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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그'의 실종 이후. 겨울, 녹턴 앨리.
자신에게로 집중되는 시선들에는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라그렛 블랙로즈는 평소와는 다르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익숙함을 떠나, 가지각색의 색들에서 쉽게 읽어낼 수 있는 감정들 때문이었다. 경멸과 조롱을 포함한 부정적인 방향의 것들뿐이다. 볼 일이 있는 거라면 폴리주스를 구해서 마시고 왔어도 됐을 일인데. 부러 제 본모습으로 와 그러한 시선들을 견디고 있음은 다소 뻔뻔스레 보이기도 했고, 용감하다고 평가받을 만도 했다. 어찌되었든 위험한 일을 한 건 맞았다. 안전 불감증이라 잔소리를 들어도 반박은 못 하겠지. 멀쩡하게 눈 뜨고 저만을 바라보고 있는 오러가 하나 있는데, 뭣하러 써먹지 않느냐고. 몇 남지 않은 지인들과 심지어 그 오러 본인마저도 그리 말 할 게 어쩐지 머릿속에 그려져서 라그렛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한때 무작정 지키겠답시고 공포의 근원에서 그를 떼어놓으려 부단히도 애를 썼던 때가 있다. 오히려 그 때의 일로 상처를 입혔음은 명백하다. 라그렛은 학습 능력이 없는 머저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를 이런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하는 이유는, 이 일은 온전히 저 혼자 끝내야 하는 일이라 못박아두었기 때문이었다.
눈부신 다이애건 앨리, 그리고 그 그림자나 다름 없는 녹턴 앨리. 그곳은 영국 어둠의 마법사들의 본거지라 불릴 만 한 짙은 그늘에 속한 장소였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양지에 알려져 있는 게 아닌가 싶지만은. 한때 라그렛의 주위를 맴돌았던 악의 반 흥미 반이 섞인 루머들 중 제일 다수를 차지했던 것이 그가 녹턴 앨리에 드나든다는 말이었을 정도로 알려져 있는 장소였다. 그럼에도 이 그늘이 햇빛에 쬐이지 않는 원리는 생각해보면 간단했다. 죄가 입증되지 않는다면 연행이나 격리조차 할 수 없기 마련이기에. 드나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명히 예비 범죄자이거나, 몇몇은 이미 죄가 있는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녹턴 앨리가 양지의 사람들에게 간섭 받지 않는 이유였다. 이렇다 할 명분과 증거가 없기 때문에. 물론 간혹 정말로 죄가 없는 사람들이 섞여있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과거에 속하는 라그렛 위스트 블랙로즈처럼. 녹턴 앨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정보의 보고라 불리었다. 영국 마법사와 마녀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담은 녹턴 앨리에서는 양지의 것이든, 음지의 것이든 가리지 않고 많은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헛소문도 섞여있긴 했으나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쳐내고 나면 꽤 유용한 정보들이 많이 남곤 했다. 라그렛이 그간 녹턴 앨리에 들러왔던 이유는 바로 그 정보들 때문이었다.
특이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사실 라그렛 위스트 블랙로즈에게는 녹턴 앨리 방문에 있어서 위험성이 전혀 없어야 했다. 실제로 학창 시절의 라그렛은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괴담처럼 돌곤 하던 녹턴 앨리에 대한 소문들을 들을 때마다 코웃음을 치곤했다. 그가 처음 그곳에 방문했던 게 몇 살 때의 일이던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올리밴더스에서 느릅나무로 만들어진 첫 번째 지팡이를 구해왔던 그 날이 첫 방문이었으며, 이후로도 라그렛은 방학 때마다 녹턴 앨리에 들르곤 했다. 교육의 일부였다. 블랙로즈는 혈연이 이어진 가문보다는 사상과 뜻, 그리고 비밀이 이어진 단체 내지 조직에 가까운 이름이었다. 피가 닿아있지 않더라도 인정만 받으면 검은 장미의 이름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블랙로즈의 명성은 알려진 게 거의 없는 양지의 것과는 비교하지 못 할 정도로 녹턴 앨리에서만은 드높았다. 이름을 원하는 이들은 많았고, 라그렛은 블랙로즈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로제타 블랙로즈의 아들이자 가장 완벽한 검은 장미라 불리는 소년이었다. 녹턴 앨리의 대다수가 아직 어린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호의를 베풀만한 가치는 충분했고 그렇기에 라그렛은 어느 정도 특권을 누리며 다녔음이 사실이었다. 그가 녹턴 앨리에서 받는 일종의 교육과는 별개로 말이다. 조직체에 가까운 블랙로즈는 구성원을 사용하기 알맞은 방식으로 키워낸다. 전투원, 정보원 등의 종류로. 어디에도 써먹지 못 할 사람은 하다못해 한 번 쓰고 버릴 소모품, 불나방으로라도 사용했다. 라그렛은 블랙로즈가 아이에게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친 소년이었다. 그 중에서도 사교계에서의 일과 정보전에 특히 뛰어나도록 교육받았다. 어찌되었든 어느 방식으로든 블랙로즈의 얼굴이 될 그가 어려서부터 담당한 부분은, 일종의 스카웃이었다. 라그렛은 생각보다 더 어릴 적부터 그 일을 수행해왔다. 녹턴 앨리는 수행의 장소이자 교육의 장소였다. 호그와트에 입학한 직후부터 거쳐온 순혈 가문들의 사교장이 그에게 그러했듯이.
그가 집을 나온 17살 때에도, 그 이후에도 라그렛은 녹턴 앨리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았다. 제 발로 나와 내놓아진 자식이라고는 하나 블랙로즈는 블랙로즈였기 때문이었다. 허나 상황은 처음으로 그가 세간에 제 집안에 대해서 입을 열었을 때 바뀌었다. 블랙로즈는 그 첫 번째 가치를 비밀의 유지라 말해왔고 몇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모두가 그 가치를 지켜왔다. 배신자들은 모조리 제 목숨으로 그 값을 치른 가문의 역사 속에서 그는 가문의 배신자라 불리었다. 그럼에도 살아남았고, 발길을 끊지 않았다. 가문의 배신자에 이어 일족의 배신자까지 되어버린 지금까지도 말이다. 테러와 악행에 가담하든, 가담하지 않았든. 어둠의 마법사 소굴인 녹턴 앨리에는 '그'의 추종자들이 다수 존재했다. 블랙로즈로서의 정보와 죽음을 먹는 자로서의 정보를 모두 다 마법부에 고해바친 라그렛은 절대 그들에게 곱게 보일 수가 없었다. 지금 제게 쏟아지는 시선들이 그 사실을 입증한다. 허나 녹턴 앨리는, 정확히는 녹턴 앨리에 떠도는 정보들은 아직까지도 라그렛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에.
