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와르 AU / 후반 약 수위
처음에는 당연하게도 이런 쪽에 엮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름대로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해온 생, 세계의 뒷면에서 벌어지는 일들과는 동떨어진 채 법조계에 몸을 담았다. 그나마 그런 쪽과 연관이 있을만한 뒷돈이 오가는 일은 항상 거절했으며, 비교적 스케일이 작고 흔히 벌어질 만한 일들만을 맡아온 게 처음 얼마 동안의 일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런 일들이 편했으니까. 더러운 일은 하지 않겠다는, 나름대로의 정의관도 존재했고. 능력이 좋다는 평은 머지 않아서 들을 수 있었으며, 그런 것들에 우쭐해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모난 곳 없이. 어찌보면 누군가의 꿈 그대로일지도 모르는 길을 걸었고, 평생 그렇게 살 줄 알았다. 정말로. 지금의 인생을 살게 될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
과연 어디서부터 발을 잘못 들였던 걸까. 이런 쪽 일이 다 그렇듯, 한 번 들어서게 되면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래. 말 그대로 '잘못' 엮였다. 가벼운 건인 줄 알고 맡았던 일이 사실은 뒷세계와 연관되어 있었으며, 그들에게 얼굴을 노출시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눈치 챘을 때에는 이미 벗어날 수 없을 곳까지 온 뒤였다. 조금이라도 멍청했다면 눈치채지도 못하고 평소처럼 행동하다가 제거당했을 것이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이쪽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어정쩡하게. 밝은 곳과 어두운 곳 그 사이에서 어두운 쪽에 더 가까운 상태로 아슬아슬함을 유지했다. 그게 사지 멀쩡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인 동시에 비참함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죽고 싶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자존심과 양심을 버리고 싶지도 않았기에. 끝이 보이지 않는 줄타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뒷세계의 눈칫밥을 먹으며 변호사 일을 이어나간지 몇 년. 그 사람을 만난 건 슬슬 지쳐갈 무렵이었다. 정의관이랍시고 지니고 있던 것도 무너져가고, 그 덕에 삶에 대한 의지도 조금씩 꺼져갈 즈음. 솔직히 좋은 첫인상은 아니었다. 아무리 막장이어도 법조인과 만날 때만은 깔끔한 게 이쪽 사람들의 특징이었다. 덕분에 걸쳐있긴 해도 어느정도 뒷세계의 일원이면서, 단 한 번도 시체 같은 건 보지 못했다. 처음 본 건 그와의 첫미팅 때였다. 제 발 밑에 숨이 꺼져있는 피투성이의 반 송장─죽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이니 반이지 어쨌든 시체는 시체였다.─을 두고 웃는 낯으로 저를 맞이한 사람. 방 안에 진동하는 피냄새는 역했고, 처음 보는 시체는 끔찍했다. 더군다나 그 남자는 저가 눈 앞에 있는 걸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이미 끝이 난 시체를 세게 발로 차버리기까지 했다. 그걸 보고 아찔해짐과 동시에 의식이 끊긴 건 단 몇 초 정도의 일이었고, 정신을 차렸을 땐 검은색 장갑을 낀 손이 제 볼을 쓰다듬고 있었다. 튄지도 모르고 있던 피를 닦아내고 나서야 그 손은 거둬졌다. 이런 쪽 일을 할만한 사람은 아닌데. 그리 말하고 슬 웃으며 남자는 문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을 불러 시체를 치울 것을 명했고, 방 안의 정리는 생각보다도 더 신속하게 마무리됐다. 사실 차가운 가죽의 감촉이 볼에 닿았을 때, 머릿속에선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사람과 엮이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돌이킬 수 없는 곳이라는 게, 몸을 담을 곳의 일인지 제 감정적인 일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 되어버렸다. 뭐가 마음에 들었길래 그 '이런 쪽 일을 할 만한 사람은 아닌' 이를 제 전속으로 삼은 건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일 외적으로도 주기적인 만남을 가지고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솔직히 감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지금 와서는 조금 감사하고 있다. 아니, 아주 많이.
문을 열자마자 제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에 네일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엘리후는 평소의 것과는 조금 다른, 난처함을 숨기지 못하는 미소를 띄웠다. 솔직하게 시체나 피는 싫다. 며 제 의사를 밝힌 이후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름대로 신경써주고 있는 지 몸에서 나는 혈향을 숨기기 위해 향이 강한 향수를 씀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다가갔을 때 피냄새가 느껴지는 건 언제나였으나. 방 안 전체가 이 꼬라지인 것은 그 이후로는 처음이라는 뜻이다. 네일은 잠시 멈칫했다가 느릿하게 한숨을 내쉬고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짧은 미팅이라 딱히 앉을 생각은 없었는데, 기어코 엘리후는 일어나선 저가 앉아있는 맞은 편의 의자를 빼주었다. 네일은 테이블 한켠에 튀어있는 피에 시선을 두었다가, 옆구리에 끼고 있는 서류를 아슬아슬하게 걸쳐 핏자국을 가렸다.
