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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행방> ~장미파 : 오늘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내가 외로워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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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관련 공지

* 본 키퍼는 TRPG 초심자입니다. 때문에 다소 흐지부지하게 넘어가거나, 야매 룰로 빠르게 진행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애드리브로 진행해야 할 경우에도 다소 버벅거릴 수 있으니, 이 또한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 크툴루 TRPG 특성상 크리피한 것들의 출현 가능성이 매우매우 높습니다. 단, 이 시나리오는 <네게 헬리오트로프를>에 비교해 크리피한 장면이 적게 나오는 편입니다. 헬트프도 적게 나오는 편이었어요... 심심찮게 시체를 볼 수 있으시다는 것만 유념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약 텍스트고어적 성향이 있습니다.


* 시나리오의 진행이 꽤 특이한 편입니다. 진행은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낮/밤으로 나뉘어지며, 낮에는 NPC를 탐문하거나 도구 등을 가져오거나 캐릭터들끼리 모여 추리, 또는 밤 시간 메인 조사 때 할 행동 등을 미리 정할 수 있습니다. 휴식도 가능합니다. 모든 캐릭터들은 6시간의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그 날 조사때 모든 스킬 성공률이 -20이 됩니다. 낮 시간의 행동 결정은 총 두 번(캐릭터들의 시간으로 배분하자면 6시간+6시간) 가능합니다. 한번은 꼭 휴식으로 선택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 밤 시간에는 메인 조사가 이루어집니다. 시나리오에는 전체 시간 제한이 있으며, 1일차/2일차/3일차/4일차 등 각 일차 조사에도 시간 제한이 존재합니다. 캐릭터들에게 주어지는 시간 제한임과 동시에 탐사자들에게 주어지는 시간 제한이기도 합니다. 시간 제한이 끝나면 그 날 밤의 메인 조사는 강제 종료되고, 다음날의 낮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 진행이 느릴 시 시나리오의 진행도 느려집니다. 정말 빠르게 진행하신다면 3~4일차 만에 엔딩을 보는 것이 가능합니다만 진행이 너무 길어질 경우 중간 종료를 하고, 시간 조율을 다시 해 가까운 시일 안에 이어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 무기를 포함한 소지품(다들 마법사잖아요 지팡이 하나면 장땡이겠지만 머글식 무기, 허용합니다. 가져오셔도 됩니다.)은 시나리오 시작 전 탐사자가 보유하고 있어도 좋고, 메인 조사 시간 이전에 어딘가에서 조달해도 좋습니다. 다만 공권력이 제대로 기능하는 상황이므로, 무기는 상식적으로 소지할 이유가 있는 물건에 한정됩니다.


* 또한 범행을 숨길 수 없는 곳에서 사람을 다치게 하면 상해죄, 죽이게 되면 살인죄가 적용됩니다. NPC 살해가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이를 모면하기 위해선 극단적 난이도(특성치의 1/5 이하여야 성공)의 대인관계기능(말재주·매혹·설득·위협)판정 성공이 필수적일 것인데... 캐릭터들 중에 오러가 있다면... 아시잖아요... 살인은 최대한 하지 맙시다...


* 이번에 진행하게 될 <꿈의 행방>의 배경은 1978년 11월(뉘폴레르 성장후 러닝 시점으로부터 약 2년 전) 영국입니다. 캐릭터들은 오피셜 설정과 마찬가지로 마법사이며, 오피셜 설정을 그대로 유지해주셔도 무방하고 조금의 변형을 해주셔도 무방합니다. 어차피 시나리오의 진행 자체는 AU니까요! 현대 대한민국 머글세계에서 1978년 영국 마법세계로 배경을 각색한 만큼, 어느 정도의 고증 무시나 설정 파괴(배경적 설정-마법세계+크툴루 신화-입니다. 캐릭터 설정이 아닙니다!)가 있을 수 있음을 알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참가 가능 캐릭터는 탐사자 분들의 기존 캐릭터 중 1978년에 활동할 수 있는 캐릭터라면 모두 가능합니다만, 가급적 대부분의 인원들(캐릭터 말고 다른 탐사자분들)이 알고 있는 캐릭터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시나리오는 NPC A(극단장)가 캐릭터들에게 한 의뢰를 부탁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즉 의뢰를 수행하러 올 수 있는 동기가 있는 캐릭터가 요구됩니다.

- A는 마법부(오러 사무국)에 의뢰 수행을 위한 인력을 요청했습니다. 미스테리한 사건이 얽혀있는 만큼 데스이터의 개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이는 이 루트를 통해 A의 의뢰를 받으러 온 오러 캐릭터 및 마법부 캐릭터들만 알고 있는 사항이며, 당연히 사건에 얽혀있는 것은 데스이터가 아닌 크툴루 신화이기에 데스이터가 개입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일종의 더미 정보입니다. 하지만 추리에 데스이터를 개입시키는 것은 가능합니다. 모든 추리 및 조사는 캐입으로 진행되니까요.)

- A의 지인이라는 설정으로, A에게 직접적으로 부탁을 받아 의뢰를 받으러 왔다는 설정 또한 가능합니다.

- 키퍼의 캐릭터이자 NPC인 라그렛의 부탁으로 의뢰를 받으러 왔다는 설정도 가능합니다. 라그렛은 본 시나리오 설정상 A의 지인이자 시나리오 시작 전 사망한 NPC B(죽은 극작가)의 지인이며, A에게 의뢰를 받은 사람 중 한 명입니다.

동기는 위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다른 동기를 설정해주셔도 개연성만 충분하다면 뭐든 가능합니다.


* 여러분들의 캐릭터는 HP 0이 되어도 사망하지 않고 기절 상태로 판정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는 것/깨어나게 만드는 것은 가능하나 그 캐릭터는 그 날의 조사를 더이상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캐릭터와의 대화는 가능합니다.) SAN 0으로 인한 로스트는 사망으로 판정합니다만, 모두를 마법사로 설정한 만큼 어느 정도 크리피한 것에는 면역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크툴루 신화 외의 일반적인 상황, 즉 시체를 보거나 하는 상황에서의 SAN치 감소는 하향조정 했습니다. 시체 목격에 있어서 오러 캐릭터의 경우는 SAN치 감소를 아예 없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오러가 시체 보고 멘탈 깨지면 웃기잖아요...?) 키퍼는 SAN 0으로 인한 로스트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또한 분기에 따른 엔딩으로 캐릭터가 사망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시나리오의 원본에는 인류 끔살 엔딩이라는 이름의 배드엔딩이 있었고 이로 인해 전원 사망의 요소가 있었으나, 본 키퍼가 개변해 진행할 시나리오에는 사고친 본인만(^^) 전체 엔딩과 동시에 특별 사망 엔딩을 맞게 될 예정입니다. 특별 사망 엔딩 루트로 들어가실 때에는 메타적인 경고(불길한 예감이 든다 등)나 NPC 라그렛의 경고가 들어갈 예정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캐입 때문에 강행하시는 경우는 제지하지 않습니다.


* 키퍼에게 보내주셔야 할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 메일 kqr2669@naver.com으로 보내주세요!

1. 시나리오에서 사용하실 캐릭터와 캐릭터의 참여 동기(그냥 대충 정해주셔도 됩니다 개연성 부여를 위해 설정하는 것 뿐이니까요)

2. 특성치 및 스킬 공지를 참고하셔서 배분해주신 캐릭터의 특성치와 스킬( http://aseuami.tistory.com/147 참고해주세요!)

3. 사용하실 캐릭터 두상(대충 잘라서 보내주셔도 ㅇㅋ합니다 기존에 그려놓았던 것 재활용도 ㅇㅋ합니다)


* 기타 이 공지에서 빼먹거나 당일에 안내해드릴 사항은 당일 진행 직전에 공지해드리겠습니다! 다들 >https://roll20.net/< 가입 부탁드립니다~

특성치, 스킬 공지

<특성치>


특성치(STR, CON, SIZ 등등)의 최소는 8, 최대는 18입니다.

본래 다이스를 굴려서 결정해야 하지만 이미 설정이 있는 캐릭터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탐사자분들이 특성치를 배분해주시는 쪽으로 결정했습니다. (락이 SIZ 다이스 굴렸는데 8 나오고 이러면 웃기잖아요 그쵸?)

특성치의 총량은 각 캐릭터들의 설정을 위해 정해두지 않는 쪽으로 하였고, 최소 8 최대 18만 지켜서 배분해주시면 됩니다. 아래는 특성치에 대한 자세한 설명입니다! 예시로 제시해드린 기준의 경우에는 일본 TRPG 사이트에 있는 예시를 번역해주신 것/크툴루 TRPG 룰북에 나와있는 것들을 간략하게 정리해놓은 것입니다. 참고해서 배분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STR(힘, 근력) : 힘의 세기

8~9 약함

10~11 평균

12~13 건강

14~15 강함

16~17 역도 선수급

18 (못들 수 있는 게 있을까?)



CON(체력, 건강) : 조사원의 건강, 활력, 생명력, 지구력

HP와 연관이 있음.



SIZ(크기) : 키, 몸무게 등 체격의 크기

HP와 연관이 있음.

평균치인 13 기준 170cm 정도.

본 시나리오 한정 14 - 175cm, 15 - 180cm, 16 - 185cm... 이런 식으로 배분해주시면 됩니다.



INT(지능) : 두뇌회전의 빠름, 즉 지성. 얼마나 빨리 배우고, 기억하고, 해석할 수 있는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얼마나 잘 인식할 수 있는지. EDU와는 다름. (EDU는 높으나 INT가 낮은 경우는 알고 있는 지식은 많으나 그 활용법이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고 EDU가 낮으나 INT 가 높은 경우는 지적으로 매우 날카롭지만 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


INT x 5 = 이해력(어떤 상황을 명백하게 해석해내는 예감이나 능력)


8 단순한 바보

18 평범함을 벗어난 지성



POW(의지력) : 조사원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뜻함.

멘탈의 약함/강함이라고 이해해주시면 편할 것 같습니다.


POW x 5 = SAN치(정상도, 크툴루 TRPG에만 있는 고유한 특성으로 간단하게 멘탈도라고 이해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캐릭터는 미쳐갑니다.)

POW x 5 = 행운(적절한 시간에 맞춰 적절한 장소에 있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비상사태일 때 자주 사용되며, 수호자가 조사원들에게좀 더 높은 수치의 성공률을 바랄 때 자주 이용됩니다.)



DEX(민첩) : 빠르고 날렵하며 육체적으로 유연하다. 손재주에도 포함.


DEX x 2 = 회피


8~9 사고를 일으키기 쉬운 사람

10~11 평범한 인간

12~13 날렵한 인간

14~15 박쥐

16~17 곡예사

18 요괴 수준이라고 나와있습니다(ㅋㅋ)



APP(외모) : 용모, 외견의 아름다움.

높을수록 NPC가 우호적으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8~9 미묘

10~12 평범

13~15 꽤 인기있다.

16~17 스카우트 할 만한 레벨

18 누구라도 돌아볼 만한 미인



EDU(교육) : 지식과 교육 수준, 상식


EDU x 5 = 지식(기억 속에 특정한 지식이 남아있는지, 혹은 조사원 그 지식이 필요한 상황에 대비해 공부해뒀는지를 확률로 나타낸 것), EDU x 20 = 스킬 포인트

12 : 고졸자 수준의 학력(=호그와트를 졸업했다면 기본적으로 12는 주도록 합시다! 성적이 거지같았다면 자유롭게 빼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대학 교육을 받은 햇수에 따라 1씩 추가됩니다. 따라서 대졸자의 경우 EDU수치는 16이 됩니다. EDU가 16보다 높을 경우 대학원이나 대학원에 준하는 교육기관을 졸업한 석․박사 학위보유자임을 나타냅니다.(=캐릭터의 직업에 따라 자유롭게 배분해주시면 됩니다. 오러들은 16 이상 줘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그냥 참고일 뿐 자유롭게 배분해주세요!)



-


HP : 체력. 0이 되면 기절 상태가 됩니다. 응급치료를 사용해서 일으키는 건 가능하지만, 그 날의 조사는 불가능합니다.


(STR+SIZ)/2의 수치가 HP의 총량입니다.



<스킬>


스킬 포인트는 위에 나와있듯이 배분해주신 EDU 포인트에 x 20을 해주신 것이 최대 스킬 포인트입니다. 굳이 다 배분해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배분 가능한 스킬은 아래와 같습니다. 캐릭터 설정에 맞게 8개만 배분해주세요! 갯수 또한 캐릭터 설정에 따라 더 적게 배분해주셔도 괜찮습니다. 만약 캐릭터 설정 때문에 8개보다 더 많게 배분해주셔야 하는 경우에는 제게 따로 멘션을 보내주세요!

기본적으로 적혀있는 수치는 기본 수치입니다. 포인트를 배분해주지 않으셔도 저 수치로 다이스를 굴리실 수 있습니다. 만약 포인트가 80이라면 100면체 주사위를 굴려서 80 이하가 나오면 성공, 80보다 높으면 실패로 판정하는 식입니다. (성공률이라고 이해하시면 편할 것 같습니다.) 최대 성공률은 90입니다.

주의하실 점은 배분하신 스킬이 메인으로는 쓰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아주 잠깐 사용되거나, 상황의 변화에 따라 아예 쓰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주 쓰일 것이라 생각되는, 키퍼 추천 스킬은 굵게 표시 해놨습니다만 배분해주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사용해야할 때 캐릭터들에게 스킬이 없다면 키퍼의 캐릭터가 주사위를 굴려서 판정을 대신 해드립니다. 단, 관찰(탐지)는 필수적으로 분배해주세요!


예술(문학) - 5%

응급치료 - 30% (에피스키 등의 주문으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1D3의 체력 회복, 기절한 캐릭터에게 사용하면 성공 시 즉시 깨어납니다.

숨기 - 10%

듣기 - 25%

자물쇠 다루기(열쇠공) - 1% (알로호모라로 사용합니다)

의학 - 5% (큰 상처의 치료가 가능합니다. 그 날의 조사가 끝난 후에만 사용 가능합니다.)

언어(독일어) - 1%

설득 - 15%

말주변 - 5% (짧은 시간 안에 상대가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정신 분석 - 1% (광기 상태에 빠진 캐릭터를 진정시키는 게 가능합니다.)

심리학 - 5% (레질리먼시로 생각해주세요.)

잠행 - 25% (들키지 않고 조용히 움직일 수 있는 기술입니다.)

관찰(탐지) - 25%

신용 - 15%(조사원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얼마나 믿음을 사고 있는 지를 나타냅니다.)



전투 시에는 커뮤 전투처럼 스투페파이, 디핀도, 봄바르다 등등 공격 주문을 사용하게 됩니다. 각 주문의 성공률은 편의상 키퍼가 임의로 배분합니다. 오러 캐릭터들의 경우에는 공격 주문 성공률에 가산점을 어느 정도 부여하겠지만, 사실 전투가 주로 되는 시나리오는 아닙니다.

