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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라그] 첫키스



  지크프리트 위버는 그닥 크지 못 한 소파에 웅크려 누워 잠들어 있는 라그렛 블랙로즈를, 제 연인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새벽이 깊어가는 고요한 시간. 특별한 일이 없지 않은 이상은 늦지 않은 시간에 잠을 청하곤 하는 그였기에, 먼저 자고 있겠거니 하며 느즈막히. 그가 깨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히 집에 들어온 게 사실이었다. 들어선 집 안의 불이 켜져 있다는 점에서 놀랐고, 라그렛의 모습을 보고서 또 놀랐다. 자고 있을 거라는 예상은 반 이상 맞긴 했다. 그는 색색 소리까지 내며 자고 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맞지 못 한 이유는 침대가 아니라 소파에서 자고 있기 때문이었다. 베개도 베지 않고, 이불도 덮지 않고. 첫번째로 든 생각은 불편하겠다, 였고 두번째로 든 생각은 춥겠다, 였다. 아무리 집 안이라고 해도 한겨울에 목티 한 장만 입고 담요조차 두르지 않은 채 좁은 소파에 웅크려 자고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래도 깨울 수가 없었다. 너무 곤히 잠들어 있어서. 행여나 깰까봐 건드리지도 못 한 채 라그렛을 바라만 보던 지크프리트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무릎을 굽혀 쪼그려 앉았다. 바로 정면에 자고 있는 얼굴이 보이도록. 이내 좁게나마 남은 틈에 양 팔을 교차시켜 올리고, 그 위에 제 턱을 걸쳤다. 당연스럽게도 얼굴과 얼굴이 가까워졌다. 옅게 내쉬는 숨이 미약하게나마 느껴졌다. 그렇게 티 하나 없는 말끔한 얼굴을 응시했다. 숨결과 숨결이 닿는다.
  그러기를 한참. 지크프리트는 제 팔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숙직을 할 뻔한 걸 겨우 빠져나온 탓일까. 아니면 이른 새벽까지 이어진 일 때문일까. 두 가지 이유가 다 겹쳐서 형성되었을 진득한 피로감이 몸 전체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걸 버티고있기는 조금 힘에 부쳤다. 잠에 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편히 쉬지도 못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머리 위에 툭 올려지는 손에 지크프리트는 묻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잠이 덜 깬 샛노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다. 부드럽게 머리칼을 쓰다듬는 손길에 작게 미소지었다. 반 쯤 뜨인 눈을 두어번 깜빡이던 라그렛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 웃었다. 라그렛의 남은 한 쪽 손까지 지크프리트에게로 뻗어지고, 머리를 쓰다듬던 손 또한 내려가 느릿하게 목을 끌어안아 제 쪽으로 당겼다. 그렇게 한 층 더 가까워진다. 이마가 한 번 툭, 맞닿았다가 떨어졌다.

  "많이 늦었네."
  "으응, 어쩌다보니요."
  "피곤하겠다."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목소리가 잔뜩 잠겨있었다. 라그렛은 고개를 돌려 몇 번 잔기침을 하고는 다시 지크프리트를 바라보았다. 걱정해야 할 쪽은 이쪽인데, 오히려 선홍색 눈동자가 걱정스럽다는 빛을 잔뜩 띠고 있었다. 저를 더 끌어당겨 아예 옆에 눕히려는 라그렛을 슬 밀어내고 지크프리트는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잘거면 침대에서 자지 왜 여기서 자고 있느냐고. 걱정의 시발점이 되는 물음을 던지니 라그렛은 시선을 잠시 피했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옆에 네가 없는 침대에는 별로 눕고 싶지 않았다, 고. 그리 답한다. 지크프리트는 한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1980년의 10월 한 달. 두 달 여 떨어져 지냈던 시간이 지나가고, 1981년의 1월로 또 다시 한 달. 아낌없이 사랑을 속삭였던 두번째의 한 달 동안 라그렛은 부쩍 어리광이 늘었다. 던지는 말도 퍽 솔직해졌고. 이제와서 어떤 감정을 숨기려 하겠냐만은 말이다. 라그렛으로서는 더더욱 솔직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름 너 올때까지 기다린건데."