"급하게 치운다고 치운건데."
"변명 안 해도 됩니다."
옛날 같았으면 저가 눈치를 보느라 급급했을 터다. 허나 이상하게도, 저가 만나왔던 사람들 중 가장 위험해보이는 사람임에도. 자신이 눈치를 보는 것과 그가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 딱 반반의 비율로 이뤄지고 있었다. 엘리후는 두어번 눈을 깜빡이고는 할 말을 찾는 듯 한참 동안 말을 꺼내지 않았다. 네일은 그의 뒤, 몇 번이나 핏자국을 지워낸 흔적이 있는 벽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똑바로 쳐다보는 데에는 면역이 없었다. 그의 직업 탓일까. 푸른색 눈동자는 보고 있자면 이상하게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조금 다른 이유도 있긴 했지만, 아무튼. 부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하는 것보다는 다른 곳을 보는 편이 나았다. 정적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네일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담을 찾을 시간에 그냥 일 얘기를 하면 뭐든 대화를 할 수 있을텐데. 결국 그와 눈을 맞추며 네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일 얘기나 하죠."
"까칠하긴."
쿡쿡 웃는 웃음 소리를 무시하며 네일은 그에게 서류 첫 장을 건네주었다. 솔직히 저가 틱틱거릴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방 안의 피냄새 정리를 안 해준 것? 잘못은 제멋대로 미팅을 잡은 저에게도 있었다. 한 시간 후에 가겠습니다. 그 문자를 갑작스레 받았을 그를 생각해보자면 분명히 억울할 터다. 그래서 솔직히 오면서는 변명할 생각만 가득했다. 저 나름대로는 급한 일이라고. 그런데 당장 눈 앞의 엘리후는 추궁할 생각도, 불만을 표출할 생각도 없어보였다. 그저 현장 정리를 채 못 한 것에 대한 난처함만 표할 뿐. 엘리후가 서류를 읽을 동안 네일 또한 사본을 꺼내 다시 한 번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얼굴에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어쩔 수 없다고 속으로 자위했다.
본래 사람이 다 그렇지 않은가. 여자도 예쁜 여자에게 호감을 품기 쉬운 것처럼, 남자도 잘생긴 남자에게는 시선이 가기 마련이다.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그는 잘생겼다. 하는 일과는 다르게 피부는 곱게 자란 도련님 마냥 희고 티 하나 없었고, 행동에서도 매너와 예의가 묻어났다. 분위기로 사람을 압도할 뿐. 그리고, 정말로,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잘생겼다. 눈부신 금발과 밝은 벽안은 전형적인 미남의 상징이었다. 험한 일을 할 인상은 절대로 아니었다. 물론 그가 직접 험한 일을 하는 건 아니고 보통은 아랫사람을 시킨다는 걸 알고는 있었으나, 아무튼. 사람 접대하는 일을 하면 아무리 일을 못해도 얼굴로 다 용서받겠다 싶을 정도의 외모였다. 그러니까, 그냥 얼굴 때문에 눈이 가는 거라고. 젠장. 더럽게 잘생겨선.
"네일?"
"…다 읽었으면 얘기 시작할까요."
"오늘따라 더 까칠한데, 착각은 아니죠?"
"착각입니다."
그 말을 꼭 무시하고는 엘리후는 생리 해요? 하는 장난 섞인 농을 건네며 사람 기분 나쁘게 웃었다. 네일은 상대 해 줄 생각도 없다는 듯 일 얘기를 시작했다. 시시하긴. 하고 김 새는 소리를 내며 엘리후가 투덜거렸으나, 그마저도 무시해버렸다. 악의를 담은 농담은 아니었다. 허나 네일은 이미 그에게 자꾸만 쏠리는 제 시선에서부터 기분이 상하기 시작한지 오래였다. 인정의 범위를 넘어섰다. 마음 속 깊은 곳의 감정이라는 놈은. 그 정도의 사람이라면 눈치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엘리후가 제 입으로 그리 말한 적도 있으니까. 당신은 너무 파악하기 쉬운 사람이야, 라고. 부정할 수는 없는 말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감정을 가지고 놀아지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마저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너무 깊은 곳까지 와버렸다.