뉘폴레르 <꿈의 행방> 공지



<공지>


* 본 키퍼는 TRPG 초심자입니다. 때문에 다소 흐지부지하게 넘어가거나, 야매 룰로 빠르게 진행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애드리브로 진행해야 할 경우에도 다소 버벅거릴 수 있으니, 이 또한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 본 시나리오는 탐사 중심의 반 오픈형 시나리오입니다. 플레이어가 주요 탐사지역 외부에서 NPC를 탐문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시나리오의 중심은 주요 탐사지역이며 그곳의 탐사 진척도에 따라 시나리오가 진행됩니다. 시나리오 전체의 제한시간과는 별도로, 주된 탐사지역의 일일 조사시간에도 제한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본 시나리오의 원본, 디라스티트 님의 <꿈의 행방>의 배경은 현대 대한민국입니다. 단, 이번에 진행하게 될 <꿈의 행방>의 배경은 1978년 11월(뉘폴레르 성장후 러닝 시점으로부터 약 2년 전) 영국입니다. 캐릭터들은 오피셜 설정과 마찬가지로 마법사이며, 오피셜 설정을 그대로 유지해주셔도 무방하고 조금의 변형을 해주셔도 무방합니다. 어차피 시나리오의 진행 자체는 AU니까요! 현대 대한민국 머글세계에서 1978년 영국 마법세계로 배경을 각색한 만큼, 어느 정도의 고증 무시나 설정 파괴(배경적 설정-마법세계+크툴루 신화-입니다. 캐릭터 설정이 아닙니다!)가 있을 수 있음을 알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시나리오에는 많은 NPC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 단 한 명의 NPC가 여러분과 동행하게 됩니다. 나머지는 여러분이 탐문 조사를 진행해주실 뿐, 모브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과 동행하게 될 NPC는 키퍼의 뉘폴레르 캐릭터 라그렛 W. 블랙로즈입니다. 조사에 필요한 기능을 탐사자들이 가지고 있지 않거나 너무 낮을 경우, 잦은 실패가 반복될 경우(...)에만 조사에 참여합니다. 이외에는 동행 상태로, 시나리오에 큰 영향을 끼칠 법한 행동이나 무리한 행동, 불가능한 행동 등에 언어적(사실 키퍼도 캐입을 해봐야 압니다 물리적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제지를 가합니다. 당연히 NPC의 말을 꼭 들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메타적으로 부여하는 힌트 내지 충고를 줄이고 캐릭터의 극단적인 행동(...)을 개연성 있게 최소화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일 뿐입니다.


* 참가 가능 캐릭터는 탐사자 분들의 기존 캐릭터 중 1978년에 활동할 수 있는 캐릭터라면 모두 가능합니다만, 가급적 대부분의 인원들(캐릭터 말고 다른 탐사자분들)이 알고 있는 캐릭터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시나리오는 NPC A(극단장)가 캐릭터들에게 한 의뢰를 부탁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즉 의뢰를 수행하러 올 수 있는 동기가 있는 캐릭터가 요구됩니다.

- A는 마법부(오러 사무국)에 의뢰 수행을 위한 인력을 요청했습니다. 미스테리한 사건이 얽혀있는 만큼 데스이터의 개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이는 이 루트를 통해 A의 의뢰를 받으러 온 오러 캐릭터 및 마법부 캐릭터들만 알고 있는 사항이며, 당연히 사건에 얽혀있는 것은 데스이터가 아닌 크툴루 신화이기에 데스이터가 개입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일종의 더미 정보입니다. 하지만 추리에 데스이터를 개입시키는 것은 가능합니다. 모든 추리 및 조사는 캐입으로 진행되니까요.)

- A의 지인이라는 설정으로, A에게 직접적으로 부탁을 받아 의뢰를 받으러 왔다는 설정 또한 가능합니다.

- 키퍼의 캐릭터이자 NPC인 라그렛의 부탁으로 의뢰를 받으러 왔다는 설정도 가능합니다. 라그렛은 본 시나리오 설정상 A의 지인이자 시나리오 시작 전 사망한 NPC B(죽은 극작가)의 지인이며, A에게 의뢰를 받은 사람 중 한 명입니다.


* 원활한 탐사를 위한 추천 기능은 관찰력, 언어(독일어), 예술(문학), 설득이나 심리학(등의 대인 관계 기능) 입니다. 시나리오 개변 이후 추가될 수 있습니다. 탐사자가 여럿인 만큼 관찰력을 제외하고는(당연히 관찰력은 모두에게 요합니다.) 모두가 저 기능을 소유하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n명이 다같이 주사위를 굴릴 때의 시간 지연을 막고 모든 캐릭터들에게 특정한 역할을 부여해주기 위해 1차적으로 추천 기능을 개변하고 추가했습니다. 저 중 하나에만 특화되어있는 캐릭터, 정말로 환영합니다. 키퍼는 독일어 특화 캐릭터+문학 지식 특화 캐릭터+대인 관계 기능 캐릭터(설득, 입털기 다 가능합니다.) 조합으로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캐릭터 저격 아닙니다 편하게 데리고 와주세요<<


* 여러분들의 캐릭터는 HP 0이 되어도 사망하지 않고 기절 상태로 판정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는 것/깨어나게 만드는 것은 가능하나 그 캐릭터는 그 날의 조사를 더이상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캐릭터와의 대화는 가능합니다.) SAN 0으로 인한 로스트는 사망으로 판정합니다만, 모두를 마법사로 설정한 만큼 어느 정도 크리피한 것에는 면역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시체를 보거나 하는 크툴루 신화 외의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SAN치 감소는 하향조정 했습니다. 시체 목격에 있어서 오러 캐릭터의 경우는 SAN치 감소를 아예 없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오러가 시체 보고 멘탈 깨지면 웃기잖아요...?) 키퍼는 SAN 0으로 인한 로스트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또한 분기에 따른 엔딩으로 캐릭터가 사망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시나리오의 원본에는 인류 끔살 엔딩이라는 이름의 배드엔딩이 있었고 이로 인해 전원 사망의 요소가 있었으나, 본 키퍼가 개변해 진행할 시나리오에는 사고친 본인만(^^) 전체 엔딩과 동시에 특별 사망 엔딩을 맞게 될 예정입니다. 특별 사망 엔딩 루트로 들어가실 때에는 메타적인 경고(불길한 예감이 든다 등)나 NPC 라그렛의 경고가 들어갈 예정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캐입 때문에 강행하시는 경우는 제지하지 않습니다.


* 꽤 긴 시나리오입니다. 얼굴을 맞대고 하는 TRPG 기준 4~6시간이 소요됐다고 합니다. 다들 아실 법한 <네게 헬리오트로프를>이 TRPG 기준 2~3시간이 소요되는 시나리오였습니다. 즉, 헬트프 배의 시간이 걸리는 시나리오입니다. (제가 진행했던 바 헬트프가 4~5시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진행이 너무 길어질 경우 중간에 끊고, 조금의 시간차를 둔 후에 진행할 예정입니다. 예상 진행 날짜는 4월 9일 일요일 새벽 + (다들 한 숨 주무시고 일어나신 후의) 당일 저녁입니다. 단, 참여하는 탐사자들의 일정 조율 후 진행 날짜 및 세부적인 시간은 바뀔 수도 있습니다. 이틀에 걸쳐서, 혹은 일주일에 걸쳐서(...)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 시나리오 원본의 추천 진행 인원은 2~4명이었으나, 진행할 시나리오에서는 특별히 인원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단, 너무 많아질 경우 오브젝트에 대한 조사 인원을 선착순으로 받는다거나 탐사자 분들께 조사 구역을 나눠서 해달라는 키퍼의 현실적인 이유로 인한 부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조사와 시나리오 진행 이외에도 캐릭터들이 자유롭게 캐입으로 대화하거나 놀거나 투닥거리거나 싸우거나(!!) 하는 우리애들 꽁냥꽁냥을 키퍼는 보고 싶습니다. 꼭 조사에만 치중해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 본 공지는 모집을 위한 1차 공지입니다. 인원이 확정되면 그분들께만 2차 공지가 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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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렛 블랙로즈] 31일간의 기록



with 지크프리트 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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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발만 앞으로. …아니, 오른발 말고 왼발."
  "이렇게요?"

  슬 눈치를 보고 굳이 묻기까지 하는 게 퍽 귀여워 틀렸다는 건 말하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라그렛은 잡은 손을 가볍게 당겼다. 지크프리트가 가까워진다. 그리하여 둘 사이의 간격은 한 발자국 남짓. 딱 그정도만을 남긴 채로, 이제 청년이 되어가는 소년은 제 후배에게만 보여주던 예의 그 미소 그대로 빙긋 웃어보였다. 제 눈 앞에서 붉어진 볼을 숨기지 못하는 건, 15살. 딱 그 나이대 아이의 모습이었더랬다. 라그렛은 솔직한 사람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는 축에 속했다. 그것이 저가 친애하는 후배의 경우라면 더더욱 좋아할 수밖에 없다. 또 한 번 발이 엇갈리고, 스텝이 꼬인다. 오늘만 벌써 몇 번째인가. 흘끔 아래를 본 라그렛은 작게 키득거리며 잡은 손을 놓았다. 떨어진 손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최근들어 자그마한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사라지는 걸 아쉬워하게 됐다. 별로 좋은 현상은 아니라 생각한다. 허나 딱히 교정할 마음이 없음 또한 사실이다. 필요성은 느꼈으나, 글쎄. 정에 취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다. 어쩐지 조금 풀어져있고 싶기도 했다.

  "잠깐 쉴까."

  한 템포 늦게 뱉어진 말에 지크프리트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라그렛은 그대로 바로 뒤의 침대에 풀썩 누워버렸다. 남이 본다면 꽤 이상한 모양새가 아닐까 싶다. 야밤에 좁은 기숙사 방에서 남자 단 둘이 춤이라니. 며칠 째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한 방에서 이어지고 있는 풍경이었다. 라그렛은 느리게 눈을 감았다. 지크프리트가 옆에 앉는 게 느껴졌다. 옆을 더듬거리니 작고 조금 거친 듯한 손이 뻗은 제 손 끝에 닿았다. 체온이 제법 서늘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온기가 존재한다. 라그렛은 그 손을 그대로 감싸 잡아 제 가슴팍 위에 올렸다. 느껴지는 건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일까, 아니면 멀지 않은 손목에서 느낄 수 있을 지크프리트의 심장이 뛰는 소리일까. 알 수는 없었으나 깊게 생각하지도 않기로 했다. 그대로 고르게 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이대로 잠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속으로 날짜를 세었다. 삼 주와 한달 남짓. 그 정도 남았다. 긴 듯 빠듯하게만 느껴지는 시간이라 잘 수가 없었다. 전자와 후자 어느 쪽 때문이라도 말이다. 내 파트너는 완벽해야 한다고 먼저 말을 꺼낸 건 라그렛이었다. 허나 사실 후자의 것은 전자의 것이 끝나고 준비해도 되는 건데, 그럼 일찍 준비하자며 부득부득 우긴 건 지크프리트 위버였다. 저를 위해 그런 것임을 바로 알았다. 그래서 결국 져줄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게 자꾸만 약해지고 만다. 미련이라 말할 수 있나. 미련이 생기는 건 꺼려지는 일이라 여겼는데, 막상 생겨버리고 때가 다가오니 별 생각이 없어졌다. 때가 가까워질수록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이유를 붙이면 그럴듯했다.
  문득 몸 위로 이불이 덮였다. 그제야 라그렛은 눈을 떴다. 저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선홍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1년 새에 생각이 많아진 눈이었다. 지크프리트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자는 줄 안 모양이었다. 혹여 깰까봐 제대로 눕혀주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하다가 이불이라도 덮어주자 했을 게 바로 상상되어 라그렛은 속으로 웃어버렸다. 이내 감싸 잡은 지크프리트의 손등을 몇 번 쓸어내리고, 손을 놓고, 그대로 올려 그의 볼을 쓰다듬었다. 젖살이 아직 덜 빠진 모양새 그대로 부드러웠다. 좋은 감촉이라서 저도 모르게 몇 번 주물거려버렸다. 열다섯은 한창 귀여울 나이다. 제게는 유독 더 그랬다. 사실 지크프리트라서 그렇다. 어쨌든 그러하니 한껏 귀여워 할 뿐이었다. "나 안 자." 뒤늦게 작게 툭 뱉으니 지크프리트는 여전히 라그렛을 보지 못하는 채로 고개만 끄덕였다. 라그렛은 몸을 일으켜 어정쩡하게 덮인 이불을 잡고 지크프리트의 어깨 위로 덮어주었다. 그리곤 이불로 감싸인 어깨를 제 팔로도 감싸안아 제 어깨에 기대게 했다.

  "……어쩐지 하루 종일 피곤해보였어요."
  "그런가. 난 멀쩡한데."

  사실 신경 쓸 게 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가르쳐 줄 게 늘면 해야할 일도 늘기 마련이었다. 아주 짧게나마 배운, 보통 여성들이 밟는 스텝. 리드를 받는 쪽. 빈말로라도 좋은 평을 내릴 수는 없는 실력이었기에 딱히 상대는 없이 남는 시간 마다 차근차근 기억을 되살려 홀로 밟아나갔다. 가르쳐줘야 할 것들을 되짚어가며 다시 공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든 일은 지크프리트 위버가 모르는 새에 이루어졌고, 그게 피로한 모습으로 보여진다고 해도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러나 라그렛은 부러 거짓말을 했다.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걱정시키는 건 싫었다. 그런 걱정이 이어지고 누적되면 그만 두자 말할 게 뻔한 아이다. 어디까지나 저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었다. 나중에 아쉬워할 바에는 지금 무리하는 게 나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라그렛 위스트 블랙로즈는 피곤을 잘 모르는 체질이었다. 몸에는 분명히 독이지만 효율로 따지면 상당한 득이라 여겼다. 진짜로 버겁지 않을 정도로만 조절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도, 어떻게든 되고 있었다.

  "춤 연습 마저 할까? 아니면 공부?"
  "어느 쪽이든 괜찮지만 연습 쪽이 더 좋아요."
  "시험이 3주 남은 건 알고?"

  중요한 시험인데. 짧게 덧붙였다.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된 1년 동안, 잠들기 직전 지루한 교과서를 읽어줘왔던 시간을 쪼개어 이렇게 쓰게 되었다. 졸업 프롬이 한 달 정도 남은 지금 당장은 이 정도로 충분할거라 판단했다. 라그렛은 제 스케쥴을 모두 지크프리트에게 맞췄고, 정규 수업을 제외하면 지크프리트는 대부분을 라그렛에게 배웠다. 수업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 배분은 라그렛의 재량이었고 그런 점은 편하다 생각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크프리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라그렛의 손을 잡고 약하게 당겼다. "공부를 할 바에야 다른 걸 하고 싶은 건 당연하죠." 늦은 대답. 그 뒤에 무슨 말을 숨겼을 지는 충분히 추측이 가능했다. 선배 말마따나 선배의 파트너는 완벽하죠, 따위의 말일까. 라그렛은 저를 당기는 지크프리트에게 순순히 끌려가주었다. 소년은 먼저 서툴게나마 스텝을 밟아온다. 고개를 숙여 제 발을 보며 꽤 열중하고 있다. 장난기가 생겨 일부러 꼬아버렸다. 허나 그것마저 제 실수라고 인식했는지 지크프리트는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라그렛은 꼬인 스텝을 풀고 천천히 다시금 맞춰나갔다. 리드를 해야하는 건 그 쪽인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잊은 채 지크프리트는 라그렛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었다. 지금 또한 그러하니 어렵진 않았다. 하나, 둘, 셋. 박자를 맞추는 듯한 작은 목소리가 속삭여졌다.