돈과 물건을 들이 부어 얻은 정보들 중에는 제법 흥미로운 것들이 섞여있었다. 첫째로, 블랙로즈는 뒷세계에서마저 예전 같은 위상을 유지하지 못 하고 있다는 점. 애초부터 피가 섞였든, 섞이지 않았든 순혈이기만 하면 거두어 자체적으로 어둠의 마법사를 키워내 온 집안이었다. 집안 대대로, 혹은 저 홀로 블랙로즈를 따르던 이들 중에는 블랙로즈를 따르기에 블랙로즈가 따르기로 한 '그'를 따른 것뿐인 사람이 제법 많았다. 그리 충성심을 자랑하던 가문의 수하들이 '그'의 실종 이후 다른 죄목도 아닌 '그'를 따랐다는 죄목으로 하나 둘 씩 잡혀 들어가 공중분해 됐다. 세력 기반을 송두리째 빼앗긴 것이나 다름이 없었을 터다. 게다가 저가 공개적으로 불어 넘긴, 겉으로는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블랙로즈가 사실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명백한 사실 하나. 그 사실 하나가 제법 큰 타격을 준 모양이었다. 친분을 유지하던 죽음을 먹는 자들이 그걸 알아버렸고, 끝끝내 그들 사이에서도 내분이 일어났다. 라그렛은 작게 혀를 찼다. 실수가 있다면 가장 높은 곳을 꿈꾼 주제에 남을 따르는 척 해보려 했다는 거다. 블랙로즈는 그런 게 어울리는 집안이 절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줄로만 알았던 제 어미의 실수를 목도한 순간이었다. 애석히도 라그렛은 희열조차 그닥 느끼지 못했다.
둘째로는 라그렛이 작년 크리스마스에 죽이지 못 했던 그의 이부동생이 그를 죽도록 미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역시 그 때 죽여 두는 게 나았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죽이지 않은, 정확히는 죽이지 못 한 것도 자신의 선택이었기에. 어쨌든 비극이라는 이름을 가진 운명은 제게서 그 아이에게로 되물림되고 말았다. 자신의 인생이 비극이라는 걸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이제 그 운명은 그 아이가 떠맡아야 할 것이었다. 동시에 저가 떠맡긴 것이기도 했다. 그 사실은 라그렛의 마음을 제법 불편하게 만들었다. 죽도록 미워하고 있다, 라. 어쩐지 정보를 얻으러 왔다가 죄가 하나 더 늘어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딱 그 정도의 찝찝함.
……아니. 그 이상의 불쾌감이다. 라그렛은 절대로 제 죄에 대해서 불쾌하다거나 기분 나쁘다거나 하는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받아들여야하는 종류의 것이라 생각했기에. 죄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저를 향하고 있는 시선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이 불쾌함의 출처는 어디인가. 녹턴 앨리의 구석진 곳에 멈추어 선 라그렛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품에서 지팡이를 빼드는 시간 또한, 그리 길지 않았다. 찝찝한 느낌과 왠지 모를 불길함의 이유를 좇으면 답은 쉽게 내릴 수 있다. 선명한 악의 하나가 저를 향하고 있었다.
"감이 좋네."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건 자신을 겨누고 있는, 징그러울 정도로 장식이 잔뜩 달린 지팡이였다. 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건 그 지팡이를 쥔 손등에 새겨져 있는 검은 장미. 한 번 새겨지면 평생 지워지지 않는 마법이 걸린 바로 그 표식. 아슬아슬하게 저가 받지 않은 것. 이부동생을 빼고는 늙다리들만 남았을 거라 예상한 걸 배신하고, 상대는 꽤나 젊은 축이었다. 저와 비슷할까. 가장 완벽한 블랙로즈라 불리던 시절, 블랙로즈에 또래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저조차도 모르도록 키워낸 자인지. 아니면 그 이후에 편입된 자인지. 후자가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은 했으나 어차피 지금은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기에 라그렛은 의식 속에서 지워냈다. 정 궁금하면 나중에 알아보면 되는 일이다. 대신, 그 고민은 조롱으로 이어졌다.
"피도 안 이어진 외부인에게 내 처리를 맡길 정도로 우리 집안이 체면을 안 차리는 집안은 아닐 텐데."
"그 입에서 우리 집안이라는 말이 나오나?"
한 마디도 지질 않네. 라그렛은 속으로 기함을 토했다.
"나도 말해놓고 구역질이 날 뻔했어."
부러 부드럽게 지은 미소 뒤에는 날카롭게 벼려놓은 비수가 존재한다. 절대로 곱게는 하지 않은 말이 그 비수의 존재감을 더 키워주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의 크리스마스. 라그렛은 비슷한 골목길에서 비슷한 대치를 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옆에 어린 아이도 있었고, 상황도 조금 다르긴 했으나. 그 때 라그렛이 제 어머니인 로제타와 했던 깨트릴 수 없는 맹세는 사실 불완전했다. 생각이 짧았다기보다는 알고서도 그리 한 것이었다. 로제타 블랙로즈는 향후 라그렛 블랙로즈의 인생에 일절 간섭하거나 관여하지 않는다. 이부동생의 목숨을 구실로 해 반강제로 받아낸 맹세 덕분에 로제타가 라그렛에게 무언가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게 됐음은 사실이었다. 허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면. 로제타 블랙로즈가 아니라면 누구든 라그렛에게 손을 뻗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또다른 블랙로즈라 해도 말이다. 분명한 헛점을 알면서도 어째서 블랙로즈가 아닌 로제타로 제한했는지에 대해서는 라그렛 본인만이 알고 있었다. 동시에, 그 누구에게도 말해줄 생각이 없는 것이기도 했다.