다행인 것 하나. 엘리후는 더이상 장난을 걸거나 토를 달지 않고 일 얘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행이 아닌 것 하나. 자꾸만 피냄새가 신경쓰인다. 예전처럼 구역질을 참아야 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집중력을 흐트러트리는 건 사실이었다. 다행이 아닌 것은 또 하나가 더 있었는데……. 네일은 몇 번이나 제 미간을 꾹꾹 누르고, 서류로 부채질을 하고, 눈을 깜빡였다. 항상 눈치를 보면서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왔는데, 엘리후의 앞에서는 그게 조금 힘들었다. 이상한 충동이 자꾸만 들었다. 그런게 있다는 걸 숨길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첫만남의 그 때처럼, 잠시 의식이 끊겼다가 정신을 차렸을 땐 그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일 얘기가 거의 매듭지어졌을 즈음이었다. 엘리후는 아까처럼 네일? 하고 이름을 부르며 꿈뻑꿈뻑 네일을 쳐다보았고, 네일은 그 부름에 답 조차 하지 않은 채 항상 엘리후의 손을 감싸고 있던 검은색 장갑을 벗겨냈다. 그리고 제 주머니에서 칼을 꺼냈다. 호신용이라며, 나랑 일하면 자기 몸 정도는 혼자 지켜야할 거라며. 손에 꽉 쥐어주며 휘두르는 법을 가르쳐주던 건 솔직히 애들 장난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제 몸 하나 지킬 방법을 터득시켜줄 마음은 진심이었는지 사람의 약한 살을 베어내거나 찌를 수는 있게 만들어주었다. 가르쳐준 당사자에게 쓰게 될 줄은 자신도, 그 당사자인 엘리후도 몰랐겠으나. 네일은 날카롭게 벼려진 날을 세워 엘리후의 손등을 베었다. 금방 송글송글 핏방울이 맺히고,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피냄새.
"…기왕 피냄새를 맡을 거면 당신 거가 나을 것 같아서."
이윽고 변명. 엘리후는 제 손등에서 나는 피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작게 미소지었다. 힘이 빠진 손에서 스르륵 제 손을 빼낸 엘리후는 제 손등에 입술을 대고 몇 번 핥았다. 머리가 아찔해지는 광경이었다. 피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엘리후는 제 입을 떼어내고는 대뜸 손을 네일의 눈 앞에 내밀었다. 피냄새. 네일은 손을 뻗어 아까와는 달리 부드럽게 엘리후의 손목을 잡고, 새어나오는 피를 핥기 시작했다. ……피냄새.
솔직히 말하자면 하나도 역하지 않았다. 그 피의 냄새만은.
* * *
키득키득 웃으며 제게 다가오는 엘리후를 네일은 몇 걸음 다가가 와락 끌어안았다. 다친 곳은 없어보이니 다행이었다. 저를 감싸고 그가 죽을 뻔 한 그 날 이후로, 비겁했던 고백을 받아들인 이후로. 위험한 일을 하다가 다치진 않을까 전전긍긍해왔다. 그러니까, 지금 같은 일을 걱정했다. 위험할 뻔했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눈에 불을 켜고 찾아, 겨우 찾아내 들어선 공간은 피냄새로 가득 차 있었고, 연락 그대로 이미 상황은 종료된 후였다. 제게 가만히 기대오는 엘리후를 받쳐주며 네일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역한 혈향에 어지럼증을 느꼈다. 싫은 냄새였다. 네일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엘리후는 킁킁, 하며 그의 체향을 맡았다. 그러기를 한참. 슬며시 네일을 밀어내고는 제 입술과 그의 입술을 겹쳤다. 시체 사이에서 하는 키스는 최악인 동시에 은근히 로맨틱하지 않냐고, 속으로 연인에게 말을 건네며.
"직접 이런 데까지 올 정도면 많이 걱정했나봐?"
"…당연한 얘기를."
"그랬어, 여보?"
"……응, 자기야."
보고는 싶은데 보러갈 기운은 없고, 이런 곳까지 보러 오라고 말하긴 조금 그렇고. 아랫놈에게 살짝 흘려주면 알아서 잘 부풀려 말해 직접 찾아오게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건 정답이었다. 못내 미안한 건 그가 끔찍히도 싫어하는 피냄새만 가득한 공간에 그를 들였다는 것과, 그나마 제 몸에서도 남의 피냄새밖에 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정도. 물론 제 피냄새가 났으면 그건 그것대로 그에게 불쾌감을 넘어 아픔을 주는 것이겠지만. 한 번 더 깊게 키스하며 엘리후는 문득 생각난 것을 실천하기 위해 제 목에 손톱을 세웠다. 상처가 났다는 건 알고 있었다. 몇 번 긁자 선혈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걸 눈치챘는지 네일은 조금 거칠게 입술을 떼어냈다. 당황스러운 눈치로 저를 보는 네일의 볼에 짧게 입을 맞추곤 속삭였다.
"기왕 피냄새를 맡을 거면 내 거가 좋다며?"
"…기억력도 좋아."
