치부할 수 없는, 그런 류의 것이기도 했다. 과거의 모습, 그리고 혹시 모를 미래의 모습. 달갑진 않았다. 가만히 심호흡을 하고, 가만히 시선을 돌려 주변을 확인한다. 다들 피곤에 지쳐 자고 있다. ...리즈는 결국 자지 못한 것 같지만. 아까 기절했던 사무엘 또한 깨어나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연이어 잠에서 깨어났다. 기분 나쁜 감각을 떨쳐버리러, 그들에게 간단하게 말을 건넨다.

이러지라도 않으면 숨이 막혀 죽어 버릴 지도 모른다.

시선도, 쫓기는 감각도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무뎌졌다. 버티기 위해서라도 그 틈에 섞여들어갔다. 폐는 끼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런 상식도 관념도 통하지 않는 공간에서는 더더욱. 만약 조금이라도 공포심에 사로잡힌다면 놓고 가라고 할 생각이었다. 짐짝은 부상자면 충분하다. 이곳에는 살아서 나가야 할 사람이 많았다. 기다리고 있는 여동생이 있는 사람, 찾아야 하는 동생이 있는 사람, 평생 살고 싶은 게 소원인 사람, 내가 소원을 들어주기로 약속한 사람……. 이유는 모르더라도 다들 크게 작게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발목을 잡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나는 나가더라도 시체처럼 살 게 뻔했다. 있지도 않은 시선과 발소리에 평생을 시달리며 병신같이. 그러니 차라리 중요한 순간 자진해서 미끼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다.
어느 부분에서 생각하자면 차라리 생활 큐브 안이 나았다. 시선을 멀리 하면 볼 수 있는 것도 많았고, 그덕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덜해 숨이 막히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방에서 나온 뒤로는 종종 숨이 막히곤 했고, 시선을 느꼈으며 발소리를 들었다. 그런 감각들이 무뎌졌을 뿐이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나 혼자만의 느낌이니 굳이 티를 내진 않았다. 걱정 시키고 싶지 않았고, 오로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것, 그것도 착각으로 남을 불안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것은 진행에 방해가 될 뿐이다. 비단 이곳에서의 일 뿐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자체에도. 뼈저리게 깨달은 지도 1년이 넘어 2년이 다 되어가는 나날이었다.

대화가 끊겨 주변이 조용해진 순간, 목소리가 들려온다. 배신 당하는 기분은 어떨까? 결과는 죽음으로 정해져 있어. 이윽고 낄낄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닥쳐, 하고 속으로 사납게 대꾸한다. 아는 목소리이기에 더욱 더 기분이 더럽다. 나는 아직도 어째서 그랬냐고, 너에게 이유를 묻지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단지 그것 뿐이다. 이유라도 알기 위해서. 멱살이라도 한번 잡아보기 위해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너만은 꼭 찾아가마, 개자식. 속으로 이를 가니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주변 사람들이 있으니 얼른 표정을 풀었다.
가장 무서운 건, 배신 당하는 것. 낮까지만 해도 하하호호 같이 떠들던 사람에게 배를 쑤셔지는 경험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 그리고 심야의 일 총 두 번이면 충분하다. 원래부터 배신 할 생각으로 섞여 들어온 것이든, 어쩌다보니 배신하게 된 것이든 지금 상황에선 내부분열이 가장 무서운 일이다. 적이 하나가 아니므로. 정신나간 방이랑, 정신나간 사람이랑. 심지어 후자는 한명이 아닐 수도 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가급적 한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머리가 아프다. 꿈과 환청 탓이 분명했다. 다들 잠들어 주변이 적막해진 순간, 강렬하게 시선이 느껴진다. 나는 그것이 누구의 시선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단순한 착각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살짝 눈을 감고 있으니 금방 다른 사람들이 깨어났다. 하지만 그 감각은 여전하다. 생각해보니 밤에 피를 너무 많이 흘리긴 했다. 그 탓에 두통이 더 심한 듯 싶다. 괜찮은 척 하고 있지만 배의 상처도 쑤셔온다. 차라리 다시 잠을 자는 게 나을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눈을 꽉 감는다. 하나 둘 깨어나는 사람들의 기척을 느끼며, 아직 곤히 잠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다들 잘 자요. 좋은 꿈 꾸시길. 속으로 작게 중얼거리며.

2. 