눈앞에 주문이 튀었다. 살벌한 녹빛은 아니라는 거에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지. 주변으로 빛이 튐으로 인해 타인에게 발각되기라도 했는지, 인기척이 늘어났다. 주변을 살피니 어둠 속에 숨어들은 불청객들이 꽤 많았다. 개중에 악의를 가진 사람은 없어 보이니, 아마 대부분 방관을 택한 구경꾼들일 터다. 불쾌함이 더해졌다. 라그렛은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리곤 지팡이를 고쳐 잡았다.
* * *
호그와트를 졸업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종종 꿈에서 기계 장치의 소리를 듣곤 했다. 시곗바늘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면 과거의 일들을 보았다. 이제는 뒤로 한 기억이나, 행복했던 시절 같은 것들을. 시곗바늘 소리보다도 더 드물게 들을 수 있었던, 톱니가 돌아가는 소리는 뭔가가 사이에 걸리기라도 한 듯 시끄럽게 삐걱거렸다. 비교적 어렸던 그땐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지금은 알고 있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의미였다. 저를 둘러싼 환경이, 인생이, 혹은…… 운명이. 올곧게 나 있던 길에서 탈선을 해버린 그 날부터 삐걱거리던 톱니는 때때로 반대로 돌기도 했고, 거칠게 멈추어 섰다가 다시금 정방향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스물도 채 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마냥 소음이 싫어 귀를 틀어막았다.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된 날 이후부터는, 예의 그 악몽들을 꾸었다. 악몽은 총 세 가지로 구성되었고, 이에 대해서는 굳이 더 말 할 필요가 없을 터다. 종잡을 수 없는 불안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던 불면의 밤. 그 시작이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들리지만 않았을 뿐. 라그렛 위스트 블랙로즈의 운명이라 이름 붙여졌으며, 동시에 비극이라는 이명을 가진 수레바퀴가 톱니 너머에 있었다. 떡하니 쓰여 있었던 비극이라는 글자를 보지 못한 건 자신의 탓이었고, 라그렛은 생각보다 덤덤히 제 비극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피해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제 비극이 소중한 사람에게 튀지 않도록. 저 혼자서 온전히 떠안을 수 있도록 끌어 모았다. 그게 최선이었다. 최선인 줄 알았다. 허나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 알았다. 운명을 피해갈 수는 없더라도 바꿀 수는 있다고.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이고 가시밭길뿐인 길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바꾸는 것만은 가능하다고. 깨달아버린 날에는 제 손으로 부숴버렸다. 비극이라는 글자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제 운명도, 함께. 운명의 수레바퀴를 부순 것과는 별개로 인생의 톱니바퀴는 여전히 굴러가고 있으니 그 너머에 또 어떤 운명이 생겨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허나 그 날 이후로 라그렛은 더 이상 운명에 연연하지 않게 됐다. 믿지 않게 된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에게 운명이라는 단어는 어느 면에 있어서 불쾌감을 가져다주는 단어이기도 했으며, 실제로 운명이라는 게 존재한다 하더라도 바꿀 수 있다 믿었다. 그 산 증인이 바로 자신이라며.
기실 그가 운명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어감과 그 자체를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은, 어느 누군가의 이름 때문도 조금 있었다. 사실 조금이라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제법 많이 그러했다.
─아가씨는 네 죽음을 원해.
태어날 때부터 제 운명과 똑같은 것을 가졌던 아이가 하나 있다. 비극이라 이름 붙여진 운명을 부숴버린 이후로 그 비극은 나눠지거나 변질되지도 않고 온전히 그 아이에게 떠맡겨졌다. 아마도, 그 아이는 아직 자신의 운명이 비극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줄도 모를 터다. 과거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마냥 이 길이 옳은 줄 알고 걸어가고 있겠지. 아직 어린 소녀와 그녀에게 비극을 떠넘겨버린 청년이 처음 만난 건 1년 전의 일이었고, 헤어진 것도 1년 전의 일이었다. 그녀에게 유년 시절의 배신이 얼마나 독한 것으로 다가올지 라그렛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제 숨이 거둬지는 걸 원할 만도 하다고 생각한다. 억울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게 당연한 일 아닐까, 했다. 라그렛은 몇 남지 않은 피붙이에게 받는 미움에 연연하거나 슬퍼할 사람도 아니었다. 그녀는 라그렛을 미워하나 라그렛은 그녀를 미워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미워하게 될 날이 올 지도 모르지만.
아가씨, 라. 그 호칭을 곱씹어보면 사실 하나를 쉽게 도출해낼 수 있었다. 기어코 그 어린 소녀가. 제 이부동생이 그녀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어머니이기도 한 로제타 블랙로즈의 다음으로 블랙로즈의 차기 후계자가 된 모양이었다. 암묵적인 의미를 넘어서 말이다. 참 재밌는 일이 아닌가. 저도 한 때 사람들에게 도련님이라 불렸던 시절이 있었다. 본래 제 것이었던 비극이라는 이름의 운명은 그녀에게 다시금 반복된다. 저처럼 그 운명을 깨트릴 지, 아니면 비극의 존재도 눈치 채지 못한 채 순응하게 될 지. 그것은 그녀에게 달린 일이었다. 허나 라그렛은 묘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보다도 머지않은 시기에, 그녀와 자신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만남은 분명 둘 중 누군가에게 좋지 않은 끝을 선사하겠지.
─그렇다면 가서 전해. 날 죽이고 싶다면 직접 찾아오라고.