  언제 잠든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이곤 라그렛은 작게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저가 없는 빈자리가 그리도 쓸쓸하냐며. 그럼 도대체 평소에는 혼자 집에서 어떻게 지내냐고. 지금은 필요없을, 어찌보면 답은 정해져 있을지도 모르는 물음을 삼키고 대신 지크프리트는 라그렛의 상체를 일으켜 끌어안았다. 라그렛은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답은, 정말로 정해져있다. 괜찮다 답할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마저 즐겁다고, 그리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섞여있지 않겠지. 그리움과는 별개의 문제이기 마련이므로. 라그렛은 지크프리트의 어깨에 가만히 얼굴을 묻었다. 뒷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막연하게 기분 좋았다. "무리해서라도 집에 오길 잘했네요." 그 말에는 부정하지 못했다. 빈말로라도 뭐하러 무리까지 했냐며, 꼭 들어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리 말 할 수가 없었다. 보고 싶었던 시간은 명백하고 느끼는 외로움 또한 사실은 선명했으므로. 정말로, 사랑에 빠진 사람이 으레 그렇듯 기다리는 시간까지 즐겁지 않았더라면. 버티지 못하고 떼를 써버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기간이었다. 심적으로 완전히 괜찮아지지도 못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계속 옆에 있고 싶기 마련인 연애 초기라는 이유가 사실 그보다도 더 컸다.

  "잘거면 침대에서 자야죠."
  "으응."

  한참이나 누워있던 소파에서 비척비척 일어난 라그렛은 지크프리트의 손을 잡고 그에게 이끌려 침대로 향했다. 눕기 직전이 되어서야 지크프리트는 그때까지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대충 던져두었다.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더 길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꼭 붙어 누워 저를 끌어안는 손길에 몸을 맡겨 라그렛의 품에 얼굴을 묻은 지크프리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정말로 일을 쉴 수도 없는 마당에─사실 쉴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라그렛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적 여유는 둘 모두에게 부족했다. 허락된 시간은 아침에 깨어난 후 출근 직전까지의 아주 짧은 시간과, 퇴근 이후의 비교적 긴 시간. 그마저도 사실 후자의 경우에는 라그렛이 만성적으로 수면이 부족한 지크프리트를 재우느라 급급해했다. 연애 초기 치고는 퍽 팍팍하게 살고있지 않은가. 그래도 또 같이 있는 동안에는 마냥 좋다고 계속 붙어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서늘한 옷자락에 잠이 깨버린 라그렛은 지크프리트의 머리칼에 몇 번 코를 부볐다. 그러고 그의 등을 가만히 토닥이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후배가, 지금은 연인이. 제 품 안에서만은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허나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지크프리트는 품에 묻고 있던 고개를 들고 라그렛을 물끄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라그렛 또한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여 지크프리트를 내려다보았다. 1초, 2초, 3초. 시곗바늘이 째깍거리는 소리와 보통보다는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누구의 심장 박동인지는 모른다. 제 것인지, 연인의 것인지. 그리고 틈을 메우는 건 서로의 작은 숨소리. 말 한 마디 없이 한참이나 그렇게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는 채. 서로를 마주보았다. 때로는 별다른 말이 필요하지 않은 때가 있기 마련이고, 지금이 바로 그 때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다시금 숨결이 닿는다. 어쩐지 간질간질했다. 그걸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라그렛 블랙로즈는 이러한 감정의 간질거림에 유독 약한 청년이었다. 지크프리트 위버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자각함과 동시에 그것에 약하다는 사실 또한 자각했다. 그래서, 어쩔 수가 없다고. 마치 이끌리듯이.
   라그렛은 조심스럽게 지크프리트의 턱을 잡았다. 그대로 눈을 감는다. 서서히 얼굴이 가까워지고. 제 입술을 그의 입술에 겹쳤다. 막연한 따뜻함. 턱을 잡고 있던 손이 올려져 지크프리트의 두 눈을 감겼다. 몇 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이어진 아주 짧은 입맞춤이었다. 사실 키스라고 부르기도 뭣 할 정도였다. 그래도 꼴에 그게 둘 다에게 첫키스라고. 여전히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심장 뛰는 소리가 더 빨라졌다. 사실 누구의 것인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하나의 것이 아니니까. 둘의 것이었다. 함께, 아주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잠깐동안 겹쳐졌던 입술이 떨어져나가고, 지크프리트는 눈을 살짝 크게 뜨곤 얼떨떨한 표정으로 라그렛을 쳐다보았다. 느리게 깜빡였다. 이내 웃어버린다. 저도 모르게 한 짓에 적잖게 당황하고 있던 라그렛은 지크프리트가 제 품에 다시 파고들어오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곤 현실로 돌아왔다. 그 또한 입꼬리를 당겨 웃고는 제 연인을 더 꼬옥 끌어안았다.