키는 178cm, 멍청한 놈이 하나 있었어. 꼴랑 셋 뿐인 친구에 목 매다는 녀석이었지. 어떤 놈들이냐고? 한 놈은, 말했잖아. 너 닮은 새끼 하나 있다고. 지가 나보다 쪼끄만 주제에 키 작은 놈이, 라고 놀리기나 하고. 게다가 나보다도 어렸지. 너처럼. 자꾸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는데 기분이 진짜 더러운 거야. …근데 이상하게, 걔가 그러면 안심이 되더라. 기분 나쁜 새끼. 아, 너한테 하는 말은 아니니까 걱정 마. 또 하나도, 나보다 어려. 걔보다도 어리지. 이제 갓 성인 된 녀석인데, 제법 귀여워. 말도 잘 듣고. 강아지 같아. 이렇게 얘기하니 좀 보고 싶다. 형님, 형, 하면서 따라다니는데……. 이런. 걜 잊고 있었어. 누가 형 소리 할 때마다 형 소리 듣는 거 처음이라고 했는데. 어쩌지. 다들 미안하다. 아무튼, 일 터졌을 때 걔네 둘이 제일 걱정했어. 전자의 놈은 툭툭 튕기면서 남자놈이 뭐 그런 걸 당하냐, 했고. 후자 놈은 진짜 사슴 같은 눈으로 쳐다봤지. 그리고 범인을 만나자마자 대뜸 둘 다 욕부터 했어. 전자 놈은 멱살도 잡더라. …이쯤 되면 뭐 하냐 물어봐야 되지 않냐. 그래, 다른 한 놈은 어디 갖다 팔아 먹었냐고.

시아닌은 제 머리통을 검지 손가락으로 두어번 툭툭 때렸다. 그의 상태를 보자면, 제법 능숙한 행동이었다.

그 새끼가 바로, 내 머릿속에서 계속 지껄이는 개새끼란 말이지. 그리고 난 걔를 제일 아꼈어. 걔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끔찍하게 흥미로워서, 관찰 안 하고는 못 배기겠더라. 기분이 어땠어? 보고서에 써야 하니 말해줘, 시안.》

* * *



청년에게는 그 날이 바로 지옥의 시작이었다. 청년은 목소리를 듣는다. 가장 믿던 사람에게 배신 당한 기분이 어때? 그 때마다 시아닌은 귀를 막았다. 하지만 무색히도 목소리는 손등을, 손바닥을 뚫고 들려왔다. 결국 그는 듣지 않는 걸 포기했다. 대신 정면으로 마주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공포심이, 가장 좋아했던 사람에게 배신 당했다는 충격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를 휘감았다. 시아닌은 아닌 밤중에 구치소로 향했다. 뒷거래를 통해 얻어낸 열쇠로 철장의 문을 연다. 그는, 그 안에서 곤히 자고 있던 남자의 목을 조른다. 남자는 웃는다. 웃는다, 웃는다. 계속해서 웃는다. 웃음소리가 시아닌의 귓가에 콱 박혀 자상을 만든다.

결국 시아닌은 도망쳤다. 그 이후부터 그는 환청이 아닌 다른 것도 느끼게 되었다. 그가 자신을 따라온다. 이따금 뛰기도 한다. 그것은 육체적인 것과 는 다른 고통이었다. 철장 안에서 도망쳤고, 남은 소중한 사람들에게서도 도 망쳤다. 얌전히 담겨 웃곤 했던 보금자리에서도 도망쳤다. 그는 그 날의 철장 안처럼 차단된 공간에서도 뇌가 타 없어지는 고통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증인 보호 프로그램.

그는 그것을 제안한다. 시아닌은 몸을 숨겼다. 정신병원에. 멀쩡해지면 돌아 갈 생각을 하고. 시아닌 에디트를 버렸다. 그의 새 보금자리는 푸른색 언덕 위에, 하얗게 자리 잡은 아주 예쁜 곳이었다. 그는 그곳을 꽤나 마음에 들어 했다. 오래 지내더라도 질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그곳에서 꽤나 오래 지냈다. 화초를 키우고, 기타를 다시 배워 보려다 결국 또 포기하고, 그렇게나 좋아하는 영화를 보았다. 있는 곳이 있는 곳 인지라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볼 수 없었으나 그것 만으로도 그는 만족했다. 감동적인 것을 보면 울었고, 재밌는 것을 보면 웃었다.

─어떻게 찾았어.
─멍청한 놈.

그리고 언젠가는 한 차례의 작은 언쟁이 있었다. 찾아온 남자는 그에게 말빨도 약한 게, 하고 투덜거렸고 그는 웃었다. 돌아가. 돌아 올 거야? 돌아 갈게. 좋아, 뺨 맞을 준비 해놔라.