제 집에 도착해갈 즈음, 했던 말에 대해서 잠시 떠올렸다. 그래서 한 말이었다. 굳이 재촉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올, 둘 중 하나의 종말을 위하여. 축배를 들 수는 없겠으나 말만은 전하고 싶었다. 의도적으로 목숨을 노리고 접근한 제 주제도 모르는 남자를 굳이 살려 보낸 건 그 말을 그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도 있었고, 제 손을 더럽히기 싫어서도 있었다. 이부동생, 리디아 블랙로즈는 끔찍하게 어머니 로제타를 닮았다. 그건 어느 정도 라그렛을 닮았다는 뜻도 된다. 그렇다면 그 말을 듣고도 저를 죽이기 위해 사람을 보낼 가능성은 희박했다. 저도, 제 어머니도 자존심 하나는 끝내주는 족속들이었으니. 블랙로즈의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자신 또한 그렇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나면 종잡지 못 할 불쾌함이 피어오르곤 한다. 라그렛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문을 열었다.
"……어라."
"어서와요. 좀 늦었네요, 선배."
라그렛은 멀뚱멀뚱 눈을 뜬 채로 눈앞의 지크프리트를 바라보았다. 집에, 있을 줄 몰랐는데. 잠깐의 외출이 생각보다 길어지긴 한 모양이었다. 어쩐지 머쓱해져 라그렛은 괜히 현관에서 꾸물거렸다. 그러자 제 손을 덥썩 잡아오는 상처투성이 손은 보기와는 다르게 제법 따뜻했고, 결국 라그렛은 느리게 웃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살얼음판은 거짓이고, 이쪽이 현실인 것만 같았다. 두 개 다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뭐 어떠랴 싶었다. 그쪽은 거짓으로 치부하고 이쪽을 현실이라 믿는다 하더라도 별 문제는 없었다. 손이 차갑다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지크프리트를 가볍게 쓰다듬어주고는 라그렛은 뒤늦게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아가씨, 라는 호칭을 들은 직후부터 갑작스레 다시 들리기 시작한 기분 나쁜 톱니 소리는 어느새 멎어있었다. 음지에서 다시 양지로 돌아왔기 때문일까. 잘은 알 수 없었지만.
"저녁 안 먹었지? 조금 늦었지만 저녁 먹을까."
"응, 좋아요."
이부동생과 자신. 언젠가 다가올 것이라 하더라도, 어느 쪽의 종말일지는 지금은 상관없었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만약 제 종말이 정해진 운명이라 한다면 애초에 믿지도 않을 것이고, 설령 그게 진실이라 해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제 손으로 바꾸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혹시나 만약. 라그렛은 문득 내면에 꼭꼭 숨겨놓았던 미약한 불안감 하나를 짚었다. 종말의 지표가 자신도 그녀도 아닌, 그 자신의 이름을 따라 지크프리트 위버를 향하고 있다면. 자신의 것보다 더 필사적으로 노력해 바꾸고 말 것이다. 불가능하다면 저가 대신 떠안고 추락할 것이고, 떠안는 일마저 차단당한다면 운명 대신 그를 껴안고 함께 끝을 맞이할 것이다. 그만큼의 각오는 충분했다. 생각보다도 더 예전부터 그랬다.
그래도 당장은 지금의 일상이 제일 소중하기에. 이쪽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끝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언젠가 깨어질지도 모를 평화에 전전긍긍해하며 살고 싶지도 않았다. 라그렛은 과거도, 미래도, 운명도. 그 무엇보다도 현재와 제 곁을 가장 중히 여기는 청년이었다. 길었던 유년을 졸업한 이후로 그렇게 됐으니, 이제는 평생 변하지 않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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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밤 늦게 집에 들어온 연인에게 첫마디로 건네는 말이 어서와, 나 보고 싶었어, 가 아닌 걱정의 말이라는 게 얼마나 속이 쓰린 일인지. 제법 지친 표정을 하고 있는 지크프리트를 보며 라그렛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밖이 제법 추운 모양이었다. 볼이 발갛게 물든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창백하게 질린 걸 보면. 오른손을 뻗어 손바닥으로 몇 번 볼을 문질러주었다. 찬 기운이 지크프리트의 볼을 타고 제 손바닥으로까지 넘어왔다. 10년에 가까운 지난 세월 속의 너에 대해 문득 생각한다. 항상 이런 모습으로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왔다 나가고, 그랬던 걸까. 제법 자주 들르는 편이긴 했어도 항상 제 집에 오는 것은 아니었으니. 너를 떠올리자면 쉽사리 꺾이지 않는 강한 모습이 먼저 스쳐지나가지만, 가끔씩은. 아주 가끔씩은 그 뒤에 간직한 무수한 상처들이나 외로움 같은 것들이 문득 그 위를 덮곤 한다. 그러면 어쩐지 저마저 슬퍼지는 것이다. 예전부터 그랬다. 천천히 볼을 엄지 손가락으로 쓸어주자 기분이 좋은 듯 옅은 미소가 입술에 걸쳐졌다. 어리광을 부리듯 제 손에 볼을 부벼온다.
"나 괜찮은데. 표정이 왜 그래요."
"내 표정이 왜."
거둬진 손이 제 볼을 스치고 지나간다. 표정도, 감정도 제법 잘 숨기는 것들이라 생각했건만. 최근들어 유독 숨기지 못하게 된 것이 몇 개 있다. 걱정이나 애정 같은 것들. 돌아오는 대답은 딱히 없었다. 허나 제 표정을 보는 얼굴이 꽤나 즐거워보여, 라그렛은 괜히 작은 소리로 투덜거리곤 뒤돌아 소파에 털썩 앉아버렸다. 딱히 삐진 건 아니었지만. 코트를 가지런히 걸어두고 제게 다가오는 지크프리트를 향해 라그렛은 살짝 팔을 벌렸다. 안아달라는 뜻은 아니었고 오히려 안기라는 뜻이었지만 되려 저를 세게 끌어안아온다. 뭐 어떠랴 싶어서 라그렛은 가만히 지크프리트의 품에 기댔다. 괜찮지 않아 보이는 쪽은 저쪽인데 등을 토닥여주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조금 뒤늦게 심통이 나는 것도 같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많이 피곤해보여." 작은 웅얼거림과 함께 라그렛이 작게 한숨을 내쉬자 지크프리트는 그제야 꼬옥 안고 있던 연인을 놓아주고 그의 옆에 앉았다.