  "싫지 않아?"
  "그럴리가요. 너무 좋은걸요."

  슬 고개를 들어 저를 바라보는 살짝 붉어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발갛게 물든 볼을 손 끝으로 살살 쓰다듬으며 라그렛은 작게 입술을 우물거렸다. 다음 말을 찾을 수가 없어서.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말 대신 볼을 쓰다듬던 손을 내려 검지 손가락을 지크프리트의 턱 밑에 대 고개를 더 들게 했다. 그대로 다시 한 번 입을 맞췄다. 눈을 감은 게 보이자 별 것도 아닌 용기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선. 열린 입술 틈으로 제 혀를 밀어넣었다. 차마 혀와 혀를 얽지는 못하고, 입 안을 덧그리듯. 사실 간질이는 것에 가깝도록 혀로 약하게 쓸어보고 나서야 입을 뗐다. 그제야 지크프리트는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다시금 웃고, 이번에는 저가 먼저 입술을 가져다댔다. 가볍게 맞닿은 입술이 어쩐지 간질간질했다. 아까 마주보고 있을 때처럼. 라그렛은 그런 지크프리트의 뒷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살짝 닿았던 입술이 멀어지자 더 당겨 안았다. 어쩐지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오늘은 잘 잘 수 있겠다. 그치?"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닿아왔다. 지크프리트 또한 라그렛을 끌어안으며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여느때처럼 라그렛은 지크프리트를 제 품에 안고 다시금 등을 토닥여주었다. 바로 재우려는 걸 보면 그도 퍽 쑥스러운 모양이다. 지크프리트는 픽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고 그의 품에 더 파고들었다. 꿈도 꾸지 않고, 아주 깊은 잠에. 간만에 그리 편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랑한다는 속삭임을 들은 것도 같다는 생각을 끝으로 지크프리트는 잠에 빠져들었다. 라그렛은 뒤늦게 붉어진 얼굴을 지크프리트의 머리칼에 묻어버리곤 혹여 답답할까봐, 끌어안은 팔을 조금 느슨하게 했다. 겨울의 새벽. 밖의 공기는 차고 안의 공기도 마냥 따뜻하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맞닿은 온기만은 하염없이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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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라그] 감기



  제 앞머리를 쓸어올리는 손길에 라그렛은 느릿하게 눈을 떴다. 보이는 건 당연하게도 익숙한 얼굴이고,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숨이 새어나왔다. 이윽고 한숨 소리를 뒤로 하고 무어라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문제라면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것 정도. 두어번 입술을 달싹이던 라그렛은 결국 입을 꾹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한참 동안 머리칼을 쓸어넘겨주며 식은땀을 닦아주던 손이 스르륵 내려가 라그렛의 목 여기저기를 손가락 끝으로 살살 매만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터져나온 건 한숨도, 목소리도 아닌 잔기침 몇 번이었다. 작게 인상을 쓰고 제 입을 가리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지크프리트는 손을 거두었다. 작게나마 찌푸려진 미간을 펴주기 위해 또 뻗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라그렛은 딱히 그 손길들 하나하나를 저지하려 들진 않았다. 평소보다도 나른하게 풀린, 밝은 노란색 눈동자가 지크프리트를 향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두어번 더 콜록거리고 나서야 겨우 목소리가 나왔다. 그마저도 상당히 잠겨있었지만.