더 이상 아무것도 무섭지 않고,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게 된 날로부터 한 달 후 그는 시아닌 에디트로 돌아와 세상을 맞이했다. 시아닌은 간만에 맡은 빌딩 숲의 공기에 피식 웃었다. 이런 걸 좋아 했었던가. 과거의 자신은 잘 기억 나지 않았다. 앞으로 조금씩 되새겨 가야 할 것이다. 바다 옆에 자리 잡은 도시. 커다란 건물 안으로 시아닌은 발걸음을 옮겼다. 입고 있던 후드티의 모자를 꾹 덮어 쓰고. 일종의 서프라이즈였다. 돌아왔어, 테이트. 돌아왔어, 미나시. 죄송해요, 어머니. 앞으로 잘 할게요, 아버지. 준비 해 놓은 말들을 속으로 계속 반복하다가

하다가

《그들이 널 그리워 할 거라 생각해?》

시아닌 에디트는 다시금 도망친다. 숨을 헐떡이며. 몸을 숨길 만한 장소를 찾는다. 그 남자가 다시는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그는 신문 구석에 자리 잡은 공고를 본다. 실험? 그 누구도 찾지 못하는 공간에서, 당신을 위한? 뒤에 보수 또한 달려 있었지만 시아닌에게는 그런 것 따위는 상관이 없었다. 시아닌은 공포에 눈이 멀고 말았다.

사지로, 걸어 들어간다.

3. 은 공개하기도 부끄러운 윅스홈

4.

신뢰가 깨어지면 사람은 살 수 없다

시아닌 에디트는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에 눈을 뜨고, 아직도 들려오지 않는 목소리에 어쩐지 황망함을 느낀다. 들리지 않았으면 했던 나날이 얼마였던가, 그는 알지 못한다. 꿈조차 꾸지 않았다. 혼자 심연 속에 가라앉아 있음에도 그랬다. 니가 끌어안고 뒤져버리기라도 했냐. 니가 없는데 안 들릴리가 없잖아. 너 가는 김에, 끌고 같이 저승으로 떨어졌냐. 누군지도 모르면서. 속으로 중얼거린다.

닿는 것을 무서워해 관찰만 할 뿐 대화조차 시도해보지 않았던 청년이 약속을 시작했던 이유 그 첫번째, 이곳에는 그가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닮은 자들이 너무나도 많다. 두번째, 어느 시점부터 닮았다의 윤곽이 독자적인 것으로 변모했다. 세번째, 이젠 그 누구도 겹쳐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어디까지나 그들일 뿐이다.

평생 잊지 못할 사람들

아마 그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며 살아갈 것이다. 좋아했던 영화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의 여동생을 보면 울음을 터뜨릴 지도 모른다. 다시는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말 따위 하지 못할 것이다. 기타 연주도 듣지 않을 것이다. 태양이나 돌고래의 이야기를 들으면 입술을 깨물 것이고. 평생 귀까지 막고 살아갈 게 뻔했다. 저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에게도 끝끝내 돌아가지 못하고 홀로 살아갈 수도 있다. 청년은 자신에 대하여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었다. 단지, 이후로 할 행동 하나하나에서 그들을 떠올릴 것이라는 것만이 유일하게 확실했다.

《나가면 뭘 할 거야?》

잘 모르겠다, 영화를 보지 않을까, 했던 답변들을 청년은 생생하게 떠올려냈다. 아니. 약속을 지키려고 했다. 돌아가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하고 있던 곳으로 돌아가서, 뺨을 때리겠다면 순순히 맞고 내치겠다면 기꺼이 나가 줄 것이니 약속만 지키게 해 달라고 하려 했다. 그리고 돌아가자. 사지에서 함께 빠져나온 그들의 품으로. 일주일 후 같이 영화를 보고, 무서워 하는 걸 보고 놀리고, 그럭저럭 괜찮은 집을 구하고, 여동생을 소개 받고, 기타 연주를 들어주고, 배우고, 손을 잡고 아쿠아리움에 가서 돌고래와 펭귄을 보고, 소원 4개를 모두 들어주고,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같이 맛있는 걸 먹으러 가고…….
감옥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개새끼를 만나서, 너보다 더 소중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생겼으니 아무런 상관 없어졌다고. 그렇게도 말하고 싶었다. 오래 전 버린 자존심을 쓸어 담아 한껏 비웃어 줄 생각이었다. 내 마음 속 가장 위에서 가장 밑으로 추락한 기분이 어때? 표정을 보지 못할 것은 아쉽지만 같이 온 누군가가 설명 해 주겠지. 그리고 그들에게 다른 두 친구들을 소개 시켜 주기도 하려 했다.