사귀게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몸을 틀어 저를 향하고 있는 연인의 어깨를 팔로 감싸 제 쪽으로 끌어당기는 일이 퍽 자연스러워졌다. 얼떨결에 라그렛의 어깨에 기대게 된 지크프리트는 작게 웃음 소리를 흘렸다. 한창 애정만 쏟아부어도 아까울 시기에 걱정만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었으나, 그래도 좋은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차라리 계절이 겨울만 아니었더라도 조금 나았을까 싶다. 괜한 생각들이 길어진다. 제 어깨를 감싸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하루 종일 긴장을 놓지 않고 있어야 하는 직장이었고, 더 그래야 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그런 걸까. 긴장이 탁 풀리자 나른해지고만다. 그걸 눈치챈 모양인지 라그렛은 지크프리트의 어깨를 감싸안은 팔을 움직여 가만가만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손에 닿는 머리칼이 제법 부드러웠다. 그리고, 제 머리칼에서 나는 향과 비슷한 향이 난다. 라그렛은 슬며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주체하느라 꽤 애를 먹고 말았다.
"좀 자. 무릎 베개라도 해줘? 아니면 침대로 갈까?"
"잠들기 싫어요."
왜.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지크프리트는 눈을 내리감았다.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은 주제에. 작은 투덜거림이 들린 것도 같다. 또다시 지크프리트가 작게 웃음 소리를 흘렸다. 그 모습이 얄미워 라그렛은 괜히 지크프리트의 볼을 잡고 길게 당겨버렸다. 어느새 작게 뜨인 눈이 그를 흘겨보았다. 이번에는 라그렛이 웃고 만다. 볼을 놓아주자 발갛게 자국이 남았다가 금세 사라졌다. 선홍색 눈동자가 다시 눈꺼풀 너머로 사라졌다. 그 위를 손이 스치고 지나갔다.
"선배랑 같이 있고 싶은걸……."
딱 어리광을 부리는 목소리다. 10년 전 즈음에 자주 들었을까. 지크프리트 위버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심심치않게 듣긴 했으나 빈도가 적어졌음은 확실했다. 그게 최근 들어 또 늘고 있는 거다. 싫진 않았다. 오히려 좋았지. 어리광을 부려도 좋고 칭얼거려도 좋고 제게 스트레스를 풀어도 좋으니 기대주었으면 했다. 밖으로 그런 희망을 표출하지는 않았으나, 속내가 그러하다는 뜻이다. 나른함에 취해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목소리에 라그렛은 그냥 입을 꾹 다무는 것으로 응대했다. 그 마음은 저도 똑같다. 몸도 마음도 닿지 않았던 한 달 여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다고. 이리도 애틋해졌다. 가능하다면, 계속 같이 있고 싶었다. 제 성에 찰 때까지만이라도. 하지만 그게 안 되니까. 그리고 지크프리트가 마냥 제 옆에 붙어있기만 하는 걸 원하지 않으니까. 라그렛은 고개를 돌려 지크프리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반응이 없는 걸 보니 결국 잠든 모양이었다. 다시금 어깨를 감싸안아 가볍게 토닥였다. 고요함은 숨 쉬는 소리마저 상당히 크게 전달해주었다. 듣고 있자니 저까지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다.
밤마다 지긋지긋한 악몽에 시달렸던 시간 속에서 저를 편히 잠들 수 있게 만들어주는 존재란 과연 어느 정도의 구원인가.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이라 생각한다. 겪어보았기에 잘 알고 있었다. 구원이고, 희망이고, 단 하나 뿐인 빛이다. 지금도 그랬다. 라그렛은 지크프리트의 옆에서만은 악몽에도 불면증에도 붙잡혀있지 않을 수 있었다. 때때로는, 그를 괴롭게 했던 현실과 정신적인 문제들에서도 편하게 해주곤 했다. 자연스레 제 처음을 모두 주게 되면서, 결국에는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인생 처음 맞닿았던 손의 온기가 이제는, 저가 원한다면 평생 곁에 있을 것이다. 과거를 떠올려보면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따스함을 나누었다. 내 인생도 혼자 뿐이었고 네 인생도 혼자 뿐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혼자는 아니었다. 서로가 있었으니까. 그게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떨어져 지낸 시간 동안 알았다. 그래서 네게도 내가 그런 존재였으면 했다. ……그런 바람이 있다. 사실 알고 있었다. 그 시간들 속에서. 어둠이 싫고 무서워서 네게 숨었던 시간들 속에서, 나는 편했는데. 너는 어쩐지 내 곁에서마저 편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을 지새우는 모습을 자는 체 하며 여러번 보았다. 내가 너를 편하게 해주지 못 했던 모양이다. 의지가 되지 않는 존재였거나, 아니면……. 그 이상으로 네가 짊어지고 있었던 게 컸다거나. 너는 나를 오랜 시간 사랑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깝지 않았을까.
네가, 짊어진 것들. 얼마나 크고 무거웠으면 이렇게 변해버렸을까. 본인은 변했다는 자각이나 있을까. 어린 시절의 너를 떠올리고 지금의 너를 보고있자면 마음 한켠이 아려오는 건 사실이었다. 지금이 싫다는 건 절대로 아니었으나. 라그렛 위스트 블랙로즈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것들을 보아왔다. 세상이 얼마나 더럽고 추하며 어두운지 직접 깨달으면서 살았다. 17살이 되는 해 네가 그런 것들을 모른 채 자라서 밝은 곳에서만 지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됐다. 허나 그와 동시에, 네가 이미 그런 것들을 보아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묻지 않은 대신 도울 수 있는 건 전부 도왔다. 내가 모르는 많은 것들을 보고 겪은 네가 정한 길을 올곧게 걸을 수 있도록. 그게 옳은 길이라 믿었기에. 알고자 하면 알 수도 있었을 터다.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했을테니까. 그러지 않은 건 성격 탓도 있었지만, 과거에 얽메여봤자 좋을 것도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미 네가 그것들을 딛고 나아가기로 했으니까, 내가 그것들을 알아서 얽메여봤자. 모르는 편이 나을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말하지 않는 네게 크게 서운해하지 않았다. 마치 죄라도 지은 듯, 혹은 무언가를 원망하듯이. 저가 혼혈이라고 토해냈던, 어렸던 지크프리트 위버. 사실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추측할 수 있었고 압축할 수도 있었다. 딱 거기까지만 했다. 지금까지도 그러했다. 때가 되면 어련히 말해주겠지. 사실 말해주지 않아도 좋았다.