  "언제 왔어."
  "목소리, 잠겼어요."
  "……언제 왔냐니까."

  저마저도 제 잠긴 목소리가 낯설어서, 라그렛은 제 목을 오른손으로 약하게 감싸 엄지 손가락으로 목울대를 꾹꾹 눌렀다. 그런다고 목소리가 돌아올 리는 없었지만 말이다. 라그렛은 잔뜩 인상을 써버렸다. 잔뜩 잠겨버린 제 목소리도, 물음에 답하지 않는 지크프리트 위버도. 어쩐지 다 맘에 들지 않고 불만스럽기만 해서.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가. 그런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크프리트는 허리를 숙여 한껏 찌푸려진 미간에 가볍게 쪽, 하고 입맞추었다. 다시금 새까만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이마에도 입맞추고. 라그렛은 목 깊은 안쪽에서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방금 왔어요." 늦은 대답에 두 손이 뻗어진다. 저보다도 더 하얀 목에 감싸안듯 걸쳐져, 그대로 제 쪽으로 당겼다. 힘 하나 들어가지 않은 몸짓임에도 불구하고 지크프리트는 생각보다도 더 쉽게 끌려왔다. 어정쩡하게 제 옆에 누운 연인의 품에 머리를 부비며 라그렛은 옅은 숨을 내쉬었다. 너무나도 명백한 어리광이다. 제 체온이 올라간 덕에 서늘하게 느껴지는 옷깃의 감촉이 제법 좋았다. 그보다는 확실히 연인의 품이라는 점에서 더 좋은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러기를 한참. 약하게 옷깃을 붙잡고 부비적거리던 라그렛은 고개를 들어 지크프리트를 올려다보았다. 계속 저를 보고 있었던 모양인 선홍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 아파."
  "알아요. 이렇게 티를 내고 있는데 어떻게 모르겠어요."

  상태가 안 좋다는 걸 깨달은 건 어제 저녁 즈음이었고, 안 좋은 걸 넘어서 정상이 아니라는 것까지 깨달은 게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라그렛은 가만히 기억을 되짚어가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여느때처럼 배웅해주고 난 이후의 기억이 없다. 정확히는 드문드문 끊겨 있다. 그 때 완전히 방전되어버린 모양이었다. 다른 일정이 없는 날이었어서 다행이지. 끊긴 부분의 기억은 이러하다. 비척거리며 침대 안으로 기어들어가 잠을 청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 깨어버리고. 식은땀에 젖어있는데도 자꾸만 으슬으슬 추워서 괜히 더 이불을 당겨 덮었더랬다. 그러다가 또 잠들고, 깨고. 세번째로 깬 게 바로 지금이다. 만 하루를 잠으로만 보낸 거다. 어지간히 아프긴 한 모양이지. 그래도, 침대에서 자꾸만 바르작거리느라 엉망이 된 검은색 머리칼을 정리해주는 손길은 몸이 안 좋은 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좋기만 했다. 라그렛은 눈을 깜빡였다. 여전히 저를 보고 있는 선홍색 눈동자. 피곤에 절어있는 눈가 위로 걱정이 띄워져 있었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그냥 감긴데 뭘. 컨디션 관리를 못 한 것 뿐이야."