  ─내 졸업 프롬, 네가 내 파트너를 해야 해.

  일정이 확정되었을 무렵 뱉었던 말이었다. 저녁 시간의 연회장. 마치 오늘 음식은 별로라는 투로 평이하게 한 말. 그걸 듣고 목이 막혀 물을 찾던 지크프리트 위버가 아직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질 정도로 얼마 되지 않았다. 지크프리트는 몇 잔의 물을 삼키고 겨우 진정한 후에야 자기로도 괜찮냐 물어왔다. …글쎄. 졸업 프롬이 있다는 걸 알지도 못하다가 일정이 나와서야 그런 걸 하는구나 했고, 파트너를 데려와도 좋다는 말에 바로 떠오른 건 지크프리트 위버였다. 졸업 프롬이라 하면 함께 졸업할 동급생을 파트너로 삼는 게 보통이겠으나 그런 걸 신경 쓰진 않았다. 그냥, 다른 사람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네겐 거부권이 없다는 투로 말하긴 했으나 사실 조금이라도 거부감을 보이면 바로 농담이라 하며 철회하려 했다. 파트너가 필수는 아니었으므로. 사실 프롬 같은 거에 관심도 없었다. 제게는 사실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던 거다. 물론 그런 걸 알진 못했겠지만, 지크프리트는 어째선지 싫은 티 하나 내질 않았다. 부담스러워할 줄 알았다.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말을 뱉은 그때에도 너무 막무가내에 제멋대로였다 생각할 정도였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어느 정도의 놀라움과 그 뒤에 숨겨둔 기쁨을 감추고 당시에는 그저 웃음으로 응수했으나, 기숙사로 돌아와 스터디를 하고 있을 때. 문득 생각이 나 깃펜을 쥐고 있는 지크프리트의 손을 맞잡고 그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췄더랬다. 해줄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늦은 대답이었다. 많은 말을 생략했으나 그정도로도 충분했으리라.

  라그렛 위스트 블랙로즈의 7학년은 지나칠 정도로 즉흥적이었다. 7학년의 그는 항상 기분이 좋아보였고, 또, 가끔 보면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분위기를 몸에 둘렀다. 본인도 자각하고 있는 그것을 가장 가까운 옆의 지크프리트 위버는 느껴버린 걸지도 모른다.

  "아."

  발을 밟아버렸다. 이번에는 정말로 라그렛의 실수였다. 집중력이 흐트러진 모양이었다. 짧은 탄식을 내뱉은 건 지크프리트였고, 그제야 그는 고개를 들어 라그렛을 바라보았다. 라그렛은 묘하게 억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도 실수할 때 쯤은 있어. 퉁명스럽게 뱉어진 말에 지크프리트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구태여 어려운 쪽을 가르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쉬운 쪽을 가르치는 게 편했다. 그저 쉬운 거랑 어려운 것 중 택하라고 하니 지크프리트가 어려운 걸 선택했을 뿐이었다. 오기일까. 라그렛은 고개를 기울였으나 딱히 말리진 않았다. 어차피 가르치고 싶었던 건 어려운 쪽이니 상관 없었다. 지크프리트 위버는 제게 오러가 되고 싶다 했다. 그렇다면 익혀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다. 마법 세계는 허례허식에 치중하는 구닥다리였다. 어쨌든 마법부 소속인 이상 원하지 않아도 사교장에 발을 들일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우습게 보이지 않으려면 최소한은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이었다. 저가 가르친 아이가 저가 모르는 곳에서 비웃음을 사는 건 기분 나쁜 일이었기에. 그래서 보통 리드하는 쪽에 속하는 스텝을 가르치게 된 거다. 부득이하게 리드당하는 쪽이 됐지만 뜻밖에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아직 지크프리트가 자꾸만 자신이 리드해야한다는 걸 잊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눈 앞의 아이에게만은 한 발 물러서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라그렛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어쨌든 제 실수는 자존심이 상한다. 한 번만 더 맞춰보고 공부 할까. 응, 좋아요. 짧은 대화가 오갔다.

  문득,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생각 났다.


2.


  지크프리트 위버는 퍽 제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오늘은 제 침대에서 자라 하면 바로 꼬물거리며 이불 안으로 들어오곤 할 정도로. 딱히 싫지도 않은 모양이라 안고 자는 것도 여러번. 닿아있는 온기도, 품 안의 존재감도, 그리 짙지 않은 체향도, 문득문득 느껴지는 옅은 숨도, 시선을 내리면 보이는 금빛 마저도. 이제는 모든 것에 익숙해지고 말았다. 라그렛은 곤히 잠들어있는 지크프리트의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이다. 정확히는 잠을 청하지 않고 있는 새벽이었다. 지크프리트가 완전히 잠든 걸 확인하고 라그렛은 슬며시 그를 놓아둔 채 침대에서 일어났다. 여기저기 뒤적거리며 작년에 쓰던 6학년 마법약 교과서를 찾는 데에만해도 제법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직 먼지가 쌓이진 않았지만 어쩐지 낡은 티가 난다. 이런 걸 물려줘도 되나 싶지만 이내 고민을 치워버리고 교과서를 책상 위에 펼쳤다. 동시에 자리에 앉아 깃펜을 쥐었다. 수려한 글씨체로 빈 맨 앞 장에 Dear, 라 썼다가 지워버렸다. 잡다한 것을 쓰는 건 나중에 하기로 했다. 빠르게 몇 장을 넘겼다. 그제야 내용들과 제 필기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생각하다가 그 옆에 스터디를 하던 제 말투 그대로 첨언을 달기 시작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딱히 어렵지도 않았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한참 이어졌다. 지루한 이론들만 쓰인 1장이 끝나고 나서야 라그렛은 교과서를 덮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주고 싶은 일은 동의어였다. 제 졸업까지 앞으로 31일. 제법 빠듯했으나 자신은 있었다.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졸업 선물이자…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만드는 물건이다. 앞으로는 해줄 수 없을 일을 대신 하기 위해서. 깃펜을 놓는 데 어쩐지 미련이 생겼다. 정말로 이별을 준비하는 것 같다. 라그렛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먹먹함이 한꺼번에 밀려오기 시작한다.

  "선배?"

  잠이 덜 깬 목소리가 저를 찾았다. 라그렛은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침대로 돌아갔다. 눈을 부비며 상체만 일으킨 지크프리트를 다시 품에 안으며 눕혔다. 제 옷깃을 꽉 잡아오는 손이 느껴졌다. 쉬이, 하고 귓가에서 소리를 내며 등을 쓸어주었다. 반도 채 뜨이지 않은 선홍색 눈동자는 서서히 다시금 눈꺼풀 뒤로 잠겨들어갔다. 색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라그렛은 괜히 지크프리트를 더 꼬옥 끌어안았다. ……헤어지고 싶지 않다. 놓아두고 떠나고 싶지 않다. 나의…. 뒷말은 바로 생각났으나 구태여 다른 단어를 붙인다. 나의 미련. 라그렛은 눈을 감았다. 그대로 잠을 청했다. 아침이 되면 이 먹먹함을 잊을 수 있기를 빌었다.


3.


  그리하여 일주일 넘게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하자면, 저가 졸업 후에는 스터디를 하지 못하게 될테니 그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한 일이라 말할 수 있었다. 사라질 것만 같은 분위기는 부러 두른 것이었다. 졸업 후에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모든 연락을 끊어버리기로 했다. 꽤 오래 전부터 생각한 일이었다. 이유를 하나하나 말하기엔 너무 구구절절했다. 간단히 하자면 정리였고, 결심이었다. 모든 것에 대해 떳떳해지고 나서 돌아오고자. 멋대로 사라졌던 자신을 누가 받아줄까 싶지만은. 남은 이는 배신감을 느낄까. 아니면, 다른 종류의 것을 느낄까. 오래 생각하면 뒷목이 뻐근해지곤 한다. 싫은 감각이었다. 그때 일은 그때가서 생각하자. 머릿속을 뿌옇게 흐려버린 생각을 지워냈다.
  말로 하던 스터디를 글로 써 옮겨놓는다. 6학년 분량을 대충 끝내놓고 7학년으로 넘어가니 제법 속도가 빨라졌다. 아무래도 저가 배운지 얼마 안 된 것들이라 그런걸까. 이젠 필요 없는 거라고 건성건성 들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그게 티가 나긴 하는지 드문드문 막히곤 했다. 남의 손을 빌리긴 싫어서, 머리를 숙이고 이 교수님 저 교수님 찾아가 그 부분의 내용을 다시 들어 익힌 후에야 교과서에 필기를 남기고 첨언을 달곤 했다. 제대로 들을 걸 그랬지. 시간 낭비를 하는 것 같아서 같아서 뒤늦게 조금 후회가 되고 만다. 이제와서는 늦은 일이지만은.
  속도가 빨라진 이유를 꼽자면 스터디 횟수를 줄인 탓도 있을 것이다. 안 그래도 하고 있는 시간 낭비를 더 하지는 않기 위해서였다. 지크프리트가 O.W.L.s를 볼 날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기에,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읊는 건 관둔 거다. 나란히 앉아 머리를 맞대고 이론을 가르치고 배움받던 시간들은 적당히 갈무리하고, 실기의 비율이 높아졌다. 덕분에 마법약 재료를 구해온답시고 호그와트 밖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녀, 몸이며 얼굴에 붙이고 다니는 반창고의 갯수가 늘게 된 건 당연지사였다. 지크프리트에게는 가다가 넘어졌다고 대충 얼버무렸지만 말이다.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어영부영 넘어갈 수는 있었다.

  최대한 노력은 하고 있으나 저가 해줄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음을 안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아직 학생 신분이었다. 알고 있는데도, 종종 난관에 부딪히거나 끊겨버린 길을 볼 때면 어쩐지 비참해지곤 했다.

  "뭐해요?"

  불쑥 옆에서 튀어나온 지크프리트가 말을 붙였다. 라그렛은 화들짝 놀랐으나 애써 티는 내지 않고 교과서를 덮었다. 그대로 책상에 턱을 괴고 반대쪽 손으로 지크프리트의 머리칼을 헤짚어버렸다. 으엑, 하는 소리가 들리자 라그렛은 웃음 소리를 흘렸다.

  "선배 하는 걸 몰래 훔쳐보려고 하면 못 써."
  "훔쳐보려고 한 거 아닌데……. 공부하고 있었어요?"
  "응. 나도 시험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7학년 교과서를 작업하고 있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본의아니게 공부를 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제 시험을 위한 공부는 아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라그렛의 말에 지크프리트는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머쓱하게 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됐다며 공부 열심히 하라 말하는 지크프리트를 보며 라그렛은 길게 기지개를 켰다. 시선은 지크프리트의 옆구리에 끼워진 5학년 마법약 교과서에 고정되어 있었다. 찾아온 이유야 뻔하지 않나. 휙 가버리려는 지크프리트의 팔을 잡아 멈춰 세웠다. "이번엔 뭘 모르겠는데?" 먼저 말을 꺼내니 그제야 지크프리트는 책상 위에 제 교과서를 펴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라그렛은 그런 그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학년 초에만 해도 솔직히 작심삼일로 끝날 줄 알았다. 어느 정도의 결심이길래 이렇게 열심히일까. 문득 지크프리트가 저는 사실 혼혈이라 고백해왔던 지난 날이 떠오른다. 지금의 자신에게는 어떻든 상관 없기에 그렇냐 말하고 넘겨버렸으나, 속에서는 글쎄. 그 고백과 변화를 당연히 연결지어버렸다. 머릿속으로 소설을 쓰는 거에 가까운 경우의 수가는 꽤 많이 그려졌다. 한참을 더 저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라그렛은 속으로 고개를 휘휘 저어버렸다. 생각이 조금 길어진 모양인지 지크프리트는 페이지를 찾아놓고 물끄럼 라그렛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 번 눈을 깜빡이다가, 라그렛은 문득 입을 열었다.

  "…스터디 마지막, 언제가 좋을까?"

  저를 향하는 선홍색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라그렛은 애써 그것을 외면했다.

  "슬슬 끝내야지. 난 곧 졸업이잖아."
  "라그 선배."

  말을 자르고 들어오는 목소리가 제법 날카롭다. 지적은 하지 않았으나, 말 한 본인도 자각은 있을 터다. 라그렛은 부러 고개를 숙여 지크프리트가 펼쳐놓은 페이지를 천천히 눈으로 읽기 시작했다. 시선이 엇갈린다. 어쩌면, 마음도. 엇갈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아쉽지 않았다면 제 미련이라 표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선배가 졸업하는 게 싫어요."

  무심코 손이 뻗어질 뻔 했다. 부디 제 빈자리가 크지 않기만을 빌었건만, 결국 클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문득 본 눈빛에서 서늘함이 느껴졌다. 아니, 서늘한 게 아니다. 조금 달랐다. 슬퍼하고 있나. 라그렛은 한숨을 삼켰다. 제 눈빛도 똑같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졸업하기 싫어. 내게도 네 빈자리가 클거야. 내뱉지 못하는 말 또한 몇 번이고 삼켰다. 다짐은 흐려지지 않는다. 번복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미련이 더 커지기 전에 정을 떼어놓아야 할텐데. 이상하게 눈 앞의 아이에게만은 그게 힘들었다. 이쯤되면 무리라 보아도 되겠지. 라그렛은 문득 슬 웃고는 결국 손을 뻗고야 말았다. 팔이 잡히자 지크프리트는 흠칫했으나 딱히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대로 잡아당기나 싶더니, 라그렛은 지크프리트의 허리를 한 손으로 감싸 억지로 제 무릎 위에 앉혀버렸다. 이내 작은 웃음 소리. 뒤에서 끌어안은 모양새 그대로 라그렛은 제 손에 쥐고 있던 깃펜을 지크프리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곤 지크프리트의 어깨에 제 턱을 걸쳤다. 이내 굳게 다물려 있던 입술에서 나온 말은 대답이나 책망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설명해줄게."

  그저, 일상일 뿐이었다.


4.