이제는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자신을 포함해 6명밖에 남지 않은 생존자들을 둘러보지도 못하게 된 청년은 그저 벽에 기대어 입술을 깨문다. 나가더라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겁이 났다. 그냥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심연 속에서 심연을 바라보며 청년은 생각했다. 

「혼자 뒤지면 내 손에 뒤질줄 알아.」
「다치지말것.」

시아닌은 울고 싶은 기분으로 웃었다. 어깨는 계속해서 떨렸지만 웃었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빛을 볼 수 없는 눈으로 그들을 대신해 빛을 보겠다고, 결국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닿지 못하게 된 그들을 위해서도, 남은 다섯을 위해서도. 안 된다면… 저승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들에게 멱살이라도 한 번 잡혀주자. 미안, 죽어버렸네. 하고 웃으면서.

곧, 막을 내릴 때가 올 것이다.

* * *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 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 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 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기형도

* * *



다시는 그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으리라.

5. 사망 로그

화살 끝에 그어졌을 때에도, 영영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도, 심지어 자신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에도 그는 별로 아파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더 아픈 것이 무엇인지 알아 버렸기에 감각이 무뎌져 버렸다. 타인의 죽음. 죽음이라는 놈은 차갑고 날카로워서,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과 맞닿을 때마다 그는 눈물 없이, 소리 없이 울었다. 차라리 날 죽이지 그랬냐고 외쳤다. 그들은 살고자 하는 사람이었으나, 그는 죽고자 했던 사람이었기에. 살아 나가자 약속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그에게 수많은 자상을 남겼다. 그 상처들은 평생 가도 지워지지 않을 것들이었다. 치료 해 볼 생각도 없었고. 평생을 잊지 않고, 짊어 지고 가야 할 상처였다. 그들을 위해서, 또한 자신을 위해서.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을 때 시아닌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다들 함께 있구나. 그래서 몇번이나 그들을 향한 말을 내던졌다. 전해질 것만 같아서, 들어줄 것만 같아서. 2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심연에서만 살았던 그가 빛을 향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그 덕분이었다. 함께 있다면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 비록 볼 수 없더라도, 만질 수 없더라도 느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죽은 자들과 보폭을 맞춰 걸으며 시아닌은 용기를 얻었다. 살겠다는 용기와, 죽겠다는 용기 모두를. 그를 살게 할 것은 죽은 자들이었으며, 죽게 할 것도 죽은 자들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죽지 않은 그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났다. 그는 우습게도 그것을 향기라 생각했다.
보지 못할 빛을 보고, 시아닌은 이것으로 됐다 생각했다. 덮쳐온 죽음을 덤덤히 받아들였다. 애초에 살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지 않았나. 그저 죽은 이들을 대신해 빛을 보겠다 했을 뿐.

오, 보인다.

자신을 죽인 그가 밉냐고? 솔직히 말하자면, 아니. 고마울 지경이었다. 애초에 나갈 수 있다 하더라도 큐브에 남으려 했다. 함께 하자고 했잖아. 단지, 약속을 지킬 뿐이다. 아꼈던 자들의 시체 속에 섞여들어 같이 썩어들어가는 것도 나쁘진 않지 않을까. 이제는 이렇게 되어버렸지만. 삶도 죽음도 약속도 미래도 과거도 부질없어진 시간 속에서 그는 멍하니 끝을 지켜봤다. 끝내 지켜주지 못한 아이에게는 미안함만이 남았다. 차라리 아이가 죽고 저가 남아 영겁의 세월을 보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고

누가 들으면 끝내 이기적인 사람은 못 된다고 할 지도 모르겠다.

시아닌은 뒤늦게 뒤돌았다. 어쩐지 화난 것 같은 사람,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 정말로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사람, 무덤덤하게 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 내가 가야지 니들이 오면 어떻게 하냐. 나 이제 눈 보이거든? 어색하게 웃으며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그리고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끝내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여름날의 하늘은 눈이 아플 정도로 푸르고 가을 하늘보다도 높고 아름다워서 잠시동안 슬퍼졌으나.

이제는 오로지 현재만이 존재 할 뿐이다. 그리고, 돌아갈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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