  나 답지 않은 짓이지. 순순히 제 잘못을 인정한 뒤에는 또 몇 번의 콜록거리는 소리. 체질부터 건강하기로 타고났고, 어릴 적부터 컨디션 관리는 습관처럼 몸에 배여 있었다. 가벼운 감기조차 걸리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만큼 무리해야할만한 일이 생겼다거나, 아니면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려 있다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닌 이상은 말이다. 전자의 경우는 사실 그런 일 없을 거다, 라고 취급해도 될 정도이니 보통 라그렛이 아프다면 후자의 이유였다. 본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허나 이번에는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건대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 계절이 넘어가는 무렵, 보통 사람들이 으레 한 번씩 다 앓고 지나가는 가벼운 감기에 저까지 걸려버린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그 정도로 저가 풀려있다는 뜻이 되겠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아픈 걸 핑계로 맘껏 어리광 부릴 수 있는 건 좋은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언제는 눈치 봐가면서 어리광을 부렸냐, 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할 말은 없었지만. 어차피 그런 말을 들을 만큼 어리광을 부리는 상대는 눈 앞의 연인 뿐이었다.
  아무튼. 제법 진정성을 담은 눈으로 저를 보며 그리 말해오니 믿을 수밖에 없지 않나. 애초에 믿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품에 안긴 라그렛에게선 미열이 느껴졌다. 고열이 아니라는 점에서 안심해야 할까. 열을 조금이라도 낮춰주어야겠다 싶어서 지크프리트는 슬쩍 라그렛을 밀어냈다. 그러자 힘이 하나도 들어가있지 않은 손에 갑작스레 힘이 들어가며 옷깃을 더 당기는 게 아닌가. 옷깃을 붙잡는 것에서 끝나지도 않고, 라그렛은 그대로 지크프리트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제 것을 놓아주지 않으려는 어린아이 마냥. 겨우 한 번 약하게 밀어낸 것 가지고 약이라도 올랐는지, 가늘게 뜨인 눈이 지크프리트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읽어낼 수 있다. 가지 말라고, 그리 제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물수건이라도 놔줄까, 했어요."
  "그런 거 필요 없어."

  딱잘라 말하며 라그렛은 지크프리트를 더 당겨 안았다. ……아픈 사람의 뜻이 그러하다니 어쩔 수 있나. 가만가만 등을 쓸어주다가, 지크프리트도 그런 라그렛을 가만히 끌어안았다. 제 걸 놓칠까봐 갑작스레 세워졌던 날은 어디갔는지, 금세 표정이 풀어져선 라그렛은 눈을 감았다. 앞머리칼에 입맞추던 입술이 내려져 그렇게 감긴 눈가에도 입맞추고, 콧잔등과 볼에까지. 조금 더 움직여 열기를 머금은 제 입술에 다다르자 라그렛은 슬쩍 고개를 돌려 지크프리트의 입술을 피해버렸다. 감기 옮아. 상관 없어요. 내가 상관 있어. 말다툼 아닌 짧은 말다툼 끝에 결국 져준 건 라그렛이었고, 막상 입술과 입술이 겹쳐지고 나니 좋다고 제 입 안과 혀를 내주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네 마음대로 하라고. 그래봤자 짧은 키스로 끝나버렸지만 말이다. 또 저를 배려한답시고 이런 식인게 분명했다. 싫진 않았지만 글쎄, 가끔씩은 불만스러울 때가 있기 마련이다. 떨어져나가는 입술에 이번에는 저가 먼저 입술을 겹쳐버리며 깊게 입맞추었다. 숨이 찰 때까지. 그러고나서 입을 떼니, 감기 때문인지 평소보다도 더 숨을 쉬기가 힘들어서 라그렛은 자꾸만 숨을 몰아쉬었다. 입 안에 고인 타액을 삼키는 것마저도 제법 힘이 들어 보이기도 했다. 다시 한 번 걱정스럽다는 시선이 그에게 닿는다.

  "괜찮아요?"
  "……물 마시고 싶어."
  "갖다줄게요."
  "됐어, 괜찮아."

  어쩌라는건지. 여전히 저를 꾹 붙잡은 손을 보며 지크프리트는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이대로 잘래." 칭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저도 다시금 고쳐 안으며 라그렛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나른함 때문인지 금세 감기는 눈 위로 다시금 가볍게 입맞춰주고. 어쩐지 열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그걸 본인도 느끼는 모양인지 라그렛은 자꾸만 더 지크프리트의 품에 파고들었다.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히는 와중에도. 더위 많이 타는 사람인데, 덥지도 않은지. 걱정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해줘야할지도 모르겠고. 사실 저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사람을 억지로 떼내어서 뭔가를 해주기도 좀 그랬다. 품에서 바르작거리는 라그렛의 머리칼과 얼굴 여기저기에 입맞춰주며 지크프리트는 그냥 그런 그를 더 소중히 껴안았다.