긴 한숨 소리와 함께 네일은 엘리후의 목에 입술을 묻었다. 유일하게 기분 나쁘지 않은 혈향을 깊게 들이마시며 핥자, 엘리후는 한 손으로는 네일의 허리를 감싸고 다른 손으로는 네일의 허벅지를 자극하듯 쓸어내렸다. 약에 취하기라도 한 마냥 평소보다 예민해진 감각에 네일은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허나 피를 빨아마시듯, 제 입만은 엘리후가 직접 긁어 피를 내준 옆목에 고정시킨 채였다. 그대로 피가 더이상 나지 않을 때까지 계속 핥았다. 그러는 사이 엘리후는 네일의 허벅지를 만지던 손을 움직여 벨트를 풀어 바닥으로 떨구고, 버클을 풀어내리고, 노골적으로 제 손이 닿는 범위 안의 네일의 하반신 이곳저곳을 애무했다. 다리 사이에는 제 다리를 끼워넣어 살살 예민한 곳을 건드렸다. 네일은 몸을 떨고 신음 소리를 흘리면서도 상처와 피를 핥았다. 그대로 밀어붙여져 벽에 제 등이 닿고, 피가 멎자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으, 아……."
"금방 기분 좋게 해줄게."
"흐응…!"
제 피가 일종의 마약처럼 작용하기라도 하는 걸까. 정말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알 수 없는 일이긴 한데. 아무튼, 이미 정신이 반 쯤 빠져 딱히 거부 의사가 보이지 않는 몸과 제 몸을 밀착시키며 엘리후는 제 바지버클마저 풀어내렸다. 네일은 숨을 크게 내쉬고는 엘리후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대로 엘리, 하고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는 어느 정도의 희열을 만들었고 살과 살을 맞대자 크게 터져나오는 소리는 만족스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냄새로 그득한 공간은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열기와 신음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이미 기분 나쁜 피냄새와 시체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행위를 이어나갈수록 진하게 느껴지는 상대의 체향에만 집중했다.
'1차 > 커플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엘리네일] First, 上 (0) | 2016.07.02 |
---|---|
[엘리네일] #예민한_부위의_자극에_대한_자캐의_반응은 (0) | 2016.06.04 |
[엘리네일] 200Days (0) | 2016.05.02 |
[엘리네일] 유성우 (0) | 2016.04.15 |
엘넬 (0) | 2016.04.04 |
느릿하게 눈을 뜬 네일은 흐릿한 시야에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가, 머리맡을 짚어 안경을 찾아내 썼다. 그러고 저를 끌어안은 채로 여전히 잠들어 있는 연인의 얼굴을 한참이나 빤히 쳐다보았다. 잠이 다 달아났을 즈음, 네일은 살짝 고개를 돌려 벽에 걸려 있는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10시를 조금 넘은 시각. 저녁을 먹고 들어오자마자 피곤에 지쳐 쓰러지듯 잠들었으니, 두 세 시간 즈음 잔 모양이었다. 옷은 갈아입고 잤어야 했는데. 네일은 손을 뻗어 엘리후의 셔츠 단추를 두어개 즈음 풀어주었다. 불편하지 않도록. 이내 색색 숨을 내쉬며 자고 있는 그의 볼에 입을 맞추고, 슬며시 품에서 빠져나갔다. 깨어나면 곤란하니 아주 조심스럽게. 사실 그대로 더 자더라도 별 상관없긴 했으나, 어쩐지 깨어있고 싶은 기분이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 네일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작진 않았는데 여전히 곤히 잠들어있는 걸 보면 피곤하긴 했던 모양이었다. 원래도 그리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으니. 작게 미소를 띠며 네일은 엘리후의 볼을 약하게 쿡쿡 찔렀다. 구경을 잔뜩 다닐 만한 곳으로 같이 여행을 온 건 처음이라, 너무 들떠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른 낮부터 여기저기 끌고 다녔던 걸 떠올리며 네일은 계속 찌르던 볼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깨는 걸 바라지는 않았기에 금방 손을 거두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엘리후가 바르작거리며 작게 소리를 냈으나 깨지는 않은 듯했다.
딸려있는 발코니의 문을 열자 제법 찬바람이 훅 들어왔다. 방금 전 옷을 갈아입으며 대충 의자에 걸쳐놨던 겉옷을 걸치고, 발코니로 나가자 탁 트인 바다가 한 눈에 보였다. 날이 저문 지가 한참이라 모래사장은 한산했다. 밤바다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는 모양인지 느릿하게 산책을 하고 있는 이들을 빼면. 내일은 좀 적당히 돌아다니고, 이 시간에 같이 바닷가를 걸어봐야겠다. 속으로 중얼거리며 네일은 혹여 방 안으로 들어가는 찬 공기에 그가 감기에라도 걸릴까 싶어 발코니의 문을 닫았다. 그러고 난간에 기대서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꽤나 기분이 좋았다. 가끔씩은 따뜻한 바람이 아니라 찬바람인 편이 더 기분 좋기 마련이었다.