내가 모르는 너에 대한 것들 너머에 네가 아는 나에 대한 것들이 있다. 네가 몰랐으면 했던 세상의 어두운 면들에는 자신의 음영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능하다면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끝까지 숨기고 싶었으나 결국 모두 토해 내가 모르는 곳에서 하나도 빠짐 없이 보여주었다. 그 후에 만난 너는 많은 것을 말하지 않았다. 여전히 무너지지 않은 모습으로 나를 똑바로 보았다. 멀리 있지 않겠다고, 덤덤하게 제 마음을 전했다. 그걸 다 보고 나서도. 너를 좋아하지 않았던 시간들과 내가 해 온 많은 더러운 일들을 보고 나서도. 내가 네가 생각하는 만큼 마냥 밝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도. 나를 받아들이겠다 하는 네가 있어서 몇 밤이나 울음을 삼켰던지. 당장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는 걸 네가 알까. 지금 와서 그런 것들은 몰라도 되는 것들이다. 알아야 하는 것들은, 그러니까…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것 정도. 딱 그것만 알면 되는 거다.
어깨에 기대어 잠든 연인을 한 번 품 안에 품었다가 놓아주었다. 생각 이상으로 마른 몸을 안아드는 일이야 그닥 어렵지 않았다. 지크프리트는 춥기라도 한지 살짝 몸을 웅크렸다. 가지런히 정리해놓은 침대 위에 내려놓고 이불까지 덮어줬는데도 계속 그 상태였다. 결국 제 품안에 다시 소중하게 껴안았다. 라그렛은 지크프리트의 머리칼에 잠시 얼굴을 묻었다.
"사랑해."
깨어있을 때 해준다면 더 좋을텐데. 아직은 조금 쑥스럽네. 저도 모르게 푸스스 웃어버리곤 라그렛은 느리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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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 이맘 때보다 훨씬 무더운 여름이었다. 라그렛 위스트 블랙로즈는 제법 더위를 잘 타는 체질의 청년이었고, 하루에 몇 번이나 앞머리를 쓸어올려 땀을 식혔는 지 셀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자꾸만 길게 한숨을 내쉬는 것도 더위 탓이었고. 계절이 바뀐다고 해도 온도차가 그리 크게 나지는 않는 게 영국 기후의 특성인데, 올해는 이상하리만치 더웠다. 정말로, 이상할 정도로. 라그렛은 느릿하게 눈을 내리감았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유는 간단하게 도출해낼 수 있었다. 70년대의 사회가 어떠했는가. 초반에는 정체 모를 살인 및 실종, 납치 사건들에 경계를 곤두세웠고, 후반부터는 본격적인 테러가 시작되면서 분위기가 싸하게 식지 않았나. 1970년대가 끝났다고 상황이 호전되지는 않았다. 그렇게나 그에게 악몽 같았던 1980년이 지나간 후에도 그랬다. 테러의 방향이 불특정 다수를 향하게 되면서는 정말로 전쟁 그 자체가 되어버린 1981년. 더위에 시달려할 심적 여유조차 없던 시기였다. 그리고 열달을 꽉 채운 후의 겨울, 종전. 지금까지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심심치않게 일어나고는 있으나 어찌되었든 평화는 어영부영 찾아오기는 했다. 오랜 시간 마법 세계를 얼어붙게 했던 전란의 기운이 사라지고, 얼어붙었던 사회가 스르르 녹고. 그렇게 처음으로 맞는 여름이다. 그러니 지나왔던 다른 여름들보다 더 덥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가타부타 생각이 길어지긴 했으나, 지금 라그렛에게 저런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보다도 더 더위에 쥐약이라는 게 중요했지. 어릴 때에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사람의 체질이라는 게 이다지도 쉽게 바뀌는 것이었나 싶다.
꽤 길게 눈을 감고 있던 라그렛은 고개를 숙여 품 안의 서늘함에 얼굴을 묻었다. 옅게나마 남아있는 금빛에서는 제 머리칼에서 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향이 났다. 크게 튀지 않는 은은한 향이었지만 그마저도 마냥 좋았더랬다. 저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는, 지크프리트 위버 특유의 서늘함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옷자락에서 느껴지는 것이야 그렇다고 쳐도 그 자체에서 서늘함이 느껴지는 건 좀 의아한 일이긴 했다. 제 몸에 열이 많은 편도 아닌데. 그래도 라그렛은 따뜻함과 서늘함중 하나를 고르자면 바로 후자를 택할 수 있을 정도로 서늘한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좋아했으면 좋아했지 불호를 표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물론 마냥 서늘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연인이기에 느낄 수 있는 따스함 또한 겸비하고 있었다. 이쪽은 정말로 저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라서, 인지하고 나면 기분이 좋았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감각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정말로. 라그렛은 그대로 지크프리트의 머리칼에 두어번 코를 부볐다. 오늘따라 어리광이 길었다.