  라그렛은 괜히 지크프리트의 발을 꾸욱 밟아버렸다. 그제야 어딘가 멍했던 눈동자가 빛을 되찾았다. 요근래 이런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잠시 말 없이 지크프리트를 빤히 바라보던 라그렛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어진 시간은 3주와 한달로, 준비해야 하는 것은 그렇게 두 개. 시간이 흐르고 흘러 한달 중의 반이 벌써 지나갔다. 잠시 생각해보면 지친 건 지크프리트 뿐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쉬지않고 숨가쁘게 달려온 게 사실이었으므로. 라그렛은 잡고 있는 손에 괜히 힘을 꽉 주었다. 딱히 그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안하다는 눈치로 저를 보고 있는 선홍색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완벽주의자를 상대하는 건 제법 피곤한 일이기 마련이다. 바로 그 완벽주의자가 라그렛 블랙로즈라는 이름으로 지크프리트 위버의 옆에 딱 붙어있으니. 그러니 그 분의 피로함도 같이 느끼고 있을 터다. 물론 그것에 딱히 미안함을 느끼거나 더 배려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기실, 라그렛 위스트 블랙로즈 치고는 이미 많이 봐주고 있는 상태였다. 상대가 지크프리트 위버여서일까. 그것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릴 수 없었으나.
  그래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사실 2주 전에 비해 확실히 나아진 실력이었다. 여전히 서툰 건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어디 가서 최악의 평을 듣지는 않을 정도일까. 문득 처음으로 제 허리에 팔을 두르게 하고, 반대쪽 손은 평생 놓지 않을 것 마냥 꼬옥 맞잡았던 날의 지크프리트가 겹쳐졌다. 라그렛은 슬 입가에 미소를 걸쳤다. 슬슬 한 번쯤 쉬어갈 때가 됐다. 앞으로도 종종 쉴 시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공부든 준비든 소홀리 한 편은 아니었고, 본래 때가 다가오면 다가올 수록 더 쉬어가야 하는 법이라 여겼다. 그러니 오늘은 여기서 끝으로. 라그렛은 또 발이 밟힐까봐 바짝 긴장한 채 스텝을 밟아나가고 있는 지크프리트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나, 속으로 셈과 동시에 눈을 깜빡였다. 둘, 어깨를 잡고 있는 손을 움직여 지크프리트의 허리에 감았다. 그리고 셋. 스텝이 끝남과 동시에 그대로 당겨 제 품에 안았다. 이렇게 끌어안을 때면 저보다 10cm 넘게 작다는 걸 새삼 다시 느끼곤 했다.

  "서, 선배?"
  "왜이렇게 조급하게 굴어."

  당황으로 물든 선홍빛을 마주하며 라그렛은 고개를 기울였다. 꼭 해야만 하는 일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자주 하는 실수가 있다. 쉬어가질 않는다는 것. 자신이 지치는 것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쉬지 않으면 지치는 건 당연한데도. 경험으로 깨닫게 하는 방법도 있었으나 굳이 지크프리트가 그런 식으로 교훈을 얻게 되는 건 별로 내키질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옆에 저가 있으니까. 라그렛 위스트 블랙로즈는 이미 한 번의 추락의 과정을 거친 소년이었고, 당연히 그게 어느 정도로 힘든지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추락이 제게 득을 주고 지금의 자신을 만든 계기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아픔은 그다지 느끼게 하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진심으로 친애하게 된 제 후배에게만은.

  "그치만 얼마 안 남았잖아요."
  "시험이? 아니면 프롬이?"

  대답을 못 하고 웅얼거리기만 하는 입술이 보인다. 라그렛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사실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었다. 어쨌든 시간적으로 촉박하다고는 해도 과할 정도로 조급해하는 게 눈에 보였으니까. 여전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지크프리트를 빤히 보던 라그렛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이내 라그렛은 여전히 잡고 있는 지크프리트의 손을 한층 더 세게 잡아 침대 쪽으로 끌고갔다. 또 한 번 다급한 목소리로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으나 라그렛은 가볍게 무시했다. 딱히 무슨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제법 억센 손길에 겁이라도 집어 먹은 건지. 라그렛은 속으로 어깨를 으쓱하고는 지크프리트의 침대에 그를 밀어 그대로 눕혀버렸다. 지크프리트는 여전히 아무 말도 못 하는 채로 입만 벙긋거리고 있었다.

  "뭐 할 말 있어?"
  "…시험이 얼마 안 남았어요."
  "그럼 춤 연습 같은 걸 할 때가 아니라 공부를 해야 할 때지."

  그리고 거짓말 하지 마. 가볍게 덧붙이곤 라그렛은 책상 위에 올려둔 마법약 교과서를 집어들었다. 조급해하는 건, 프롬에 대해서다. 어느 쪽이든 상관 없다고 했지만 그렇다는 걸 라그렛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물론 시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있긴 하겠지. 허나 시험이 끝나고 준비해도 되는 의상 이야기를 벌써부터 한다던지 하는 건 아무리봐도 조급해하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선배는 프롬 때 뭐 입을거예요? 하는 물음에 그때 가서 정할 거라 대답했다. 그럼 저는 뭘 입죠, 하는 풀죽은 말에도 똑같기 그때 가서 저가 정할 것이라 대꾸했다. 당장 어제의 대화였다. 라그렛은 엉거주춤하게 침대에 누워있는 지크프리트의 옆에 앉았다. 지크프리트는 느리게 상체만 일으켰다.

  "프롬 생각은 하지 마. 지금은 네 시험이 더 중요하니까."
  "어떻게 그래요. 선배의 마지막 프롬인데."

  묘한 데자뷰. 어느 날인가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라그렛은 대답 없이 들고온 마법약 교과서를 펼쳤다. 지크프리트는 지금의 자신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걸까. 춤을 가르치고 있긴 하지만 그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제 욕심 때문이었고, 그걸 받아주고 되려 재촉하고 있는 건 지크프리트 쪽이었다. 지크프리트에게 배울 의욕이 없다거나 그러고싶은 마음이 없어 보이면 바로 관둘 생각이었다. 꼭 필요한 게 아니니까. 프롬같은 거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고, 딱히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그대로의 지크프리트 위버로도 파트너로는 충분했다. 그래서 해줄 수 있는 건 너밖에 없다는 말을 굳이 한 거였는데. 말을 안 했기에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당연했지만.

  "…그리고 솔직히 지금 이 시험으로 미래가 완전히 결정되는 건 아니잖아요."
  "무슨 뜻이야?"
  "제일 중요한 시험은 선배가 곧 볼 시험이잖아요. 저한테도 그렇고요."
  "돌려 말하지 말고 제대로 말해."

  문득 밝은 금색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지크프리트는 입을 꾹 다물었다가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야 다시 말을 꺼냈다. 하면 안 되는 말을 하는 사람 마냥.

  "…망쳐도 선배가 가르쳐줄거잖아요."
  "지크."

  나직한 목소리가 지크프리트를 부르고. 한참이나 라그렛을 응시하던 선홍색 눈동자는 이내 그의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말을, 해야 할까. 앞으로는 가르칠 수 없을 거라고. 저는 떠날거라고. 그 말을 해야만 하는 걸까. 하지 못 한 이유는 간단했다. 구태여 미리 말 할 필요가 없어서. 말하고 나서 슬퍼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정말로 굳게 한 다짐임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거라 마음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아이가 가지 말라고 잡아버리면 잡혀버릴 것만 같아서. 그것에, 위안을 가져버릴 것 같아서. 저를 감당하기엔 지크프리트 위버는 아직 너무나도 작고 어리고 약한 아이라서……. 억지로 생각을 끊어낸다. 이 이상은 안 된다고 저를 억눌렀다. 이내 라그렛은 아까의 지크프리트처럼 한참이나 입술을 벙긋거리다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지크, 대답해."

  그 부름에 그제야 지크프리트는 겨우 라그렛과 시선을 맞췄다. 대답 대신이었다. 굳이 한 번 더 재촉하진 않았다. 문득 라그렛은 손을 뻗어 지크프리트의 눈가를 만지작거렸다. 눈이 떨리고 있다. 어째서일까.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술을 한 번 더 달싹이고 나서야 라그렛은 입을 열었다.

  "시험은 잘 볼거야. 망친다는 얘기는 하지도 마. 다른 사람도 아니라 내가 직접 널 가르쳤어. 5년이나."
  "……응. 알아요."
  "잘 할 수 있어. 시험도, 프롬도."

  느릿한 끄덕임에 라그렛은 작게 소리 내 웃었다. 말 할 수 없다. 때가 되면 이런 행동과 말의 이유들을 네가 다 알게 되겠지. 슬퍼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고? 저야말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이별을 이야기하면 제 마음이 아플 것이다. 쑤시고, 찢어지는 느낌을 느낄 것임을 안다. 그게 두려웠다. 그래서 말하지 못하는 거다. 어찌되었든 제 졸업 후에도, 저가 없더라도 지크프리트는 살아갈 것이고 많은 것을 배워나갈 것이다. 그러다보면 더 좋은 선생을 찾을 수도 있고, 그런 거다. 그렇게 되면 라그렛이라는 사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게 될 수도 있겠지. 바라지 않았으나 그걸 바랐다. 더 이상 제 마음 속에서 커지지 않았으면 했다. 똑같이, 두려워서였다. 감정의 무게라는 것이…. 짓눌려서, 숨이 막혀서 죽어버릴까봐. 더 나아가서 죽어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될 것만 같아. 친애하는 후배님. 하지 못 하는 말을 꾸역꾸역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집어넣었다.

  "그러니 오늘은 쉬자. 피곤하잖아. 그렇지?"
  "…알았어요. 그럴게요."

  착하다. 짤막한 대답을 끝으로 라그렛은 지크프리트의 상체를 꾹 눌러 눕혀버렸다. 저 또한 그 옆에 누웠다. "잠들기 전까지 옆에 있을게." 작은 중얼거림. 감기지 못 하는 선홍색 눈동자가 올곧게 라그렛을 향한다. 재울 생각인 듯 가슴팍을 천천히 두드리는 손 위에 제 손을 올려, 지크프리트는 자그마한 손으로 라그렛의 손등을 감쌌다. 이내 눈이 감기는 듯 싶더니 반 쯤 뜨인 채로 멈췄다. 아직은 감을 수 없다는 듯이.

  "잠든 후에는요?"
  "옆에 있을게."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지크프리트는 완전히 눈을 감았다. 벌써 눈치 챈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떠날 거라는 걸. 그래서 구태여 제 대답을 들으려 한 걸지도 모르지. 라그렛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껴안고 토닥여주는 것 대신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오늘은 평소처럼 품에 안고 자진 못 할거야. 또다시 꺼내지 못 하는 말을 속으로 웅얼거렸다. 앞으로 2주. 이제야 반. 그때까지 미련이 갈무리되리라는 확신을 여전히 할 수가 없었다.


  5.


  잠이 안 와요. 작은 목소리가 제법 무겁게 잠긴 공기중으로 흩어졌다. 라그렛은 한참 동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럴 만도 했다. 당장 내일이 시험이었다. 2년 전의 자신도 그러지 않았나. O.W.L.s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 사실 다를 것도 없는 시험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와는 다르게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라그렛은 가만히 지크프리트와 시선을 맞추며 그의 등을 토닥였다. 그때를 되돌아보자면, 이런 게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뒤늦게 했다. 자그마한 위안이라도 줄 수 있는 말이든, 행동이든. 라그렛은 지크프리트의 뒷머리를 꾹 눌러 제 품에 얼굴을 묻게 했다. 이내 지크프리트는 어리광을 부리듯 품에서 몇 번 얼굴을 부비다가 라그렛을 올려다보았다. 검은색 머리칼과 밝은 금색 눈 아래로 느리게 띄워지는 미소가 보였다. 뒷머리를 누르던 손은 이내 가만가만 금색 머리칼을 쓰다듬고,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선배는 왜 안 자요. 글쎄. 장난스러운 웃음 소리 후로 라그렛은 고개를 숙여 지크프리트의 귓가에 속삭였다.

  "괜찮아."

  때로는 말 한 마디로 충분할 때가 있다는 걸 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였다. 나직한 말 이후로 선홍색 눈동자가 천천히 눈꺼풀 아래로 잠겨들어갔다.


  6.
 

  "선배!"
  "쉿, 그렇게 크게 부르면 들키잖아."

  한 손으로는 검지를 제 입술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지크프리트의 입을 막았다. 지크프리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고개만 끄덕였다. 이내 입을 막은 손이 내려져, 제 것보다 훨씬 작은 아이의 손을 꼬옥 잡았다. 온기에는 익숙해졌으나 따스함은 여전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라그렛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7층 복도를 통과했다. 어느 곳으로 향하는 지도 모르는 채로 지크프리트는 라그렛의 손을 꽉 잡기만 했다. 사실 어디로 가는지 물으려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친 차였다. 사실 물어봤자 말해줄 거라는 확신도 딱히 없으니 그저 따를 뿐이었다. 라그렛 블랙로즈는 묘하게 제멋대로인 사람이었다. 졸업을 일주일 정도 남긴 시점, 갓 시험이 끝난 후배의 손을 잡고 몰래 기숙사 방을 빠져나와 다짜고짜 어딘가로 향할 정도로 말이다. 되짚어 생각해보면 제멋대로인 일이나, 변덕스러운 일이나. 모두 자주 있었던 일이었더랬다. 낯설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시험이 끝난 날이라고 해이해지기라도 한 건지. 순찰을 도는 반장들의 눈을 피하는 일은 평소보다 더 쉬웠다. 발소리를 죽여 텅 빈 7층 복도를 통과하고, 그대로 계단을 내려가 1층까지. 현관홀을 통과해 정문 앞을 지나서야 라그렛은 한 번 숨을 돌리며 지크프리트를 돌아보았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묻는 눈을 무시하고는 라그렛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성을 나와서인지 아까보다는 느릿한 속도였다. 계절은 여름에 가까웠으나, 아직 밤공기는 차가웠다. 덕분에 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더 존재감을 키웠다. 답답하기라도 했던 걸까. 지크프리트는 고개를 기울이며 라그렛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니면, 기분이 별로인가. 괜한 생각이라 여기지만 혹여 제 시험만 챙겨주느라 정작 라그렛 본인의 시험은 망쳤을까봐 걱정이었다. 시험 잘 봤냐는 제 물음에도 미적지근하게 대충 얼버무렸으니. 그런거라면 큰일인데. 시선을 내리니 제 손을 꽉 잡고 있는 라그렛의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기우이길 빌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호숫가였다. 잠시 잠긴 눈빛으로 호수를 응시하던 라그렛은 여전히 지크프리트의 손을 잡은 채로 털썩 잔디밭에 주저앉았다. 본래 여기가 목적지였던걸까. 지크프리트 또한 자연스럽게 라그렛의 옆에 앉았다. 라그렛은 눈동자를 데룩 굴려 그런 지크프리트를 흘끔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선은 다시 호수로 옮겨졌으나, 대신 지크프리트의 어깨를 감싸안아 제 어깨에 기대게 했다. 느껴지는 체온이 따스했다. 지크프리트는 고개를 틀어 라그렛의 옆얼굴을 응시했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방법은 없었으니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라그렛은 호수를 보고, 지크프리트는 라그렛의 얼굴을 보고.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라그렛이 고개를 돌렸다. 자연스레 눈이 마주쳤다. 선명한 선홍색과 밝은 금색. 지크프리트는 화들짝 놀라 시선을 돌려버렸다. 라그렛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의 어깨를 감싸주고 있는 손을 움직이고 몸을 숙여 지크프리트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주었다. 계속해서 한참의 침묵. 제 목도리까지 둘러주고 나서야 라그렛은 입을 열었다.