바다는 좋아했으나, 해가 떠 있을 동안에는 전혀 발을 들이지 않았다. 저나 연인이나 사람이 많은 걸 싫어했으면 싫어했지 즐기는 편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바다를 제대로 보려면 해가 떠 있을 때, 햇빛에 물이 반짝이는 걸 보아야 하는 게 맞는데. 인파에 밀려 스트레스를 받는 것 보다야 그나마 조용한 곳에서 연인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좋았다. 이렇게 밤의 바다를 보는 것도 제법 괜찮기도 하고. 일부러 바다가 보이는 곳에 숙소를 구한 보람이 있었다.
그렇게 혼자 밤바다를 내다보고 있기를 한참. 뒤에서 저를 끌어당기는 팔에 네일은 몸에 힘을 풀고 가볍게 그의 품에 제 몸을 내주었다. 이내 제 어깨에 얼굴을 묻어오고, 몸을 부벼오며 귓가에서 끄응거리는 소리에 네일은 작게 웃고 말았다. 손을 올려 엘리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자 그 손에도 머리를 부벼왔다. 안고 있으면서도 기대고 있는데, 평소보다도 그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피로의 누적때문인 듯싶었다. 이럴 것 같아서 일부러 깨우지 않은 거였는데.
“네일─”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자 네일은 응, 응. 하며 애 어르는 듯한 느낌으로 제 허리를 껴안고 있는 손을 잡아 올려 그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그 손으로 엘리후는 네일의 입술을 두어번 만지작거렸다. 뭘 뜻하는지는 알고 있었기에, 네일은 고개를 돌려 제 어깨에 턱을 걸친 채로 있는 엘리후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볍게 맞대었다. 그대로 한두 번 부비고 떼어내자, 눈에 나 졸리다. 고 쓰여 있는 주제에 기분은 좋은지 눈앞에서 푸스스 웃어보였다.
“안 자고 뭐해.”
“잘 시간은 아니잖아?”
이내 엘리후는 작게 신음하고는 허리를 펴 기대고 있는 몸을 제대로 하고, 네일을 제 품 안에 더 세게 안았다. “내 품 안에서 잘만 자고 있었으면서.” 귓가에 속삭이며 귀에 입을 맞추고, 또 볼에도 입을 맞추자 네일이 간지러운지 키득거렸다. 허리를 껴안고 있는 두 팔 중 한 팔은 움직여 네일과 손을 맞잡고, 자다 깨서 정리도 하지 않은지라 평소보다도 더 난잡하고 약간 뻗친 채인 네일의 뒷머리에 엘리후는 제 코를 대고 몇 번 부볐다. 희미하게 나는 체취가 기분 좋았다.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 또한.
“그냥. 바깥 구경이 조금 하고 싶어져서.”
“춥진 않고?”
“방금 전까진 조금 추웠는데, 지금은 별로.”
느긋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엘리후는 고개를 내려 네일의 뒷목에도 입을 맞추었다. 여전히 연인의 허리를 안고 있는 팔의 손으로 장난스레 허리를 쓰다듬자, 그 손마저도 잡혀서는 내려졌다. 엘리후는 쿡쿡 웃으며 흘끔 네일을 쳐다보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면 어쩔 줄 몰라하곤 했는데, 이리 변하긴 했어도 제법 귀엽지 않나. 저를 쏘아보다가도 눈이 마주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 보이는 걸 보며 엘리후는 다시금 네일의 어깨에 제 얼굴을 묻었다. 영 졸음이 가시질 않았다.
“나 졸린데, 네일.”
“들어가서 더 자.”
“재워줘.”
너도 더 자고. 하며 괜한 어리광을 부려오자 네일은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어버렸다. 일부러 이러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피곤해서 이러는 건지.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었지만 아직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게 조금 미안한 일이었다. 제 볼을 간질이고 있는 엘리후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네일은 고개를 돌려 그의 정수리에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추었다.
“그럼 조금만 있다가.”
불만스러운 시선이 저를 향해왔으나 유쾌하게 무시하고, 네일은 다시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햇빛 대신 달빛을 비추고 있는 분위기가 데이트하기에는 딱 좋을 것 같았다. 제게 매달려서 칭얼거리고 있는 걸 보니 역시 오늘은 무리겠고, 내일로. 다음 날의 일정 끝에 속으로 끼워두며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내리감았다. 바람이 꽤 차게 느껴졌는지 뒤에서 엘리후가 저를 더 끌어안아왔다. 자기가 추워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추위를 잘 타는 연인을 걱정해준 건지. 둘 다 일지도 모르겠다며 네일은 속으로 계속 피식거렸다.