완연한 평화를 가지고 다시 찾아온 여름. 전후 정리는 아직 덜 되었으나 심적인 여유는 제법 많이 생겼다. 라그렛의 어리광은 바로 거기에서 기인됐다. 전쟁이 끝나기 전에도 지크프리트는 제 앞에서만은 항상 웃곤 하였으나, 그 뒤에 얼마나의 근심이 있었고 얼만큼의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는지 라그렛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때에만은 제 곁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고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 아직 불안정하다는 티를 전혀 내지 않았으며 연인이라는 관계적인 부분에 대한 욕심도 최소화했고, 으레 사랑을 받는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있는─라그렛 위스트 블랙로즈가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의 기저는 그때까지도 어린 시절에 머물고 있는 상태였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하는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불의에 맞서 싸우며 저가 옳다고 믿는 길을 올곧게 바라보고, 그러면서 저절로 자신을 살피지 않게 된 지크프리트 위버를 지탱해주기 위해서였다.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을 수 있게, 지쳐 멈춰서지 않을 수 있게. 그를 돌보는 일은 오롯이 저가 떠맡았다. 존재만으로도 지지대가 될 수 있는 것이 있기 마련이라고. 제 생각보다도 더 전부터 지크프리트에게 그런 존재가 바로 자신이었다고. 깨닫고는 있었으나 부러 그렇게 어른임을 가장하고 힘쓴 까닭은 그의 심지가 굳은 만큼이나 저 또한 곧게 지지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래도 매일매일 늦은 밤 집에 들어오는 연인을 맞아 제 품에 안고, 재우기에 급급했던 태도만은 결국 저 또한 심적인 여유가 부족했음을 내보이는 일이었던 것 같다고 뒤늦게 생각했더랬다. 그랬던 시간들이 지나고 지크프리트가 어느 정도의 여유를 되찾아 안정되자, 그제야 라그렛은 마음놓고 그에게 어리광을 부릴 수 있게 된 거다.
허나 조금 우스울지도 모르는 사실을 하나 이야기하자면, 그러한 시간들을 지나오면서 라그렛의 기저가 가장을 넘어서 실제로 상당히 많이 어른으로 변모했다는 점이었다. 아직 많이 부족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껴안고 있으면 안 더워요?"
고개를 틀어 저를 바라보며 물음을 던지는 입술에 입맞추고 라그렛은 어깨만 으쓱했다. 아무리 저가 느끼기에 서늘한 편이라고 하더라도 한여름에 붙어있으면 더 더운거야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떨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쪄죽는다고 해도 안고 있을 거다. 괜찮아, 하는 짧은 대답에 품 안의 지크프리트가 바르작거렸다. 저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던 라그렛의 팔을 슬 내리고는 몸을 돌려 저가 먼저 라그렛을 끌어안았다. 라그렛 또한 자연스레 지크프리트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마주 껴안았다. 마주본 곳에는 사랑해 마지 않은 선홍색 눈동자가 있고, 밝은 노란색 눈동자가 있다. 적색과 금색.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두 색 모두 그리핀도르의 색이 아닌가. 문득 깨달은 라그렛이 작게 웃음을 터뜨리자 지크프리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것도 아니라며 이내 라그렛은 고개를 저었다. 입술을 삐죽거리던 지크프리트는 금세 퉁명스러운 태도를 지워내고 새 대화 소재를 꺼냈다. 사실 그에게는 아까 전부터. 아니, 사실은 꽤 전부터 신경쓰이던 것이 있었다.
"피곤해보이는데. 착각 아니죠? 오늘도 나갔다 왔어요?"
"으음."
"요새 외출이 잦네요."
라그렛은 다소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그렇게 제 모습을 잘 꾸며내고 가장하는 청년이 연인에게만은 본모습이나 마음을 숨기질 못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라그렛에게 지크프리트는 유일이었고, 지크프리트가 졸업을 하지 않았던 시절 저 혼자서 했던 약속 같은 것도 있었다. 너한테는 거짓말 안 해, 하고. 속이지는 않았으나 숨김으로 인해서 너무나도 큰 일이 벌어졌던 경험도 있었다. 존재의 가치고 약속이고 다 둘째치고서라도, 속이는 일이나 숨기는 일이나 상대가 지크프리트 위버가 되면 라그렛은 본능적으로 꺼려졌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는 상대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숨기는 게 완전히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딱 하나 있었다. 반년 가까이 숨기고 있는 일이, 하나. 겨울의 끝자락에 비밀스레 소식이 들려왔으며 봄으로 접어들어가는 무렵 확정된 것이 있었다. 놀래켜주겠답시고 철저하게 숨기고 있으니, 지크프리트가 알 리는 없었고. 그러니 이렇게 외출에 대해서 묻는 것이겠지. 최근들어 잦아진 외출과 돌아온 후의 피로함, 그리고 지크프리트 위버에게 숨기고 있는 것. 모든 것을 단 하나로 귀결 시키는, 이유에 대해서.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자꾸만 입이 간질거리는 게 사실이었다.
"걱정돼?"
"당연하죠."
항상 선배 걱정 뿐인걸요. 지크프리트는 말을 삼켰다. 라그렛은 작게 미소지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다. 둘 사이에는 그런 게 꽤 많았다. 서로의 인생, 반 이상을 함께한 시간들을 절대로 허투루 보낸 것은 아니었기에. 묘하게 어색했던 미소를 자연스럽게 바꿔보이며 라그렛은 지크프리트와 가만히 눈을 마주했다. 걱정은 제법 기분 좋은 울림을 가진 단어였다.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는 별개로 말이다.
"네가 걱정할 만한 일은 이제 웬만해선 안 일어날텐데."
"……꼭 그게 아니더라두요. 그리고 아직 완전히 정리된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 그래. 종전인데도 우리 지크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고 있지."
작은 키득거림과 함께 라그렛은 장난스레 대답했다. 아주 명백하게, 놀리는 어투였다. 지크프리트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하고. 아까 라그렛이 그랬던 것과 비슷하게 어리광을 부리며 지크프리트는 그의 품에 괜시리 파고들었다. 이럴 때 보면 아직도 두 살 어린, 어리숙하기만 한 후배인 것만 같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조금 변하지 않았는가. 후배나 동생이 아니라 조금 다른 이름으로. 지크프리트의 뒷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어주며 라그렛은 자꾸만 웃음 소리를 흘렸다. 왜 이렇게 장난끼만 드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크프리트 위버와 같이 있다보면 저마저도 호그와트에 다니던 어린 소년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당연하지만, 싫진 않았다. 그리움은 접어두었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었기에. 그래도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며 아련하게 부르지는 않게 됐다. 가장 큰 행복이 옆에 있게 되어서였다.
"그래서 요컨대, 밖에 나돌아다니지 말라는 뜻인가?"
"그런 뜻 아니라는 거 알잖아요."