  "꽤 오래 있을 거니까 조금 자도 돼. 들어갈 때 깨울게."
  "꼭 자야 해요?"
  "시험 보고 와서 피곤할 거 아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선배도 그렇잖아요, 하는 대꾸는 가볍게 무시당했다. 잠시 입술을 삐죽거리던 지크프리트는 어쩔 수 없이 눈을 내리감았다. 자는 척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귓가의 머리칼을 쓸어내리는 손이 자꾸만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화끈거리는 느낌이 손과 닿은 귀부터 시작해 얼굴까지 번져갔으나 시선은 느껴지지 않으니 들키진 않았을 것이다. 지크프리트는 한 번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풀었다. 근 1년, 잘 때만 되면 항상 이 손길이 느껴지곤 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등을 쓸어내리거나, 토닥이거나. 라그렛 위스트 블랙로즈는 상냥한 축에는 들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나 그때만은 묘하리만치 상냥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런 이 사람이 마냥 좋았다. 바로 옆의 라그렛은 전혀 모르겠지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부드러운 손길에 조금씩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5년이었다. 지크프리트 위버와 함께 한 시간은. 그중 4년은 솔직히 허투루 보냈다. 잘 대해주지도 않았고, 빈말도 딱히 하지 않았다. 쉽게 할 수 있는 쓰다듬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렇게 벽이 허물어진 건 1년 사이의 일이었다. 평소와 같았으나 동시에 너무나도 달랐다. 지크프리트는 첫 1년과 반년 정도를 빼놓고는 항상 저를 잘 따라왔다. 그런 아이에게 어떻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뒤늦게 깨달은 건데, 지크프리트는 제게 있어서는 정말로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앞으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그만큼 사랑받으며 자랐으면 한다. 15살은 아직 자랄 날이 많이 남은 나이니까. 집을 나오고 나서의 1년, 4년 동안 주지 못했던 애정과 사랑을 그 시간 동안 한꺼번에 주었다. 표현이나 방식은 서툴었지만 전해졌으면 한다. 제대로 보내지 못 한 4년의 시간을 아까워해 1년 동안 애를 썼을 정도로 하염없이, 거짓이나 꾸밈 하나도 없이 진심으로 아꼈다고. 떠나고 사라졌음에 저를 원망하더라도 그것 하나 만큼은 기억해주었으면 했다.

  답지 않게 감상적인 이유를 알고 있다. 새벽으로 가까워지는 시간의 탓도 있겠으나, 그보다도 더 큰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잠시 눈을 감은 채 호숫가 저편에서 불어오는 밤바람을 맞던 라그렛은 느리게 눈을 떴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이 보였다. 그러고 나니 질질 끌어온 생각 정리는 얼추 끝났다. 두어시간은 걸리지 않을까 했는데 한 시간 남짓으로 제법 적게 걸린 걸 그나마 위안으로 삼았다. 고개를 슥 돌리니 제 어깨에 기댄 채 곤히 잠들어있는 지크프리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색색, 하는 숨소리가 그제야 귓가를 간질였다. 작게 웃어버리고는 라그렛은 지크프리트를 깨우는 것 대신 제 망토를 걸쳐주었다. 그대로 조심스럽게 품에 안아들었다. 한참이나 지크프리트를 내려다보던 라그렛은 고개를 숙여 금빛 머리칼에 두어번 입술을 부볐다. 이내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걸음을 옮겨 호그와트 성으로, 그리핀도르 기숙사로 돌아갔다.


  7.


  "잘 어울려."
  "거짓말이죠."

  저를 흘겨보는 지크프리트에 라그렛은 작게 키득거렸다. 아무래도 영 불편한 모양인지 낑낑거리는 모양새가 자그마한 강아지같아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빈말 잘 안 하는 거 알잖아. 그리 덧붙이니 입을 삐죽거렸다. 그 반응에 결국 라그렛은 한 번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제법 살벌하게 노려보는 선홍색 시선에 금방 그칠 수밖에 없었지만서도. 그래도 여전히 라그렛의 입술은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뭐가 불만인지 지크프리트는 자꾸만 틱틱거렸으나 그런 반응을 모조리 다 무시하고 라그렛은 지크프리트와 맞잡고 있는 오른손 대신 왼손을 뻗었다. 조금 느슨하게 매여진 넥타이에 손이 닿고, 느릿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제 손으로 다시 매주었다. 이런 부분은 아직 서툴기만 한 것 같아서, 챙겨줘야 할 부분만 자꾸 보이곤 했다. 이제 곧, 저는 졸업인데. 큰일이라고 작게 중얼거리자 그걸 또 들었는지 지크프리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라그렛은 아무 것도 아니라며 두어번 도리질 할 뿐이었다.

  "……근데 진짜 잘 어울려요?"
  "자꾸 그렇게 캐물을 거야?"

  그제야 지크프리트는 머쓱한 듯 제 뒷머리를 긁적이며 평소처럼 웃어보였다. 빈말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인 건 사실이었으나, 그렇다고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니었다. 잘 어울리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것 둘 중에 꼽으라면 후자에 가까웠긴 했지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탓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애초에 15살은 정장을 차려 입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 아닌가. 차라리 넥타이 말고 보타이를 매줄 걸 그랬나. 속으로 웃었다. 문득 지크프리트가 지금의 저보다도 더 큰 이후에 입은 모습이 보고싶어진다. 라그렛은 괜히 지크프리트의 머리칼을 잔뜩 헤짚어놓고는 연회장 벽에 기댔다. 아직 제대로 프롬이 시작한 건 아니었다. 저와 지크프리트를 포함해 벌써부터 많이들 연회장에 들어와있긴 했지만서도. 작년의 무도회가 문득 생각나고 만다. 블랙로즈로서 참여해 순혈 가문 자제들의 간을 봤던, 하나의 사교장이라 생각했던 때다. 지금은 조금 달랐다. 항상 정장에 달아놓곤 했던 검은 장미를 떼어버리고, 라그렛으로서 지크프리트의 손을 잡고 왔다. 그래서일까. 예전의 이런 자리들을 떠올리면 괜시리 숨이 턱 막혔다. 길게 한숨을 내쉬고 라그렛은 맞잡고 있는 손을 당겨 지크프리트를 바로 옆으로 끌어왔다.

  "어디 안 좋아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안 좋다기보다는 그저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만 잔뜩 떠오를 뿐이었기에.

  "곧 시작이네."
  "응. 괜히 긴장되네요."

  잘 할 수 있을 거야. 어느 날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을 뱉어내며 라그렛은 고개를 숙여 지크프리트의 귓가에 속삭였다. 지크프리트는 붉은 기가 감도는 뺨 아래로 두어번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네, 하고 짧은 대답을 뱉어냈다. 슬며시 웃으며 지크프리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는 라그렛은 길게 기지개를 켰다. 잘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멋진 파트너를 원해서 지크프리트를 데려온 게 아니었다. 지크프리트 위버가 해주었으면 해서. 원하는 사람이 이 후배 뿐이었기에 데려온 거였다. 그러니, 전혀 상관 없었다. 오늘을 위해 오래, 그리고 열심히 준비한 건 사실이지만은.

  "지크."
  "네, 선배."
  "아무데도 가지 말고 내 옆에 있어. 그것만 하면 돼."

  이 말의 의미를 네가 알까. 아마 겉으로 드러나는 뜻으로밖에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허나 그거면 충분했다. 더이상은 바라지도 않았고, 바라면 안 됐다. 속뜻을 알아듣지 못했으면 한다.
  지크프리트의 대답과 동시에 폭죽이 터졌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놀란 건 둘 모두였고, 라그렛은 얼얼한 제 귀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무도회의 시작을 알리는 폭죽이었다.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빨랐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지크프리트의 귀도 제 손바닥으로 몇 번 부벼주었다. 연회장 가득 조용히 깔려 있던 음악의 소리가 커졌다. 졸업 프롬이라 생각하니 어쩐지 잡생각이 많아진다. 정말 졸업이구나, 하는.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라그렛은 애써 그런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모두 쫓아버리고 물끄럼 지크프리트를 바라보았다. 지크프리트 또한 멀뚱멀뚱 라그렛을 올려다보았다. 그제야 잊은 게 생각났다. 라그렛은 주섬주섬 제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장미였다. 검은색이 아니라 붉은색. 생화로 만들어진 코르사주 두 개. 하나는 제 가슴 위에 달았고, 남은 하나는 자연스레 뻗어졌다. 장난스레 귓가에 꽂을 듯 하다가 느릿하게 저와 같은 위치에 꽂아주었다. 붉은색 장미. 이건 정말로 빈 말 하나 없이 지크프리트 위버에게 잘 어울렸다.

  "그럼 이제 춤 신청을 부탁해도 될까?"

  이런 말을 하게 하는 것부터 감점인데. 속으로 키득거리며 구태여 입에 담았다. 지크프리트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금 손이 잡혔다. 기분 나쁜 감각도, 이러저런 잡생각들도. 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씻겨 사라져갔다.


  9.


  1972년 6월, 셋째주. 졸업식.

  "선배, 빨리 안 가면 늦어요!"

  라그렛은 제 팔을 잡아 끄는 지크프리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었다. 뭐가 그리 급한지. 졸업식이 그렇게 달갑지도 않은 주제에. 라그렛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가 졸업하는 게 싫다고 했던, 어느 밤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사실 들은 이후부터 종종 계속 떠오르곤 했다. 그때마다 속으로 나도 졸업하기 싫다고 대답했으나, 한 번도 입 밖으로 낸 적은 없다. "금방 갈테니 먼저 가있어." 지크프리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문 밖으로 나서면서까지 자꾸만 저를 돌아보았다. 5년은 절대로 짧은 시간이 아니었으니, 당연히 아쉽겠지. 라그렛은 끝끝내 입 밖으로까지 한숨을 푹 쉬고는 잠시 방 안을 둘러보았다. 나가면 정말로 끝이다. 7년 동안 정든 기숙사에 작별을 고하는 거다. 분명 처음에는 끔찍하게 여길 정도로 싫어했는데, 결국 사랑해버리고 말았다. 제 집이나 다름 없는 장소였다. 그리핀도르는. 당연히 슬퍼지고 말았으나 애써 그 감각을 지워냈다. 대신 침대 밑에 차곡차곡 쌓아 숨겨놓은 교과서들을 꺼냈다. 총 2년 분이었다. 6학년과 7학년. 비록 어제까지 밤을 꼬박 새야하긴 했으나 다 하긴 다 했다. 제법 만족스러웠다. 지크프리트의 짐 옆에 그것들을 다시 쌓아두었다. 그리고 품에서 작은 양피지와 깃펜을 꺼냈다. 교과서 한 권 한 권, 맨 앞 장마다 정성스레 싸인 마냥 해놓았던 것을 다시금 양피지 위에 써놓았다.

  ─Dear Sieg, From Rag.

  양피지를 뒤집어, 뒷장에는.

  ─너무 걱정하지 마.

  양피지는 앞장으로 뒤집혀 쌓여진 교과서들 위에 올려졌다. 라그렛은 희미하게 웃었다. 이제는 두고 떠날 수 있다. 친애하는 지크프리트 위버. 네가 원한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쓰지 못 한 말을 대신 속으로 읊조렸다.


  10.


  꽃다발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구태여 오르치데우스로 만들어선 제 품에 안겨주었다. 그런 후배였다. 지크프리트 위버는.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직접 만들어줘서. 라그렛은 꽃들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향을 맡았다. 붉은색 장미. 장미는 좋아하지 않게 되긴 했으나 그래도 네가 가진 붉은색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좋아할 수밖에…….
  고개를 들어 창문 너머로 멀어지고 있는 호그와트를 바라보았다. 속으로까지 재미있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나. 픽 웃어버리고 라그렛은 꽃다발을 세게 끌어안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잘해주지 말 걸, 같은 생각을 하고 있나. 고개를 저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도 잘해주었을 것이다. 정을 기울였을 것이다. 나의 미련. 나의……. 언젠가부터 웃음기는 싹 사라져 있었다. 대신 울음을 삼켰다. 그때 속으로마저 숨겼던 단어를 입모양으로만 읊조렸다. 또다시 울음을 삼키고, 작은 목소리로 토해냈다.

  잠시동안, 혹은 꽤 오래, 바라진 않지만 어쩌면 평생. 안녕, 내가 사랑해버린 아이야.


  8.


  졸업식 전날. 라그렛은 깊게 잠들어있는 지크프리트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었다. 해야 할 일은 마쳤고, 이제는 정말 마음의 준비만이 남았다. 하지만 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무리였다.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정리 할 수 없다. 제 마음 속에서 떠나보낼 수 없다. 두고가기 싫었다. 미련이라 포장했지만 이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렴풋 눈치채고 있었다. 드러내지 못할 뿐이었고, 완전한 자각조차 두려울 뿐이었다. 그리핀도르의 색이자 네 눈을 닮은 붉은색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이었다.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라그렛 위스트 블랙로즈는 욕심이 많은 소년이었다. 곧 청년이 될 터지만, 욕심이 많다는 게 변할 리는 없었다. 감정은 꾹꾹 눌러 자신조차 모르도록 마음 속 깊은 곳에 담아둘테니, 내가 지금 행하는 일은 용서해주기를. 속으로 읊조리고는 조심스레 그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잠시 맞닿았던 입술을 천천히 떼어내며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부디 용서해줘, 지크.


[지크라그] 곁에 있어줘.


  초침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라그렛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병원 측과의 마찰은 충분히 예상했으나 생각보다도 더 강경했다. 라그렛은 피로와 스트레스를 등에 업고 병실로 들어왔다. 혹여나 편안한 잠에 방해라도 될까 문을 살살 닫는 건 잊지 않았다. 이윽고 긴 한숨. 라그렛은 으레 병실에는 하나쯤 있기 마련인, 불편하기 짝이 없는 보호자용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 시간 여 이어진 말다툼 덕분에 심신이 모두 지쳐버렸다. 여전히 불쾌함에 찌푸려져 있는 제 미간을 두어번 꾹꾹 눌렀다. 지크프리트가 깨어나자마자 보는 건 제 얼굴이었으면 했고, 굳이 웃는 표정이 아니더라도 평소 때와 같은 표정을 보았으면 했다. 그러하니 지쳤다고 찡그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니까. 혹시 지금 당장이라도 깨어날 지, 누가 알까. 라그렛은 손을 뻗어 지크프리트의 맨손을 맞잡았다. 장갑을 끼고 있던 평소의 손보다 더 차다. 그대로 반대쪽 손으로까지 그 손을 잡아, 제 온기를 전했다. 이러면 금세 따뜻해질 터다. 지크프리트의 체온은 보통의 사람보다 찬 편이긴 했지만 라그렛은 항상 묘한 따스함을 느끼곤 했다. 비록 의식이 없는 지금이라고 해도 그걸 느낄 수는 있다. 허리를 숙여 잔상처와 물어 뜯은 흔적이 남은 손에 제 이마를 대었다가, 한 손을 놓고 손등에 입을 맞췄다. 밝은 금색 눈동자가 제법 무겁게 잠겼다.