계속 제게 부비적거리며 들어가서 더 자자고 웅얼거리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또 무시하고. 한 번은 어르고 달래며 여기저기에 쪽쪽거리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네일은 갑자기 눈앞의 넓디넓은 하늘에 펑, 하고 터지는 불꽃에 반사적으로 몸을 크게 떨었다. 소리가 꽤 컸는지 한참 네일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던 엘리후 또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까보다 더 큰 불꽃이 터지고, 몇 초의 간격을 두고 그 양 옆으로 조금 작은 불꽃이 터져 하늘을 여러 빛깔로 수놓았다. 어디서 폭죽을 쏘아 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네일은 멍하니 입을 벌린 채로 눈만 깜빡이며 계속해서 터지는 불꽃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작게 엘리, 하고 제 연인을 불렀다. 엘리후는 눈을 데룩 굴려 네일을 빤히 바라보았다.
“예쁘지.”
“응.”
자연스럽게 답하며 엘리후는 네가 더. 하며 작게 덧붙였다. 그걸 들었는지, 못들은 척 하는 건지. 네일은 별 반응을 하지 않았는데, 귀 끝까지 빨개진 걸 보니 들어놓고 못들은 척 하는 것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렇게 알기 쉬워서야. 잔뜩 붉어진 귀를 만지작거리며 엘리후는 그 귓가에 소곤소곤, 다시 한 번 속삭였다.
“네가 더 예뻐.”
“…수작 부리긴.”
진짠데. 끝으로 귓가에 웃음소리를 흘리곤 엘리후는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을 장식하고 있는 불꽃놀이도 예쁘긴 하지만, 역시 이쪽이 더. 시선은 터지고 있는 불꽃에 여전히 고정된 채로 엘리후는 네일의 볼을 손가락 끝으로 간질였다. 아까처럼 잡아 내리지 않는 걸 보면 분위기에 취한 듯, 그리고 딱히 싫지도 않은가 보다. 네일이 쓰고 있는 안경을 톡, 건드려 내리자 네일은 손을 움직여 안경을 바로 올려 썼다. “장난치지 말고.” 작게 중얼거리며 그제야 엘리후의 손을 꼭 잡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우리도 내일 폭죽 사서 쏴보자.”
“애도 아니고.”
“뭐 어때.”
“흐음. 딱히 폭죽 살 필요는 없지 않아?”
맞잡고 있는 손을 움직여 네일의 손으로 지팡이를 쥐는 흉내를 내자 네일은 그 손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폭죽 쏘는 거랑 마법은 조금 다른 맛이 있거든.”
“쏴본 적은 있어?”
“……아니.”
갑자기 풀이 죽는 걸 보며 엘리후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네일은 괜히 그런 엘리후를 쏘아보았고, 그제야 겨우 웃음을 멈추며 엘리후는 다시금 네일의 손을 꽉 맞잡고 자신 쪽으로 움직여 아까 네일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쏴본 적이 없는 것이야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고, 어떻게 하던 별 상관은 없었으나. 장난스레 손가락 하나하나에도 입을 맞춰가며 엘리후는 조금 늦게 대꾸했다.
“네가 원한다면 나도 좋아.”
“응.”
네일은 평소와는 다르게 밝게 웃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새끼손가락까지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자, 네일은 주먹을 꽉 쥐어 더 이상 입 맞추지 못하게 해버렸다. 물론 그런다고 스킨십을 관둘 마음은 전혀 없었기에 다른 쪽 손으로 네일의 턱을 잡고 고개를 돌리게 해, 슬며시 입술을 맞대었다. 애들 마냥 맞대고 부비는 게 아니라 그대로 겹치자 자연스럽게 네일은 입술을 벌려주었다. 그 안쪽으로 제 혀를 밀어 넣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네일의 혀와 그대로 얽히게 했다. 불꽃이 터지는 소리 때문에 혀와 혀가 뒤섞이는 소리는 완전히 묻혀버렸으나. 그대로 꽤 길게 이어진 딥키스가 끝나고, 입술이 떼어지자 둘은 숨을 교환하듯 여전히 마주보는 채로 말없이 숨을 골랐다.
“가끔 보면 다 컸는데도 어린애 같단 말이지.”
“내 어릴 때 본 적 있는 사람처럼 얘기하네.”
“열일곱도 충분히 어릴 때라고 생각하는데.”
“그 땐 너도 열일곱 살이었어.”
한 마디도 안지며 대꾸해오자 엘리후는 그냥 고개만 끄덕여버리고 말았다. 네일은 그런 그를 뒤로하고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열일곱. 그 한 해에는 꿈을 꾸는 듯 살았고,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서는 행복이라는 게 꿈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실존하는 것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열일곱의 그 날, 엘리후가 고백의 대답 대신 입을 맞추어줬을 때부터 행복은 쭈욱 이어지고 있다며. 다시금 되새기자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와서, 네일은 잡고 있지 않은 손을 올려 제 입가를 가렸다. 어느새 불꽃놀이도 끝나, 깜깜한 밤하늘은 다시금 조용히 가라앉았다.
“슬슬 들어가자, 엘리.”
“나 잠 다 깼는데.”