  "……나 잠들어도, 어디 가지 마."

  놓지도 말고…. 잠에 취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지크프리트는 고개를 숙여 그런 라그렛의 귓가에 소근거렸다. 어디 안 가요. 놓지도 않을 거구요. 그제야 라그렛은 작게나마 미소짓는다. 응, 하고 짧게 대꾸한 뒤의 라그렛은 묘하게 조금 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래서야, 정말로 뭔가를 해줄 수는 없겠다 싶다. 당장은 그저 편하게 잠들 수 있도록 등을 토닥여줄 뿐이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라그렛은 잠에 빠져들었고, 감기 때문인지 색색거리는 소리가 더 선명하게 지크프리트의 귓가를 간질였다. 단지 그 뿐. 마주보고 누운 것도 아니고 제 품에 안겨있는 이상 베개를 베게 하기는 힘들어서. 베개 대신 팔 하나를 벨 수 있도록 내주고, 남은 팔로는 가만히 감싸안았다. 그러고 고개를 숙이니 미열 때문인지 약하게나마 발갛게 달아오른 볼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또 가볍게 쪽, 하고. 잘자요. 하고 귓가에 속삭이니 으응, 하고 대답처럼 웅얼거리는 잠꼬대가 퍽 귀여웠더랬다. 그래서 지크프리트도 그냥 그대로 눈을 꼭 감아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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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라그] 0919


   밤의 시간은 낮의 시간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한두 시간 정도의 오차를 두고 똑같이 배분되어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분명하게 있음에도 그러했다. 여름의 밤은 늦게 찾아오고, 아침은 이르게 찾아온다. 반대로 겨울의 아침은 느리게 찾아오지만 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찾아온다. 딱 그 정도의 오차. 계절을 가리지 않고 저녁이, 밤이, 새벽이. 달이 가쁘게 물러가는 것은 결국은 체감의 탓이다. 아니면 잠으로 보내는 시간이 길어서던지. 아, 후자 쪽에 가깝나. 아무튼. 이런 부질 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밤은 저물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리 장황하게 늘어놓았어도 라그렛 블랙로즈는 지나가는 밤에 연연해하는 소년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관심한 축에 가까웠지. 그에게 밤이란 하루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때때로 사람이 다 그렇듯 깊어가는 새벽과 어두운 밤하늘, 그를 밝히는 밝은 달에 심취해 센치해지곤 했으나. 그 정도에 흔들리는 소년은 더더욱 아니었고. 남보다 몇 배는 무심하게 흘려보낸 밤이 몇 밤이나 될까. 독서가 취미인 소년 치고는 퍽 감수성이 부족하지 않은가. 그리 저를 평가하면서도 라그렛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면, 이리 길게 쓸모 없는 생각을 이어온 것만 해도 기실 생각 이상의 감수성을 내포한다는 정도였다.

  그리하여 저를 감수성 부족한 소년이라 평가내리면서도 사실은 제법 풍부한 감수성을 지닌 라그렛 위스트 블랙로즈는, 저에게 박한 평가 만큼이나 남에게도 무덤덤한 사람이었다. 제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 직을 떠맡았으면 조금의 칭찬 정도는 해도 좋으련만. 그가 할 줄 아는 립서비스는 어디까지나 공적인 것에 한했다. 이따금 불려가 블랙로즈로서 대표하는 자리인 순혈 모임이나, 그런 비슷한 것들. 외에서는 사실, 무덤덤함을 넘어 과할 정도로 야박했다. 마치 칭찬 같은 건 할 줄 모르는 사람 마냥. 비단 주장으로서 그리핀도르 팀을 대할 때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햇수로 4년 째 이어오고 있는 스터디에서도 그랬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맡고 있는 소년이 있다. 그 아이가 제대로된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다는 건 둘째치고서라도 말이다. 칭찬이 입에 붙지 않은 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어린 축에 속했던 라그렛이 칭찬을 할 만한 대상은 멘티인 소년 뿐이었고, 소년에게 칭찬을 할 일이 없으니 칭찬 자체가 그에게는 낯선 거다. 이런 구구절절한 이유들, 그리고 그 이유들을 앞지른 성격 탓으로 어찌되었든 라그렛은 꽤나 뻑뻑한 주장이 되었다. 그리핀도르보다 몇 배는 겉으로 차가워보이는 슬리데린과 래번클로의 주장들보다도 말이다. 다소 무뚝뚝해보이는 후플푸프의 주장보다도 더.