  시침도, 분침도, 초침도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 시계처럼 지크프리트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눈치챈 건 멈춘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점이었고, 머지 않아 소식이 들려왔다. 저와 그의 관계를 완전히 밝혀버린 것에 대해 후회가 깊었는데 그때만은 그러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연습 경기 도중의 잠깐 쉬는 시간이었다. 당장 가봐야 하는 상황에 구구절절하게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었으니. 지금까지도 옆에 있어주라는 말 외에 별 말이 없는 것에 조금은, 사실은 꽤 많이 감사하고 있다. 두 번 씩이나 자신을 받아준 몬트로즈 맥파이즈에는 어째 항상 폐만 끼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원채 자신은 이기적인 사람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서도.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으리라 약속하는 건 솔직히 불가능했다. 그러니 하지도 않을 생각이었다. 퇴출 당한다고 해도 할 말 없으니 받아들일 생각이기도 했다.
  아무튼 소식을 듣자마자 멋대로 뛰쳐나와 곧바로 성 뭉고 병원으로 직행해 보게 된 지크프리트의 상태는 솔직히 좋지는 않았다. 애초에 좋았다거나 나쁘지 않았다거나 하면 시계가 멈춰버릴 이유도 없고, 의식 불명일 이유도 없었다. 항상 각오하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일이긴 했지만 막상 눈 앞에 벌어지니 숨이 턱 막혔다. 당장은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그냥 자고 있는 거라 생각하기로 하니 조금은 숨통이 트였다. 그것과는 별개로 바로 지크프리트를 끌어안아버렸다. 체온이 느껴졌다. 재와 먼지 따위에 엉망이 된 머리칼을 쓸어주고 바라보다가 다시금 끌어안았다. 폭발에 휘말렸다고 했나. 더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솔직히 어디 하나 불구가 되거나 아예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가벼운 화상과 긁히고 찢겨서 생긴 상처 정도는 하늘이 도왔다고밖에 말 할 수 없었다. 숨이 붙어있다면 그거로 됐다고 여겼다. 살아만 있다면 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거로 족했다.
  응급 처치는 저가 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이었으니 치료사들이 하는 걸 물끄럼 보기만 했다. 치유를 위해 쓰이는 잎과 꽃을 가지지만 그 가지에선 죽음의 냄새가 난다지. 제 지팡이는 그런 역설을 지닌 산사나무였고, 과거에는 후자를 두려워했으나 지금은 전자를 믿었다. 정식 치료사만큼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실력이라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제 지팡이를 신뢰했다. 응급 처치가 끝나자마자 치료사들을 쫓아내고 라그렛은 지크프리트를 물끄럼 내려다보았다. 벌써 십수년을 함께 한 지팡이를 꺼내 흉터가 남지 않도록 지워내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로웠으나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 잠시도 쉬지 않으니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그걸 끝내고나니 마침 병원 측에서 부르기에 다녀온 것이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 다 그렇듯 아무리 병원이라고 해도 윗선은 꽉 막혀 있었다. 정식 치료사도 아닌 이가 직접 환자를 치료하겠다고 나서니, 일단 입원을 받아준 병원 측에서는 잘못되기라도 할까 겁이 난 모양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라그렛이 설득을 들어줄 사람도 아니었으니. 어찌저찌 책임은 저가 다 지기로 하고 멋대로 대화를 끝내고 온 차였다.

  지크프리트는 남이 제 몸에 손을 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싫어했다. 저와 끔찍하게 닮은 점 중 하나였다. 그래서 아무리 중상에 의식 불명이라 해도 치료사가 손을 대는 걸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싫어하는 일을 당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기왕이면 자신이 직접 하고 싶었다. 그런 욕심이다. 네가 안다면 왜 그랬냐고 잔소리를 할까. 화를 내진 않을 게 분명했다. 선배한테는 화 안 낸다고 말했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했기에. 지크프리트는 저와의 약속은 항상 꼭 지키는 청년이었다. 그러니, 네가 내게 화를 낼 리가 없지. 라그렛은 여전히 지크프리트의 손을 잡은 채로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도 잔소리는 별로였다. 물론 지금이라면 그 잔소리조차 기쁘게 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목소리가 그리움도 사실이다. 지금처럼 지크프리트의 손을 양 손으로 잡고 그 손에 이마를 댄 채 기도라도 하듯─물론 라그렛 위스트 블랙로즈는 무신론자였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거나. 조금 지칠 즈음에는 사람을 불러 가져온 책을 읽었다. 시간은 느린 듯 빠르게 지나갔으나 여전히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의 초침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 * *

  라그렛은 눈을 떴다. 하루를 꼬박 밤을 새고, 지크프리트가 누워있는 병실 침대로 기어들어가 그를 품에 안고 쪽잠을 잤다. 좁은 1인용 침대에서 성인 남성 둘이 자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으나 둘 다 얇은 체형이라 아예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 오래 자지도 못했지만. 길게 기지개를 켜곤 여전히 눈을 감은 채인 지크프리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감은 눈 위에 느리게 입을 맞췄다. 그래도 처음보다야 온기가 진해졌다. 그게 퍽 마음에 들어, 라그렛은 작게 웃고 말았다. 제 생각보다 더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오래 지나지 않아 눈을 뜰 터다. 그때를 위해 되려 지크프리트가 저를 걱정하지 않도록 제 상태는 멀쩡해야 했다. 먹는 거야 아무 것도 먹고 있지 않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몇 십분에서 한 시간 정도의 쪽잠은 계속 자기로 했다. 걱정을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저를 바라볼 때에는 항상 편했으면 한다.

  침대를 다시 말끔하게 정리해주고 라그렛은 덮어둔 책을 집어들었다. 벌써 세 권이 끝나간다. 더 가져오라고 시켜야 할까. 안그래도 어쩌다 그런 일에 휘말린 건지 따로 조사를 맡긴 뒤였다. 소식이 들려올 때 함께 시키면 되겠지. 책장 하나를 넘길 때마다 하나의 생각이 지나간다. 지크프리트에 대한 것이나, 깨어난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나, 그를 이렇게 만든 원인을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한 것이나. 그런 중요하면서 사소하기도 한 것들을 생각했다. 시간은 더 빠르게 흘러갔다. 들려온 초침 소리가 착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르게.

  째깍거리는 소리는 익숙했으나 동시에 낯설었다. 라그렛은 다시금 책을 덮어두고 고개를 들었다. 반사적으로 병실 안의 시계를 찾았다. 네 면의 벽을 모두 둘러본 후에야 깨달았다. 지크프리트가 의식을 찾음과 동시에 다시 흘러갈, 제 손목의 시계 초침 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다른 시계는 모두 치워버렸다는 걸. 라그렛은 옷소매를 걷었다. 제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 시계가, 째깍째깍. 평소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이내 앞으로 평생토록 하나 뿐일 제 연인을 보았다. 눈을 뜨면 웃어주기로 했는데. 가늘게 뜨인 채 저를 바라보는 선홍빛을 마주하고 나니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았다.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으려나. 저가 알 수는 없었으나. 깜빡깜빡. 이제는 정말 평소처럼 저를 바라보고 있다. 라그렛은 한참을 말 없이 지크프리트를 마주했다. 라그렛이 초침이 째깍거리는 소리를 세다가 놓쳐버렸을 무렵, 문득 지크프리트가 웃었다. 그마저도 평소와 하나 다를 바가 없어서. 솔직히 말하자면, 울음이 터져나오려는 걸 참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기어코 울지는 않았다.

  "손 잡아줘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손을 잡았다. 익숙한 온기가 좋았다. 저를 보고 있는 선홍색 눈동자도, 좋았다. 들려오는 목소리 또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그제야 라그렛은 웃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너무 늦게 일어난 거 아니냐고 타박했다. 지크프리트도 비슷하게 받아주었다. 사소하지만 소중한 말들이 오가고 잡은 손을 당겨 끌어안았다. 다행이라 웅얼거리니 뒷머리를 가만가만 쓸어내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결국 또 눈물이 터질 뻔 하고, 또 얼만큼의 눈물을 삼켜내고. "이제 이렇게 마음 고생 시킬 일 없을 거예요." 걱정했다는 말은 구태여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서운해한다거나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맘 고생을 하지 않았다는 말 또한, 필요치 않음을 안다. 지크프리트는 라그렛의 뺨에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일상적인 일이었으나 그만큼 그리웠다.

  "마음 고생 같은 건 별로 안 했는데."

  단지 지금처럼 시선을 마주하지 못 하는 게, 조금 그랬어. 힘들다는 말은 입에 담지 않기로 했다. 눈을 깜빡이던 지크프리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괜한 걱정은 저 혼자 다했다며 웅얼거렸다. 똑같이 웃어주니 잡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구태여 힘들었다거나 하는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걸 지크프리트도 알고 있을 터다. 캐묻지 않는다거나 걱정스러운 티를 내지 않는 건 저를 위해서겠지. 동시에 서로를 위해서기도 했다. 라그렛 또한 괜히 힘을 줘 손을 잡았다. 문득 장난스러운 물음이 이어졌다.

  "다시 마주한 느낌이 어때요?"

  라그렛은 잠시 몸을 움직여 아까 지크프리트가 해주었던 것처럼 가볍게 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곤 잡고 있는 손을 끌어와 제 뺨에 대게 했다. 고개를 기울이고, 미소지었다. 울고 싶다고 말 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렇게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설명하기에는 그마저도 부족했다.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오늘도 예뻐. 멋있고, 잘생겼고."

  평소에 이런 말을 입에 담은 적이 있던가. 그렇지만 마주 미소하는 연인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항상 그런 감상이 떠오르곤 했다. 입 밖에 내지 않은 건 너무 당연해서도 있었지만, 사랑한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낯간지러워서 그런 것도 있었다. 앞으로는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자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얼마나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간질간질한 감각에는 여전히 약했다. 몇 년이나 이어온 연애임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제 뺨에 올려둔 손이 살살 움직여 쓰다듬어주기 시작했다. 간지럽다 키득거려도 멈추지 않았다. 사실 기분이 좋아서 멈추게 할 생각도 딱히 없었다.

  "역시 선배는 꿈보단 실물이 훨씬 더 잘생겼어요."

  내 꿈을 꾸었냐고 키득거릴 차에 지크프리트가 똑같이 덧붙였다. 라그렛이 한 말을 그대로 그에게 돌려주었다. 듣는 것이야 익숙했으나. 가만히 그런 지크프리트를 바라보던 라그렛은 그의 어깨를 당겨 입을 맞춰버렸다.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 거라는 걸 각오 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닥치고 나니 생각보다 더 힘들었음을 인정했다. 허나 여전히 일을 관두라거나 하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장난스레 몇 번 뱉은 적이 있긴 하지만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것 쯤이야 지크프리트도 잘 알고 있을 터고, 그래서 그냥 넘기곤 했던 적이 여러번이다. 저가 진심으로 위험하니 관두어 달라 말하면 그걸 단칼에 거절하지는 못 할 사람이라는 걸 안다. 실은, 제 경우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말 하지 못 하는 게 아니라 말 하지 않는 것에 더 가까울 수도 있었다. 그를 사랑하기에 그만큼 존중하는 것이기도 했고, 지크프리트가 오러가 될 수 있도록 지도해준 사람 중에는 분명히 자신이 끼어있었다. 이제와서 관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또. 그의 신념을 안다. 저를 사랑한다는 감정으로 그 신념을 한 번 굽혀주었음도 안다. 그래서 앞으로는 굽히지 않았으면 했다. 그걸 위해서라도, 또한 그것에 어울리는 것도. 오러는 끔찍할 정도로 지크프리트 위버에게 어울렸고 어느 시점부터 라그렛은 오러라고 하면 그밖에 떠올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니 관두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사실은 더 컸다. 제 곁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마음보다도 어쩌면 더. 제법 길게 이어진 입맞춤을 끝내기 위해 라그렛은 슬 지크프리트를 밀어냈다. 그러자 되려 지크프리트가 저를 끌어왔다. 이마를 맞대고, 키득거렸다. 당연해서 들을 필요도 없었어요? 입맞춤은 하고 싶어서 한 것이기도 했지만, 입을 막기 위해서 한 것이기도 해서 아니라고 말 할 수는 없었다. 자연스레 끌어안는 손길에 몸을 맡기고 라그렛은 슬 지크프리트에게 기댔다. 라그렛 위스트 블랙로즈는 욕심이 많았고, 이기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할 수밖에 없는 말이 있었다.

  "지크."
  "네, 선배."
  "한동안은 쉬어."

  나직한 목소리로 부르고, 중얼거렸다.

  "…며칠 정도는 내 곁에 있어줘."

  그래줄거지, 하는 되물음은 필요치 않을 터라 굳이 하지는 않았다. 미소는 지우지 않았지만 문득 슬퍼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라그렛 블랙로즈] 운명의 수레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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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그'의 실종 이후. 겨울, 녹턴 앨리.