잡고 있는 손을 놓고, 네일은 뒤돌아 슬쩍 까치발을 들고 엘리후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고 네일은 말을 마치고 바로 지나쳐갔으나, 그 말을 못 알아들었을 리는 없어서. “잠 오게 해줄게, 그럼.” 그 말을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해보며 엘리후는 잠시 마른세수를 했다. 그리고 금세 픽 웃고는 네일을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하여간에 제멋대로란 말이지. 물론 싫진 않았다.
발코니 문을 닫고 제게로 다가오는 엘리후를 보며 네일은 가만히 제 두 팔을 벌렸다. 엘리후는 그런 네일을 꽉 끌어안고, 그대로 밀어서 뒤로 눕혀버렸다. 뭐가 그리 좋은지 네일은 아까부터 자꾸만 키득거리며 그런 엘리후의 품에서 작게 바르작거렸다. 거부의 뜻은 절대로 아니고, 오히려 이건 이것대로 보채는 것이라. 엘리후는 슬며시 네일이 걸치고 있는 겉옷을 벗겨내고, 네일 또한 그런 그를 따라 손을 뻗어 하나씩 연인의 셔츠 단추를 풀어내려가기 시작했다.
'1차 > 커플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엘리네일] #예민한_부위의_자극에_대한_자캐의_반응은 (0) | 2016.06.04 |
---|---|
[엘리네일] 느와르 AU (0) | 2016.05.23 |
[엘리네일] 유성우 (0) | 2016.04.15 |
엘넬 (0) | 2016.04.04 |
[엘리네일] loss of eyesight (0) | 2016.03.28 |
엣취, 하는 재채기에 이어서 훌쩍이는 소리까지 들리자 엘리후는 저도 모르게 픽 웃어버리고 말았다. 바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긴 했지만. 제 시선은 깡그리 무시하고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는 엘리후를 한참이나 더 바라보다가, 네일도 하늘 쪽으로 눈을 돌렸다. 변덕스러운 영국 기후를 생각해 보자면,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고 날씨도 좋은 아주 드문 날이었다. 물론 밤하늘을 보러 나가자고 한 건 그런 것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한 아주 충동적인 말이었으나. 결과가 좋으면 별 상관 없지 않나, 싶다. 방금 전 훌쩍거렸던 것 때문인지 엘리후는 네일의 어깨를 끌어당겨 제게 바싹 붙게 했다. 네일은 자연스레 연인의 어깨에 기대며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아직도 몸은 으슬으슬 추웠지만 마음 속만은 따뜻해졌다. 네일은 제 손을 엘리후의 손 위에 살며시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후는 그 손을 빼내어 다시 저가 네일의 손 위에 올리더니, 부드럽게 맞잡았다.
“담요라도 가져올 걸 그랬지?”
계속해서 네일이 훌쩍이는 소리에 엘리후는 키득거리며 장난스레 말을 붙였다. 네일은 뚱하니 입술만 삐죽 내밀고 있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대로 감기에 걸릴 건 이미 확정인 듯싶은데. 두어번 더 나오는 기침에 네일은 제 입을 손으로 가렸다. 옮기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그래서 엘리후가 그 손을 잡고 내려버리자, 조금 불만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고개라도 돌릴까 했으나 그러면 턱을 잡고 저를 보도록 고정시킬 게 뻔해서, 그냥 관두고 그의 어깨에 제 머리를 툭 올리고 눈을 감기만 했다. 어쩐지 힘이 쭉 빠져버렸다. 이렇게 붙어있을 수 있는 건 좋지만.
“…그럴 걸 그랬네.”
네일이 뒤늦게 답하자 엘리후는 눈동자만 데룩 굴려 그런 네일을 잠시 보았다. 잠시 동안 시선이 마주치고, 잠시 후 엘리후는 제 어깨에서 네일을 떼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풀밭 위에 앉아있던 터에 옷에 잔뜩 묻은 풀을 대충 털어내며 엘리후는 저를 빤히 올려다보는 네일의 볼에 허리를 숙여 짧게 쪽, 하고 입맞춤을 남겼다. 네일은 온기가 닿았다가 떨어진 제 이마를 두어번 문질렀다. 그러다가 스산하게 부는 바람에 살짝 몸을 움츠렸다.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은 이래서 불편하다. 식사를 잘 안 챙기긴 해도 비실거리진 않고, 면역력이 약한 것도 아닌데도 감기에 쉽게 걸려버리니까. 작게 콜록이고는 네일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목이 아파오진 않는 게 다행이었다.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담요 가져올테니까.”
“괜찮은데.”