  그러한 그가 손을 뻗었다는 건 생각보다도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었다. 쓰다듬었다고 보기도 힘든 행위였음에도 그랬다. 금빛 머리칼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진 손은 솔직히 따뜻했다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나, 그는 그마저도 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정말로 햇수로, 4년. 라그렛 블랙로즈가 3학년이고 지크프리트 위버가 신입생일 때 시작된 스터디 동안. 그리고 그 시간 외에도 선배와 후배로 지내왔던 시간 동안. 라그렛이 지크프리트를 약하게나마 쓰다듬어주었던 때가 있었던가. 동류인 순혈에게만 제외하고 모든 이에게 세워왔던, 아주 잘 벼려진 날이 살포시 접어들어가기 시작했던 4학년의 크리스마스 이후 라그렛의 태도는 상당히 누그러진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에 그쳤다. 부러 쓰다듬은 부드러운 행동은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제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기 위해 침대에 누워서까지 이랬던 적이 있었던가, 하고 다른 사람도 아닌 라그렛 본인이 곰곰히 고민할 정도로. 곰곰히 생각해보니 처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라면 정말로 생각 없이 뻗은 손이어서 기억 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거겠지. 그래서, 왜 그랬지. 가지런히 누운 채 한참 멍하니 천장만 올려다보던 라그렛이 문득 제 오른손을 들어 눈 앞에 펼쳐보였다. 순혈 가문 도련님 치고는 제법 거친 손이다. 손 끝에 닿았던 금빛 머리칼이 사락거리던 감촉이… ……남아 있을 리가 없지. 이내 주먹을 꽉 쥐고, 제 눈에 더이상 보이지 않도록 내려 침대 시트 위에 올렸다. 이유를 고찰해봤자 부질 없는 짓이다. 어차피 기억하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는 어느 때처럼 생각 없이 한 행동이겠지. 라그렛은 느릿하게 눈을 내리감고 잠을 청했다.


  ―그래서, 어제 졸면 혼낼거라고 했던 것 같은데.


  용캐 다 한 모양인지 지크프리트가 나름 의기양양하게 내밀었던 스터디 과제들을 눈으로 훑어보던 라그렛은 어느새 고개를 들어 지크프리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깃펜을 한 번 손으로 빙글 돌렸다. 급하게 한꺼번에 한 과제는 어느정도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라그렛의 성에는 당연히 차지 않았고, 그래서 당연히 평소처럼 잔소리와 지적할 점을 따박따박 뱉어내기 위해 고개를 들었던 거였다. 허나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애한테 따가운 소리를 해봤자 제대로 들을 리가 없지 않은가. 라그렛은 턱을 괸 채로 계속해서 느릿하게 깃펜을 손으로 돌렸다. 아무것도 모른 채 졸고만 있는 소년에게서 시선은 떨어지지 않는다. 어제부터 참 이상한 일이지. 평소였으면 귀라도 잡아당기면서 깨웠을텐데, 깨울 맘이 들지 않는 건. 어제도 혼냈어야 정상이었던 거였는데. 소리 조차 내지 않고 깃펜을 내려놓았다. 비게 된 손이 문득 뻗어진다. 왼눈 께에 쏠려 머물고 있는 앞머리칼에 손 끝이 닿았다. 그대로 옆으로 넘기듯이 사락, 하고. 한참 감겨있던 눈이 반 쯤 뜨여진다. 항상 앞머리 아래에서 언뜻언뜻 보이던 왼쪽 눈동자의 붉은색이 보였다. 라그렛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앞머리를 매만지던 손이 올라가고, 지크프리트의 머리를 꾹 눌러 책상에 박아버렸다. 잠깐 뜨여졌던 눈이 또 머리가 책상에 닿았다고 다시금 감겼다. 많이 졸렸던 모양이다.