  자신에게로 집중되는 시선들에는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라그렛 블랙로즈는 평소와는 다르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익숙함을 떠나, 가지각색의 색들에서 쉽게 읽어낼 수 있는 감정들 때문이었다. 경멸과 조롱을 포함한 부정적인 방향의 것들뿐이다. 볼 일이 있는 거라면 폴리주스를 구해서 마시고 왔어도 됐을 일인데. 부러 제 본모습으로 와 그러한 시선들을 견디고 있음은 다소 뻔뻔스레 보이기도 했고, 용감하다고 평가받을 만도 했다. 어찌되었든 위험한 일을 한 건 맞았다. 안전 불감증이라 잔소리를 들어도 반박은 못 하겠지. 멀쩡하게 눈 뜨고 저만을 바라보고 있는 오러가 하나 있는데, 뭣하러 써먹지 않느냐고. 몇 남지 않은 지인들과 심지어 그 오러 본인마저도 그리 말 할 게 어쩐지 머릿속에 그려져서 라그렛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한때 무작정 지키겠답시고 공포의 근원에서 그를 떼어놓으려 부단히도 애를 썼던 때가 있다. 오히려 그 때의 일로 상처를 입혔음은 명백하다. 라그렛은 학습 능력이 없는 머저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를 이런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하는 이유는, 이 일은 온전히 저 혼자 끝내야 하는 일이라 못박아두었기 때문이었다.
  눈부신 다이애건 앨리, 그리고 그 그림자나 다름 없는 녹턴 앨리. 그곳은 영국 어둠의 마법사들의 본거지라 불릴 만 한 짙은 그늘에 속한 장소였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양지에 알려져 있는 게 아닌가 싶지만은. 한때 라그렛의 주위를 맴돌았던 악의 반 흥미 반이 섞인 루머들 중 제일 다수를 차지했던 것이 그가 녹턴 앨리에 드나든다는 말이었을 정도로 알려져 있는 장소였다. 그럼에도 이 그늘이 햇빛에 쬐이지 않는 원리는 생각해보면 간단했다. 죄가 입증되지 않는다면 연행이나 격리조차 할 수 없기 마련이기에. 드나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명히 예비 범죄자이거나, 몇몇은 이미 죄가 있는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녹턴 앨리가 양지의 사람들에게 간섭 받지 않는 이유였다. 이렇다 할 명분과 증거가 없기 때문에. 물론 간혹 정말로 죄가 없는 사람들이 섞여있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과거에 속하는 라그렛 위스트 블랙로즈처럼. 녹턴 앨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정보의 보고라 불리었다. 영국 마법사와 마녀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담은 녹턴 앨리에서는 양지의 것이든, 음지의 것이든 가리지 않고 많은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헛소문도 섞여있긴 했으나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쳐내고 나면 꽤 유용한 정보들이 많이 남곤 했다. 라그렛이 그간 녹턴 앨리에 들러왔던 이유는 바로 그 정보들 때문이었다.
  특이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사실 라그렛 위스트 블랙로즈에게는 녹턴 앨리 방문에 있어서 위험성이 전혀 없어야 했다. 실제로 학창 시절의 라그렛은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괴담처럼 돌곤 하던 녹턴 앨리에 대한 소문들을 들을 때마다 코웃음을 치곤했다. 그가 처음 그곳에 방문했던 게 몇 살 때의 일이던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올리밴더스에서 느릅나무로 만들어진 첫 번째 지팡이를 구해왔던 그 날이 첫 방문이었으며, 이후로도 라그렛은 방학 때마다 녹턴 앨리에 들르곤 했다. 교육의 일부였다. 블랙로즈는 혈연이 이어진 가문보다는 사상과 뜻, 그리고 비밀이 이어진 단체 내지 조직에 가까운 이름이었다. 피가 닿아있지 않더라도 인정만 받으면 검은 장미의 이름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블랙로즈의 명성은 알려진 게 거의 없는 양지의 것과는 비교하지 못 할 정도로 녹턴 앨리에서만은 드높았다. 이름을 원하는 이들은 많았고, 라그렛은 블랙로즈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로제타 블랙로즈의 아들이자 가장 완벽한 검은 장미라 불리는 소년이었다. 녹턴 앨리의 대다수가 아직 어린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호의를 베풀만한 가치는 충분했고 그렇기에 라그렛은 어느 정도 특권을 누리며 다녔음이 사실이었다. 그가 녹턴 앨리에서 받는 일종의 교육과는 별개로 말이다. 조직체에 가까운 블랙로즈는 구성원을 사용하기 알맞은 방식으로 키워낸다. 전투원, 정보원 등의 종류로. 어디에도 써먹지 못 할 사람은 하다못해 한 번 쓰고 버릴 소모품, 불나방으로라도 사용했다. 라그렛은 블랙로즈가 아이에게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친 소년이었다. 그 중에서도 사교계에서의 일과 정보전에 특히 뛰어나도록 교육받았다. 어찌되었든 어느 방식으로든 블랙로즈의 얼굴이 될 그가 어려서부터 담당한 부분은, 일종의 스카웃이었다. 라그렛은 생각보다 더 어릴 적부터 그 일을 수행해왔다. 녹턴 앨리는 수행의 장소이자 교육의 장소였다. 호그와트에 입학한 직후부터 거쳐온 순혈 가문들의 사교장이 그에게 그러했듯이.
  그가 집을 나온 17살 때에도, 그 이후에도 라그렛은 녹턴 앨리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았다. 제 발로 나와 내놓아진 자식이라고는 하나 블랙로즈는 블랙로즈였기 때문이었다. 허나 상황은 처음으로 그가 세간에 제 집안에 대해서 입을 열었을 때 바뀌었다. 블랙로즈는 그 첫 번째 가치를 비밀의 유지라 말해왔고 몇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모두가 그 가치를 지켜왔다. 배신자들은 모조리 제 목숨으로 그 값을 치른 가문의 역사 속에서 그는 가문의 배신자라 불리었다. 그럼에도 살아남았고, 발길을 끊지 않았다. 가문의 배신자에 이어 일족의 배신자까지 되어버린 지금까지도 말이다. 테러와 악행에 가담하든, 가담하지 않았든. 어둠의 마법사 소굴인 녹턴 앨리에는 '그'의 추종자들이 다수 존재했다. 블랙로즈로서의 정보와 죽음을 먹는 자로서의 정보를 모두 다 마법부에 고해바친 라그렛은 절대 그들에게 곱게 보일 수가 없었다. 지금 제게 쏟아지는 시선들이 그 사실을 입증한다. 허나 녹턴 앨리는, 정확히는 녹턴 앨리에 떠도는 정보들은 아직까지도 라그렛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에.

  돈과 물건을 들이 부어 얻은 정보들 중에는 제법 흥미로운 것들이 섞여있었다. 첫째로, 블랙로즈는 뒷세계에서마저 예전 같은 위상을 유지하지 못 하고 있다는 점. 애초부터 피가 섞였든, 섞이지 않았든 순혈이기만 하면 거두어 자체적으로 어둠의 마법사를 키워내 온 집안이었다. 집안 대대로, 혹은 저 홀로 블랙로즈를 따르던 이들 중에는 블랙로즈를 따르기에 블랙로즈가 따르기로 한 '그'를 따른 것뿐인 사람이 제법 많았다. 그리 충성심을 자랑하던 가문의 수하들이 '그'의 실종 이후 다른 죄목도 아닌 '그'를 따랐다는 죄목으로 하나 둘 씩 잡혀 들어가 공중분해 됐다. 세력 기반을 송두리째 빼앗긴 것이나 다름이 없었을 터다. 게다가 저가 공개적으로 불어 넘긴, 겉으로는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블랙로즈가 사실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명백한 사실 하나. 그 사실 하나가 제법 큰 타격을 준 모양이었다. 친분을 유지하던 죽음을 먹는 자들이 그걸 알아버렸고, 끝끝내 그들 사이에서도 내분이 일어났다. 라그렛은 작게 혀를 찼다. 실수가 있다면 가장 높은 곳을 꿈꾼 주제에 남을 따르는 척 해보려 했다는 거다. 블랙로즈는 그런 게 어울리는 집안이 절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줄로만 알았던 제 어미의 실수를 목도한 순간이었다. 애석히도 라그렛은 희열조차 그닥 느끼지 못했다.
  둘째로는 라그렛이 작년 크리스마스에 죽이지 못 했던 그의 이부동생이 그를 죽도록 미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역시 그 때 죽여 두는 게 나았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죽이지 않은, 정확히는 죽이지 못 한 것도 자신의 선택이었기에. 어쨌든 비극이라는 이름을 가진 운명은 제게서 그 아이에게로 되물림되고 말았다. 자신의 인생이 비극이라는 걸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이제 그 운명은 그 아이가 떠맡아야 할 것이었다. 동시에 저가 떠맡긴 것이기도 했다. 그 사실은 라그렛의 마음을 제법 불편하게 만들었다. 죽도록 미워하고 있다, 라. 어쩐지 정보를 얻으러 왔다가 죄가 하나 더 늘어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딱 그 정도의 찝찝함.
 ……아니. 그 이상의 불쾌감이다. 라그렛은 절대로 제 죄에 대해서 불쾌하다거나 기분 나쁘다거나 하는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받아들여야하는 종류의 것이라 생각했기에. 죄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저를 향하고 있는 시선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이 불쾌함의 출처는 어디인가. 녹턴 앨리의 구석진 곳에 멈추어 선 라그렛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품에서 지팡이를 빼드는 시간 또한, 그리 길지 않았다. 찝찝한 느낌과 왠지 모를 불길함의 이유를 좇으면 답은 쉽게 내릴 수 있다. 선명한 악의 하나가 저를 향하고 있었다.

  "감이 좋네."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건 자신을 겨누고 있는, 징그러울 정도로 장식이 잔뜩 달린 지팡이였다. 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건 그 지팡이를 쥔 손등에 새겨져 있는 검은 장미. 한 번 새겨지면 평생 지워지지 않는 마법이 걸린 바로 그 표식. 아슬아슬하게 저가 받지 않은 것. 이부동생을 빼고는 늙다리들만 남았을 거라 예상한 걸 배신하고, 상대는 꽤나 젊은 축이었다. 저와 비슷할까. 가장 완벽한 블랙로즈라 불리던 시절, 블랙로즈에 또래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저조차도 모르도록 키워낸 자인지. 아니면 그 이후에 편입된 자인지. 후자가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은 했으나 어차피 지금은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기에 라그렛은 의식 속에서 지워냈다. 정 궁금하면 나중에 알아보면 되는 일이다. 대신, 그 고민은 조롱으로 이어졌다.

  "피도 안 이어진 외부인에게 내 처리를 맡길 정도로 우리 집안이 체면을 안 차리는 집안은 아닐 텐데."
  "그 입에서 우리 집안이라는 말이 나오나?"

  한 마디도 지질 않네. 라그렛은 속으로 기함을 토했다.

  "나도 말해놓고 구역질이 날 뻔했어."

  부러 부드럽게 지은 미소 뒤에는 날카롭게 벼려놓은 비수가 존재한다. 절대로 곱게는 하지 않은 말이 그 비수의 존재감을 더 키워주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의 크리스마스. 라그렛은 비슷한 골목길에서 비슷한 대치를 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옆에 어린 아이도 있었고, 상황도 조금 다르긴 했으나. 그 때 라그렛이 제 어머니인 로제타와 했던 깨트릴 수 없는 맹세는 사실 불완전했다. 생각이 짧았다기보다는 알고서도 그리 한 것이었다. 로제타 블랙로즈는 향후 라그렛 블랙로즈의 인생에 일절 간섭하거나 관여하지 않는다. 이부동생의 목숨을 구실로 해 반강제로 받아낸 맹세 덕분에 로제타가 라그렛에게 무언가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게 됐음은 사실이었다. 허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면. 로제타 블랙로즈가 아니라면 누구든 라그렛에게 손을 뻗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또다른 블랙로즈라 해도 말이다. 분명한 헛점을 알면서도 어째서 블랙로즈가 아닌 로제타로 제한했는지에 대해서는 라그렛 본인만이 알고 있었다. 동시에, 그 누구에게도 말해줄 생각이 없는 것이기도 했다.
  눈앞에 주문이 튀었다. 살벌한 녹빛은 아니라는 거에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지. 주변으로 빛이 튐으로 인해 타인에게 발각되기라도 했는지, 인기척이 늘어났다. 주변을 살피니 어둠 속에 숨어들은 불청객들이 꽤 많았다. 개중에 악의를 가진 사람은 없어 보이니, 아마 대부분 방관을 택한 구경꾼들일 터다. 불쾌함이 더해졌다. 라그렛은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리곤 지팡이를 고쳐 잡았다.


* * *


  호그와트를 졸업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종종 꿈에서 기계 장치의 소리를 듣곤 했다. 시곗바늘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면 과거의 일들을 보았다. 이제는 뒤로 한 기억이나, 행복했던 시절 같은 것들을. 시곗바늘 소리보다도 더 드물게 들을 수 있었던, 톱니가 돌아가는 소리는 뭔가가 사이에 걸리기라도 한 듯 시끄럽게 삐걱거렸다. 비교적 어렸던 그땐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지금은 알고 있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의미였다. 저를 둘러싼 환경이, 인생이, 혹은…… 운명이. 올곧게 나 있던 길에서 탈선을 해버린 그 날부터 삐걱거리던 톱니는 때때로 반대로 돌기도 했고, 거칠게 멈추어 섰다가 다시금 정방향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스물도 채 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마냥 소음이 싫어 귀를 틀어막았다.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된 날 이후부터는, 예의 그 악몽들을 꾸었다. 악몽은 총 세 가지로 구성되었고, 이에 대해서는 굳이 더 말 할 필요가 없을 터다. 종잡을 수 없는 불안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던 불면의 밤. 그 시작이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들리지만 않았을 뿐. 라그렛 위스트 블랙로즈의 운명이라 이름 붙여졌으며, 동시에 비극이라는 이명을 가진 수레바퀴가 톱니 너머에 있었다. 떡하니 쓰여 있었던 비극이라는 글자를 보지 못한 건 자신의 탓이었고, 라그렛은 생각보다 덤덤히 제 비극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피해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제 비극이 소중한 사람에게 튀지 않도록. 저 혼자서 온전히 떠안을 수 있도록 끌어 모았다. 그게 최선이었다. 최선인 줄 알았다. 허나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 알았다. 운명을 피해갈 수는 없더라도 바꿀 수는 있다고.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이고 가시밭길뿐인 길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바꾸는 것만은 가능하다고. 깨달아버린 날에는 제 손으로 부숴버렸다. 비극이라는 글자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제 운명도, 함께. 운명의 수레바퀴를 부순 것과는 별개로 인생의 톱니바퀴는 여전히 굴러가고 있으니 그 너머에 또 어떤 운명이 생겨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허나 그 날 이후로 라그렛은 더 이상 운명에 연연하지 않게 됐다. 믿지 않게 된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에게 운명이라는 단어는 어느 면에 있어서 불쾌감을 가져다주는 단어이기도 했으며, 실제로 운명이라는 게 존재한다 하더라도 바꿀 수 있다 믿었다. 그 산 증인이 바로 자신이라며.

  기실 그가 운명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어감과 그 자체를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은, 어느 누군가의 이름 때문도 조금 있었다. 사실 조금이라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제법 많이 그러했다.

  ─아가씨는 네 죽음을 원해.

  태어날 때부터 제 운명과 똑같은 것을 가졌던 아이가 하나 있다. 비극이라 이름 붙여진 운명을 부숴버린 이후로 그 비극은 나눠지거나 변질되지도 않고 온전히 그 아이에게 떠맡겨졌다. 아마도, 그 아이는 아직 자신의 운명이 비극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줄도 모를 터다. 과거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마냥 이 길이 옳은 줄 알고 걸어가고 있겠지. 아직 어린 소녀와 그녀에게 비극을 떠넘겨버린 청년이 처음 만난 건 1년 전의 일이었고, 헤어진 것도 1년 전의 일이었다. 그녀에게 유년 시절의 배신이 얼마나 독한 것으로 다가올지 라그렛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제 숨이 거둬지는 걸 원할 만도 하다고 생각한다. 억울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게 당연한 일 아닐까, 했다. 라그렛은 몇 남지 않은 피붙이에게 받는 미움에 연연하거나 슬퍼할 사람도 아니었다. 그녀는 라그렛을 미워하나 라그렛은 그녀를 미워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미워하게 될 날이 올 지도 모르지만.
  아가씨, 라. 그 호칭을 곱씹어보면 사실 하나를 쉽게 도출해낼 수 있었다. 기어코 그 어린 소녀가. 제 이부동생이 그녀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어머니이기도 한 로제타 블랙로즈의 다음으로 블랙로즈의 차기 후계자가 된 모양이었다. 암묵적인 의미를 넘어서 말이다. 참 재밌는 일이 아닌가. 저도 한 때 사람들에게 도련님이라 불렸던 시절이 있었다. 본래 제 것이었던 비극이라는 이름의 운명은 그녀에게 다시금 반복된다. 저처럼 그 운명을 깨트릴 지, 아니면 비극의 존재도 눈치 채지 못한 채 순응하게 될 지. 그것은 그녀에게 달린 일이었다. 허나 라그렛은 묘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보다도 머지않은 시기에, 그녀와 자신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만남은 분명 둘 중 누군가에게 좋지 않은 끝을 선사하겠지.