엘리후는 가볍게 네일의 머리를 쓰다듬듯 톡톡 두드려주곤 발걸음을 옮겼다. 곁에서 사라지니 더 추워져서, 네일은 제 무릎을 끌어안고 멍하니 밤하늘만 올려다봤다. 별을 보는 건 어릴적부터 좋아했던 일이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취미 아닌 취미 같은 것이었다. 예쁜 남색의 밤하늘에 작게 빛나고 있는 별을 보고 있자면 생각이 깨끗하게 비워지곤 했으므로. 머릿속이 복잡할 때나 답답할 때에는 항상 이렇게 밤하늘을 보곤 했다. 그걸 알기라도 했던 걸까. 네일이 그의 아버지에게서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도 천체망원경이었다. 학교까지 가져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은. 그걸 조금 서운하게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다고, 네일은 뒤늦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제와서 무엇하나 싶어서 금방 지워버린 생각이었다. 사실 졸업한 후에도 딱히 자주 들여다보진 않았다. 지금까지 들여다본 횟수를 두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콜록임이 조금씩 심해져갈 때 즈음, 제 어깨를 감싸오는 느낌에 네일은 고개만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부드럽게 웃는 연인의 얼굴이 보여서 저도 모르게 똑같이 웃어버렸다. 그대로 엘리후는 네일의 뒤에 바짝 붙어 앉아, 그를 품 안에 끌어안고 편하게 기대도록 했다. 네일은 가볍게 그에게 몸을 맡겼다. 꽤 큰 담요를 가져온 모양인지, 담요로 작지는 않은 남자 두 명의 몸을 얼추 다 둥글게 감쌀 수 있었다. 네일은 앉은 듯 누운 듯한 애매한 자세로 제 위에 올려진 담요자락을 더 끌어올렸다. 엘리후는 고개를 숙여 네일의 정수리, 머리카락 여기저기에 쪽쪽거리며 입을 맞췄다. 그게 괜히 간질거려서 네일은 푸스스 웃고는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네일은 눈을 떴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제 가슴팍 위에 놓여져있는 엘리후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엘리. 하늘 봐봐.”
“음?”
유성우였다.
책에서야 자주 봤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서, 네일은 작게 입을 벌리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봤다. 그리 큰 유성우는 아닌지 별이 긴 궤적을 그리며 떨어지는 건 드문드문하게 보였으나, 그마저도 신기해서. 엘리후 또한 한참동안 아무말 없이 별이 떨어지는 걸 눈에 담기만 했다. 네일은 괜히 아까 잡고 흔들었던 엘리후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담요 속이라 그런가 평소보다도 더 따뜻했다. 항상 끼고 있는 검은색 장갑으로 싸여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너머로 느껴지는, 장갑으로 미채 모두 차단하지 못한 미약한 온기를 언제부턴가 네일은 느낄 수 있게 되었더랬다.
오늘이 유성우가 떨어지는 날이었던가? 호그와트에서 천문학 수업을 들을 때에는 종종 교수님이 언제 유성우가 떨어질 지 가르쳐주시곤 했었는데, 매번 타이밍을 놓쳐서 보지 못하거나 잘 안 보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계산 방법이야 배웠기 때문에 알고 있었지만 졸업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무의식이 기억하고 있어서 오늘 밤하늘을 보러 나오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며, 엘리후를 끌고 나온 충동에 대해서 네일은 괜히 이유를 붙여보았다. 날씨 좋고, 하늘 맑고, 거기다가 유성우가 떨어지는 날. 묘하게 로맨틱한걸. 네일은 옅게 미소를 띠었다.
“유성우를 보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거, 알아? 완전히 미신이긴 하지만.”
“소원 빌었나보네.”
네일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소원 빌었는데?” 엘리후가 되물었으나 네일은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대답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괜히 얄미워져 엘리후는 네일의 볼을 쭉 잡아당겼다. 어눌해진 발음으로 아파, 하는 네일에 금방 놓아버리고 그 볼에 입을 맞추어줬지만은. 네일은 엘리후의 물음에는 답하지 않은 채로 오히려 저가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넌 소원 빌었어?”
“빌긴 했는데 말 안 해줄 거야.”
저도 말해주지 않은 입장에 캐묻기는 좀 그래서, 네일은 어쩔 수 없이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뭘 빌었는지 엘리후가 충분히 눈치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고, 제 입으로 내뱉기에는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하는 것 뿐이었다. 아주 당연한 소원이며 항상 바라고 있는 것. 사실 그 또한 비슷한 소원을 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네일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지. 엘리후는 가만히 네일을 더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별이 떨어지는 게 멈췄을 즈음, 오른손으로 네일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뭘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었기에 네일은 살짝 고개를 돌려주었다. 입술과 입술이 짧게 맞닿았다 떨어졌다.
그러니까, 엘리. 내 소원은 말이지…….
너랑 이렇게 평생 평화롭고 행복하게 같이 지내는 거야.
'1차 > 커플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엘리네일] 느와르 AU (0) | 2016.05.23 |
---|---|
[엘리네일] 200Days (0) | 2016.05.02 |
엘넬 (0) | 2016.04.04 |
[엘리네일] loss of eyesight (0) | 2016.03.28 |
엘리네일 (0) | 2016.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