  제 권속, 이라 칭하기엔 멀고 제 선 안, 이라 끝내기엔 그보다는 가깝다. 지크프리트 위버는 그 시절부터 라그렛 블랙로즈에게 그 간극 어딘가에 서 있는 존재였다. 사실은 그 시절보다도 더 오래 전부터. 알게 모르게 헤이트 크라임에 손을 댔던 저학년. 그 때 제 앞에 뚝 떨어진 머글 태생 소년은 솔직히 말하자면 먹잇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터인데. 남이 건드리면 하염없이 불쾌했고, 그렇다고 구태여 저가 건드리지도 않았다. 괴롭힘 당하는 걸 도와줬냐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지만. 다소 제멋대로였다고 생각한다. 끝내 제 눈에 지크프리트에게 손을 대는 얼굴이 보여져 본의아니게 응징 아닌 응징을 해주었던 일을 떠올려보자면, 더더욱. 도움은 주지 않았으나 응징은 하고 다녔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지. 그냥 눈에 밟혀서 그랬다기엔 했던 일의 강도가 너무나도 강했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지.

  잔머리가 듬성듬성 삐져나와 있는 뒷머리에 여전히 올려진 채인 제 손에 시선이 닿는다. 그대로 쓰다듬었다. 손에 닿는 머리카락의 감촉이 제법 부드러웠다. 누군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는게 이런 느낌인가. 참 새삼스러운 감상이다. 그리고, 이상하지 않나. 나도, 너도. 지크프리트 위버가 피곤해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었다. 제멋대로 꼬셔와 시작하게 만든 퀴디치에, 배분해주었던 포지션과도 달라졌으니. 적응을 위해 부단히도 열심히 노력하는 게 제 눈에도 보였더랬다. 어차피 추격꾼 자리에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었어서 정말로 저가 바꿔도 되는 일이었는데. 강요에 가까운 제안을 받아주었던 것도,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되었을 포지션을 바꿔준 것도. 사실 주장인 제 입장에서는 다 고마운 일들 뿐이라 어느 정도의 편의는 봐줄 수 있었다. 먼저 말로 꺼내지 않았을 뿐. 예를 들어 스터디 한 번 쉬면 안 되겠냐고 말해왔더라면 흔쾌히 그러자고 해줄 수 있었다는 뜻이다. 밤을 샐 정도로 굳이 무리한 이유는 무엇인지. 이상하다는 말로밖에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혼나는게 무서웠나. 아니면 그리 빡빡한 선배로 보였나. 사실 둘 다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라, 저도 모르게 속으로 웃어버렸다.

  제법 오랜 시간 금색 머리칼을 쓰다듬던 손은 두어번 톡톡 두드리는 것을 끝으로 떨어져나갔다. 이번에는 사락거리는 감촉이 남았다. 싫지는 않았고. 다시금 비어버린 손은 종이와 깃펜을 찾아 무언가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잠시 물끄럼 완전히 잠에 빠져든 것으로 보이는 지크프리트를 보던 라그렛은 저가 하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두 번 정도 접었다. 머리와 책상 사이에 깨지 않도록 살살 끼워넣어 베개처럼 베게 하고 나서야 라그렛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도, 오늘도 어쩐지 이상하기만 한 하루다. 내일은 이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는걸. 짧은 한숨을 내쉬고 라그렛은 지크프리트가 밤을 새 해 온 과제들을 옆에 끼고 자리를 떠났다. 그곳에는 그렇게 곤히 잠든 지크프리트와 그 곁의, 라그렛의 필체로 또박또박 쓰여진 작은 쪽지만이 남았다.


  「새 과제는 없고, 대신 내줬던 과제 다시 제대로 해와. 목도리는 안 돌려줘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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