  ─그렇다면 가서 전해. 날 죽이고 싶다면 직접 찾아오라고.

  제 집에 도착해갈 즈음, 했던 말에 대해서 잠시 떠올렸다. 그래서 한 말이었다. 굳이 재촉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올, 둘 중 하나의 종말을 위하여. 축배를 들 수는 없겠으나 말만은 전하고 싶었다. 의도적으로 목숨을 노리고 접근한 제 주제도 모르는 남자를 굳이 살려 보낸 건 그 말을 그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도 있었고, 제 손을 더럽히기 싫어서도 있었다. 이부동생, 리디아 블랙로즈는 끔찍하게 어머니 로제타를 닮았다. 그건 어느 정도 라그렛을 닮았다는 뜻도 된다. 그렇다면 그 말을 듣고도 저를 죽이기 위해 사람을 보낼 가능성은 희박했다. 저도, 제 어머니도 자존심 하나는 끝내주는 족속들이었으니. 블랙로즈의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자신 또한 그렇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나면 종잡지 못 할 불쾌함이 피어오르곤 한다. 라그렛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문을 열었다.

  "……어라."
  "어서와요. 좀 늦었네요, 선배."

  라그렛은 멀뚱멀뚱 눈을 뜬 채로 눈앞의 지크프리트를 바라보았다. 집에, 있을 줄 몰랐는데. 잠깐의 외출이 생각보다 길어지긴 한 모양이었다. 어쩐지 머쓱해져 라그렛은 괜히 현관에서 꾸물거렸다. 그러자 제 손을 덥썩 잡아오는 상처투성이 손은 보기와는 다르게 제법 따뜻했고, 결국 라그렛은 느리게 웃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살얼음판은 거짓이고, 이쪽이 현실인 것만 같았다. 두 개 다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뭐 어떠랴 싶었다. 그쪽은 거짓으로 치부하고 이쪽을 현실이라 믿는다 하더라도 별 문제는 없었다. 손이 차갑다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지크프리트를 가볍게 쓰다듬어주고는 라그렛은 뒤늦게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아가씨, 라는 호칭을 들은 직후부터 갑작스레 다시 들리기 시작한 기분 나쁜 톱니 소리는 어느새 멎어있었다. 음지에서 다시 양지로 돌아왔기 때문일까. 잘은 알 수 없었지만.

  "저녁 안 먹었지? 조금 늦었지만 저녁 먹을까."
  "응, 좋아요."

  이부동생과 자신. 언젠가 다가올 것이라 하더라도, 어느 쪽의 종말일지는 지금은 상관없었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만약 제 종말이 정해진 운명이라 한다면 애초에 믿지도 않을 것이고, 설령 그게 진실이라 해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제 손으로 바꾸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혹시나 만약. 라그렛은 문득 내면에 꼭꼭 숨겨놓았던 미약한 불안감 하나를 짚었다. 종말의 지표가 자신도 그녀도 아닌, 그 자신의 이름을 따라 지크프리트 위버를 향하고 있다면. 자신의 것보다 더 필사적으로 노력해 바꾸고 말 것이다. 불가능하다면 저가 대신 떠안고 추락할 것이고, 떠안는 일마저 차단당한다면 운명 대신 그를 껴안고 함께 끝을 맞이할 것이다. 그만큼의 각오는 충분했다. 생각보다도 더 예전부터 그랬다.

 

  그래도 당장은 지금의 일상이 제일 소중하기에. 이쪽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끝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언젠가 깨어질지도 모를 평화에 전전긍긍해하며 살고 싶지도 않았다. 라그렛은 과거도, 미래도, 운명도. 그 무엇보다도 현재와 제 곁을 가장 중히 여기는 청년이었다. 길었던 유년을 졸업한 이후로 그렇게 됐으니, 이제는 평생 변하지 않을 사실이었다.


지크라그 #연인이_어깨에_기대어_잠든다면_자캐는



  "괜찮아?"

  밤 늦게 집에 들어온 연인에게 첫마디로 건네는 말이 어서와, 나 보고 싶었어, 가 아닌 걱정의 말이라는 게 얼마나 속이 쓰린 일인지. 제법 지친 표정을 하고 있는 지크프리트를 보며 라그렛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밖이 제법 추운 모양이었다. 볼이 발갛게 물든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창백하게 질린 걸 보면. 오른손을 뻗어 손바닥으로 몇 번 볼을 문질러주었다. 찬 기운이 지크프리트의 볼을 타고 제 손바닥으로까지 넘어왔다. 10년에 가까운 지난 세월 속의 너에 대해 문득 생각한다. 항상 이런 모습으로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왔다 나가고, 그랬던 걸까. 제법 자주 들르는 편이긴 했어도 항상 제 집에 오는 것은 아니었으니. 너를 떠올리자면 쉽사리 꺾이지 않는 강한 모습이 먼저 스쳐지나가지만, 가끔씩은. 아주 가끔씩은 그 뒤에 간직한 무수한 상처들이나 외로움 같은 것들이 문득 그 위를 덮곤 한다. 그러면 어쩐지 저마저 슬퍼지는 것이다. 예전부터 그랬다. 천천히 볼을 엄지 손가락으로 쓸어주자 기분이 좋은 듯 옅은 미소가 입술에 걸쳐졌다. 어리광을 부리듯 제 손에 볼을 부벼온다.

  "나 괜찮은데. 표정이 왜 그래요."
  "내 표정이 왜."

  거둬진 손이 제 볼을 스치고 지나간다. 표정도, 감정도 제법 잘 숨기는 것들이라 생각했건만. 최근들어 유독 숨기지 못하게 된 것이 몇 개 있다. 걱정이나 애정 같은 것들. 돌아오는 대답은 딱히 없었다. 허나 제 표정을 보는 얼굴이 꽤나 즐거워보여, 라그렛은 괜히 작은 소리로 투덜거리곤 뒤돌아 소파에 털썩 앉아버렸다. 딱히 삐진 건 아니었지만. 코트를 가지런히 걸어두고 제게 다가오는 지크프리트를 향해 라그렛은 살짝 팔을 벌렸다. 안아달라는 뜻은 아니었고 오히려 안기라는 뜻이었지만 되려 저를 세게 끌어안아온다. 뭐 어떠랴 싶어서 라그렛은 가만히 지크프리트의 품에 기댔다. 괜찮지 않아 보이는 쪽은 저쪽인데 등을 토닥여주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조금 뒤늦게 심통이 나는 것도 같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많이 피곤해보여." 작은 웅얼거림과 함께 라그렛이 작게 한숨을 내쉬자 지크프리트는 그제야 꼬옥 안고 있던 연인을 놓아주고 그의 옆에 앉았다.
  사귀게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몸을 틀어 저를 향하고 있는 연인의 어깨를 팔로 감싸 제 쪽으로 끌어당기는 일이 퍽 자연스러워졌다. 얼떨결에 라그렛의 어깨에 기대게 된 지크프리트는 작게 웃음 소리를 흘렸다. 한창 애정만 쏟아부어도 아까울 시기에 걱정만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었으나, 그래도 좋은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차라리 계절이 겨울만 아니었더라도 조금 나았을까 싶다. 괜한 생각들이 길어진다. 제 어깨를 감싸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하루 종일 긴장을 놓지 않고 있어야 하는 직장이었고, 더 그래야 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그런 걸까. 긴장이 탁 풀리자 나른해지고만다. 그걸 눈치챈 모양인지 라그렛은 지크프리트의 어깨를 감싸안은 팔을 움직여 가만가만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손에 닿는 머리칼이 제법 부드러웠다. 그리고, 제 머리칼에서 나는 향과 비슷한 향이 난다. 라그렛은 슬며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주체하느라 꽤 애를 먹고 말았다.

  "좀 자. 무릎 베개라도 해줘? 아니면 침대로 갈까?"
  "잠들기 싫어요."

  왜.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지크프리트는 눈을 내리감았다.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은 주제에. 작은 투덜거림이 들린 것도 같다. 또다시 지크프리트가 작게 웃음 소리를 흘렸다. 그 모습이 얄미워 라그렛은 괜히 지크프리트의 볼을 잡고 길게 당겨버렸다. 어느새 작게 뜨인 눈이 그를 흘겨보았다. 이번에는 라그렛이 웃고 만다. 볼을 놓아주자 발갛게 자국이 남았다가 금세 사라졌다. 선홍색 눈동자가 다시 눈꺼풀 너머로 사라졌다. 그 위를 손이 스치고 지나갔다.

  "선배랑 같이 있고 싶은걸……."

  딱 어리광을 부리는 목소리다. 10년 전 즈음에 자주 들었을까. 지크프리트 위버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심심치않게 듣긴 했으나 빈도가 적어졌음은 확실했다. 그게 최근 들어 또 늘고 있는 거다. 싫진 않았다. 오히려 좋았지. 어리광을 부려도 좋고 칭얼거려도 좋고 제게 스트레스를 풀어도 좋으니 기대주었으면 했다. 밖으로 그런 희망을 표출하지는 않았으나, 속내가 그러하다는 뜻이다. 나른함에 취해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목소리에 라그렛은 그냥 입을 꾹 다무는 것으로 응대했다. 그 마음은 저도 똑같다. 몸도 마음도 닿지 않았던 한 달 여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다고. 이리도 애틋해졌다. 가능하다면, 계속 같이 있고 싶었다. 제 성에 찰 때까지만이라도. 하지만 그게 안 되니까. 그리고 지크프리트가 마냥 제 옆에 붙어있기만 하는 걸 원하지 않으니까. 라그렛은 고개를 돌려 지크프리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반응이 없는 걸 보니 결국 잠든 모양이었다. 다시금 어깨를 감싸안아 가볍게 토닥였다. 고요함은 숨 쉬는 소리마저 상당히 크게 전달해주었다. 듣고 있자니 저까지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다.

  밤마다 지긋지긋한 악몽에 시달렸던 시간 속에서 저를 편히 잠들 수 있게 만들어주는 존재란 과연 어느 정도의 구원인가.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이라 생각한다. 겪어보았기에 잘 알고 있었다. 구원이고, 희망이고, 단 하나 뿐인 빛이다. 지금도 그랬다. 라그렛은 지크프리트의 옆에서만은 악몽에도 불면증에도 붙잡혀있지 않을 수 있었다. 때때로는, 그를 괴롭게 했던 현실과 정신적인 문제들에서도 편하게 해주곤 했다. 자연스레 제 처음을 모두 주게 되면서, 결국에는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인생 처음 맞닿았던 손의 온기가 이제는, 저가 원한다면 평생 곁에 있을 것이다. 과거를 떠올려보면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따스함을 나누었다. 내 인생도 혼자 뿐이었고 네 인생도 혼자 뿐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혼자는 아니었다. 서로가 있었으니까. 그게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떨어져 지낸 시간 동안 알았다. 그래서 네게도 내가 그런 존재였으면 했다. …그런 바람이 있다. 사실 알고 있었다. 그 시간들 속에서. 어둠이 싫고 무서워서 네게 숨었던 시간들 속에서, 나는 편했는데. 너는 어쩐지 내 곁에서마저 편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을 지새우는 모습을 자는 체 하며 여러번 보았다. 내가 너를 편하게 해주지 못 했던 모양이다. 의지가 되지 않는 존재였거나, 아니면……. 그 이상으로 네가 짊어지고 있었던 게 컸다거나. 너는 나를 오랜 시간 사랑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깝지 않았을까.

  네가, 짊어진 것들. 얼마나 크고 무거웠으면 이렇게 변해버렸을까. 본인은 변했다는 자각이나 있을까. 어린 시절의 너를 떠올리고 지금의 너를 보고있자면 마음 한켠이 아려오는 건 사실이었다. 지금이 싫다는 건 절대로 아니었으나. 라그렛 위스트 블랙로즈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것들을 보아왔다. 세상이 얼마나 더럽고 추하며 어두운지 직접 깨달으면서 살았다. 17살이 되는 해 네가 그런 것들을 모른 채 자라서 밝은 곳에서만 지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됐다. 허나 그와 동시에, 네가 이미 그런 것들을 보아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묻지 않은 대신 도울 수 있는 건 전부 도왔다. 내가 모르는 많은 것들을 보고 겪은 네가 정한 길을 올곧게 걸을 수 있도록. 그게 옳은 길이라 믿었기에. 알고자 하면 알 수도 있었을 터다.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했을테니까. 그러지 않은 건 성격 탓도 있었지만, 과거에 얽메여봤자 좋을 것도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미 네가 그것들을 딛고 나아가기로 했으니까, 내가 그것들을 알아서 얽메여봤자. 모르는 편이 나을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말하지 않는 네게 크게 서운해하지 않았다. 마치 죄라도 지은 듯, 혹은 무언가를 원망하듯이. 저가 혼혈이라고 토해냈던, 어렸던 지크프리트 위버. 사실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추측할 수 있었고 압축할 수도 있었다. 딱 거기까지만 했다. 지금까지도 그러했다. 때가 되면 어련히 말해주겠지. 사실 말해주지 않아도 좋았다.

  내가 모르는 너에 대한 것들 너머에 네가 아는 나에 대한 것들이 있다. 네가 몰랐으면 했던 세상의 어두운 면들에는 자신의 음영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능하다면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끝까지 숨기고 싶었으나 결국 모두 토해 내가 모르는 곳에서 하나도 빠짐 없이 보여주었다. 그 후에 만난 너는 많은 것을 말하지 않았다. 여전히 무너지지 않은 모습으로 나를 똑바로 보았다. 멀리 있지 않겠다고, 덤덤하게 제 마음을 전했다. 그걸 다 보고 나서도. 너를 좋아하지 않았던 시간들과 내가 해 온 많은 더러운 일들을 보고 나서도. 내가 네가 생각하는 만큼 마냥 밝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도. 나를 받아들이겠다 하는 네가 있어서 몇 밤이나 울음을 삼켰던지. 당장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는 걸 네가 알까. 지금 와서 그런 것들은 몰라도 되는 것들이다. 알아야 하는 것들은, 그러니까…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것 정도. 딱 그것만 알면 되는 거다.

  어깨에 기대어 잠든 연인을 한 번 품 안에 품었다가 놓아주었다. 생각 이상으로 마른 몸을 안아드는 일이야 그닥 어렵지 않았다. 지크프리트는 춥기라도 한지 살짝 몸을 웅크렸다. 가지런히 정리해놓은 침대 위에 내려놓고 이불까지 덮어줬는데도 계속 그 상태였다. 결국 제 품안에 다시 소중하게 껴안았다. 라그렛은 지크프리트의 머리칼에 잠시 얼굴을 묻었다.

  "사랑해."

  깨어있을 때 해준다면 더 좋을텐데. 아직은 조금 쑥스럽네. 저도 모르게 푸스스 웃어버리곤 라그렛은 느리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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