결국 끝까지 장난이다. 무어라 말을 덧붙이기 위해 열리는 지크프리트의 입술에 짧게 입맞추고 빙긋 웃어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크프리트 위버는 절대로 눈치가 빠른 편이 아니었다. 느렸으면 느렸지. 그래도 연인이라고, 제 일에는 제법 빠릿빠릿하게 나오긴 하더만. 애석히도 라그렛 블랙로즈는 아무리 연인에 대해서라고 하더라도 항상 냉정하게 평가하는 청년이었다. 그게 습관과도 같은 것이라서. 굳이 포장해서 말해줄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도 있었다. 기실 직설적인 것이야 지크프리트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런 사이였다. 그렇게 군다고 해서 서운해하지는 않을 정도의. 오히려 그런 면을 좋아하는 감이 없지 않아 있기도 했다. 가끔 저를 보며 좋아 죽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싫어하는 면 내지 마음에 안 들어하는 면이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리고 사실 그런 점은 이쪽이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길어진 잡설을 줄이고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피로에 찌들어있는 걸 나름대로 숨기고는 있었다. 그런데도 지크프리트가 눈치 챈 정도라니, 꽤 심각한 상황이 아닌지. 아무리 지크프리트 위버에게는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괜찮은 척이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은 몸에 배인 거나 다름이 없었다.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하고 있을 정도로.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이야 라그렛 본인도 어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새삼 얼마나 여유 없이 살아왔던건가, 싶다. 이윽고 작은 한숨. 지크프리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라그렛은 말없이 도리질만 한다. 완전히 숨기기는 불가능할 정도로 무리를 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80년 10월 이후로 벌써 2년 가까이 지나지 않았나. 다시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은 건 2월 즈음의 일이었고, 생각 끝에 알겠다 답신한 건 그로부터 한달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반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시간으로 약 2년의 공백을 따라잡으려면 부단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기에. 동시에 지지리도 방치해놓은 왼팔의 재활까지 동시에 진행하려니 피곤하지 않을 수가 있나. 다 제 업이라 생각하며, 고스란히 받아들여 무리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길게 놓아본 적이 있었던가. 호그와트 2학년. 다소 불순한 의도로 시작했던 게 퀴디치다. 어련히 고학년이 되면 알아서 자연스레 관두게 될 줄 알았다. 그걸 끝까지 물고 늘어졌더니 생각에도 없던 미래에까지 끌고가게 됐다. 따지고보면 인연이 생겼을 때부터 놓지 못하게 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그리핀도르 아이들과 가까워진 계기도 사실 퀴디치였다. 그랬었지. 정말로, 많은 인연을 얻었다. 그리고 덕분에 인연이라는 게 어찌 발전될 수 있는 것인지도 알게됐다. 문득 추억에 잠기고 만다. 그리핀도르 관중석에서 동그랗게 뜬 눈으로 저를 좇던 선홍색 시선이라던가. 잠도 채 깨지 않은 후배를 붙잡고 대뜸 팀에 들어오라며 반 쯤 협박 아닌 협박을 했던 어린 날의 자신이나. 얼떨결에 수락했던, 잠이 덜 깨어 멍청했던 표정 같은 것도 있고. 선배들 대화에 맹랑하게 끼어들어 저가 해보겠다 했던 목소리와, 제대로 해내겠답시고 부득부득 매달렸던 금발의 소년. 이제는 색이 바랬으나 그 빛만은 영원히 바래지 않을 우승. 그 이듬 해에 소중히 여기게 된 아이가 다치기라도 할까봐 품에 끌어안고 함께 추락해 제 몸으로 모든 걸 받아냈던 일. 그 후 새벽의 병동이라던가. 저가 떠나고 나니 휙 관둬버려서, 유치하게도 서운해했던 적도 있었더랬다. 그래도 제법 유명인이 되어 돌아온 자신을 보며 빛내던 그 눈빛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선배?"
"왜."
"얘기하다말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해요."
세월이 흐르며 많은 것이 변했으나 저를 바라보는 눈빛만은 그때와 다를 바가 없다. 그 사실이 위안이었던 적이 분명히 존재했고, 지금은…… 글쎄.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에 구구절절한 이유를 붙일 필요가 있을까. 어쩐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지크프리트를 보며 라그렛은 느릿하게 웃다가, 무얼 말하고 싶은지 자꾸만 우물거리는 입술에 그대로 키스해버렸다. 혀가 뒤섞이는 감각에 얼굴을 붉혔던 작년 겨울과는 달리 지금은 제법 익숙해졌고, 또 능숙해졌다. 키스는 오래 이어지진 않았으나 혀에 남은 질척한 느낌은 오래 갈 듯 싶다.
"충분히 쉬고 있어."
"정말이죠?"
"너한테는 거짓말 안 해."
19살의 라그렛 블랙로즈가 17살의 지크프리트 위버에게 했던 말이다. 그 말을 굳이 그렇게 똑같이 한다. 지크프리트는 특유의 선홍색 눈동자를 깜빡이다가 이내 라그렛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두어번 부비고, 또 고개를 들어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라그렛에게는 이 시간이 자는 시간보다 더 효율적인 휴식 시간이었다. 지크프리트는 알지 모를지 모르겠지만. 한참 눈만 깜빡이던 지크프리트는 작게 알았어요, 하고 대꾸했다. 저가 사랑한 붉은색은 바로 이 선홍색이다.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고 있으면 최근들어 스멀스멀 욕구가 피어오르고 입이 간질거리곤 했다. 반 년. 가장 극적일 순간에 알려주겠다고 마음 먹어 숨겨온 시간이 분명히 있는데도, 말해버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몬트로즈 맥파이즈로의 복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눈으로 이리 올려다보면 누가 충동을 느끼지 않겠는가. 참을성과 인내심 하나는 괜찮은 편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라그렛은 속으로 웃음 소리와 앓는 소리를 같이 내며 지크프리트와 이마를 맞대었다. 키스 해줘. 작게 속삭이자 머뭇거리나 싶더니 금세 입술을 부벼온다. 그게 퍽 마음에 들어서. 라그렛은 두 팔을 뻗더니 지크프리트의 목에 둘러 그대로 감싸안았다. 지금 하는 키스는 꽤 길게 이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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